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스알파케스 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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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스알파케스 참사는 1978년 7월 11일 스페인 타라고나 인근 로스알파케스 캠핑장에서 발생한 대형 폭발 사고이다. 프로필렌을 과적한 탱크로리가 폭발하면서 캠핑장을 덮쳐 270명 이상이 사망하고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다. 사고는 탱크로리의 기술적 결함, 과적, 위험물 운송 규정 미비, 운전자 및 회사 측의 안전 불감증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였다. 참사 이후 위험 화물 운송 규정이 강화되었으며, 관련자들은 업무상 과실로 기소되었으나 징역형은 대부분 집행유예로 감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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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스알파케스 참사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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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개요 | |
사건명 | 로스 알파케스 참사 |
발생일 | 1978년 7월 11일 |
발생 시간 | 14시 35분경 |
장소 |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타라고나주 알카나르 로스 알파케스 캠핑장 |
사고 유형 | 탱크 트럭 BLEVE |
피해 | |
사망자 | 217명 |
부상자 | 200명 이상 |
관련 정보 | |
도로 | N-340 국도 |
기타 | |
다른 이름 | 로스 알파케스 캠핑장 사고 (스페인어: Accidente del camping de Los Alfaques) 로스 알파케스 사고 (스페인어: Accidente de Los Alfaques) |
2. 사고 배경
로스알파케스(Los Alfaqueses) 캠핑장은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 알카나르에 있는 캠핑장으로, 산 카를레스 데 라 라피타에서 남쪽으로 약 2km 떨어진 지중해 해변과 N-340 해안 국도 사이에 있었다. 사고 당시 캠핑장은 많은 사람들로 붐볐다.[2]
사고를 일으킨 탱크로리는 시스테르나스 레유니다스 S.A. 소유로, 페가소 트랙터와 Fruehauf Corporation|프루호프영어 세미 트레일러로 구성되었다. 사고 당일 라 포블라 다 마후메트에 있는 ENPETROL사 정유소에서 최대 적재량(19.35톤)을 4톤 초과한 23톤의 프로필렌을 싣고 푸에르토야노로 가던 중이었다.[5] 회사는 통행료를 아끼기 위해 운전자에게 좁고 굴곡진 국도 340호선을 이용하도록 지시했다.[20]
2. 1. 캠핑장 정보
로스알파케스(Los Alfaqueses) 캠핑장은 삼각형 모양으로, 해변과 N-340 해안 국도 사이에 자리 잡고 있었다. 가장 가까운 마을인 산 카를레스 데 라 라피타에서 남쪽으로 2km 떨어져 있었지만, 알카나르 자치구에 속해 있었다. 사고 당시 캠핑장의 길이는 200m, 면적은 10000m2였다. 북쪽에서 남쪽으로 갈수록 폭이 100m에서 30m로 좁아졌다. 캠프장과 도로 사이에는 콘크리트 기초가 있는 벽돌 벽이 있었다.[2]캠프장의 법정 수용 인원은 260명이었으나, 사고 당일에는 약 800명이 원래 부지와 신고되지 않은 두 개의 확장 부지에 머물고 있었다. 다행히 모든 투숙객이 당시에 캠프장에 있지는 않았다.[2]
2. 2. 탱크로리 정보
항목 | 내용 |
---|---|
소유 회사 | 시스테르나스 레유니다스 S.A.(Cisternas Reunidas S.A.) |
운전자 | 프란시스코 임베르논 비예나 (당시 50세)[5] |
트랙터 유닛 | 페가소 (등록 번호 M-7034-C)[19] |
세미 트레일러 | Fruehauf Corporation|프루호프영어 (등록 번호 M-7981-R)[5] |
트레일러 제작 연도 | 1973년 |
최대 용량 | 45m3 |
최대 허용 질량 | 19.35톤 (8bar 및 4°C에서) |
사고 당시 적재량 | 프로필렌 23톤 (최대 허용 질량보다 4톤 과적) |
1978년 7월 11일 오후 2시 35분경, 시스테르나 社의 액화 프로필렌을 가득 실은 탱크로리 트럭이 산카를로스데라라피타 인근 340번 국도를 따라 102km를 운행하던 중 로스알파케스 캠핑장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26] 폭발 후 완전히 타버린 트럭 운전자 프란시스코 비예나의 시체에서 발견된 시계는 오후 2시 36분에 멈춰 있었다.[26]
사고 당시 탱크로리는 좁고 굴곡이 심하며 인구 밀집 지역을 통과하는 국도 340호선 대신 A-7 고속도로Autopista AP-7영어를 주행해야 했지만, 운전자들은 바르셀로나 방면으로 갈 때 고속도로 통행료를 절약하기 위해 국도 340호선을 통과하도록 지시받았다.
