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반 코비아슈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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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레반 코비아슈빌리는 조지아 출신의 은퇴한 축구 선수로, 수비수와 미드필더로 활약했다. 그는 아와사 트빌리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FC 디나모 트빌리시에서 우마글레시 리가 4회 우승, 조지아 컵 3회 우승을 차지했다. 이후 독일로 건너가 SC 프라이부르크와 FC 샬케 04에서 뛰며 분데스리가 6위, UEFA 챔피언스 리그 해트트릭 등의 활약을 펼쳤다. 2009년 헤르타 BSC로 이적했으나, 심판 폭행으로 징계를 받기도 했다. 2014년 은퇴 후, 조지아 축구 연맹 회장과 국회의원을 역임했다. 그는 조지아 국가대표팀에서 100경기 이상 출전하며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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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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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의 FC 샬케 04 소속 코비아슈빌리
원어 이름ლევან კობიაშვილი조지아어
출생일1977년 7월 10일
출생지소비에트 연방 트빌리시
신장1.83m
포지션레프트 윙백
클럽 경력
유소년 클럽1983–1992 아바자 트빌리시
1992–1993 고르다 루스타비
프로 클럽1993–1994 고르다 루스타비 (48경기, 0골)
1995–1998 디나모 트빌리시 (36경기, 3골)
1997 → 알라니야 블라디카프카스 (임대) (21경기, 5골)
1998 → SC 프라이부르크 (임대) (15경기, 1골)
1998–2003 SC 프라이부르크 (149경기, 30골)
2003–2010 샬케 04 (168경기, 9골)
2010–2014 헤르타 BSC (105경기, 7골)
총 출장 및 득점542경기, 55골
국가대표 경력
청소년 국가대표1994 조지아 U17 (2경기, 0골)
1995 조지아 U21 (1경기, 0골)
성인 국가대표1996–2011 조지아 (100경기, 12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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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클럽 경력

레반 코비아슈빌리는 고향 팀인 아와사 트빌리시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이후 FC 메탈루르기 루스타비, FC 디나모 트빌리시, FC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를 거쳐 1998년 SC 프라이부르크로 이적, 1 분데스리가 승격과 2000-01 분데스리가 시즌 리그 6위로 UEFA컵 진출에 기여했다. 다음 시즌 프라이부르크는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었으나, 이듬해 1 분데스리가로 재승격한 뒤 FC 샬케 04로 이적하였다.

샬케에서 코비아슈빌리는 2005년2007년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5년 DFB-포칼 준우승을 달성했다. 2005-06 시즌 UEFA 컵 준결승, 20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다. 유럽대항전 35경기 출장(샬케 선수 중 3위), 7골(공동 4위)을 기록했다.

2009년 12월 20일 헤르타 BSC로 이적, 2010년 1월 1일부터 활동했다. 부주장으로 활약했으나, 2012년 5월 15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전 심판 폭행으로 7개월 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1. 초기 경력

레반 코비아슈빌리는 고향 팀인 아바자 트빌리시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그의 첫 프로 구단은 고르다 루스타비였으며, 1993년 우마글레시 리가에서 데뷔했다. 루스타비를 연고로 하는 구단에서 2년을 보낸 후, 1995년 디나모 트빌리시로 이적했다. 다비드 키피아니의 지도 아래, 코비아슈빌리는 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1997년 초, 알라니아 블라디카프카스는 조지아 출신 미드필더에게 관심을 표명했고, 디나모 트빌리시는 코비아슈빌리를 시즌 임대 계약으로 떠나게 했다. 코비아슈빌리는 미하일 아슈베티아, 게오르기 가호키제, 카하베르 츠하다제 등 동료 선수들과 합류했다. 그는 구단에서 21경기에 출전해 러시아 톱 리그에서 5골을 기록했다. UEFA컵에서도 4경기에 출전하여 1골(드니프로 드니프로페트로프스크를 상대로)을 기록했다.

1998년, 코비아슈빌리는 SC 프라이부르크로 임대 이적했고, 이후 완전 이적했다.

2.2. 독일에서의 활약

1998년 조지아의 여러 클럽을 거쳐 SC 프라이부르크로 임대 이적하여 반 시즌 후 완전 이적했고, 2000-01 분데스리가 시즌에는 프라이부르크가 리그 6위로 약진하는데 핵심 선수로 활약했다. 2003-04 분데스리가 시즌에 FC 샬케 04로 이적하여 전성기를 보냈다. 샬케 소속으로 2005년2007년 두 차례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5년 DFB-포칼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5-06 시즌 UEFA 컵 준결승, 2008년 UEFA 챔피언스리그 8강에 진출했으나 FC 바르셀로나에 패했다. 유럽대항전 35경기 출장(샬케 선수 중 3위), 7골(공동 4위)을 기록했다.

2009년 12월 20일 헤르타 BSC로 이적, 부주장으로 활약했으나 2012년 5월 15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전 심판 폭행으로 7개월 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2.1. SC 프라이부르크

1998년 FC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에서 SC 프라이부르크로 임대 이적했다. 반 시즌 후, 완전 이적을 달성했다. SC 프라이부르크는 당시 몇 명의 조지아 출신 선수들을 보유하고 있었으며, 코비아슈빌리는 알렉산더 이아슈빌리, 레반 치키티슈빌리와 같은 조지아 선수들과 함께 뛰었다.

