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트로이트 테크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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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1980년대 초 미국 미시간주 디트로이트에서 시작된 전자 음악 장르이다. 후안 앳킨스, 데릭 메이, 케빈 손더슨으로 구성된 "벨빌 3인방"은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선구자로, 크라프트베르크,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 등에서 영향을 받아 신시사이저와 시퀀서를 활용한 음악을 선보였다. 이들은 1980년대 후반 영국에서 하우스 음악과 애시드 하우스가 인기를 얻으면서 "테크노"라는 용어를 사용, 장르를 정의하는 데 기여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펑크와 미래주의를 결합하고, 아프리카 퓨처리즘을 통해 소외된 대중에게 어필하며, 1990년대 초 칼 크레이그,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 등 2세대 아티스트들을 배출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도시 빈곤층을 위한 대안 사회를 제시하며 인종과 계급 문제를 다루는 음악으로 발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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멜버른 셔플은 1980년대 말 호주 멜버른에서 시작된 댄스 스타일로, T-스텝과 런닝맨을 기본으로 하며, 1990년대 중반 스타일이 정립된 후 유튜브를 통해 세계적으로 확산되었다. - 디트로이트의 역사 - 디트로이트 요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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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지는 1980년대 후반 시애틀에서 시작된 얼터너티브 록의 하위 장르로, 펑크 록과 헤비 메탈의 요소 융합, 허무주의적 가사, 반체제 패션을 특징으로 하며 1990년대 초 주류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고, 쇠퇴 후에도 후속 장르에 영향을 주며 현대 음악에 중요한 현상으로 남아있다. - 1980년대 미국 - 애시드 하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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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테크노 | |
---|---|
장르 | |
스타일 기원 | 일렉트로Mireille Silcott. Rave America: New School Dancescapes ECW Press, 1999; p. 27., 산업, 시카고 하우스, 신스팝 |
문화적 기원 | 1980년대 중반, 미시간주디트로이트 |
파생 장르 | "en:Minimal techno" "en:Ghettotech" 덥 테크노 |
2. 역사
디트로이트 테크노는 1980년대 초중반 미시간주 벨빌(Belleville, Michigan)에서 시작되었다. 후안 앳킨스(Juan Atkins), 데릭 메이(Derrick May), 케빈 손더슨(Kevin Saunderson)은 벨빌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전자 음악을 만들며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기반을 다졌다. 이들은 "벨빌 3인방(Belleville Three)"으로 불리며, 디트로이트 테크노 씬의 핵심 인물로 평가받는다.[3]
앳킨스는 릭 데이비스(Richard Davis)와 사이보트론(Cybotron)을 결성, 1981년 싱글 "Alleys of Your Mind"를 발매하여 15,000장을 판매했다. 이후 "Cosmic Cars", "Clear"의 성공으로 캘리포니아 레이블 판타지(Fantasy)와 계약, ''Enter'' 앨범을 발매했다. 앳킨스는 창작 견해 차이로 팀을 나와 1985년 자신의 레이블 메트로플렉스(Metroplex)에서 모델 500(Model 500)으로 활동하며 싱글 "노 UFO's"를 발매했다.[5]
앳킨스, 메이, 손더슨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유대감을 형성했다. 앳킨스는 팔러먼트 음악에 영감을 받아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구입했고,[5] 메이와 손더슨에게 DJ(DJ)를 가르쳤다.[6]
이들은 시카고(Chicago)의 하우스 음악(house music) 씬, 특히 론 하디(Ron Hardy)와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를 조사했다.[6] 이들은 하우스와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의 기계적인 사운드를 결합하여 탈산업화 시대의 디트로이트를 반영하는 방식을 고안했다.[8]
1988년 영국에서 발매된 앨범 ''테크노!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댄스 사운드''(Techno!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는 데릭 메이가 공동 제작한 앨범으로, ''테크노''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한 중요한 이정표였다.[28][29] 이 앨범은 영국 음악 저널리즘에서 ''테크노''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하는 계기가 되었다.
