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클런 머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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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래클런 머독은 1971년 런던에서 태어난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미국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의 장남이다.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학위를 받은 후, 뉴스 코퍼레이션에서 경력을 시작하여 호주와 미국의 여러 사업 부서를 관리했다. 2005년 뉴스 코퍼레이션을 떠난 후에는 사모 투자를 했으며, 노바 엔터테인먼트 인수에 관여했다. 2014년 뉴스 코퍼레이션에 복귀하여 2019년 폭스 코퍼레이션의 회장 겸 CEO가 되었고, 2023년에는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직도 물려받았다. 그는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 스마트매틱, 크리키 등과 관련된 법적 분쟁에 휘말렸으며, 가족 신탁을 둘러싼 소송도 진행 중이다. 2023년 기준, 그는 호주 부자 순위 33위에 올랐으며, 시드니, 아스펜, 로스앤젤레스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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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클런 머독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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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본명 | 래클런 키스 머독 |
출생일 | 1971년 9월 8일 |
출생지 | 영국 런던 |
국적 | 오스트레일리아 미국 영국 |
직업 | 노바 엔터테인먼트 회장 폭스 코퍼레이션 집행위원장 겸 CEO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 |
활동 기간 | 1994년-현재 |
학력 | 프린스턴 대학교 (문학 학사) |
배우자 | 세라 오헤어 (1999년 결혼) |
자녀 | 3명 |
어머니 | 안나 드피스터 (결혼 전 성은 토브) |
아버지 | 루퍼트 머독 |
친척 | 머독 가문 |
발음 | |
영어 발음 (IPA) | /ˈlɒklən/ |
영어 발음 (IPA) | /ˈlæklən/ |
재산 | |
순자산 | 33억 5천만 오스트레일리아 달러 (2024년 12월 기준) |
관련 링크 | |
웹사이트 | 폭스 코퍼레이션 공식 웹사이트 |
기타 | |
로마자 표기 | Raeklleon Meodeok |
2. 초기 생애 및 교육
래클런 머독은 1971년 9월 8일 런던 윔블던 병원에서 태어났다.[2] 루퍼트 머독과 안나 마리아 데페이스터의 장남으로,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했다.[4][50]
콜로라도 애스펀의 애스펀 컨트리 데이 스쿨, 뉴욕 맨해튼의 달튼 스쿨과 트리니티 스쿨, 매사추세츠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교육받았다.[3][4] 1989년 갭 이어를 가졌고,[8] 1994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4][5]
2. 1. 출생 및 가족 배경
