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몬 마르살
1. 개요
라몬 마르살은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레알 마드리드의 황금기를 이끈 수비수이다. 1954년부터 1960년까지 레알 마드리드에서 활약하며, 5번의 라리가 우승, 1번의 코파 델 레이 우승, 5번의 유러피언컵 우승을 달성했다. 스페인 국가대표팀 선수로 1950년 FIFA 월드컵에 참가했으며, 레알 마드리드에서 211경기 출전 64골, 국가대표팀에서 11경기 출전 1골을 기록했다. 1942년 심장 질환으로 사망했다.
| 전체 이름 | Ramón Marsal Ribó |
|---|---|
| 출생일 | 1934년 12월 12일 |
| 출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 사망일 | 2007년 1월 22일 |
| 사망지 | 스페인 마드리드 |
| 포지션 | 은퇴 (과거 미드필더) |
| 청소년 클럽 연도 | 1948–1952 |
|---|---|
| 청소년 클럽 | 레알 마드리드 |
| 클럽 연도 | 1952–1955 |
| 클럽 | 레알 마드리드 B |
| 클럽 연도 | 1953–1954 |
| 클럽 | → 에르쿨레스 (임대) |
| 클럽 연도 | 1954–1955 |
| 클럽 | → 무르시아 (임대) |
| 클럽 연도 | 1955–1962 |
| 클럽 | 레알 마드리드 |
| 클럽 연도 | 1958 |
| 클럽 | → 에스파뇰 (임대) |
| 클럽 연도 | 1959–1960 |
| 클럽 | → 레반테 (임대) |
| 클럽 연도 | 1960–1962 |
| 클럽 | → 레알 마드리드 B (임대) |
| 클럽 연도 | 1962–1965 |
| 클럽 | 무르시아 (임대) |
| 클럽 연도 | 1964–1965 |
| 클럽 | → 아바란 (임대) |
| 출장수 (골) | 0 |
| 출장수 (골) | 18 (5) |
| 출장수 (골) | 11 (5) |
| 출장수 (골) | 45 (21) |
| 출장수 (골) | 1 (0) |
| 출장수 (골) | 12 (1) |
| 출장수 (골) | 12 (6) |
| 출장수 (골) | 38 (6) |
| 국가대표팀 연도 | 1958 |
|---|---|
| 국가대표팀 | 스페인 |
| 국가대표팀 출장수 (골) | 1 (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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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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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스페인 남자 축구 국가대표팀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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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겔 앙헬 나달은 스페인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센터백과 수비형 미드필더로 활약하며 FC 바르셀로나에서 전성기를 보내 라리가 우승 등을 경험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62경기에 출전했다. -
1934년 출생 -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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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4년 출생 -
임동원
대한민국의 군인 출신 정치인이자 외교관인 임동원은 육군사관학교 졸업 후 군과 정부의 요직을 거쳐 나이지리아, 오스트레일리아 대사, 통일부 장관, 국가정보원장 등을 역임하며 김대중 정부 시절 햇볕정책의 핵심 역할을 수행했으나, 제2연평해전 발언과 불법 감청 혐의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라몬 마르살은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팀을 거쳐 1군에서 활약하며 주요 대회 우승에 기여한 선수이다. 플루스 울트라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에르쿨레스와 무르시아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았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 1군으로 복귀하여 유러피언컵 우승 등에 기여했다. 그러나 셀타 비고전에서 당한 무릎 부상과 수술 중 의료사고로 20대 초반의 젊은 나이에 은퇴해야 했다. 스페인 국가대표로도 1경기 출전했다.
2.1. 유소년 및 임대 시절
라몬 마르살은 마드리드 출신으로, 학창 시절 축구를 시작해 레알 마드리드 유소년부 스카우터의 눈에 띄어 입단 제의를 받았다. 1948-49 시즌, 플루스 울트라에 합류했다. 그는 경험을 쌓기 위해 에르쿨레스로 임대되었고, 이후 무르시아로 한 번 더 임대되었다. 에르쿨레스와 무르시아에서 성공적인 활약을 펼친 후, 레알 마드리드 1군으로 복귀했다.
2.2. 레알 마드리드
라몬 마르살은 플루스 울트라를 거쳐 에르쿨레스, 무르시아로 임대되어 경험을 쌓고 레알 마드리드 1군으로 복귀했다.
1955-56 시즌, 차마르틴 신구장에서 열린 쿨투랄 레오네사와의 리그 경기에서 레알 마드리드 데뷔전을 치렀다. 같은 해, 유러피언컵 결승전에서 스타드 랭스를 상대로 4-3 승리에 기여하며 21세의 나이로 유럽 정상에 올랐다.
다음 해, 아틀레틱 빌바오와의 경기에서 "경기장을 좌우로 왕래하며 전진한 뒤 놀라운 득점"을 기록하며 6-0 대승을 이끌었다. 이 골은 "1분도 더 되는 가치의 골"로 회자된다. 같은 해 레알 마드리드는 유러피언컵 정상을 지켰지만, 마르살은 결승전에 결장했다.
1958년 4월 20일, 셀타 비고와의 경기에서 무릎 부상을 당했고, 수술 중 의료사고로 인해 조기 은퇴하게 되었다. 1957-58 시즌에도 유러피언컵을 우승했지만, 마르살은 부상으로 결승전에 출전하지 못했다.
마르살은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총 59경기에 출전해 27골을 기록했다. 이 중 3골은 라 리가 우승을 확정짓는 골이었고, 3골은 유러피언컵에서 기록한 골이었다.
2.3. 국가대표 경력
마르살은 스페인 국가대표팀 경기에 한 번 출전했는데, 1958년 4월 13일 마드리드에서 열린 포르투갈과의 경기였다. 스페인은 이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