"브리스가우 브라질리언"으로 불린 프라이부르크에서 코비아슈빌리는 볼커 핑케 감독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었다. 그는 프라이부르크의 첫 하프 시즌에 클럽의 1 분데스리가 승격을 도왔다. 다음 시즌, 프라이부르크는 강등을 피했고, 2000-01 분데스리가 시즌에서 6위를 차지하여 2001-02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했다. 이는 클럽 역사상 두 번째 UEFA 토너먼트 참가였다. SC 프라이부르크는 이후 챔피언이 된 페예노르트에게 합산 점수 3-2로 패하며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코비아슈빌리는 토너먼트 6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로테르담 연고의 클럽을 상대로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2001-02 분데스리가 시즌에서 프라이부르크는 2 분데스리가로 강등되었지만, 코비아슈빌리는 클럽에 남기로 결정했고, 2002-03 2. 분데스리가 시즌에 팀이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는데 기여하며 10골을 넣었다.

2.2.2. FC 샬케 04

2003년 여름, 코비아슈빌리는 SC 프라이부르크와의 계약이 만료되자 팀을 떠나 CSKA 모스크바로부터 제안을 받았으나, 독일에 남기로 결정하고 FC 샬케 04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첫 시즌 동안 샬케의 주전 멤버가 된 코비아슈빌리는 유프 하인케스 감독에 의해 왼쪽 수비수로 기용되었다. 랄프 랑닉 감독 부임 후에는 미드필더로 이동하여 샬케의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핵심 연결 고리가 되었다. 겔젠키르헨을 연고로 하는 샬케와 2년 후인 2010년까지 계약을 연장했고, 샬케의 단장 루디 아사우어는 코비아슈빌리가 지난 10년간 그들이 영입한 선수 중 최고 중 하나라고 선언했다.

코비아슈빌리 경력에서 최고의 경기 중 하나는 2005-06 UEFA 챔피언스 리그 시즌에서 PSV 에인트호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한 경기였다. 그 중 두 골은 페널티킥으로 기록되었다. 경기 후, 랄프 랑닉 감독과 팀 동료 프랑크 로스트는 코비아슈빌리를 그들에게 모범이 되는 진정한 프로 선수라고 칭찬했다. 그 시즌 후반, 샬케는 UEFA컵으로 이동하여 준결승에 진출했지만 최종 우승팀인 FC 세비야에게 패했다.

샬케에서 선수 생활을 하는 동안 코비아슈빌리는 2005년 DFL-리가포칼과 2003년 및 2004년 UEFA 인터토토컵에서 세 번의 우승을 차지했다.

2009년 12월 20일, 헤르타 BSC로 이적하기 위해 FC 샬케 04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2.2.3. 헤르타 BSC

2009년 12월 20일, 레반 코비아슈빌리는 FC 샬케 04를 떠날 것임을 발표하였다. 2010년 1월 1일에 헤르타 BSC 베를린으로 이적하였는데, 이 협상은 몇 주 전부터 시작되었다.

2. 분데스리가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강등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코비아슈빌리는 경기 종료 휘슬 후 주심 볼프강 슈타르크를 주먹으로 쳤다. 헤르타는 합산 점수 4-3으로 플레이오프에서 패배했고, 그 결과 분데스리가에서 강등되었다. 코비아슈빌리는 2012년 5월 16일부터 소급 적용되어 1년 출장 정지 처분을 받았다. 독일 축구 연맹은 이후 코비아슈빌리의 출장 정지 기간을 7개월 반으로 줄여 2012년 12월 31일에 종료하도록 했다.

코비아슈빌리는 헤르타 BSC에서 부주장으로서 젊은 선수 위주의 팀을 이끌었다. 그러나 2012년 5월 15일에 열린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폭행을 가하여 2013년 5월 16일까지 1년간 연습 경기를 포함한 모든 경기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최종적으로는 2012년 12월 31일까지 약 7개월 반의 출전 정지(분데스리가 역사상 최장의 출전 정지 기간) 처분이 확정되었다. 다만, 심판에 대한 폭력에 대해서 코비아슈빌리 본인은 명확히 인정하지 않고 있어 진위 여부는 불분명하다. 처분 결정 후, 소속팀 헤르타 BSC와도 계약을 갱신했으며, 2014년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3. 국가대표 경력

1996년 9월, 코비아슈빌리는 조지아 소속으로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다. 2011년에는 조지아 선수 최초로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하여 UEFA로부터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스와의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였다. 코비아슈빌리는 조지아 선수 중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으며, 국가대표팀 주장을 16번 역임했고, A매치 통산 12골을 기록했다. 이 중 2골은 2006년 우루과이와의 경기에서 나왔고, 2011년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넣기도 했다.