래클런 머독은 1971년 9월 8일 런던 윔블던 병원에서 태어났다.[2]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미국 미디어 재벌인 루퍼트 머독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이며 스코틀랜드 출신 저널리스트이자 작가인 안나 마리아 데페이스터의 장남이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한 후, 아버지 소유의 ''뉴욕 포스트''가 있는 뉴욕시에서 자랐다.[4][50]콜로라도 애스펀의 애스펀 컨트리 데이 스쿨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았고,[4] 이후 뉴욕 맨해튼의 달튼 스쿨과 트리니티 스쿨, 매사추세츠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3][4]
1989년[8] 갭 이어 기간 동안 아버지 사업차 시드니에 머물면서 가족 사업인 ''데일리 미러''에서 잡일을 하며 3개월을 보냈다.[3][8]
1994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4][5] 프린스턴 재학 중에는 베아트리스 롱게네스와 앨런 하예크에게 철학을 배웠다.[6] 그의 졸업 논문은 독일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7]
2. 2. 유년 시절 및 교육 과정
래클런 머독은 1971년 9월 8일 런던 윔블던 병원에서 태어났다.[2] 그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 미국 미디어 재벌 루퍼트 머독과 그의 두 번째 부인이자 스코틀랜드 출신 저널리스트 겸 작가인 안나 마리아 데페이스터의 장남이다. 세 살 때 가족과 함께 뉴욕으로 이사한 후, 아버지 소유의 ''뉴욕 포스트''가 있는 뉴욕시에서 자랐다.[4][50]콜로라도 애스펀의 애스펀 컨트리 데이 스쿨에서 초등 및 중등 교육을 받았고,[4] 이후 뉴욕 맨해튼의 달튼 스쿨과 트리니티 스쿨, 매사추세츠 앤도버의 필립스 아카데미에서 교육을 받았다.[3][4]
1989년[8] 갭 이어 기간 동안 아버지 사업차 시드니에 머물면서 가족 사업체인 ''데일리 미러''에서 3개월간 잡일을 했다.[3][8]
1994년 프린스턴 대학교에서 철학 학사 학위를 받았다.[4][5] 프린스턴 재학 중 베아트리스 롱게네스와 앨런 하예크에게 철학을 배웠다.[6] 졸업 논문은 독일 철학에 관한 것이었다.[7]
3. 경력
래클런 머독은 1994년 호주에서 언론계 경력을 시작하여 1995년부터 뉴스 코퍼레이션에서 경영 수업을 받았다. 2005년 뉴스 코퍼레이션을 떠나 개인 투자 회사인 일리리아를 설립해 활동하다 2014년 뉴스 코퍼레이션에 복귀했다. 2019년 폭스 코퍼레이션 회장 겸 CEO를 거쳐 2023년에는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에 취임했다.
3. 1. 뉴스 코퍼레이션 경영 수업 (1995-2005)
래클런 머독은 22세[8] 또는 23세에 브리즈번의 ''Courier-Mail''을 발행하는 퀸즐랜드 신문사의 총괄 관리자로 임명되었고,[3][8] 이 시기에 미디어 재벌의 아들인 제임스 패커와 친구가 되었다.[3] 1995년에는 호주 최초의 전국지인 ''The Australian''의 발행인이자 News Limited 부사장이 되었으며,[74][3] 1996년에는 News Corporation 이사회에 임명되었다.[18] 1999년 결혼 후, 2000년에는 News Corp의 글로벌 인쇄 사업 부사장으로 임명되었다.[3]그는 슈퍼 리그 출범에 관여했고, One.Tel 투자 실패로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REA Group에 대한 투자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또한 뉴욕 포스트의 발행 부수를 증가시키는 데 기여했다. 2005년, Fox News의 수장 로저 에일스와의 충돌로 뉴스 코퍼레이션에서 퇴사했다.
3. 1. 1. 슈퍼 리그 출범 관여
럭비 리그에 개인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던 머독은 1995년 3월 30일 시드니의 Atanaskovic Hartnell 사무실에서 열린 첫 번째 슈퍼 리그 회의에 참석했다.[9] 그는 전 브리즈번 브롱코스 대표 존 리보트와 함께 주요 캔터베리-뱅스타운 불독스 선수들과 법적 효력이 없는 서류에 계약을 체결했다.[9] 머독은 브롱코스의 1번 티켓 소지자였다.[9] 이 사업은 손실을 입었다.[10][11]3. 1. 2. One.Tel 투자 실패