2. 1. 벨빌 쓰리(The Belleville Three)

디트로이트 테크노 장르 탄생과 밀접하게 관련된 세 사람은 후안 앳킨스(Juan Atkins), 케빈 손더슨(Kevin Saunderson), 데릭 메이(Derrick May)이며, 이들은 "벨빌 3인방(Belleville Three)"으로도 알려져 있다.[3] 미시간주 벨빌(Belleville, Michigan) 출신의 고등학교 동창인 이들은 지하실에서 전자 음악 트랙을 만들었다. 데릭 메이는 디트로이트 테크노 음악을 "완전한 실수... 마치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과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음악 시퀀서(Music sequencer)만 가진 채 엘리베이터에 갇힌 것과 같다"라고 묘사했다.[4]
워시트노 커뮤니티 칼리지(Washtenaw Community College)에 다니던 앳킨스는 릭 데이비스(Richard Davis)를 만나 사이보트론(Cybotron)을 결성했다. 1981년 딥 스페이스(Deep Space) 레이블에서 녹음된 첫 싱글 "Alleys of Your Mind"는 15,000장 판매되었고, 후속 싱글 "Cosmic Cars"와 "Clear"의 성공으로 캘리포니아 기반 레이블인 판타지(Fantasy)가 이들과 계약하여 앨범 ''Enter''를 발매했다. 창작상의 이견으로 사이보트론이 해체된 후, 앳킨스는 1985년 자신의 레이블 메트로플렉스(Metroplex)에서 모델 500(Model 500)으로 녹음을 시작했고, 곧 그의 랜드마크 싱글 "노 UFO's"가 발매되었다. 에디 파울크스(Eddie Fowlkes), 데릭 메이, 케빈 손더슨, 로버트 후드(Robert Hood) 또한 메트로플렉스에서 녹음했다. 메이는 교외 환경이 음악을 경험하는 데 다른 환경을 제공했다고 말하며, "우리는 댄스 클럽에서 음악을 접하는 것과는 다르게 음악을 인식했다. 우리는 불을 끄고 앉아 부치 콜린스(Bootsy)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의 레코드를 들었다. 우리는 그것을 단순히 엔터테인먼트로 여기지 않고, 진지한 철학으로 받아들였다"고 회상했다.[5]
앳킨스, 메이, 손더슨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부치(Bootsy), 팔러먼트(Parliament), 프린스(Prince), 데페쉬 모드(Depeche Mode), B-52's(The B-52's) 등 다양한 음악을 들으며 유대감을 형성했다. 후안 앳킨스는 팔러먼트의 음악을 듣고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구입할 영감을 얻었다.[5] 앳킨스는 또한 그룹 내에서 턴테이블리즘을 처음 시작하여 메이와 손더슨에게 DJ(DJ)하는 방법을 가르쳤다.[6]
딥 스페이스 사운드웍스(Deep Space Soundworks)라는 이름으로 앳킨스와 메이는 디트로이트의 파티 서킷에서 DJ를 시작했다. 1981년까지 모조(Mojo)는 벨빌 3인방이 녹음한 레코드 믹스를 연주했으며, 이들은 다른 음악가들과 함께 활동을 확장하고 있었다.[7] 이 트리오는 시카고(Chicago)로 건너가 하우스 음악(house music) 장면, 특히 시카고의 DJ인 론 하디(Ron Hardy)와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를 조사했다.[6] 하우스는 디스코 음악에서 자연스러운 발전이었고, 트리오는 이러한 댄스 음악과 크라프트베르크와 같은 그룹의 기계적인 사운드를 결합하여 탈산업화 시대의 디트로이트를 반영하는 방식을 고안하기 시작했다. 미래와 그 기계에 대한 집착은 그들의 많은 음악에 반영되어 있는데, 앳킨스에 따르면 디트로이트는 산업주의에서 벗어나는 전환에서 가장 앞서 있기 때문이다.[8]
후안 앳킨스는 "테크노의 대부"(또는 "창시자")로 칭송받았으며, 데릭 메이는 "혁신가", 케빈 손더슨은 "엘리베이터"라고 불린다.[9][10]
2. 2. 미래주의(Futurism)
후안 아킨스는 P-펑크가 자신의 테크노/미래 지향적인 사운드와 미학에 영향을 준 최초의 음악 그룹 중 하나였다고 언급했다.[20] (예: Parliament-Funkadelic 그룹의 ''Mothership Connection'' 무대 소품 및 앨범과 다른 앨범의 독특한 앨범 커버). 테크노의 기원은 펑크의 우주적 비전에 부분적으로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는 "테크노는 또한 디트로이트 도시 환경이 나타내는 제약, 편견 및 선입견으로부터 자유롭게 존재할 수 있는 음악과 미래 문화에 대한 이상주의적인 비전을 나타낸다"라는 쇼브의 연구에서 제기된 주장을 뒷받침한다.[12] 이러한 맥락에서 테크노는 흑인만을 위한 장르라는 인식을 벗어나, 테크노 음악을 소유한 ''모든'' 사람들을 통합하기 위해 음악, 진동, 산업적 소리 및 클럽 문화의 역할을 밝히는 것을 목표로 한다.[12]초기 디트로이트 테크노 아티스트들은 변혁된 사회에 대한 자신들의 비전을 표현하기 위해 공상 과학 이미지를 사용했다.[12] 데릭 메이가 그의 예명 Rhythim Is Rhythim으로 발표한 "Strings of Life" (1987)는 이러한 경향에서 두드러진 예외였다. 이 활기찬 댄스 플로어 앤섬은 풍부한 합성 스트링 편곡으로 채워졌고 1987년 5월 언더그라운드 음악계를 강타했다. 이 곡은 1987-1988년 영국의 하우스 폭발 기간 동안 특히 큰 영향을 미쳤으며,[13] 메이의 가장 유명한 트랙이 되었다. 프랭키 너클스에 따르면 "그냥 폭발했다. 처음 들었을 때 사람들이 그 레코드에서 얻었던 종류의 힘과 에너지는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14]
