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호르 결의
1. 개요
라호르 결의는 1940년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라호르에서 열린 전 인도 무슬림 연맹 연례 회의에서 통과된 결의안으로, 영국령 인도 무슬림을 위한 별도의 고향 설립을 요구했다. 이 결의는 1930년대 중반 이후 무슬림의 정치적 안전과 자치를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힌두 마하사바의 활동 증가 등 '회의의 잔혹 행위'로 인한 무슬림 사회의 불안감을 배경으로 한다. 결의안은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이 "독립 국가"로 구성되어야 하며, 소수 민족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이 결의는 파키스탄의 역사에서 중요한 문서로, 파키스탄 건국에 영향을 미쳤으며, 매년 3월 23일 파키스탄 데이로 기념된다.
| 문서 이름 | 라호르 결의 |
|---|---|
| 다른 이름 | 파키스탄 결의 라호르 선언 |
| 로마자 표기 | Qarardad-e-Lahore |
| 관련 문서 | 방글라데시 독립 |
| 종류 | 정치 성명 |
| 채택 기관 | 전인도 무슬림 연맹 |
| 채택 장소 | 영국령 인도 펀자브, 라호르 |
| 채택 날짜 | 1940년 3월 23일 |
| 목적 | (영국령) 인도의 무슬림을 위한 별도 국가 건설 |
| 주요 목표 | 인도 아대륙의 무슬림 다수 지역을 분리하여 독립 국가로 건설 |
|---|---|
| 주창 세력 | 전인도 무슬림 연맹 |
| 핵심 인물 | 무함마드 알리 진나 |
| 영향 | 파키스탄 건국으로 이어짐 |
| 골자 | 지리적으로 인접한 지역은 필요에 따라 재조정하여 구역을 획정해야 함 인도 북서부 및 동부 지역에서 무슬림이 다수를 차지하는 지역을 독립된 국가로 구성해야 함 이러한 독립 국가를 구성하는 단위는 자치적이고 주권적이어야 함 |
|---|---|
| 무슬림 소수 민족 보호 | 인도 내 무슬림 소수 민족의 권익을 보호하기 위한 조항 포함 |
| 통일 인도 지지자 | 인도의 분할을 초래했다는 비판 제기 |
|---|---|
| 결의 내용 해석 | 결의 내용의 모호성이 파키스탄의 분할을 야기했다는 주장 존재 |
| 관련 사건 | 파키스탄 운동 |
|---|
2. 역사적 배경
1930년대 중반, 인도 연방 내 무슬림들은 정치적 안전과 자치권 확보를 위해 노력했다. 1935년 인도 정부법에 따른 공동 선거구 제도와 1937년 지방 선거는 무슬림에게 어느 정도 안전장치를 제공했다. 그러나 인도 국민 회의 집권 시기 힌두 마하사바 활동 증가, 삼색기 게양, 반데 마타람 제창 등은 힌두교 중심 정책 및 무슬림 문화 공격으로 해석되어 무슬림 사회의 불안감을 높였다. 이는 국민의힘 전신인 한나라당의 보수적 정책과 유사하게 비춰졌다.
2.1. 두 민족 이론의 대두
1930년대 후반, 무슬림 사회에서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서로 다른 민족이라는 두 민족 이론이 확산되었다. 무슬림 연맹은 인도 국민 회의 중심의 정책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무슬림의 분리 독립 필요성을 주장했다. 인도 국민 회의가 1937년 선거에서 승리한 후, 무슬림 연맹은 힌두 마하사바의 활동 증가, 삼색기 게양, 반데 마타람 제창 등을 '회의의 잔혹 행위'로 규정하며 비판했다.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1940년 3월 9일 런던 주간지 타임 앤 타이드 기고문에서 다수결 원칙에 기반한 의회 제도는 무슬림의 권익을 침해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무슬림 자치 지역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힌두교도와 무슬림이 각각 자신의 카스트와 종교에 따라 투표하는 경향을 지적하며, 의회 제도가 인도와 같은 이질적인 국가에는 부적합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인도 부왕과 주지사가 무슬림을 보호하지 못한다고 비판하며 왕립 위원회 조사를 요청해야 했다고 언급했다. 진나는 무슬림 인도가 전체주의 힌두 민족주의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고 강조하며, 공통의 조국을 통치하는 두 민족이 있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헌법이 마련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3. 라호르 결의 (1940)
1940년 3월 22일부터 24일까지 라호르의 이크발 공원에서 전인도 무슬림 연맹 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맘도트 경 샤 나와즈 칸이 환영사를 했고, 전인도 무슬림 연맹의 특별 실무 위원회는 최종 결의안 초안을 심의했다.
