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드 테일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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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드 테일러는 1930년 오스트레일리아에서 태어난 배우로, 1954년 할리우드로 진출하여 영화 《자이언트》, 《새》 등에 출연하며 이름을 알렸다. 그는 1960년 영화 《타임머신》에서 주연을 맡았으며, 1960년대에는 《호텔》, 《아프리카 대공수송》 등에서 주연으로 활약했다. 1970년대 이후에는 조연으로 출연하며, 2009년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또한 성우로 활동하며, 디즈니 애니메이션 《101마리 달마시안》에서 퐁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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맷 데이먼은 《굿 윌 헌팅》으로 아카데미 각본상을 수상하고 배우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다양한 영화 출연과 영화 제작, 자선 활동에도 참여하는 미국의 배우이자 영화 제작자 겸 각본가이다.
2. 초기 생애
테일러는 1930년 1월 11일[1] 시드니 교외의 리드콤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철강 건설 계약자이자 상업 예술가인 윌리엄 스터트 테일러였고, 어머니는 100편 이상의 단편 소설과 아동 도서를 쓴 작가 모나 테일러(결혼 전 성 톰슨)였다. 그는 부모의 외동아들이었다. 그의 중간 이름 '스터트'는 19세기 호주 아웃백을 탐험한 영국의 탐험가였던 증조부 찰스 스터트 선장의 이름에서 따왔다.[2]
로렌스 올리비에의 호주 공연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한 로드 테일러는 호주에서 라디오와 무대 경험을 쌓은 후, 1954년 할리우드로 진출했다. 초기에는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영화 《자이언트》(1956) 등에서 조역을 맡았다.
테일러는 파라마타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이스트 시드니 기술 및 순수 미술 대학에서 미술을 공부했다. 어머니는 그가 예술가가 되기를 바랐고, 미술 수업을 듣도록 권유했다. 실제로 한동안 상업 예술가로 일하기도 했지만, 로렌스 올리비에가 올드 빅 순회 공연에서 선보인 ''리처드 3세'' 연극을 보고 배우가 되기로 결심했다.[3][4]
3. 경력
이후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새》(1963),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 등 유명 감독들의 작품에 출연하며 입지를 다졌다. 《호텔》(1967)과 《아프리카 대공수》(1968) 등에서는 미남 배우로서의 매력을 보여주었으며, 《추카》(1967)를 기점으로 강인한 남성미를 강조하는 터프가이 이미지도 구축했다.
1960년대 말부터는 영화 제작에도 참여하기 시작했고, 유고슬라비아 영화 《헬 리버》(1974)에 출연하는 등 활동 무대를 국제적으로 넓혔다. 1980년대 이후로는 영화에서 주로 조역으로 활동하며 텔레비전 드라마 출연에 집중했다.
성우로서도 활동하여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1961)에서 주인공 달마시안 '퐁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2009년에는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에서 윈스턴 처칠 역으로 특별 출연하여 노년에도 건재함을 보여주었다.
2015년 1월 7일,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22] 향년 84세였다.
3. 1. 오스트레일리아 (1951-1954)
로렌스 올리비에의 오스트레일리아 공연을 보고 배우를 지망하게 되었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라디오와 무대 경험을 광범위하게 쌓았는데, 라디오 활동으로는 ''블루 힐스''에 출연하고 타잔 역할을 맡은 경력이 있다. 경력 초기에는 시드니의 마크 포이 백화점에서 낮 동안 창문과 기타 디스플레이를 디자인하고 그림을 그리며 생계를 유지해야 했다.[5] 또한 오스트레일리아의 머큐리 극장에서 여러 연극 작품에 출연했다.
1951년에는 찰스 스터트의 머럼비지 강과 머레이 강 탐험을 재현하는 데 참여하여 스터트의 조력자인 조지 맥클레이 역할을 맡았다. 이를 바탕으로 짧은 다큐멘터리 ''스터트와 함께 내륙으로''(1951)가 제작되었다.
