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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간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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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야마 간켄은 1888년 오키나와에서 태어난 가라테 명인으로, 이토스 안코를 비롯한 당대 최고의 스승들에게 가라테를 사사했다. 그는 중국 권법을 배우고, 1930년 도쿄에 슈도칸 도장을 설립하여 가라테와 중국 권법을 가르쳤다. 도야마는 "가라테에 유파는 없다"는 신념으로 무유파주의를 실천하며, 제2차 세계 대전 후에는 제자 윤쾌병을 관장으로 하는 관무관을 결성하여 무술 금지령을 피했다. 그는 전일본가라테도연맹 설립에 참여하고 가라테 관련 서적을 저술했으며, 1966년 78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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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야마 간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도야마 간켄
원어 이름遠山寛賢
로마자 표기Tōyama Kanken
도야마 간켄
출생 및 사망
출생일1888년 9월 24일
출생지슈리 오키나와 기보 마을
사망일1966년 11월 24일
사망지오키나와 슈리
무술 정보
무술슈도칸 가라테 (창시자)
오키나와 무술 (슈리테)
다양한 형태의 중국 무술 (예: 태극권)
스승이토스 안코

2. 생애

도야마 간켄은 1888년 오키나와현 슈리시에서 태어났다. 어릴 적부터 이타라시키 조이쿠, 이토스 야스츠네, 히가온나 간료 등에게 가라테를 배웠다. 1906년 오키나와현 사범학교에 입학한 후에는 이토스 야스츠네와 야베 켄도의 조수를 맡기도 했다. 1911년 사범학교를 졸업했으며, 도쿠다 야스후미, 마키야 모 씨 등과 함께 "이토스 야스츠네의 삼우"로 불렸다.

1924년 타이완으로 건너가 타이베이와 타이중에서 중국 권법을 배웠다. 1931년 도쿄로 상경하여 아사쿠사도장 "슈도칸"을 설립, 윤희병(후의 전일본 가라테도 연맹 렌부회 관장)등의 제자를 육성했다.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의 아버지인 하토야마 카즈오 부부의 신교육 사상에 공감하여 하토야마 유치원의 경영자를 맡았고, 도야마 미츠루에게 공감하여 도야마 성으로 개명했다.

전후, 고향 오키나와를 위해 수백 권의 책을 기증하여 오키나와 초대 지사 시키야 타카노부에게 "가라테도 대사범" 칭호를 받았다. 1948년후나코시 기친과 "가라테의 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도야마는 자신이 이토스의 직계 제자이며, 후나코시는 방계라고 주장했다.

1951년 전일본 가라테도 연맹 렌부회 발족 당시 슈도칸이 총본부가 되었고, 도야마는 대사범으로서 방구 가라테도 보급에 공헌했다. "가라테에 유파는 없다"는 신념으로 무유파주의를 관철했으며, 고류 54보를 특기로 했다. 1966년 78세로 사망했다.

2. 1. 오키나와 출생과 가라테 수련

도야마 간켄은 1888년 오키나와현 슈리에서 오야도마리 간켄(親泊寛賢)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다. 9세(1897년경)부터 이토스 안코에게 슈리테를 배우기 시작하여 1915년 이토스가 사망할 때까지 가르침을 받았다.[1] 히가온나 간료에게서는 나하테를, 아라가키 안키치에게서는 토마리테를 배웠다.[1] 1906년부터 1911년까지 오키나와현 사범학교에 재학하면서 이토스 안코와 야부 켄츠의 조수를 맡았다. 그 외에도 타나 모 씨에게 봉술과 사이술을, 치바나 조신의 숙부에게서 "치바나 공상군(知花公相君)" 형을 배웠다.