래클런 머독은 22세[8] 또는 23세에 브리즈번의 ''Courier-Mail''을 발행하는 퀸즐랜드 신문사의 총괄 관리자로 임명되었으며,[3][8] 이 시기에 미디어 재벌의 아들인 제임스 패커와 친구가 되었다.[3]머독은 친구인 호주 사업가 제임스 패커와 텔레비전 네트워크 소유주 케리 패커 아들의 권유로 One.Tel에 투자했고, 1990년대 후반에 뉴스 코퍼레이션이 이 신생 통신 회사에 수억 달러를 투자하도록 권장한 것에 대해 광범위한 비판을 받았다.[12] 2014년 4월, 머독과 패커는 One.Tel의 실패에 대해 4000만달러 합의에 동의했다. 2014년 4월 17일 뉴사우스웨일스주 대법원에서 승인된 이 합의에 따라, 패커 가문의 Consolidated Press Holdings는 1493만달러를, 패커의 Crown Resorts는 1177만달러를, News Corp는 1330만달러를 지불했다.[13]
3. 1. 3. REA Group 투자 성공
2000년대 초, 래클런 머독은 REA Group에 1075만달러를 투자했는데, 이 중 현금은 225만달러에 불과했다. 이후 래클런 머독은 REA Group 매각에 반대하며 투자를 유지했다.[14][3] REA Group은 나중에 호주 온라인 부동산 광고 시장의 선두 주자로 성장하여 Realestate.com.au로 알려졌으며, 2014년에는 News Corp에 36억달러 이상의 가치로 평가되었다.[14][3]3. 1. 4. 뉴욕 포스트 발행 부수 증가
2001년 머독의 연봉은 2590000USD였다.[15] 뉴스 코퍼레이션에 근무하는 동안 머독은 하퍼콜린스와 REA를 포함한 호주의 사업 부서를 감독했다. 그는 또한 Foxtel 이사회에서 활동했으며 Fox Television 방송국의 회장이자 뉴욕 포스트의 발행인이었다.[16] 머독이 뉴욕 포스트에 근무하는 동안 발행 부수는 40% 이상 증가했다.[53]3. 1. 5. 뉴스 코퍼레이션 퇴사
2005년 7월, 33세의 래클런 머독은 당시 Fox News의 수장 로저 에일스와 충돌했고, 그의 아버지 루퍼트 머독이 에일스 편을 들면서 News Corp의 임원직에서 갑작스럽게 사임했다. 래클런 머독은 아내와 아들과 함께 호주로 돌아갔다.[17] 당시 34세였던 그는 회사에서 세 번째로 강력한 임원이었다.[50] 이 미디어 제국에는 20세기 폭스 영화 스튜디오, 폭스 텔레비전 네트워크, 여러 위성 방송사, 영국, 미국, 호주의 신문이 포함되었다. Fox News 채널의 회장인 로저 에일스는 래클런 머독의 후임으로 News Corp의 텔레비전 방송국 그룹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 언론은 당시 영국 위성 TV 회사 BSkyB의 최고 경영자였던 그의 형 제임스 머독이 루퍼트 머독의 후임이 될 수 있다고 추측했다.[18][19][20][21][22]3. 2. 사모 투자 활동 (2005-2014)
뉴스 코퍼레이션을 떠난 후 2년간의 경업 금지 조항에 따라,[24] 머독은 2005년 호주에 사모 투자 회사인 일리리아(Illyria Pty Ltd)를 설립했다.[23][53]머독은 인도 프리미어 리그 크리켓 팀인 라자스탄 로열스, 온라인 DVD 대여 회사인 퀵스플릭스, 장난감 마케터 펀타스틱, 디지털 미디어 회사 데스트라 등 다양한 투자를 했다.[24]
2008년 1월 21일, 머독과 제임스 팩커는 그들의 회사인 일리리아와 컨솔리데이티드 프레스 홀딩스가 공개 상장된 컨솔리데이티드 미디어 홀딩스를 사유화하려고 한다고 발표했다. 제안된 33억호주 달러 규모의 거래를 통해 머독과 팩커는 폭스텔, 폭스 스포츠, 유니버설 미디어 펌, LLC 및 PBL 미디어(나인 네트워크와 ACP 매거진을 소유)의 사적 지분을 확보할 것으로 예상되었다.[24][25] 그러나 팩커는 2006년과 2008년 사이에 일련의 거래를 통해 미디어 회사에 대한 지분을 매각하기로 결정했고,[26][27] 머독과의 거래는 무산되었다.
이후 머독은 노바 엔터테인먼트와 텐 네트워크 홀딩스에 투자했다.