코비아슈빌리는 국가대표팀이 자신에게 최우선 순위였으며, FIFA 월드컵 또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뛰는 것을 꿈꿨다고 언급했다. 그는 2000년과 2005년에 조지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

4. 은퇴 후 경력

2015년 10월 4일, 코비아슈빌리는 조지아 축구 연맹 회장으로 선출되었다.

2016년에는 조지아 의회 의원으로 선출되었다.

5. 개인 생활

코비아슈빌리는 타무나 츠레이스키리와 결혼했으며, 슬하에 니콜로즈(1999년생)와 살로메(2007년생) 두 자녀를 두고 있다.

코비아슈빌리와 그의 재단인 '코비 앤 프렌즈'는 2015년 트빌리시 홍수 피해자들을 돕기 위해 10000GEL를 기부했다.

6. 수상 내역

FC 디나모 트빌리시
* 조지아 리그: 1995, 1996, 1997, 1998
* 조지아 컵: 1995, 1996, 1997
* 조지아 슈퍼컵: 1996, 1997

SC 프라이부르크
* 2. 분데스리가: 2002-03

FC 샬케 04
* UEFA 인터토토컵: 2003, 2004
* DFL-리가포칼: 2005
* 분데스리가 준우승: 2004-05, 2006-07
* DFB-포칼 준우승: 2004-05

개인
* 조지아 올해의 선수: 2000, 2005

6.1. 클럽

고르다 루스타비에서 1993년에 1993-94 우마글레시 리가 데뷔전을 치렀다. 루스타비를 연고지로 하는 구단에서 2년을 보낸 후, 1995년 디나모 트빌리시로 이적했다. 다비드 키피아니 감독의 지도 아래, 코비아슈빌리는 팀의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되었다.

1997년 초, 알라니아 블라디카프카스가 코비아슈빌리에게 관심을 보였고, 디나모 트빌리시는 그를 시즌 임대 계약으로 떠나게 했다. 코비아슈빌리는 러시아 톱 리그에서 5골을 기록했다.

SC 프라이부르크에서 반 시즌 동안 임대 선수로 활약한 후, 1998년 독일 클럽과 정식 계약을 맺었다. 볼커 핑케 감독의 시스템에서 핵심 선수 중 한 명이 되었으며, 2000-01 분데스리가 시즌에서 팀이 6위를 차지하며 2001-02 UEFA 컵 진출권을 획득하는데 기여했다. 프라이부르크는 페예노르트에게 합산 점수 3-2로 패하며 3라운드에서 탈락했지만, 코비아슈빌리는 토너먼트 기간 동안 6경기에 모두 출전하여 로테르담 연고의 클럽을 상대로 유일한 골을 기록했다.

2002-03 2. 분데스리가 시즌에 팀이 다시 1부 리그로 승격하는 데 기여했으며, 그는 클럽을 위해 10골을 넣었다.

2003년 여름, 샬케 04와 3년 계약을 맺었다. 유프 하인케스 감독은 그를 왼쪽 수비수로 기용했지만, 랄프 랑닉 감독 부임 후, 미드필더로 다시 이동하여 샬케의 수비와 공격을 연결하는 핵심 연결 고리가 되었다. 2005-06 시즌에는 PSV 에인트호번을 상대로 해트트릭을 기록하기도 했다.

2009년 12월 20일, 헤르타 BSC로 이적하기 위해 FC 샬케 04를 떠날 것이라고 발표했다. 2010년 1월 1일에 헤르타 BSC에 합류했다. 2012년 5월 15일, 포르투나 뒤셀도르프와의 경기에서 심판에게 폭행을 가하여 2012년 12월 31일까지 약 7개월 반의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았다. 2014년 시즌 종료와 함께 현역에서 은퇴했다.

클럽 경력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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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시즌리그기타
FC 올림피 루스타비1993-1994우마글레시리가
FC 디나모 트빌리시1995-1998우마글레시리가
FC 알라니야 블라디캅카스1997러시아 톱 리그loan영어
SC 프라이부르크1998-2003분데스리가/2. 분데스리가
샬케 042003-2009분데스리가
헤르타 BSC2010-2014분데스리가/2. 분데스리가

6.2. 개인

1996년 9월, 코비아슈빌리는 조지아 소속으로 오슬로에서 열린 노르웨이와의 친선 경기에서 데뷔했다. 2011년에는 조지아 선수 최초로 A매치 100경기 출전을 달성하여 UEFA로부터 특별상을 받았다. 그리스와의 경기는 그의 마지막 A매치였다. 그는 여전히 조지아 선수 중 최다 출장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코비아슈빌리는 국가대표팀 주장을 16번 역임했으며, A매치 통산 12골을 기록했다. 이 중 2골은 2006년 우루과이를 상대로 승리한 경기에서 나왔다. 또한 2011년 UEFA 유로 2012 예선에서 크로아티아를 상대로 결승골을 기록하기도 했다.

코비아슈빌리는 국가대표팀이 자신에게 최우선 순위였으며, FIFA 월드컵 또는 UEFA 유럽 축구 선수권 대회에서 뛰는 것을 꿈꿨다고 언급했다. 그는 2000년과 2005년 두 차례 조지아 올해의 선수로 선정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