3. 사고 발생 과정
폭발 직전 상황에 대해서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 일부는 캠핑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탱크에서 가스가 새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다른 목격자들은 사고 현장을 지나가던 중 큰 폭발음과 함께 가스가 새는 소리가 들려 운전사가 트럭을 세웠다고 말했다. 또 다른 증언에 따르면 폭발음은 타이어가 터진 소리였으며, 통제 불능이 된 트럭이 캠핑장 벽과 부딪혀 전복되었다고 한다.[26]
어떤 경우든, 탱크에서 새어 나온 프로펜 가스는 구름처럼 퍼져 캠핑장 디스코텍(클럽) 건물을 향해 동북풍을 타고 퍼져나갔다. 하얀 가스 구름이 캠핑장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호기심에 구름 쪽으로 다가갔다. 가스 구름이 디스코텍 건물 안으로 들어가 점화원에 닿아 불이 붙었고, 이 불이 다시 탱크트럭으로 옮겨붙었다. 결국 약해진 탱크 안에 가득 차 있던 가스에 불이 한꺼번에 붙으면서 끓는 액체 팽창 증기 폭발(BLEVE)이 일어났다.
폭발 당시 캠핑장에는 정원(260명)을 훨씬 넘는 800여 명이 있었다. 폭발 반경 100m~200m 안에는 약 300~4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5] 폭발로 반경 300m 내 모든 것이 파괴되었고, 캠핑장의 90%가 파괴되었다. 폭발이 일어난 자리에는 깊이 2m, 너비 10m의 크레이터가 생겼다. 가스에 불이 붙은 곳으로 추정되는 디스코텍 건물도 완전히 파괴되어 안에 있던 100여 명 모두 사망했다.[9]
3. 1. 사고 전 상황
1978년 7월 11일 화요일 오전 10시 15분, 타라고나에서 북쪽으로 9km 떨어진 라 포블라 데 마푸멧에 위치한 국영 Empresa Nacional de Petróleoses (ENPETROL) 정유 공장에 운전기사 프란시스코 임베르논 비예나(당시 50세)가 도착했다. 그는 다른 국영 기업인 파울라(현재 Repsol)에 공급할 액화 프로필렌을 적재했다. 오후 12시 05분, 최대 설계 하중(19.35MT)보다 4톤 이상 초과된 23.47MT의 프로필렌을 실은 탱크로리가 정유 공장을 떠났다.[3] 이 때문에 탱크는 최소한의 유효 공간만 남긴 채 액체로 거의 가득 찼다.[4]
탱크로리 운전자들은 A-7 고속도로 대신 N-340 국도를 이용하도록 지시받았다. 1970년대 후반, N-340은 여전히 인구가 밀집된 여러 도시 지역을 직접 통과하는 좁고 구불구불한 해안 도로였다.
사고 현장인 로스 알파케스 캠프장은 알카나르 시가지 북동쪽, 관광지 산 카를라스 다 라 라피타에서 2km 남쪽에 위치하며, 바르셀로나에서 타라고나, 암포스타 등을 거쳐 카디스까지 이어지는 국도 340호선과 지중해 사이에 있었다.
사고를 일으킨 탱크로리는 Cisternas Reunidas S.A. 소유로, 페가소 트랙터 유닛[19](등록 번호 M-7034-C)과 Fruehauf Corporation영어 세미 트레일러 (등록 번호 M-7981-R)로 구성되었다. 탱크로리는 푸에르토야노 (카스티야 라 만차 지방)에서 왔으며, Paular(현재의 렙솔) 정유소에 프로필렌을 공급받았다.