2. 2. 대만에서의 활동

1924년 가족과 함께 타이완으로 건너가 초등학교 교사로 일하면서 중국 권법(촨 파)을 배웠다.[1] 타이베이의 첸 포지, 타이중의 린 시엔탕에게 중국 권법을 사사했다.[1]

2. 3. 일본 귀국과 슈도칸 설립

1930년 일본으로 돌아와 도쿄에 "슈도칸(修道館)" 도장을 설립했다.[3] 슈도칸은 "가라테의 길을 연구하는 전당"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도야마 간켄은 이토스에게서 배운 가라테와 중국 권법을 가르쳤으며, 새로운 유파를 창시하지는 않았다.[3] 윤병인, 윤쾌병, 김기황 등 많은 한국인 제자들이 슈도칸에서 가라테를 배웠다. 그는 하토야마 카즈오(전 중의원 의장, 하토야마 이치로 전 총리의 아버지) 부부의 신교육 사상에 공감하여 하토야마 유치원의 경영자를 맡기도 했다.[3] 또한, 사상가 도야마 미츠루에게 공감하여 도야마(遠山) 성으로 개명했다.[3]

2. 4. 전후 활동과 말년

전후, 도야마 간켄은 고향 오키나와가 전쟁으로 큰 피해를 입어 학생들이 읽을 책이 부족한 것을 알고 수백 권의 책을 오키나와현에 기증했다. 이러한 공로로 오키나와 초대 지사인 시키야 타카노부로부터 "가라테도 대사범" 칭호를 받았다.

1948년경, 도야마는 후나코시 기친과 "가라테 본가"를 두고 논쟁을 벌였다. 도야마는 자신이 이토스 야스츠네의 직계 제자이며, 후나코시는 아사토 야스츠네의 직제자이므로 방계에 불과하여 오키나와 가라테의 정통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또한 도야마는 오키나와 사범학교 본과 졸업생인 반면, 후나코시는 속성 학과(1년 과정) 출신이라는 점도 논쟁의 쟁점 중 하나였다. 도야마는 사범학교 본과에서 이토스에게 배운 사람만이 후계자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토스가 사범학교에서 가르치기 시작한 것은 1905년부터였고, 후나코시가 본과에 입학했더라도 (호적상) 1870년생인 후나코시가 이토스에게 배울 기회는 없었다. 어쨌든 이 논쟁을 통해 이토스 문하의 제자들 사이에 직계와 방계의 차별 의식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도야마는 제자들이 시작한 전국 가라테도 선수권 대회(현재의 전국 방구부 가라테도 선수권 대회)에서 모범 연무를 선보였고, 1951년 구·전일본 가라테도 연맹(현재의 전일본 가라테도 연맹 렌부회)이 발족하자 슈도칸이 총본부가 되었다. 도야마는 대사범으로서 방구 가라테도라는 경기로서의 가라테도 보급에 힘썼다. 또한, "오의 비전 가라테도", "호신 단련 가라테도", "가라테도 대보감" 등의 저서를 출판했다.

도야마는 "가라테에 유파는 없다"는 신념으로 평생 무유파주의를 지켰다. 고류 54보(야베 켄도 전수)를 특기로 했다. 1966년, 78세의 나이로 오키나와 슈리에서 사망했다.

3. 무유파주의

도야마 간켄은 안코 이토스(糸洲安恒)의 직계 제자임을 자처하면서도 평생 무유파주의(無流派主義)를 관철하며 자신의 가라테에 유파명을 붙이지 않았고, 유파의 존재 자체를 부정했다. "가장 신성한 무술에 두세 가지 다른 형태의 기법이 있을 이유가 없다"는 것이 그의 신념이었다.[2]

도야마는 "다양한 방식으로 수련하는 것이 가라테의 일반적인 방식이며, 유파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며 당시 유파로 명명된 모든 것에 대해 "수련상의 차이"로 간주하고 유파로 성립될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는 저서 『가라테 도다이호칸(空手道大観)』에서 당시 이미 널리 알려진 쇼린류(少林流)와 쇼레이류(昭霊流)에 대해 "이 두 유파가 지금 존재하는 것처럼 세상에 알려지고 있지만, 역사적 사실에 대한 확실한 근거는 없다"고 언급했다.[3] 그는 이들이 동일한 형태로 통합되었다고 주장했다.

또한, 쇼와 시대 초기에 등장한 여러 유파에 대해, 도야마는 시토류(糸東流)의 마부니 켄와(摩文仁賢和)와 고주류(剛柔流)의 미야기 쵸준(宮城長順)을 만났을 때 직접 질문했는데, 마부니는 "이름을 붙이는 것이 더 의미 있지 않습니까? 스승을 생각하는 의미도 있지 않습니까?"라고 답했고, 미야기는 "세상 사람들이 가라테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고(剛)'와 '주(柔)' 두 글자로 전체 그림을 표현했다"고 말했다. 결국, 가라테는 유파나 유파가 없는 진정한 오키나와 가라테이므로 그 이름은 무의미하다는 것이다.