3. 2. 1. 노바 엔터테인먼트 인수
2009년 11월, 머독의 개인 투자 회사인 일리리아는 라디오 방송국 네트워크인 DMG 라디오의 지분 50%를 인수하여 노바 엔터테인먼트로 이름을 변경하고 회장직을 맡았다.[53] 2012년 9월, 일리리아는 나머지 지분을 모두 인수했다.[24][28] 이후 노바 엔터테인먼트는 호주에서 가장 인기있는 FM 방송국 네트워크로 성장했다.[53]3. 2. 2. 텐 네트워크 홀딩스 투자 실패
2010년 제임스 팩커는 네트워크 텐의 지분 18%를 매입한 후 절반을 머독에게 즉시 매각했다. 팩커와 머독은 모두 텐 이사회에 합류했다.[29] 2011년 2월, 머독은 회사의 이사회가 CEO인 그랜트 블랙리의 계약을 해지한 후 텐 네트워크 홀딩스의 임시 CEO로 임명되었다.[30] 다음 달 팩커는 예상치 못하게 이사회에서 사임했다.[31][32] 2012년 2월, 텐 이사회는 머독을 텐 네트워크 홀딩스의 비상임 회장으로 임명했다.[33]머독이 CEO가 되기 전에도 텐은 재정적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2012년 말까지 일리리아는 2010년 이후 투자한 1.5억호주 달러 중 1.1억호주 달러를 손실했다. 주가는 약 80% 하락했고 네트워크 수익은 절반 이상 감소했다. 비용을 통제하기 위해 텐은 고용 인원을 160명 줄였으며, 문제는 주로 광고 수익 감소와 네트워크의 구조 조정에 기인했다. 텐은 샤인 그룹의 호주 자회사(자체적으로 뉴스 코퍼레이션 소유의 21세기 폭스의 자회사)로부터 ''마스터셰프''의 호주 판권을 원래 비용의 3배에 구매했다.[34]
2017년 6월 14일, 머독과 동료 주주인 브루스 고든이 회사의 신용 시설 연장을 거부한 후 텐은 자발적 관리 체제에 들어갔다.[35][36] 텐에 대한 두 건의 입찰이 접수되었는데, 하나는 머독과 고든의 입찰이었고 다른 하나는 CBS 코퍼레이션 - 텐의 최대 채권자 - 의 입찰이었다. CBS의 입찰은 관리자와 채권자 모두에게 선호되었다.[37] CBS의 성공적인 입찰은 머독이 네트워크에 대한 모든 투자를 잃었음을 의미했다.[38]
3. 3. 뉴스 코퍼레이션 복귀 (2014)
2014년 3월, 머독은 뉴스 코퍼레이션과 21세기 폭스(2013년 6월 구 뉴스 코퍼레이션에서 분리된 두 회사 중 하나)의 비상임 공동 회장으로 임명되었다.[39][40][41][42][43][44] 이는 영국의 폰 해킹 스캔들과 그의 아버지 루퍼트 머독의 웬디 덩과의 이혼 이후에 이루어진 인사였다.[7] 머독은 이 시기에 텐 네트워크 홀딩스의 회장직과 이사직에서 물러났다.[45] 2015년 6월, 21세기 폭스의 회장으로 임명되었다.[46]2022년, 루퍼트 머독과 함께 뉴스 코퍼레이션과 폭스 코퍼레이션을 합병하려 했지만, 동생 제임스의 반대와 주요 주주들의 반대에 부딪혀 이듬해 무산되었다.[68]
3. 3. 1. 폭스 코퍼레이션 회장 겸 CEO 취임 (2019)
2019년 3월, 21세기 폭스가 디즈니에 인수된 후, 머독은 폭스 코퍼레이션의 회장 겸 CEO로 임명되었으며,[47][48] 그의 아버지 루퍼트 머독은 그를 자신의 사업 관련 지분의 상속자로 지명했다.[50] 그의 아버지는 여전히 "회사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계속하기를" 희망했다.[49]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은 2019년에 그를 만났다.[72]3. 3. 2. 뉴스 코퍼레이션 회장 취임 (2023)
2023년 9월, 루퍼트 머독이 은퇴하면서 52세의 나이로 래클런 머독은 폭스사와 뉴스 코퍼레이션의 회장이 되었다.[50][51][52][53] 같은 해, ''오스트레일리안 파이낸셜 리뷰(The Australian Financial Review)''는 래클런 머독을 호주 부자 순위 33위에 올렸으며, 그의 재산은 335억호주 달러 (21억달러)로 추정되었다.[7]4. 법적 분쟁
래클런 머독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 소송, 스마트매틱 소송, 크리키 소송, 가족 간 소송 등 여러 법적 분쟁에 연루되었다.