운전자들은 바르셀로나 방면으로 갈 때 고속도로 통행료를 절약하기 위해 A-7 고속도로가 아닌 국도 340호선을 통과하도록 지시받았다. 사고 당일은 전형적인 한여름의 더운 날씨였으며, 실외 기온은 35°C까지 상승했다. 사고 후 조사에서 탱크로리 내 탱크 압력은 1.2MPa에서 1.7MPa(170psi - 250psi)에 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20]
3. 2. 폭발 순간
1978년 7월 11일 14시 35분경, 시스테르나 社의 액화 프로필렌을 가득 실은 탱크로리 트럭이 산카를로스데라라피타 인근 340번 국도를 따라 102km를 운행하던 도중 로스알파케스 캠핑장 근처에서 사고가 발생했다.[26] 폭발 이후 완전히 타버린 트럭 운전자 프란시스코 비예나의 시체에서 발견한 시계는 14시 36분에 멈춰 있었다.[26]
폭발 직전 상황에 대해서는 목격자들의 진술이 엇갈린다.
어떤 경우든, 탱크에서 유출된 프로펜 가스는 구름처럼 퍼져 캠핑장 디스코텍(클럽) 건물을 향해 동북풍을 타고 확산되었다. 하얀 구름이 캠핑장으로 퍼지면서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고, 호기심에 구름으로 접근했다. 가스 구름이 디스코텍 건물 안으로 번지자, 가스가 점화원에 접촉해 불이 붙어 탱크트럭으로 다시 불이 옮겨붙었고, 약화된 탱크 내 가득 찬 가스에 불이 한꺼번에 붙어 순간적으로 끓는 액체 팽창 증기 폭발(BLEVE)이 일어났다.
폭발 당시 캠핑장에는 정원(260명)보다 훨씬 많은 800여명이 있었다. 폭발 반경 100m~200m 안에 대략 300~400명이 있던 것으로 추정된다.[5] 트레일러와 텐트를 치고 있던 독일인 및 기타 외국인 관광객들도 수백 명 있었다. 폭발로 반경 300m 내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며, 캠핑장의 90%가 파괴되었다. 폭발한 탱크 자리에는 깊이 2m, 너비 10m의 크레이터가 생겼다. 가스 점화의 원천으로 추정된 디스코텍 건물도 완전 파괴되어 안에 있던 100여 명 모두 사망했다.[9]
4. 피해 상황
로스알파케스 참사로 인한 피해는 막심했다. 폭발 당시 캠핑장에는 800명(합법적 최대 수용인원은 260명)이 있었으며, 폭발 반경 100~200m 안에 대략 300~400명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폭발 반경 300m 내 모든 것이 파괴되었으며, 캠핑장의 90%가 파괴되었다. 폭발한 탱크 자리에는 깊이 2m, 반경 10m의 크레이터가 생겼고, 가스 점화의 원천으로 추정된 디스코텍 건물도 완전히 파괴되어 안에 있던 100여 명 전원이 사망했다.[26] 프로필렌 폭발과 1000°C의 불덩이 외에도 주차된 자동차나 캠프객들이 사용하던 가스통 등도 잇따라 불길에 휩싸여 폭발했다.
4. 1. 인명 피해
폭발과 화염으로 트럭 운전자를 포함해 158명이 즉사했다.[10] 재난 발생 후 일주일 동안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환자들은 자국으로 후송되었다. 300명 이상이 부상을 입었으며, 그중 일부는 심각한 부상을 입었다. 처음에는 폭발로 217명이 직접 사망했으며 (운전자를 포함한 스페인인 4명, 나머지는 모두 외국인), 부상으로 인해 그 후 몇 달 동안 사망한 총 인원은 최소 270명으로 증가했다. 희생자 수에 대한 공식 수치는 215명이다.[13]많은 희생자가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훼손되었다. 대부분 수영복만 입고 있었고, 신분증이 보관되어 있던 행정 건물도 폭발로 파괴되어 신원 확인이 어려웠다. 당시에는 DNA 검사가 불가능했다. 관광객 출신 국가의 법의학팀의 노력으로 모든 희생자의 신원이 결국 확인되었다.