또한, 당시 새로운 유파가 자주 생겨나는 것에 대해, "최근 정통 가라테의 전체 그림을 모르는 일부 무명의 가라테가 이상한 새로운 이름을 도입하고 있다"고 비판했다.[4]

4. 가르침

도야마 간켄은 가라테를 "강유(剛柔), 음양(陰陽), 호흡의 원리에 기반하여 맨손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데 자유로운 무술이며, 윤리적 교훈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정의했다.[1] 히로켄이 남긴 세 권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도덕적 교훈이 있다.[1]


  • 守礼のくに(예의의 나라)
  • 空手(에) 先手(는) 없다
  • (는) 백행의 근본이다
  • 손이 나가면 고집을 거두고, 고집이 나오면 손을 거두어라
  • 柔(는) 곧 화합, 剛(은) 곧 화합
  • 싸움과 다툼은 이겨도 버려라


가라테 수련자의 마음가짐은 다음과 같다.[1]

  • 무(武)의 의미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들어가 싸움을 멈추는 것이다. 가라테에는 선제공격이 없다.
  • 노력과 훈련, 독창성이 가라테를 향상시키는 비결이다.
  • 이치(理)로 들어가는 자는 기술(技)로 들어가는 자보다 더 오래간다.
  • 가라테는 신중하고 겸손하며 자비로운 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최후이자 유일한 공격, 방어 및 자기 방어 기술을 가지고 있다.
  • 손자의 가르침에 따라 먼저 자신을 무패의 지위에 올려놓고 적의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
  • 대담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행동해야 한다.
  • 자신을 보호해야 상대방의 빈틈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권법의 대요 8구는 다음과 같다.[1]

  • 인심은 천지와 같고
  • 혈맥은 해와 달과 같으며
  • 법은 강유(剛柔)를 삼키고 토해내며
  • 몸은 때에 따라 변하며
  • 손은 텅 빈 곳을 만나면 들어가고
  • 마(碼)는 진퇴이리(進退離逢)하며
  • 눈은 사방을 관찰하고
  • 귀는 팔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도야마는 안코 이토스에게서 물려받은 7가지 불가사의한 기술(오의)을 가지고 있었다.[5]

기술명설명
복식 호흡법dual (double) system breathing method|듀얼(더블) 시스템 호흡법영어
사자법lion method|라이언법영어
호랑이법tiger method|타이거법영어
악력법grip strength method|악력법영어
단안법eyes training method|아이즈 트레이닝법영어
곰의 손bear's paw|베어스 포영어
삼각뛰기triangular jump|트라이앵글러 점프영어



도야마는 이토스 야스쓰네로부터 위 7가지 기술을 奧義로 물려받았다. 다만, "奧技는 범상한 기술에서 시작하여, 범상한 기술로 끝난다. 처음에 奧技는 없지만, 마지막에는 奧技가 있다. 될지 안 될지의 열쇠는 단련이 쥐고 있다."고 하여, 범상한 기술이라도 개인이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단련을 쌓으면, 그것 또한 독자적인 훌륭한 奧技가 된다고 했다.[10]

4. 1. 가라테의 정의

도야마 간켄은 가라테를 "강유(剛柔), 음양(陰陽), 호흡의 원리에 기반하여 맨손으로 자신을 보호하고 적을 공격하고 방어하는 데 자유로운 무술이며, 윤리적 교훈을 최우선으로 한다"고 정의했다.[1]

4. 2. 도덕훈

히로켄이 남긴 세 권의 책에는 다음과 같은 여섯 가지 항목이 도덕적 교훈으로 묘사되어 있다.[1]

