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리아노 사르티
1. 개요
줄리아노 사르티는 이탈리아의 전 축구 선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54년 ACF 피오렌티나에서 세리에 A에 데뷔하여, 피오렌티나에서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경험했다. 특히 1960년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위대한 인테르"의 주전 골키퍼로 활약하며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빗장 수비 전술의 핵심이 되어 세리에 A 2회, 유러피언컵 2회, 인터콘티넨털컵 2회 우승을 이끌었다. 1968년 유벤투스로 이적 후, 1973년 은퇴할 때까지 우니오네 발디니에볼레에서 선수 생활을 했다. 1959년부터 196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에서 8경기에 출전했으며, 은퇴 후 루케세 1905에서 감독직을 수행했다. 2017년 83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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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체 이름 | Giuliano Sarti |
|---|---|
| 출생일 | 1933년 10월 2일 |
| 출생지 | 카스텔로다르질레, 이탈리아 |
| 사망일 | 2017년 6월 5일 |
| 사망지 | 피렌체, 이탈리아 |
| 키 | 1.78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 클럽 | 1952–1953: 첸테세 1953–1954: 본데네세 1954–1963: 피오렌티나 (220경기) 1963–1968: 인테르나치오날레 (147경기) 1968–1969: 유벤투스 (10경기) 1969–1973: 우니오네 발디니에볼레 |
| 국가대표팀 | 이탈리아 (1959–1967, 8경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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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클럽 | 1978–1982: 나폴리 (유소년) 1982–1983: 레체 1983–1984: 카탄차로 1984–1985: 인테르나치오날레 (유소년) 1985–1986: 인테르나치오날레 1987–1989: 만토바 1989–1990: 발레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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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광역시 출신 -
잔니 모란디
잔니 모란디는 1960년대 데뷔하여 수많은 히트곡과 산레모 음악제 우승을 통해 여러 세대에 걸쳐 사랑받는 이탈리아의 대표 가수이자 배우, 텔레비전 진행자이다. -
볼로냐 광역시 출신 -
알베르토 톰바
알베르토 톰바는 올림픽 금메달과 월드컵 통산 50승, 종합 우승을 차지한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알파인 스키 선수로, "톰바 라 봄바"라는 별명으로 불린다. -
2017년 사망 -
존 허드
존 허드는 연극 배우로 시작하여 영화와 텔레비전 드라마에서 활약하며 《나 홀로 집에》 시리즈의 아버지 역으로 유명해졌고, 《소프라노스》로 에미상 후보에 오른 미국의 배우이다. -
2017년 사망 -
조반니 사르토리
조반니 사르토리는 이탈리아의 정치학자이며, 특히 의미있는 정당 개념을 통해 정치학계에 기여했으며, 다양한 저서를 통해 민주주의 이론, 정치 제도 디자인 등에 대해 논의했다. -
1933년 출생 -
아키히토
아키히토는 1933년 쇼와 천황의 장남으로 태어나 1989년 일본 천황으로 즉위하여 2019년 퇴위하고 상황이 되었으며, 어류학자로 활동하며 아시아 국가에 대한 사죄와 국민과의 소통에 힘썼다. -
1933년 출생 -
박승재
박승재는 대한민국의 정치학자이자 민주정의당 소속으로 제13대 국회의원을 지낸 정치인으로, 고려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한양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으며, 한양대학교 교수 및 한국정치학회 이사,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2. 구단 경력
사르티는 첸테세(1952–53)와 본데네세(1953–54)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1954년 피오렌티나로 이적하며 세리에 A 무대에 데뷔했다.
피오렌티나에서(1954–63) 레오나르도 코스탈리올라와의 짧은 경쟁 끝에 승리하고 이후 엔리코 알베르토시로부터 주전 지위를 사수했다. 그는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면서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그리고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거두었다.