일부 희생자 7명은 한동안 신원이 확인되지 않았고, 토르토사 묘지에 안치되었다. 부부와 두 자녀로 구성된 프랑스 가족의 시신은 보상이 완료된 후 몇 년 후에 프랑스로 반환되었다. 콜롬비아 출신 3명의 또 다른 가족의 시신은 본국으로 보내지지 않았고, 지역 희생자들과 함께 토르토사 묘지에 안치된 유일한 외국인으로 남아 있다.[14]
4. 2. 구조 및 이송
사고 발생 후 첫 45분 동안, 부상자들은 다른 생존자들의 도움을 받아 자신의 차와 밴을 이용하여 비조직적으로 이송되었다. 지역 주민들도 부상자들을 병원으로 이송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첫 번째 구급차는 오후 2시 45분에 쉘 석유 시추 현장인 산 카를레스에서 도착했고, 시립 구급차는 오후 3시 5분에, 소방서는 오후 3시 30분경에 도착했다.[2] 민간 경비대와 군대는 생존자를 찾기 위해 초토화된 캠프를 수색했다. 마지막 부상자가 병원에 도착하기까지 3시간이 걸렸다.불타는 유조선은 도로를 막아 부상자들은 북쪽과 남쪽으로 이송되는 두 그룹으로 나뉘었다. 북쪽으로 이송된 부상자들은 암포스타 또는 토르토사의 병원에서 적절한 치료를 받았고, 중환자 58명은 바르셀로나의 프란시스코 프랑코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반면 남쪽으로 이송된 82명의 중환자는 발렌시아의 Hospital Universitario y Politécnico de La Fe|라 페 병원es으로 이송되었으나, 이송 중 적절한 의료 조치가 취해지지 않아 도착 시 혈압이 측정되지 않는 등 심각한 쇼크 상태를 겪었다.[2],[22] 이들 대부분은 신체의 90% 이상에 화상을 입었고, 며칠 후 사망했다. 병원으로 이송되는 동안, 특히 발렌시아 방향으로 이송된 부상자들의 경우 부적절한 의료 지원이 높은 사망률에 영향을 미쳤다.[11][12]
사고 발생 일주일 후, 프랑스, 독일, 벨기에, 네덜란드 환자들은 자국으로 후송되었다.
5. 사고 원인 조사
사고 이후, 트럭 소유주인 시스테르나스 레우니다스(Cisternas Reunidas)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다.[5] 그러나 운전자들에게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하라는 명령이나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으며, 어떤 도로를 이용할지는 운전자의 선택이었다고 주장했다. ENPETROL은 처음에는 화물 배송 책임은 운송업체에 있으며 어떠한 불만도 접수된 적이 없다며 책임을 부인했다.
하지만, 타라고나 공장의 일부 노동자들은 운전자가 전화로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투며 고속도로 통행료를 요구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5] 또한, 조사 결과 그해 1월 3일부터 7월 7일 사이에 여러 사람이 운전하는 32개의 탱크가 타라고나 정유소를 과적 상태로 떠났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5. 1. 기술적 결함
공식 조사 결과 트럭은 심하게 과적되었으며, 압력 완화 밸브가 없어 BLEVE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2][9] 이러한 밸브는 이전에는 의무적이었지만 1978년에는 더 이상 의무 사항이 아니었다. 트럭은 1980년에 점검을 받아야 했고, 이전 검사는 통과했었다.탱크 컨테이너는 1973년 12월 13일에 빌바오의 작업장에서 제작되었으며,[15] 당시에는 가연성 액체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비상 압력 배출 밸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이 탱크는 다른 물질들을 운반하는 데 사용되었고, 그중 일부는 부식성이 매우 높았다. 강철 탱크 잔해에 대한 시험 결과, 이전에 부적절하게 가압된 무수 암모니아로 인한 부식과 일치하는 미세한 응력 균열이 발견되었다.[2][9] 외부 충격으로 인한 추가적인 구조적 손상의 영향과 함께 이러한 요인들은 화염이 유조선으로 되돌아갔을 때 탱크가 거의 즉시 파열되도록 했을 가능성이 높다. 안전 밸브가 없더라도,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적절하게 채워진 유조선은 화재 시 적어도 근처 사람들이 대피할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오랫동안 구조적 무결성을 유지할 수 있었어야 했다.