# 守礼のくに(예의의 나라)

# 空手(에) 先手(는) 없다

# (는) 백행의 근본이다

# 손이 나가면 고집을 거두고, 고집이 나오면 손을 거두어라

# 柔(는) 곧 화합, 剛(은) 곧 화합

# 싸움과 다툼은 이겨도 버려라

4. 3. 가라테 수련자의 마음가짐

무(武)의 의미는 관계에 있는 두 사람이 들어가 싸움을 멈추는 것이다. 가라테에는 선제공격이 없다.[1] 노력과 훈련, 독창성이 가라테를 향상시키는 비결이다.[1] 이치(理)로 들어가는 자는 기술(技)로 들어가는 자보다 더 오래간다.[1] 가라테는 신중하고 겸손하며 자비로운 자들이 도달할 수 없는 최후이자 유일한 공격, 방어 및 자기 방어 기술을 가지고 있다.[1] 손자의 가르침에 따라 먼저 자신을 무패의 지위에 올려놓고 적의 패배를 감수해야 한다.[1] 대담하게, 그리고 꼼꼼하게 행동해야 한다.[1] 자신을 보호해야 상대방의 빈틈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1]

권법의 대요 8구는 다음과 같다.[1]

  • 인심은 천지와 같고
  • 혈맥은 해와 달과 같으며
  • 법은 강유(剛柔)를 삼키고 토해내며
  • 몸은 때에 따라 변하며
  • 손은 텅 빈 곳을 만나면 들어가고
  • 마(碼)는 진퇴이리(進退離逢)하며
  • 눈은 사방을 관찰하고
  • 귀는 팔방의 소리를 들을 수 있어야 한다.

4. 4. 오의(奥義)

도야마는 안코 이토스에게서 물려받은 다음과 같은 7가지의 불가사의한 기술을 가지고 있었다.[5]

기술명설명
복식 호흡법dual (double) system breathing method영어
사자법lion method영어
호랑이법tiger method영어
악력법grip strength method영어
단안법eyes training method영어
곰의 손bear's paw영어
삼각뛰기triangular jump영어



도야마는 이토스 야스쓰네로부터 위 7가지 기술을 奧義로 물려받았다. 다만, "奧技는 범상한 기술에서 시작하여, 범상한 기술로 끝난다. 처음에 奧技는 없지만, 마지막에는 奧技가 있다. 될지 안 될지의 열쇠는 단련이 쥐고 있다."고 하여, 범상한 기술이라도 개인이 다른 사람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로 단련을 쌓으면, 그것 또한 독자적인 훌륭한 奧技가 된다고 했다.[10]

5. 일화


  • 1927년(쇼와 2년) 어느 날, 고류 검술 사용자가 진검을 들고 길에서 도야마를 습격했다. 도야마를 못마땅하게 여긴 가라테가가 검술가에게 의뢰한 것이었다. 도야마는 재빨리 진검을 피하고 반신 자세로 두 번째 공격에 대비했다. 검객이 다시 덤벼들자, 도야마는 왼발로 검객의 팔을 잡아 제압했고, 검객은 토담에 부딪혀 쓰러졌다. 도야마는 칼을 줍고 유유히 자리를 떠났는데, 이 모든 과정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다.
  • 1947년(쇼와 22년) 12월 10일, 도야마는 술 취한 미군에게 갑작스러운 폭행을 당했다. 도야마는 저항하지 않고 맞기만 했지만, "복식 호흡법"으로 단련된 그의 몸은 끄떡없었다. 때리다 지친 미군이 도망치자, 도야마는 태연하게 일어섰다. 그는 이토스 야스쓰네로부터 "호랑이의 법"이라는 비전까지 전수받은 인물이었기에, 건장한 미군도 그를 어쩌지 못했다.[1]