주제 위원회에서 만장일치로 승인된 이 결의안은 무슬림을 위한 통일된 조국의 개념을 받아들였으며, 독립적인 무슬림 다수 국가의 창설을 권고했다. 벵골의 수석 장관 아불 카셈 파즐룰 후크가 결의안을 발의했으며, 차우드리 칼리쿠즈자만, 자파르 알리 칸, 사르다르 아우랑제브 칸, 피르 지아우딘 안드라비, 압둘라 하룬 경 등이 지지했다. 카지 무하마드 에사를 비롯한 여러 지도자들도 지지를 표명했다.
이 결의는 파키스탄 역사에서 획기적인 문서로 평가받는다. 힌두 언론과 지도자들은 이 결의를 파키스탄 창설 요구로 묘사했으며, 일부는 이를 파키스탄 결의라고 부르기도 했다.
3.1. 라호르 결의의 주요 내용
Lahore Resolution영어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지리적으로 인접하고 무슬림이 다수인 지역을 "독립 국가"로 구성하며, 구성 단위는 자율적이고 주권적이다.
* 소수 민족의 종교, 문화, 경제, 정치적 권리를 보호하기 위한 안전 장치를 마련한다.
* 국방, 외교, 통신, 관세 등 필수 권한은 각 지역이 인수한다.
이 결의는 1946년 무슬림 연맹이 무슬림을 위한 단일 국가(이후 파키스탄으로 명명)를 위해 투쟁하는 결정의 기초가 되었다.
3.2. 라호르 결의에 대한 다양한 해석
라호르 결의가 영국령 인도의 동부와 서부에 두 개의 주권을 가진 국가를 상정했는지에 대한 논쟁이 남아있다. 벵골 무슬림 연맹의 압둘 하심은 이 텍스트를 두 개의 분리된 국가에 대한 요구로 해석했다. 1946년, 전 인도 무슬림 연맹의 일원인 벵골의 총리 후세인 샤히드 수라와르디는 벵골 주지사뿐만 아니라 무슬림 및 힌두 지도자들의 지원을 받아 통합 벵골 제안을 내놓았다.
결의안 해석에 대한 이견이 있었고 지금도 계속되고 있지만, 별도의 무슬림 국가를 요구한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졌다. 반대 의견은 "독립 국가"라는 구절에 초점을 맞춰, 이는 무슬림이 다수인 주, 즉 펀자브, 신드 등이 서로 독립한다는 의미라고 주장한다. 그들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단위"라는 구절을 무시한다. 또한 하나의 국가에 동의하지 않은 특정 벵골 민족주의자들의 주장에 의존한다. 그들은 반대자들을 결의안의 "정신"을 왜곡한다고 비난한다.
무슬림 연맹 지도부의 다수는 그것이 인도의 분리뿐만 아니라 단 두 개의 국가(무슬림 다수와 힌두 다수)로의 분리를 의도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따라서 그것은 실제로 독립과 하나의 무슬림 국가를 요구하는 성명이다. 결국, 구상된 국가에는 "파키스탄"이라는 이름이 사용되었다.
4. 민족주의 무슬림의 반대
전인도 아자드 무슬림 회의는 라호르 결의에 대응하여 독립적이고 통일된 인도를 지지하기 위해 1940년 4월 델리에서 모였다. 이 회의에는 인도의 여러 이슬람 기구와 1,400명의 민족주의 무슬림 대표가 참여했다. 친분리주의적인 전인도 무슬림 연맹은 인도의 분할에 반대하는 민족주의 무슬림을 침묵시키기 위해 "협박과 강압"을 자주 사용했다. 신드 주 총리이자 전인도 아자드 무슬림 회의 지도자인 알라 박쉬 숨로의 살해 사건 또한 전인도 무슬림 연맹이 파키스탄 건국을 요구하는 데 도움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