4. 1.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 소송 (2021-2023)
2021년, 래클런 머독과 그의 아버지 루퍼트 머독은 투표 기계 제조업체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스가 제기한 16억달러 규모 소송의 피고였다. 도미니언은 폭스 뉴스에서 도미니언이 선거 사기를 저질렀다는 허위 혐의를 고의적이고 악의적으로 유포했다고 주장했다. 폭스 뉴스 코퍼레이션은 소송 기각을 요청했고, 2021년 12월 16일 법원은 "도미니언이 폭스 뉴스의 실제 악의성을 충분히 입증했다"는 의견으로 이 요청을 기각했다.2022년 6월 6일, 폭스 뉴스 코퍼레이션은 에릭 M. 데이비스 판사에게 소송 기각을 재차 요청했다. 데이비스 판사는 의견서에서 도미니언이 폭스 코퍼레이션의 루퍼트 머독과 래클런 머독의 실제 악의성에 대한 충분한 증거를 제시하여 소송이 계속 진행될 수 있다고 말했다.[56] 도미니언이 확보한 문서에 따르면 래클런은 "트럼프에게 유리하도록 폭스 뉴스의 정치적 방향을 결정하는 데 직접적인 역할을 했다".[50] 결국, 폭스는 2023년 4월 7.875억달러의 손해 배상금을 지불해야 했고,[57] 터커 칼슨은 2023년 4월 24일에 해고되었다.[58][59]
4. 2. 스마트매틱 소송 (2022-)
스마트매틱은 도미니언 보팅 시스템 소송과 유사하게, 2021년 2월 4일 래클런 머독과 그의 아버지 루퍼트 머독을 상대로 27억달러 규모의 소송을 제기했다. 스마트매틱은 "폭스 뉴스가 스마트매틱에 대한 허위 정보를 퍼뜨리기 위한 공모에 가담했다. 그들은 거짓말을 했으며, 의도적으로 알고 있었다"라고 주장했다. 2022년 3월, 데이비드 코헨 판사는 공동 피고인에서 여러 진행자를 삭제하는 것을 허용했지만, 소송 기각을 요구하는 폭스의 요청은 거부하고 증거 개시 절차를 진행하도록 했다. 폭스 뉴스가 소송 기각을 요구하는 두 번째 시도에서 코헨 판사는 다시 폭스의 요청을 거부하고 스마트매틱이 폭스 뉴스가 "진실을 무모하게 무시했다"는 주장에 대한 "상당한 근거"를 제시했다고 판결했다.[64]2024년 9월 현재, 이 사건은 계속 진행 중이다. 2024년 7월, 스마트매틱은 폭스 코퍼레이션 이사 4명에게 소환장을 발부했다.[65][66]
4. 3. 크리키 소송 (2022-2023)
머독은 정치부 편집장 버나드 킨이 2022년 6월 29일 기사에서 머독 가문을 2021년 미국 국회의사당 점거 사태와 연관시키자, 호주의 전자 잡지인 ''크리키''(Crikey)에 일련의 법적 위협을 보냈다.[60] ''크리키''는 원래 법적 박해를 피하기 위해 해당 기사를 삭제했지만, 이후 재게재하며 편집장 피터 프레이는 머독을 "법을 사용하여 공개 토론을 침묵시키려 한다"고 비난하며 "우리를 위협하려 한다"고 말했다.[61]2023년 4월 21일, 머독의 변호사는 소송 중단을 통지했다.[62][63] 머독은 소송을 포기한 후 프라이빗 미디어에 800000AUD 이상을 변호사 비용으로 지불해야 했다.[50]
4. 4. 가족 간 소송 (2024-)
2024년 9월, 머독 가문은 네바다주 리노에서 소송에 휘말렸다. 래클런 머독의 형제자매 3명(제임스 머독, 엘리자베스 머독, 이복 여동생 프루던스 맥레오드)은 래클런이 뉴스 코프와 폭스 코프에 대한 지배력을 유지하고 6명의 모든 자녀에게 혜택을 주는 대신, 가족 신탁을 수정하려는 아버지 루퍼트 머독의 시도에 이의를 제기했다.[67][71] 뉴욕 타임스는 루퍼트 머독이 자신의 회사가 정치적으로 보수적인 입장을 유지하기를 원하며, 다른 자녀들이 지나치게 정치적으로 진보적이라고 생각한다고 보도했다.[67][71]1999년 루퍼트 머독과 안나 머독의 이혼 이후, 뉴스 코프의 가족 지분 28.5%를 보유하기 위해 취소 불가능한 가족 신탁이 설립되었다. 이 신탁은 이전에 태어난 자녀들에게만 적용되어 사업의 운명에 대해 동등한 발언권을 부여했다.