조사 결과 ENPETROL 시설에서 유조선의 과적이 흔한 관행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타라고나 공장에는 주입된 가스의 양을 측정하는 계량기나 과충전을 방지하는 자동 차단 장치가 없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탱크가 지속적으로 과적되었다. 운전자는 과적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고, 화물의 종류와 등급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며, 출발 전에 탱크의 압력 수준을 확인하거나 운송 중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그는 위험물 운반 차량 운전자를 위한 위험물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지 않았는데, 회사는 그의 20년 트럭 운전 경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5. 2. 운전자 및 회사 책임
사고 이후, 트럭 소유주인 시스테르나스 레우니다스(Cisternas Reunidas)는 사고에 대한 책임을 인정했지만, 운전자들에게 고속도로 대신 국도를 이용하라는 명령이나 금지령을 내린 적은 없으며, 어떤 도로를 이용할지는 운전자가 선택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타라고나 공장의 일부 노동자들은 운전자가 전화로 누군가와 격렬하게 다투며 고속도로 통행료를 요구하는 소리를 들었다고 진술했다.[5]공식 조사 결과 트럭이 심하게 과적되었으며, 압력 완화 밸브가 없어 BLEVE를 예방하는 데 도움이 되지 못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트럭은 1980년에 점검을 받아야 했고, 이전 검사를 통과했었다. 탱크 컨테이너는 1973년 12월 13일에 빌바오의 작업장에서 제작되었으며,[15] 당시에는 가연성 액체를 운반하는 데 필요한 요건을 충족하지 못했는데, 비상 압력 배출 밸브가 없었기 때문이다. 강철 탱크 잔해에 대한 시험 결과, 이전에 부적절하게 가압된 무수 암모니아로 인한 부식과 일치하는 미세한 응력 균열이 발견되었다.[2][9]
조사 결과 ENPETROL 시설에서 유조선의 과적이 흔한 관행이었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타라고나 공장에는 주입된 가스의 양을 측정하는 계량기나 과충전을 방지하는 자동 차단 장치가 없었고, 그 결과 대부분의 탱크가 지속적으로 과적되었다. 운전자는 과적에 대한 정보를 받지 못했고, 화물의 종류와 등급에 대해서도 알지 못했으며, 출발 전에 탱크의 압력 수준을 확인하거나 운송 중에 모니터링할 수 있는 수단도 없었다. 그는 위험물 운반 차량 운전자를 위한 위험물 교육 프로그램을 수료하지 않았는데, 회사는 그의 20년 트럭 운전 경력이 충분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또한, 조사 결과 그해 1월 3일부터 7월 7일 사이에 여러 사람이 운전하는 32개의 탱크가 타라고나 정유소를 과적 상태로 떠났다는 사실도 밝혀졌다.
6. 사고 이후
로스알파케스 참사는 스페인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쳐, 위험 화물 운반 차량의 주간 통행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금지되었다.
참사 6개월 후, 완전히 개조된 캠핑장은 관광객들에게 다시 개방되었고, 현재도 로스 알파케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되고 있다.[16] 2012년, 캠핑장 소유주는 구글 검색 결과가 참사에만 집중되어 사업에 지장을 준다며 잊혀질 권리 소송을 제기했지만 기각되었다.[17]
6. 1. 법적/제도적 변화
참사 이후 스페인에서는 위험물의 인구 밀집 지역 운송이 금지되었고, 운송 시간도 야간으로 제한되었다.[16] 1982년에는 ENPETROL사 직원 4명과 Cisternas Reunidas사 직원 2명이 업무상 과실로 기소되었다.[16] 이들은 1년에서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지만, 이후 상고한 4명은 형이 감형되거나 집행유예가 붙었다.[16] 최종적으로 양사가 지불한 보상금은 1323만유로에 달했다.[16]6. 2. 사회적 영향
참사 이후 스페인에서는 위험 화물을 운반하는 차량의 주간 통행이 인구 밀집 지역에서 금지되었고, 운송 시간도 야간으로 제한되었다.[16]1982년, ENPETROL의 직원 4명과 Cisternas Reunidas의 직원 2명이 업무상 과실로 유죄 판결을 받고 1년에서 4년의 징역형을 선고받았다. 이들 중 4명은 법원 판결에 항소하여 석방되었고, 모든 징역형은 집행유예 또는 감형되었다. 두 회사는 피해자들에게 1323만유로 상당의 보상금을 지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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