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도비코 페라리
1. 개요
로도비코 페라리는 이탈리아의 수학자이다. 볼로냐에서 태어나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하인으로 경력을 시작했으며, 카르다노에게 수학을 배우며 사차 방정식 해법 연구를 도왔다. 십 대에 로마에서 교직을 얻었고, 42세에 은퇴 후 볼로냐 대학교에서 수학 교수로 재직했다. 타르탈리아와의 삼차 방정식 해법 논쟁이 있었으며, 1565년 누이에 의해 비소 중독으로 사망했다는 전설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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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22년 출생 -
시바타 가쓰이에
시바타 가쓰이에는 센고쿠 시대 오다 노부나가를 섬긴 용맹하고 충성심 강한 무장으로, 노부나가 사후 도요토미 히데요시와의 권력 다툼에서 패배하여 자결했으며, "오니 시바타"라는 별명으로도 알려져 있다. -
1522년 출생 -
울리세 알드로반디
울리세 알드로반디는 르네상스 시대 이탈리아의 자연학자, 의사이자 볼로냐 대학교 교수로, 자연사 연구에 헌신하여 방대한 표본과 저술을 남겼으며 볼로냐 대학교 식물원 설립에 기여했고, 그의 업적은 후대 자연과학에 영향을 주었으며, 끈끈이주걱 속은 그의 이름을 기려 명명되었다. -
16세기 수학자 -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폴란드 출신의 천문학자로서 태양중심설을 제안하여 천문학에 혁신을 가져왔으며, 저서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통해 자신의 이론을 발표했으나 논란을 겪었고, 과학 혁명과 현대 천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
16세기 수학자 -
마테오 리치
마테오 리치는 16세기 예수회 선교사이자 학자로, 중국에서 유교적 가치관에 기반한 선교와 저술 활동을 통해 서양 학문과 기독교를 소개하고 중국 문화를 유럽에 알리는 데 기여했으며, 가경자로 선포되었다. -
대수학자 -
바스카라 2세
바스카라 2세는 12세기 인도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로, 우자인 천문대 책임자를 역임하며 《릴라바티》, 《비자가니타》, 《싯단타 시로마니》, 《카라나 쿠투할라》 등의 저서를 남겼고, 대수학, 미적분학, 삼각법 등에서 업적을 남겨 인도 수학 발전에 기여했다. -
대수학자 -
에미 뇌터
에미 뇌터는 독일 출신의 수학자이자 물리학자로, 추상대수학과 이론물리학에 지대한 공헌을 했으며, 대수학의 추상적인 개념 정립과 뇌터 정리 증명, 여성에 대한 차별 극복을 통해 수학과 물리학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여성 수학자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다.
2. 생애
로도비코 페라리는 이탈리아 볼로냐 출신의 수학자로,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제자이자 조수였다. 그는 스승 카르다노를 도와 삼차 방정식과 사차 방정식의 해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사차 방정식의 일반 해법을 발견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젊은 나이에 로마에서 교수직을 얻기도 했다.
페라리는 42세에 은퇴하여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고향 볼로냐로 돌아왔다. 1565년에는 볼로냐 대학교의 수학 교수로 임용되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누이에 의해 비소로 독살되었다는 설이 전해진다.
2.1. 초기 생애와 카르다노와의 만남
로도비코 페라리는 볼로냐에서 태어났다. 그의 할아버지 바르톨로메오 페라리는 밀라노에서 볼로냐로 쫓겨난 이력이 있다. 로도비코는 볼로냐에 정착하여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하인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그는 매우 총명했기에 카르다노는 그에게 수학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페라리는 카르다노가 삼차 방정식과 사차 방정식을 푸는 것을 도왔으며, 카르다노가 출판한 사차 방정식의 해법을 주로 담당했다.
2.2. 수학적 업적과 교수 생활
지롤라모 카르다노의 하인으로 일하던 중 뛰어난 재능을 인정받아 카르다노에게 직접 수학을 배우기 시작했다. 페라리는 카르다노를 도와 삼차 방정식과 사차 방정식의 해법을 연구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특히 카르다노가 출판한 저서에 실린 사차 방정식의 해법은 상당 부분 페라리의 공으로 여겨진다. 이러한 업적 덕분에 페라리는 십 대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스승 카르다노가 사임하며 추천한 로마의 명망 있는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
페라리는 42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상당한 부를 축적하고 은퇴했다. 이후 고향인 볼로냐로 돌아와 미망인이 된 누이 마달레나와 함께 살았으며, 1565년 볼로냐 대학교에서 수학 교수로 활동했다. 그러나 교수직을 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누이에 의해 비소로 독살되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2.3. 타르탈리아와의 논쟁
1545년, 페라리와 동시대 인물인 니콜로 폰타나 타르탈리아 사이에 삼차 방정식의 해법을 둘러싸고 유명한 논쟁이 벌어졌다. 타르탈리아가 페라리의 스승이었던 카르다노를 몰락시키기 위해 여생을 바쳤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지만, 이는 사실과 다를 가능성이 높다. 오늘날 수학 역사가들은 삼차 방정식을 푸는 공식에 대해 카르다노와 타르탈리아 모두의 공헌을 인정하여 "카르다노-타르탈리아 공식"이라고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