테일러는 오스트레일리아의 리 로빈슨 감독 영화 ''산호해의 왕''(1954)에서 미국인 역할을 맡아 영화 데뷔를 했다. 이후 시드니에서 촬영된 미국 영화 자본 영화 ''롱 존 실버''(1954)에서 이스라엘 핸즈 역할을 맡았는데, 이 영화는 ''보물섬''의 비공식적인 속편이었다. 이 두 편의 영화 이후, 테일러는 1954년 롤라 쇼 오스트레일리아 올해의 라디오 배우상을 수상했다.[5] 이 상에는 로스앤젤레스를 거쳐 런던으로 가는 항공권이 포함되었지만 테일러는 런던으로 가지 않고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3. 2. 할리우드 (1954-2009)
로렌스 올리비에의 호주 공연을 보고 배우의 꿈을 키운 로드 테일러는 호주에서 라디오와 무대 경험을 쌓은 후 1954년 할리우드로 건너갔다. 그는 곧 《스튜디오 57》과 같은 TV 프로그램과 영화 《헬 온 프리스코 베이》(1955) 및 조지 스티븐스 감독의 《자이언트》(1956)에서 조역을 맡으며 경력을 시작했다. 1955년에는 ABC의 초기 서부극 TV 시리즈인 《체옌》의 세 번째 에피소드("아르고노츠")에 클린트 워커와 함께 게스트로 출연하기도 했다.
1955년 말, 제임스 딘의 갑작스러운 사망 후 테일러는 메트로-골드윈-메이어(MGM)의 영화 《어떤 사람은 나를 좋아해》에서 권투 선수 로키 그라지아노 역할의 스크린 테스트를 보았다. 비록 역할은 따내지 못했지만, 테스트에서 보여준 그의 브루클린 억양 구사와 뛰어난 신체 능력은 MGM 관계자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겨 장기 계약으로 이어졌다. MGM 소속으로 그는 《케이더드 어페어》(1956),[6] 《레인트리 카운티》(1957), 《애스크 애니 걸》(1959) 등에서 조연으로 출연했다. 또한 데이비드 니븐과 웬디 힐러가 아카데미상을 수상한 영화 《세퍼레이트 테이블스》(1958)에서도 비중 있는 역할을 맡았다. TV 시리즈 《트와일라이트 존》의 "그리고 하늘이 열렸을 때" (1959) 에피소드에 출연하여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도 했다.
테일러가 처음으로 장편 영화 주연을 맡은 작품은 H. G. 웰스의 고전 SF 소설을 조지 펄이 각색한 《타임머신》(1960)이었다. 그는 이 영화에서 수천 년 후의 미래로 시간 여행을 떠나 그곳에서 이베트 미미유가 연기한 여인과 사랑에 빠지는 시간 여행자 '조지' 역을 연기했다. 이 역할은 그가 이전에 출연했던 《트와일라잇 존》 에피소드나 영화 《월드 위드아웃 엔드》(1956)의 캐릭터와 유사한 면이 있었다.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1961)에서는 주인공 달마시안 개인 퐁고의 목소리를 연기하며 성우로서도 재능을 보였다.
1960년경, 그는 첫 번째 본드 영화의 제임스 본드 역을 제안받았으나, 캐릭터가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판단하여 거절한 것으로 알려졌다.[7] 그는 훗날 "새로운 본드 영화가 나올 때마다 머리카락을 쥐어뜯었다"고 농담처럼 회고하기도 했다.
테일러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유명한 공포 스릴러 《새》(1963)에서 티피 헤드런, 수잔 플레셰트, 제시카 탠디, 베로니카 카트라이트 등과 함께 출연했다. 그는 정체불명의 새 떼로부터 공격받는 마을에서 가족을 지키려는 남자 주인공 미치 브레너 역을 맡아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이후 제인 폰다와 함께 로맨틱 코미디 《뉴욕의 일요일》(1963)에도 출연했다.
1960년대 중반 동안 테일러는 주로 MGM에서 활발히 활동했다. 이 시기 주요 출연작으로는 리처드 버튼, 엘리자베스 테일러, 매기 스미스와 함께 출연하며 처음으로 호주인 역할을 맡은 《더 V.I.P.s》(1963), 글렌 포드, 수잔 플레셰트와 함께한 20세기 폭스의 《페이트 이즈 더 헌터》(1964), 제임스 가너와 출연한 《36시간》(1964), 줄리 크리스티, 매기 스미스와 함께한 《영 캐시디》(1965), 질 세인트 존과 공연한 《더 리퀴데이터》(1965), 《방해하지 마세요》(1965), 그리고 도리스 데이와 공동 주연을 맡은 《유리 바닥 배》(1966) 등이 있다.