[70] 각 자녀는 신탁에서 한 표를 행사할 수 있었고, 루퍼트 머독은 4표를 행사할 수 있었다. 가족 재산의 거의 전부는 뉴스 코프와 폭스 코프의 40%를 지배하는 주식에 묶여 있으며, 현재 가치는 약 60억달러이다.[68] 신탁 조건은 루퍼트 머독 사망 후에도 네 자녀가 이 투표권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루퍼트 머독과 세 번째 부인 웬디 덩 사이의 자녀인 클로이와 그레이스 머독은 사업에 대한 발언권은 없지만,[69] 주식 수익은 공유할 것이다.[70]
이 소송은 2023년 10월 루퍼트 머독이 신탁을 변경하려 한 시도("프로젝트 하모니"라고 칭함)에 따른 것이다. 이 시도는 그해 12월 자녀들에게 공개되었으며,[68] 네바다 유언 검인 위원은 루퍼트 머독이 "선의로 행동하고 상속인에게만 이익이 되는 것을 보여줄 수 있다면" 신탁을 수정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71] 2024년 9월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제임스 머독은 신탁에서 자신과 여동생들의 지분 매각 가능성을 포함하는 제안을 통해 합의를 시도했다. 그러나 이는 래클런 머독과 루퍼트 머독에게 재정적 압박을 가해 회사에 대한 지배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68] 루퍼트 머독은 법정에서 다른 형제자매들의 간섭이 폭스에 재정적 손실을 초래할 것이며, 따라서 "그들에게 투표권을 박탈하는 것이 그들의 최선의 이익에 부합한다"고 주장한다.[72] 그는 온건한 정치적 성향을 가진 형제자매들의 간섭에 맞서 출판사의 보수적 편집 입장을 유지하는 것이 상업적 가치를 더 잘 보호할 것이라고 주장한다.[70] 법원 절차는 비공개로 진행되고 있지만, 사건과 관련된 몇 가지 세부 사항이 유출되었다.[68]
이 소송으로 인해 세 자녀는 아버지와 소원해졌으며, 2024년 6월 루퍼트 머독이 다섯 번째 부인 엘레나 주코바와 결혼했을 때 아무도 참석하지 않았다.[71]
5. 기타 활동
2002년, 머독은 앤드루 올레 미디어 강연을 했다.[54]
머독은 앤서니 프랫, 피터 로위, 리사 폭스와 함께 "어드밴스"(Advance)라는 단체의 창립 후원자 중 한 명이다. 이 단체는 이전에는 영 아메리카 전문가 협회로 알려졌으며, 2005년 11월에 자선 만찬을 열었다.[55]
6. 개인 생활
래클런 머독은 여러 채의 호화 주택을 소유하고 있다. 2003년 러셀 크로우에게 시드니 엘리자베스 베이에 있는 "베르통"을 매각했고,[81] 2009년 11월에는 벨뷰힐에 있는 4097m2 규모의 저택 "르 마노르"를 2300만호주 달러에, 2년 후에는 인접한 1049m2 규모의 부동산을 구입했다.[82][83] 2017년에는 아스펜에 약 1254.19m2 규모의 침실 6개짜리 주택이 포함된 대규모 승마장을 2900만달러에,[84] 2019년에는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Chartwell Estate를 약 1.5억달러에 구입했다.[85][86]
6. 1. 가족 관계
래클런 머독은 이복 형제인 프루던스와, 아버지의 세 번째 결혼으로 태어난 두 여동생 그레이스, 클로이를 포함하여, 정식 형제인 엘리자베스와 제임스 머독 외에 세 명의 이복 형제가 있다.[67] 이후 두 형제 사이의 긴장 관계가 보도되었다.