6. 주요 제자

이름칭호직위 / 소재지비고
윤병인시한대한민국 서울 도장, 한무관(후의 전일본 가라테도 연맹 렌부회) 관장[6]
윤쾌병시한도쿄 관무관(Korean Martial Hall) 관장[6]
이사오 이치카와한신 시한가라테도 도신칸 창시자[6]
이지 초신시한오키나와 슈리시 토 쇼 칸[6]
이와사 카호야한시 시한홋카이도, 우수한 지부 탄광, 지부 광업 이사[6]
이토 미키히로한시 시한도쿄 명문 대학 교사, 모리 도장 관장[6]
이노우에 키요시시한도쿄 도 오타구[6]
이즈미카와 히로키한시 시한가와사키시, 센부칸 관장*[6]
하나우에 토시오한신 시한가나가와현, 아츠기시, 코도칸 관장[6]
토시신가 후미오시한홋카이도, 토시신가 도장 관장[6]
치토세 타다시한신 시한지바현, 쵸시시 넨 도장 초[6]
오니시 에이조시한에히메현, 이요시, 코에이칸 가라테도 창시자/관장[6]
오니시 카즈히로시한에히메현, 카와노이시[6]
오가와 히데하루시한도쿄 도, 신주쿠구[6]
와타나베 켄이치한신 시한도쿄 도, 오타구, 세이도칸 관장[6]
카츠무라 마사오한신 시한요코하마시, 세이도칸 관장*[6]
요시카와 히데오한신 시한도쿄 도, 네리마구, 세이후칸 관장[6]
요시다 테츠오시한이바라키현, 타츠가자키시, 타이이쿠쿄카이 가라테 클럽 관장[6]
타마키 하쿠후한신 시한오이타현, 벳푸시, 타치나카 중학교 교장[6]
타카미네 미치오시한규슈[6]
모 호조시한규슈[6]
츠치야 히데오시한가나가와현, 오다와라시[6]
나라자키 타케오한신 시한도쿄 도, 세타가야 켐포칸 관장[6]
나카고미 이치로시한야마나시현, 유 단 샤(등급/계급) 회장[6]
코리시마 이치로한신 시한도쿄, 육군 소장 예편[6]
쿠리타 요시후미시한에히메현[6]
야비쿠 이사무시한도쿄 도, 무로노우치[6]
후지와라 후미요시시한후쿠오카시, 텐진쵸, 세이키 도장 관장[6]
키노시타 요시후미시한사이타마현, 키타아다치군[6]
코이즈미 쇼노스케시한도쿄 도, 메구로구[6]
코야스 미치오시한규슈[6]
아마미야 히로시시한야마나시현, 시오야마시[6]
아카미네 쇼즈케쇼스케 시한가와사키시, 나카지마*[6]
아라이 토시로시한도쿄 도, 토시마구, 치하야 예비학교 관장[6]
아라가키 류쇼시한도쿄 도, 요요기 슈도칸 지부 도장 관장[6]
사쿠라 토시오시한도쿄 도, 다이토구[6]
킨조 히로시한시 시한도쿄 렌부칸 시한*[6]
시마부쿠로 코스케시한요코하마시, 츠루미구, 시마부쿠로 도장 관장[6]
시바나카 이와오시한에히메현[6]
시모노 케이지시한자위대 총무국장[6]
히가 요시토한시 시한오키나와, 검찰총장[6]
히가 요시아키시한요코하마시, 츠루미구[6]
히가시오나 히로시한시 시한가나가와현, 오미치칸 본부 관장*[6]
히가 세이토쿠시한류큐 검찰청, 검사[6]
모리타 사다오시한요코하마시[6]
스즈키 히데아키시한도쿄 도, 오타구[6]
스즈키 요시츠구시한시즈오카현, 세이슈칸 관장[6]
스나베 코이치시한요코하마시, 츠루미구, 스나베 도장 관장[6]
아키타니 세이지시한슈도칸 회장[6]
무라타 요시타로시한홋카이도[6]
타카자와 마사나오시한오카야시, 나가노현 (고인)[6]


  • [6] '*' 기호는 도야마 간켄에게 직접 훈련받지는 않았지만, 시한 칭호와 고단의 책임을 가진 회원으로 확인된 인물 및 단체를 나타낸다.

7. 저서


  • 空手・奥手秘法|가라테・오쿠테 비법일본어 츠루 쇼보
  • 空手道大観|가라테도 대관일본어 츠루 쇼보
  • 空手道入門|가라테도 입문일본어 츠루 쇼보

참조

[1] 간행물 A Sensei's Story Karate's Takayuki Kubota https://books.google[...] Active Interest Media 1990-06
[2] 서적 空手道大宝鑑
[3] 서적 空手道大宝鑑
[4] 서적 空手道大宝鑑
[5] 서적 Karatedō Daihōkan
[6] 서적 Karate-Do Tai Hokan 1959
[7] 서적 空手道大宝鑑
[8] 서적 空手道大宝鑑
[9] 서적 空手道大宝鑑
[10] 서적 空手道大宝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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