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센도 에르난데스
1. 개요
로센도 에르난데스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다. 그는 SD 테니스카와 CD 멘사헤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쿨투랄 레오네사,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를 거쳐 RCD 에스파뇰과 레알 사라고사에서 활약했다. 라 리가에서 총 143경기 62골을 기록했으며, 스페인 국가대표팀으로 4경기에 출전했다. 은퇴 후에는 코르도바 CF, 엘체 CF, 레알 베티스 등에서 감독을 역임했으나, 프리메라 디비시온에서 성공적인 커리어를 쌓지는 못했다. 84세의 나이로 고향에서 사망했다.
| fullname: Rosendo Hernández González | |
| 출생일 | 1922년 3월 11일 |
|---|---|
| 출생지 | 산타크루스데라팔마, 스페인 |
| 사망일 | 2006년 8월 3일 |
| 사망지 | 산타크루스데라팔마, 스페인 |
| 신장 | 1.67m |
| 포지션 | 공격수 |
| 유소년 클럽 | 테니스카 멘사헤로 |
|---|
| 1942–1943 | 쿠르투랄 레오네사 |
|---|---|
| 1943–1944 | 아틀레티코 아비아시온 |
| 1944–1950 | 에스파뇰 |
| 1950–1952 | 사라고사 |
| 1952–1953 | 라스팔마스 |
| 1953–1954 | 에스코리아사 |
| 출장 | 210 |
| 득점 | 87 |
| 1949–1950 | 스페인 |
|---|---|
| 출장 | 4 |
| 득점 | 0 |
| 1960 | 사라고사 |
|---|---|
| 1962–1963 | 라스팔마스 |
| 1963–1964 | 코르도바 |
| 1964 | 엘체 |
| 1965 | 베티스 |
| 1966–1967 | 례이다 |
| 1970 | 라스팔마스 |
| 1971 | 사라고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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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E 례이다의 축구 감독 -
에드문도 수아레스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이었던 에드문도 수아레스는 발렌시아 CF의 전설적인 공격수로 '델란테라 엘렉트리카' 라인의 일원으로 활약하며 라리가와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이끌었고, 은퇴 후에는 발렌시아 CF의 감독으로 코파 델 레이 우승을 달성했다. -
UE 례이다의 축구 감독 -
가스파르 루비오
가스파르 루비오는 레알 마드리드와 발렌시아 등에서 활약한 스페인의 축구 선수이자 감독으로, 국가대표팀에서 뛰어난 득점력을 보여 '목말뼈의 제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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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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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2. 클럽 경력
로센도 에르난데스는 카나리아 제도 산타 크루스 데 라 팔마 출신으로, 지역 클럽인 테니스카와 멘사헤로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스페인 내전 이후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하여 1942-43 시즌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다.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으나 공식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고, 1944-45 시즌 개막 전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에스파뇰과 이후 이적한 사라고사에서 주로 활약하며 라 리가 통산 143경기에 출전하여 62골을 기록했다. (단, 1950-51 시즌은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활동했다.) 선수 생활 말년에는 라스 팔마스 등에서도 짧게 활동했으며, 아라곤 지역의 SD 에스코리아사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어 코르도바, 엘체, 베티스, 라스 팔마스 등의 감독을 역임했다. 그는 84세의 나이로 고향인 산타 크루스 데 라 팔마에서 사망했다.
2.1. 초기 경력
에르난데스는 산타 크루스 데 테네리페 도 산타 크루스 데 라 팔마 출신으로, 인근 카나리아 제도의 테니스카와 멘사헤로에서 축구를 시작했다. 스페인 내전이 끝난 후, 그는 쿨투랄 레오네사에 입단했다. 1942-43 시즌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 소속되어 있던 쿨투랄 레오네사에서 프로 선수로 데뷔했으며, 이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로 이적했지만 공식 경기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1944-45 시즌 개막 전에 호세 훈코사와의 맞교환으로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에스파뇰에서 공격수로 뛰며 1949-50 시즌 리그 경기에서 12골을 넣는 등 활약했고, 시즌 종료 후 1950 FIFA 월드컵에 참가할 스페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보낸 1950-51 시즌을 제외하면 에르난데스는 대부분 라 리가에서 활동했으며, 에스파뇰과 사라고사 소속으로 총 143경기에 출전하여 62골을 기록했다. 이후 레알 사라고사와 UD 라스 팔마스 등에서 짧게 활동하다가 아라곤 지역의 SD 에스코리아사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전성기
1942-43 시즌 당시 세군다 디비시온에 소속되어 있던 쿨투랄 레오네사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44-45 시즌 개막 전에는 호세 훈코사와의 맞교환 형식으로 에스파뇰로 이적했다. 에스파뇰에서는 주로 스트라이커로 뛰었으며, 특히 1949-50 시즌에는 리그 경기에서 12골을 넣는 뛰어난 활약을 펼쳤다. 이러한 활약을 바탕으로 시즌 종료 후 1950 FIFA 월드컵에 참가하는 스페인 대표팀에 발탁되었다.
1950년부터 1952년까지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뛴 1950-51 시즌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선수 생활을 라 리가에서 보냈다. 에스파뇰과 이후 이적한 사라고사에서 활약하며 라 리가 통산 143경기에 출전하여 62골을 기록했다. 이후 사라고사나 라스 팔마스 등에서 짧게 활약한 뒤 현역에서 은퇴했다.
2.3. 은퇴
에르난데스는 선수 생활 말년에 에스파뇰과 레알 사라고사 등에서 활약하며 라 리가 총 143경기에 출전해 62골을 기록했다. 이후 아라곤의 SD 에스코리아사에서 선수 생활을 마감하고 은퇴했다.
현역 은퇴 후에는 지도자의 길을 걸었다. 코르도바, 엘체, 베티스 등을 이끌고 1부 리그에서 감독직을 수행했으나, 엘체와 베티스에서는 1964-65 시즌 동안 총 10경기만을 지휘하는 데 그쳤다. 프리메라 디비시온 클럽을 한 시즌 전체 동안 이끈 것은 1963-64 시즌의 코르도바 시절뿐이었으며, 지도자로서 크게 성공하지는 못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후 라스 팔마스의 감독을 맡기도 했다.
에르난데스는 84세의 나이로 고향인 산타 크루스 데 라 팔마에서 세상을 떠났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에르난데스는 스페인 국가대표팀 소속으로 1년 4개월 동안 4경기에 출전했다. 그는 1950년 FIFA 월드컵에 스페인 대표로 참가했으며, 이 대회에서 미국과의 1차 조별 리그 경기(3-1 승)와 스웨덴과의 2차 조별 리그 경기(1-3 패)에 출전했다.
4. 감독 경력
선수 은퇴 후, 에르난데스는 감독으로 전향했다. 그는 코르도바, 엘체, 베티스 등 1부 리그 클럽들을 지도했다. 하지만 프리메라 디비시온 클럽을 한 시즌 전체 동안 맡은 것은 1963-64 시즌의 코르도바 시절이 유일했으며, 감독으로서는 선수 시절만큼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했다. 1964-65 시즌에는 엘체와 베티스 두 구단을 합쳐 총 10경기만을 지휘하는 데 그쳤다. 이후 라스 팔마스의 감독직을 맡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