[50][68]그는 호주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73] 자신을 호주인으로 생각하고 집은 호주에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74][75][77]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시민권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만큼 영국과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76] 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고 일하면서[5] 미국식 억양을 갖게 되어 종종 미국인으로 여겨지지만, 2001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호주인으로 생각하며 억양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77]
1999년, 영국 태생의 호주 모델이자 배우인 사라 오헤어와 결혼했다. 이 부부는 두 아들[78]과 딸 하나를 두고 있다.[79][80]
머독 부부는 2003년 러셀 크로우에게 매각하기 전까지 시드니 엘리자베스 베이에 있는 "베르통"이라는 집을 소유했다.[81] 2009년 11월, 벨뷰힐에 있는 4097m2 규모의 저택 "르 마노르"를 2300만호주 달러에 구입했으며, 2년 후에는 인접한 1049m2 규모의 부동산을 구입했다.[82][83] 2017년, 아스펜에 있는 대규모 승마장을 2900만달러에 구입했는데, 이 승마장에는 약 1254.19m2 규모의 침실 6개짜리 주택이 포함되어 있다.[84] 2019년, 로스앤젤레스에 있는 Chartwell Estate를 약 1.5억달러에 구입했다.[85][86]
기준으로, 시드니, 아스펜, 로스앤젤레스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2021년부터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으며, 래클런은 시드니, 로스앤젤레스(폭스사 본사 소재지), 뉴욕시(뉴스 코프 본사 소재지)를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미국식 억양으로 말하지만 호주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한다.[87]
6. 2. 시민권 및 정체성
래클런 머독은 호주 시민권을 가지고 있으며,[73] 자신을 호주인으로 생각하고 집은 호주에 있다고 자주 말해왔다.[74][75][77] 런던에서 태어났지만, 영국 시민권 여부는 불분명하다. 그는 아버지와 형제들만큼 영국과 강한 유대감을 가지고 있지 않으며, 그곳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지 않았다.[76] 미국에서 장기간 거주하고 일하면서[5] 미국식 억양을 갖게 되어 종종 미국인으로 여겨지지만, 2001년 인터뷰에서 자신을 호주인으로 생각하며 억양을 없애고 싶다고 말했다.[77]기준으로 머독은 시드니, 아스펜, 로스앤젤레스에 집을 소유하고 있다. 그의 아내와 자녀들은 2021년부터 시드니에 거주하고 있으며, 래클런은 시드니, 로스앤젤레스(폭스사 본사 소재지), 뉴욕시(뉴스 코프 본사 소재지)를 오가며 시간을 보낸다. 그는 미국식 억양으로 말하지만 호주를 자신의 고향으로 생각한다.[87]
6. 3. 정치적 견해
래클런 머독은 형제들보다 더 보수적이라고 여겨져 왔지만, 트럼프 대통령직을 지지하지 않았고, 2016년 선거운동 기간 동안 자신의 얼굴이 인쇄된 화장지를 집에 보관했다고 보도되었다. 그러나 그는 터커 칼슨의 부상을 옹호하는 것을 포함하여 아버지의 사업상 행보를 지지해 왔다.[50]2018년 래클런은 자신의 정치적 견해를 "경제적으로는 보수적이고 사회 정책에 대해서는 더 진보적"이라고 묘사했다.[88]
2023년 2월 래클런과 그의 아내 사라 머독은 시드니에 있는 퀴어 박물관인 Qtopia에 100만호주 달러를 기부했다.[89][90][91]
7. 재산
부자 순위
호주 50대 부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