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랑 조바니넬리
1. 개요
로랑 조바니넬리는 1837년 코르시카에서 태어난 프랑스 군인이다. 생시르 육군 특별 학교를 졸업하고, 알제리, 이탈리아, 멕시코 등지에서 복무했으며,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파리 코뮌에도 참여했다. 청불 전쟁 중에는 통킹 원정에서 활약했으며, 1885년 랑선 전투에서 승리했다. 리옹 지리학회 창립 멤버였으며, 1890년 사단장으로 진급하여 제13 보병 사단과 제3군단을 지휘했다. 1894년 보병 위원회 회장, 1899년 레지옹 도뇌르 훈장 그랑크루아를 받았으며, 1903년 65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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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청불 전쟁 참전 군인 -
조제프 조프르
조제프 조프르는 프랑스 군인으로, 제1차 세계 대전 초 프랑스군 총사령관으로서 마른 전투에서 독일군의 진격을 막는 데 기여했으며, 에콜 폴리테크니크 졸업 후 공병 장교로 식민지에서 경력을 쌓고 프랑스 육군 최고 사령관까지 역임하며 플랑 17을 도입했다. -
프랑스의 청불 전쟁 참전 군인 -
자크 뒤센
자크 뒤센은 프로이센-프랑스 전쟁과 청불전쟁, 그리고 제2차 프랑코-호바 전쟁에 참전하여 프랑스군의 승리에 기여한 프랑스 군인이다. -
프랑스의 장군 -
샤를 드골
샤를 드골은 프랑스의 장군이자 정치가로서, 제2차 세계 대전 중 자유 프랑스 운동을 이끌고 전후 제5공화국 초대 대통령을 역임하며 프랑스 해방과 재건에 기여했으나, 독단적인 성격과 국수주의적 경향으로 논쟁을 일으키기도 했다. -
프랑스의 장군 -
아당 필리프 드 퀴스틴 백작
아당 필리프 드 퀴스틴 백작은 프랑스의 귀족 장군이자 정치인으로, 7년 전쟁과 미국 독립 전쟁에서 활약하고 프랑스 혁명 기간 라인란트 지역을 점령하는 등 활약했으나, 반역죄로 기소되어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으며, 그의 군사적 재능과 인간적인 면모, 허영심과 독선적인 태도, 혁명 정부와의 복잡한 관계, 그리고 니더빌러 파이앙스 공장 투자는 그의 삶의 특징을 보여준다. -
1903년 사망 -
오자키 고요
오자키 고요는 메이지 시대 일본의 소설가로, 겐유샤 창립과 '이인비구니색참회' 등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사실주의적 묘사와 의고전주의적 경향을 특징으로 하는 작품 활동으로 고다 로한과 함께 '홍로시대'를 구축하고 이즈미 교카 등의 문하생을 배출했다. -
1903년 사망 -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
프레더릭 로 옴스테드는 센트럴 파크 등을 설계한 미국의 조경 건축가이며, 저널리스트, 사회 운동가로 활동하며 미국 조경 건축의 아버지로 불린다.
2. 생애
로랑 조바니넬리는 1837년 9월 15일 코르시카의 카스텔로-디-로스티노에서 태어나 1903년 9월 3일 프랑스 스당 근처 프레누와에서 사망한 프랑스 군인이다. 생시르 사관학교를 졸업하고 보병 장교로 임관하여 알제리, 이탈리아, 멕시코,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청불 전쟁 등 다양한 전쟁에 참전했다.
청불 전쟁에서 통킹 원정군 사령관으로 랑선을 점령하는 등 큰 공을 세웠으며, 이후 사단장, 보병위원회 위원장, 최고전쟁위원회 위원 등을 역임했다. 레종도뇌르 훈장 그랑 크루아를 수훈했다.
2.1. 초기 군 경력
1837년 9월 15일 코르시카의 카스텔로-디-로스티노에서 태어났다. 1855년 생시르 사관학교에 입학하여(세바스토폴에 의해 승격됨) 보병으로 모든 경력을 마쳤다. 20세 때 해군 소위로 임관해 알제리에서 근무했으며, 대위 계급까지 외인부대에서 이탈리아와 멕시코에서 싸웠다.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 때 대대장으로 진급하여 2대대 보병과 19대대를 지휘하였다. 1870년 11월 27일 아미앵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1871년 파리 코뮌에 대항하여 베르사유 군대에서 복무했다. 1880년 8월 22일 대령으로 진급하여 스당의 128 보병 연대를 지휘했다.
2.2. 프랑스-프로이센 전쟁과 파리 코뮌
1870년 11월 27일 아미앵 전투에서 부상을 당했으며, 1871년 파리 코뮌에 대항하여 베르사유 군대에서 복무했다.
2.3. 청불 전쟁과 통킹 원정
1884년, 조바니넬리는 3개 보병 대대로 구성된 통킹 행군 연대 지휘관으로 임명되었다. 청불 전쟁 동안, 그는 통킹 고위직에 올랐고, 1885년 2월에 현재의 베트남 북부 랑선을 정복했던 프랑스 두 여단의 일부였다. 제1여단은 루이 브리에르 드 리즐 장군과 조바니넬리(1885년 3월 4일 여단장으로 승격)가 이끌었으며, 포위된 뚜옌꽝을 지원하기 위해 랑선을 떠났다. 이후, 3월 30일 그의 부대 대부분은 조바니넬리 장군에게 배치되어 다른 여단을 집결시켰는데, 이 여단은 격렬한 랑선 퇴각 작전을 수행하고 평화 조약 체결 때까지 상황을 안정시켰다.
2.4. 후기 생애
리옹 지리학회의 창립 멤버였던 조바니넬리는 1890년 7월 12일 사단장으로 진급했다. 그는 13대 보병사단과 3군단을 연속해서 지휘한 후, 1894년 보병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되어 최고전쟁위원회(Superior Council)에 참여했다.
1896년 루앙에서 열린 전국, 식민지 전시회 개막식에 참석했으며, 1899년 레종도뇌르 훈장 그랑 크루아를 받았다.
1903년 9월 3일, 65세의 나이로 스당 근처 프레누와에 있는 그의 저택에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