디트로이트에서 테크노가 만든 클럽 신은 디트로이트의 교외 흑인들이 도심에 거주하는 하층 흑인들을 비하하는 속어인 "지츠"로부터 거리를 두는 방법이었다. "프렙 파티"는 부를 과시하는 데 집착했으며 유럽 문화의 많은 측면을 통합했는데, 여기에는 유럽 패션과 사치를 반영하는 Plush, Charivari, GQ Productions와 같은 클럽 이름이 포함되었다. 이는 유럽이 상류층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또한 프렙 파티는 개인 클럽으로 운영되었으며 옷차림과 외모에 따라 출입자를 제한했다. 파티 전단 또한 하층 개인을 중산층 클럽 신에서 제한하고 거리를 두려는 시도였다.[15]
세 명의 아티스트는 모두 기술을 재활용하여 소외된 언더그라운드 대중에게 어필하는 새로운 형태의 음악을 창조함으로써 아프리카 퓨처리즘의 담론에 기여한다. 특히 디트로이트의 맥락에서, 이 세 명이 성장할 무렵 로봇 공학의 부상은 대규모의 일자리 감소로 이어졌고, 기술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과정은 "기술을 활용하여 흑인들만의 비밀로 만들었다."
사운드는 미래적이면서 동시에 외계적이며, 아프리카 퓨처리즘 콘텐츠의 핵심인 "타자성"을 건드린다. 한 평론가에 따르면, 이는 "밖으로 나오려고 하는 소외된 소리"였다. 투쿠푸 주베리는 일렉트로닉 음악이 다인종적일 수 있으며 평론가들은 "사운드 미학뿐만 아니라 흑인 음악가들이 만들어낸 제작 과정과 기관"에 주목해야 한다고 설명한다.
2. 3. 뮤직 인스티튜트(The Music Institute)
시카고의 하우스 클럽에서 영감을 얻은 셰 담이에, 알톤 밀러, 조지 베이커는 다운타운 디트로이트에 자신들만의 클럽인 더 뮤직 인스티튜트(The Music Institute)를 1315 브로드웨이에 설립했다.[16] 이 클럽은 이전에 분산되어 있던 음악 씬을 언더그라운드 "가족"으로 묶는 데 기여했으며, 메이, 앳킨스, 손더슨이 에디 "플래싱" 폴크스, 블레이크 백스터와 같은 동료 선구자들과 함께 DJing을 했다.[17] 이곳은 협업을 가능하게 했으며, 벨빌 쓰리가 영향을 주고 지도했던 아티스트들을 포함하는 디트로이트 지역 테크노의 제2의 물결을 영감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18]2. 4. 해외에서의 성공과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
1980년대 후반 전자 댄스 음악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증가하면서 테크노가 식별 가능한 장르로 발전하는 배경이 마련되었다. 1988년 중반 영국에서 발매된 앨범 ''테크노! 디트로이트의 새로운 댄스 사운드''(Techno! The New Dance Sound of Detroit)[26][27]는 전 노던 소울 DJ이자 쿨 캣 레코드 사장인 닐 러쉬턴(당시 버진의 "10 레코드" 임프린트의 A&R 스카우트)과 데릭 메이가 공동 제작한 앨범으로, 특정 음악 장르를 지칭하는 단어 ''테크노''가 처음 등장한 중요한 이정표였다.[28][29]
1988년, 영국에서 하우스와 애시드 하우스 음악이 인기를 끌면서, Virgin Records의 인재 발굴 담당자 닐 러쉬턴은 데릭 메이에게 디트로이트 음악씬에 대해 더 자세히 알아보려 연락했다. 디트로이트 사운드를 시카고 하우스와 구분하기 위해, 러쉬턴과 벨빌 3인방은 자신들의 트랙에 "테크노"라는 단어를 선택했는데, 이 용어는 후안 앳킨스(Juan Atkins)가 사이보트론 시절부터 사용하던 용어였다("Techno City"는 초기 싱글 중 하나였다).[29][31][32]
이 컴필레이션 앨범으로 인해 영국 음악 저널리즘에서 ''테크노''라는 단어가 사용되기 시작했지만, 한동안 이 음악은 비교적 순수한 장르라기보다는 시카고 하우스를 디트로이트식으로 해석한 하이테크 음악으로 묘사되기도 했다.[29][30] 사실, 이 컴필레이션 앨범의 가제는 "디트로이트의 하우스 사운드"였지만, 애킨스의 "테크노 뮤직"이 추가되면서 재고려되었다.[31] 러쉬턴은 나중에 애킨스, 메이, 손더슨과 함께 앨범의 최종 이름을 정했으며, 벨빌 쓰리가 이 음악을 지역적인 하우스의 한 종류로 부르는 것을 거부하고, 대신 자신들이 이미 사용하고 있던 용어인 ''테크노''를 선호했다고 말했다.