1960년대 후반부터 테일러는 기존의 미남 배우 이미지에서 벗어나 거친 남성미를 강조하는 역할로 변신을 시도했다. 그는 직접 제작에 참여하기도 한 서부극 《추카》(1967)를 시작으로, 캐서린 스파크와 함께 출연한 《호텔》(1967), 이베트 미미유와 다시 호흡을 맞춘 《다크 오브 더 선》(또는 《용병》, 1968), 호주인 역할로 처음 주연을 맡아 뉴 사우스 웨일스 경찰의 스코비 말론 경사 역을 연기한 《아무도 영원히 달리지 않는다》(1968), 그리고 트래비스 맥기 시리즈를 원작으로 한 《다크어 댄 엠버》(1970) 등에 출연하며 터프가이로서의 이미지를 구축했다. 이 시기부터 제작에도 참여하기 시작했으며, 미켈란젤로 안토니오니 감독의 《자브리스키 포인트》(1970)에도 출연했다. 또한 유고슬라비아 영화 《헬 리버》(1974)에 출연하는 등 국제적으로 활동 범위를 넓히기도 했다.
한때 브루스 리 주연의 영화 《용쟁호투》(1973)에서 무술가 로퍼 역을 제안받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 영화는 테일러가 주연한 《다크어 댄 엠버》를 연출했던 로버트 클루스 감독의 작품이었다. 하지만 테일러는 역할에 비해 키가 너무 크다는 이유로 고사했고, 결국 존 색슨이 그 역할을 맡게 되었다.[8]
1973년에는 오랜 친구인 존 웨인[9][10] 및 앤 마그렛과 함께 서부 영화 《기차 강도》에 출연하여 흥행에 성공했다. 테일러는 영화뿐만 아니라 텔레비전에서도 꾸준히 활동했는데, CBS의 《베어캣츠!》(1971)와 NBC의 《오리건 트레일》(1976) 같은 시리즈에 주연으로 출연했다. 1980년대에는 단명한 스파이 드라마 시리즈 《마스커레이드》(1983)와 서부극 시리즈 《아웃로스》(1986)에서 주연 중 한 명으로 활약했다. 1988년부터 1990년까지는 CBS의 인기 드라마 시리즈 《팰콘 크레스트》에서 제인 와이먼의 상대역인 프랭크 아게티 역으로 출연하며 다시 한번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다. 1990년대 중반에는 《명탐정 바네사》와 《로앤오더: 범죄 전담반》 같은 TV 시리즈에 여러 차례 게스트로 출연했다.
1993년에는 다큐멘터리 《타임머신: 더 저니 백》의 진행을 맡았다. 이 프로그램은 《타임머신》(1960)의 시나리오 작가 데이비드 덩컨이 쓴 짧은 속편으로 마무리되었는데, 테일러는 여기서 다시 한번 시간 여행자 조지 역을 연기하며 필비 역의 앨런 영과 재회했다.
테일러는 경력 동안 여러 차례 호주로 돌아가 영화를 찍었다. 《더 픽처 쇼 맨》(1977)에서는 1920년대의 순회 영사 기사를, 《온 더 런》(1983)에서는 청부 살인업자를 연기했다. 블랙 코미디 영화 《웰컴 투 우프 우프》(1997)에서는 거친 입담의 레드넥 대디-O 역을 맡기도 했다.
1990년대 후반에 이르러 테일러는 사실상 반은퇴 상태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2007년에는 공포 TV 영화 《카우》에 출연했는데, 이 영화는 《새》와 유사하게 새들이 인간에게 반란을 일으킨다는 내용을 다루었다. 테일러는 여기서 마을 의사 역을 맡아 소동의 원인을 밝혀내는 역할을 했다. 그의 마지막 영화 출연은 2009년 쿠엔틴 타란티노 감독의 영화 《바스터즈: 거친 녀석들》로, 여기서 영국의 수상 윈스턴 처칠 역으로 카메오 출연하여 건재함을 과시했다.[11]
3. 3. 성우 활동
성우로도 활동하여, 디즈니 애니메이션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1960년)에서 달마시안 퐁고의 목소리를 연기했다.