사르티는 특히 1960년대에 엘레니오 에레라 시대에 "위대한 인테르"(La Grande Inter)로 호령하던 수문장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그는 1963년에 이적하여, 선수단에 합류한 뒤 측면 수비수 부르니치와 파케티, 그리고 최후방 수비수 아르만도 피키와 함께 인테르나치오날레의 끈질긴 "빗장" 수비 전술의 핵심이 되어 이탈리아, 유럽, 그리고 국제 무대를 호령케 했다. 그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5년을 활약하면서 2번의 세리에 A를 우승했고, 유러피언컵도 2번, 인터콘티넨털컵까지 2번 우승했다.
1968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를 떠난 그는 1968-69 시즌을 로베르토 안촐린의 후보로 유벤투스에서 활약했다. 그는 이듬해 우니오네 발디니에볼레로 이적하여 1973년에 은퇴할 때까지 머물렀다.
2.1. 피오렌티나 시절 (1954-1963)
줄리아노 사르티는 하부 리그의 첸테세(1952–53)와 본데네세(1953–54)를 거쳐 1954년에 피오렌티나에 입단했다. 레오나르도 코스탈리올라와의 경쟁에서 이기고, 이후 엔리코 알베르토시로부터 주전 골키퍼 자리를 지켜냈다. 피오렌티나에서 활약하면서(1954–63) 세리에 A, 코파 이탈리아,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거두었다.
1955-56 시즌에는 세리에 A 우승을, 1960-61 시즌에는 코파 이탈리아와 유러피언 컵위너스컵 우승을 차지했다.
2.2. 인테르나치오날레 시절 (1963-1968)
줄리아노 사르티는 1960년대 엘레니오 에레라 감독의 "(La Grande Inter)"에서 주전 골키퍼로 가장 잘 알려져 있다. 1963년 인테르나치오날레에 합류한 그는 측면 수비수 부르니치와 파케티, 최후방 수비수 아르만도 피키와 함께 빗장 수비 전술의 핵심이 되어 이탈리아, 유럽, 그리고 국제 무대를 호령케 했다.
사르티는 인테르나치오날레에서 5년 동안 활약하며 2번의 세리에 A 우승 (1964-65, 1965-66), 2번의 유러피언컵 우승 (1963-64, 1964-65), 그리고 2번의 인터콘티넨털컵 우승 (1964, 1965)을 달성했다. 1968년 인테르나치오날레를 떠났다.
2.3. 유벤투스 및 기타 팀 (1968-1973)
줄리아노 사르티는 1968년에 인테르나치오날레를 떠나 유벤투스로 이적하여 1968-69 시즌을 로베르토 안촐린의 후보 선수로 활약했다. 이후 그는 우니오네 발디니에볼레로 이적하여 1973년 은퇴할 때까지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사르티는 1959년부터 1967년까지 이탈리아 국가대표팀 경기에 8번 출전했지만, 당대 유수의 골키퍼들과의 치열한 경쟁으로 인해 주요 대회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그의 첫 국가대표팀 경기는 1959년 11월 29일, 헝가리와의 홈 경기였으며, 1-1 무승부로 끝났다.
4. 경기 방식
줄리아노 사르티는 이탈리아 역대 최고의 골키퍼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그는 꾸준하고 믿음직한 수문장으로, 뛰어난 공 예측력, 평정심, 강한 정신력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운동신경을 이용한 화려한 선방보다는 효율적인 선방으로 명성을 얻었다.
사르티는 '최후방 수비수 겸 수문장' 역할을 맡아 이탈리아에서 골키퍼의 역할을 크게 변화시킨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상대 공격수를 예측하고 수비 라인을 조율하며 경기를 풀어나가는 능력이 탁월했다. 일대일 상황에서는 골라인 근처에 머물며 상대와의 거리를 유지하여 슈팅을 막아낼 시간을 확보하는 '기하학적'인 방식을 사용했다. 슛을 막는 능력으로 유명하며, 골문에서의 뛰어난 위치 선정 능력으로도 높이 평가받았다. 그는 상대 공격수를 예측하기 위해 골문 밖으로 자주 뛰쳐나가거나, 자신의 구역 밖으로 나와 수비수에게 공을 연결하거나 플레이를 전개하는 경향이 있어 "스위퍼 골키퍼" 역할을 수행했다. 이러한 플레이 스타일은 당시에는 특이했지만 매우 효과적인 것으로 여겨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