2. 5. 2세대(Second wave)
후안 앳킨스(Juan Atkins), 케빈 손더슨(Kevin Saunderson), 데릭 메이(Derrick May)는 벨빌 3인방(Belleville Three)으로 불리며, 디트로이트 테크노 탄생에 큰 영향을 주었다.[3] 이들은 미시간주 벨빌(Belleville, Michigan) 고등학교 동창으로, 함께 전자 음악 트랙을 만들었다. 데릭 메이는 디트로이트 테크노를 "조지 클린턴(George Clinton)과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가 음악 시퀀서(Music sequencer)만 가진 채 엘리베이터에 갇힌 것"과 같다고 묘사했다.[4]
워시트노 커뮤니티 칼리지(Washtenaw Community College)에서 앳킨스는 릭 데이비스(Richard Davis)와 사이보트론(Cybotron)을 결성했다. 1981년 이들의 싱글 "Alleys of Your Mind"는 15,000장 판매되었고, "Cosmic Cars", "Clear"의 성공으로 캘리포니아 레이블 판타지(Fantasy)와 계약, ''Enter'' 앨범을 발매했다. 앳킨스는 창작 견해 차이로 팀을 나와 1985년 자신의 레이블 메트로플렉스(Metroplex)에서 모델 500(Model 500)으로 활동하며 랜드마크 싱글 "노 UFO's"를 발매했다. 에디 파울크스(Eddie Fowlkes), 데릭 메이, 케빈 손더슨, 로버트 후드(Robert Hood)도 메트로플렉스에서 활동했다. 메이는 교외 환경이 음악을 다르게 경험하게 했다고 회상하며, "우리는 불을 끄고 부치 콜린스(Bootsy)와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를 들으며, 단순한 엔터테인먼트가 아닌 철학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5]
세 친구는 옐로우 매직 오케스트라(Yellow Magic Orchestra), 크라프트베르크(Kraftwerk), 부치(Bootsy), 팔러먼트(Parliament), 프린스(Prince), 데페쉬 모드(Depeche Mode), B-52's(The B-52's) 등을 들으며 유대감을 형성했다. 앳킨스는 팔러먼트 음악에 영감을 받아 신시사이저(synthesizer)를 구입했고,[5] 메이와 손더슨에게 DJ(DJ)를 가르쳤다.[6]
딥 스페이스 사운드웍스(Deep Space Soundworks)라는 이름으로 앳킨스와 메이는 디트로이트 파티에서 DJ를 시작했다. 1981년까지 모조(Mojo)는 벨빌 3인방의 믹스를 연주했고, 이들은 다른 음악가들과 활동을 넓혔다.[7] 이들은 시카고(Chicago)로 건너가 하우스 음악(house music)과 론 하디(Ron Hardy), 프랭키 너클스(Frankie Knuckles)를 조사했다.[6] 하우스는 디스코의 발전이었고, 이들은 댄스 음악과 크라프트베르크 등의 기계적인 사운드를 결합하여 탈산업화 시대의 디트로이트를 반영하는 방식을 고안했다. 미래와 기계에 대한 집착은 그들의 음악에 반영되었는데, 앳킨스는 디트로이트가 산업주의에서 벗어나는 전환의 최전선에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8]
후안 앳킨스는 "테크노의 대부"(또는 "창시자"), 데릭 메이는 "혁신가", 케빈 손더슨은 "엘리베이터"로 불린다.[9][10]
3. 정치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첫 번째 물결은 시카고 하우스 운동과 달랐는데, 전자는 디트로이트 교외 흑인 중산층 공동체에서 시작되었다.[23] 디트로이트 자동차 산업의 결과로 번영을 누린 가정의 십 대들은 디트로이트, 시카고, 뉴욕의 도시 지역에서 발견되는 흑인 빈곤과는 거리가 멀었다. 이로 인해 "No Jits"라는 표지판이 흔하게 붙어 있는, 빈민가 갱스터나 불량배들이 자주 찾는 클럽 공간에서 긴장이 조성되었다.[23] 교외 중산층 흑인 청소년들은 유로필 문화에도 매료되었는데, 이는 흑인의 정체성이 부족하다는 비판을 받았다. 샤웁은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에 대한 분석에서 "빈민가 사람들을 위한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 대한 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빈민가의 관점에서 발언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24]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정체성 정치는 주로 인종 관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테크노가 만들어지는 동안 이처럼 지속적이고 강력한 "본질적인 흑인성을 넘어선 진보적인 열망"이 있었다.