량충제
1. 개요
량충제는 1932년 베이징에서 태어나 2010년 사망한 중국의 환경운동가이다. 칭화 대학과 베이징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윈난 대학과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연구 활동을 했다. 중국 최초의 민간 환경보호 단체인 '자연의 벗'을 설립하여 회장을 역임했으며, 멸종 위기 동물 보호 운동을 펼쳤다. 전국정협 위원으로서 환경 보호에 힘썼으며, 저서로 <린후이인문집>, <호소할 곳 없는 대자연을 위하여>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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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환경 운동가 -
저우쉰
저우쉰은 1991년 데뷔하여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폭넓은 연기 스펙트럼을 선보인 중국의 배우이자 가수로, 《퍼햅스 러브》로 금마장 여우주연상을 수상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고 가수, 모델, 사회 활동 등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다. -
중국의 환경 운동가 -
마쥔
마쥔은 중국의 탐사 보도 기자 출신 환경운동가이자 작가로서, 수질 오염 문제에 대한 심층적인 보도와 중국 수질 오염 지도 개발, 기업의 환경 책임 강화 및 대중 참여 유도를 통해 타임 선정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 막사이사이상, 골드만 환경상, 스콜상 등을 수상했다. -
폐질환으로 죽은 사람 -
홍사용
홍사용은 노작, 소아, 백우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시인이자 극작가로, 민족주의적 낭만파 시인으로 평가받으며 일제강점기 친일 활동을 하지 않았고, 휘문의숙 재학 중 3.1 운동에 참여, 문예지 창간, 극단 활동, 희곡 창작 등의 활동을 했다. -
폐질환으로 죽은 사람 -
구상 (시인)
구상(1919-2004)은 서울 출생으로 원산에서 성장하여 니혼 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 종군 기자, 언론 운동, 영남일보 편집장 등을 거쳐 가톨릭 신앙을 바탕으로 시집 《초토의 시》 등을 발표했으며, 프랑스 문부성에서 세계 200대 시인으로 선정되었고 폐질환으로 사망했다. -
1928년 출생 -
프란체스코 코시가
프란체스코 코시가는 이탈리아의 내무부 장관, 총리,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알도 모로 납치 사건과 비밀 조직 글라디오 등의 논란을 거치며 이탈리아 정치사에서 중요한 논쟁을 남긴 인물이다. -
1928년 출생 -
데즈카 오사무
일본의 "만화의 신" 데즈카 오사무는 700권이 넘는 작품을 남기고 일본 만화와 애니메이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무시 프로덕션을 설립하여 애니메이션 제작에도 혁신을 가져왔다.
2. 생애
량충제는 1932년 베이징에서 량쓰청과 린휘인 사이에서 태어났으며, 량치차오의 손자이다. 1950년 칭화 대학 사학과에 입학했으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1952년 베이징 대학 사학과로 옮겨 1954년에 졸업했다. 1958년부터 윈난 대학(云南大学)에서 강의했고, 이후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세계사를 연구했다. ‘중국대백과전서출판사(中国大百科全书出版社)’에서 편집을 맡았으며, 덩샤오핑의 통역을 맡기도 했다. 1993년부터 환경 운동에 관심을 갖고 중국 최초의 민간 환경 단체인 '자연의 벗'을 설립했다. 2010년 베이징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및 학문 활동
량충제(梁從誡)는 1932년 베이징에서 량쓰청과 린휘인 사이에서 태어났다. 량치차오의 손자이며, 본적은 광둥 신후이이다.
1950년 칭화 대학 건축학과 입시에 탈락한 후, 칭화 대학 사학과에 입학하였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대학 운영에 어려움이 생기자, 1952년 베이징 대학 사학과로 강제 전학되어 1954년에 졸업하였다. 1958년부터 윈난 대학(云南大学) 사학과에서 강의했으며, 이후 베이징으로 돌아와 국제관계연구소에서 세계사를 연구했다. ‘중국대백과전서출판사(中国大百科全书出版社)’에서 편집을 맡았고, <백과지식(百科知识)>과 <지식인(知识分子)> 잡지를 창간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에 해외 백과전서 중국 방문단의 덩샤오핑(邓小平) 방문 시 덩샤오핑의 통역을 맡았다.
2.2. 환경 운동
중국문화서원대 둥핑 교수, 왕리슝 베이징이공대 연구원, 작가이자 탐험가인 량샤오옌 등과 함께 문화서원대학에 ‘녹색문화분원’이라는 간판을 내걸었다. 이후 ‘자연의 벗(自然之友)’으로 개명하고 회원들을 모집하며 윈난성 원숭이, 티베트 영양 등 멸종위기에 처한 동물 보호 운동을 벌였다. 1998년 빌 클린턴 미국 대통령이 중국을 방문했을 때 윈난성 원숭이 사진을 선물로 보내 중국의 환경 보호에 대한 경각심을 높였다.
이후 ‘자연의 벗’은 회원이 2000여 명으로 늘어나 중국 최대 환경 관련 비정부기구(NGO)로 성장했다. 그는 생전에 “중국에서 환경 운동은 전원생활이 아닌 생사를 건 투쟁이 되어야 한다”라고 말할 정도로 환경 보호 의식이 철저했고, 외출할 때에는 젓가락과 수저를 가지고 다니며 일회용 젓가락을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또 전국 정치협상회의 위원으로서 자전거를 타고 회의장에 들어가려다 저지당했을 정도로 자전거를 애용했다.
2.3. 사망
량충제는 1993년부터 민간 환경보호활동에 관심을 갖기 시작해서 중국 최초의 민간이 운영하는 환경보호조직 ‘자연의 벗’을 설립하고 이끌었다. 일생 무당파로 있었으며, 2010년 10월 28일 오후 4시경 베이징에서 79세에 병으로 인해 사망하였다.
3. 경력
| 직책 |
|---|
|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全国政协) 위원 |
| 인구‧자원‧환경위원회 위원 |
| 자연의 벗(自然之友) 창립자 겸 회장 |
| 1999년 ‘지구상(地球奖)’과 ‘판다상(大熊猫奖)’ 수상 |
4. 저서
* 林徽因文集중국어 전2권(건축권, 문학권)
* 薪火四代중국어 전2권
* 为无告的大自然중국어
* 图像中国建筑史중국어 (2001)
* 狄德罗百科全书节选本중국어 (2007)
* 수필집 不重合的圈중국어 (20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