4. 개인사
그의 첫 번째 부인은 모델 페기 윌리엄스(1951–1954)였다. 그들은 가정 폭력 혐의로 인해 이혼했다. 테일러는 나중에 그들이 건강한 결혼 생활을 하기에는 너무 어리다고 느껴서 이혼했다고 주장했다.[12][13] 테일러는 1960년대 초 스웨덴 여배우 아니타 에크베르크와 데이트를 했고, 약혼하기도 했다.[14][15] 그는 1960년대 후반 모델 팻 시한과 데이트했다.[16]
그의 두 번째 결혼은 모델 메리 하일렘과 1963년부터 1969년 이혼할 때까지 지속되었다. 이 부부는 딸 하나를 두었는데, 전 CNN 재무 기자 펠리시아 테일러 (1964-2023)였다. 테일러는 1967년 팜스프링스에 집을 샀다.[17]
그는 1980년 그의 세 번째 부인인 캐롤 키쿠무라와 결혼했다. 그들은 원래 1960년대 초, 그녀가 그의 TV 시리즈 ''홍콩''의 엑스트라로 출연했을 때 데이트를 했다.[18] 그 부부는 1971년에 다시 만나 결혼하기 전 9년 동안 더 데이트를 했다.[18]
2015년 1월 7일, 심장 발작으로 인해 로스앤젤레스 자택에서 사망[22]했다. 향년 84세.
5. 출연 작품
(내용 없음)
5. 1. 영화
5. 2. 텔레비전
테일러는 1960년대 초부터 21세기 초까지 텔레비전에서 여러 주연 역할을 맡았다. 그의 주요 텔레비전 출연작은 다음과 같다.'''주요 출연작'''
'''기타 출연작'''
- ''스튜디오 57'' (1955) – "The Last Day on Earth", "The Black Sheep's Daughter"
- ''럭스 비디오 극장'' (1955) – "Dark Tribute", "The Browning Version"
- ''샤이엔'' (1955) – "The Argonauts"
- ''서스피션'' (1957) – "The Story of Marjorie Reardon"
- ''슐리츠 플레이하우스 오브 스타'' (1958) – "A Thing to Fight For"
- ''스튜디오 원'' (1958) – "Image of Fear"
- ''럭스 플레이하우스'' (1958) – "The Best House in the Valley"
- ''플레이하우스 90'' (1958–59) – "세 명의 평결", "긴 행진", ''위대한 개츠비'', "레이더", "미스얼라이언스"
- ''환상 특급'' (1959) – "그리고 하늘이 열렸을 때"
- ''딕 파월의 제인 그레이 극장'' (1960) – "Picture of Sal"
- ''굿이어 극장'' (1960) – "Capital Gains"
- ''제너럴 일렉트릭 극장'' (1960) – "Early to Die", "The Young Years"
- ''웨스팅하우스 데실루 플레이하우스'' (1960) – "Thunder in the Night"
- ''버스 스톱'' (1961) – "Portrait of a Hero"
- ''듀폰 쇼 오브 더 위크'' (1962) – "샤논 박사의 시련"
- ''예상치 못한 이야기'' (1980) – "The Hitch-Hiker"
- ''제시카의 추리극장'' (1995) – 로이 라나한 역 (2 에피소드)
- ''워커, 텍사스 레인저'' (1996-1997, 2000) – 고든 케이힐 역 (4 에피소드: "Redemption", "Texas vs. Cahill", "Wedding Bells")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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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Birth Announcements
Sydney Morning Herald
1930-01-18
[2]
뉴스
Rod Taylor obituary
http://www.theguardi[...]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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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적
Rod Taylor: An Aussie in Hollywoo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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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d Taylor
http://nyx.uky.edu/d[...]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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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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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행물
Taylor-Ma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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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Rod Taylor, the Hollywood star, who never forgot he was an Auss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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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Sydney Morning Herald
2018-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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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
City On Fire (audio commentatary)
http://www.cityonfi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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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eekly 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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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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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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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arantino Comes Calling with a Role For Rod Tayl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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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Radio actor free with fists, wife claim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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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Sydney actor Rod Taylor meets the Swedish "ice-berg" and says Cold? Not "sweet Anita"
http://www.rodtaylor[...]
1961-1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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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nita Ekberg, Rod Taylor Announce Marriage So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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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books.goog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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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sband and Father
http://www.rodtaylor[...]
2023-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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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Australian actor Rod Taylor dead at 84, legendary star suffers a heart attack at Beverly Hills home
https://www.courierm[...]
2023-10-29
[20]
뉴스
Rod Taylor, 'The Birds' and 'The Time Machine' Star, Dies at 84
https://variety.com/[...]
2023-10-29
[21]
뉴스
Rod Taylor, 'The Birds' Star, Dead at 84
https://www.thewrap.[...]
2023-10-29
[22]
뉴스
『鳥』『タイム・マシン』ロッド・テイラーさん死去 84歳
https://www.cinemato[...]
シネマトゥデイ
2015-0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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