[24] 테크노의 계급적인 특성으로 인해 예술가와 프로듀서들이 특히 첫 번째 물결에서 도시 빈곤층과 스스로를 분리하는 것을 피했지만, 그들이 대도시 공간을 자신들만의 다른 대안 사회에 대한 비전의 대상으로 만드는 데 도움이 되었다. 이러한 대안 사회는 인종과 민족의 개념을 넘어 모든 것을 융합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초기 프로듀서들은 테크노가 인종에 관한 것이 아니라 음악에 관한 것이 되기를 바란다고 여러 번 말했다. 후안 앳킨스는 "나는 일들이 (인종에 따라) 분리되고 해부되어야 한다는 것을 싫어한다... 내 생각에는 백인 음악이나 흑인 음악이 아니라 그냥 음악이어야 한다"고 말했다.[25]
4. 주요 아티스트 및 레이블
1980년대 후반, 데릭 메이, 케빈 샌더슨, 블레이크 벅스터, 셰즈 다미에 등의 아티스트와 세인트 앤드루스 홀, 매제스틱 극장, 더 쉘터 등의 클럽들이 인기를 얻으며 디트로이트 테크노의 1차 유행이 정점을 찍었다.[33] 1990년대 초에는 칼 크레이그,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마이크 뱅크스, 제프 밀스, 로버트 후드 참여), 블레이크 벅스터, 제이 데넘, 그리고 옥타브 원을 포함한 디트로이트 아티스트들의 2차 유행이 시작되었다.[34]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는 음악을 통해 상업적인 주류 엔터테인먼트 산업에 맞서 싸우는 준군사 조직으로 자신들을 묘사했다. 리치 호틴과 존 아콰비바가 결성한 레이블 +8은 인더스트리얼 하드코어에서 미니멀리스트 프로그레시브 테크노 사운드로 발전했다.
2000년, 최초의 디트로이트 전자 음악 페스티벌이 열렸고, 이후 페스티벌은 Movement, Fuse-In, Movement: 디트로이트의 전자 음악 페스티벌 (2007)로 이름이 변경되었다.
4. 1. 디트로이트 출신 주요 아티스트
- 후안 앳킨스
- 데릭 메이
- 케빈 샌더슨
- 칼 크레이그
- 에디 폭스
- 마이크 뱅크스
- 제프 밀스
- 블레이크 백스터
- 앤서니 셰이커
- 로버트 후드
- 제임스 페닝턴
- 옥타브 원
- 케니 라킨
- 앨런 올덤
- 클로드 영
- 드렉시아
- DJ 롤랜드
- 무디맨
- 리치 호틴
4. 2. 디트로이트 외 출신 주요 아티스트
- 댄 커틴
- Orlando Voorn
- Aril Brikha
- Joris Voorn
- Deetron
- Ian O'brien
- Fabrice Lig
- Sub Human Bros
4. 3. 주요 레이블
- 430 웨스트 레코드(430 West Records)
- 디트로이트 테크노 민병대(Detroit Techno Militia)
- 제프 밀스 - 액시스 레코드(Axis Records)
- 프래자일 레코드(Fragile Records)
- 메트로플렉스(Metroplex)
- 마이너스 레코드(Minus Records)
- 플래닛 E 커뮤니케이션(Planet E Communications)
- 플러스 8(Plus 8)
- 트랜스맷(Transmat)
- 서브머지(Submerge)
- 언더그라운드 레지스탕스(Underground Resistance)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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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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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orld Music Productions
2011-06-17
[32]
뉴스
Machine Soul: A History of Techno
http://www.rocksback[...]
[33]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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웹사이트
https://perfectdomai[...]
[35]
문서
Generation Ecstasy.
[36]
서적
Generation Ecstas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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