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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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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로이스강은 스위스 중부를 관통하는 강으로, 고트하르트 산괴에서 발원하여 루체른 호수를 거쳐 아레강과 합류하여 라인강으로 흘러든다. 주요 지류로는 클라이네 엠메강 등이 있으며, 유역 면적은 약 3,426km²에 달한다. 셸레넨 협곡과 악마의 다리 등 지리적 특징을 가지며, 고트하르트 터널 건설 등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수력 발전 및 관광, 레저 활동에도 이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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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이스강
개요
루체른의 카펠교
루체른의 카펠교
본명Rüüss (뤼스)
지리
위치스위스
흐르는 지역우리주, 루체른주, 아르가우주
주요 도시안데르마트(우리주), 괴셰넨(우리주), 알트도르프(우리주), 루체른(루체른주), 브렘가르텐(아르가우주)
발원지푸르카로이스, 푸르카 고개 위, 우리주
발원지 좌표46.56341, 8.43259
하구빈디슈(스위스)/게벤스토르프, 아르가우주, 아레강 합류 지점
하구 좌표47.4909, 8.23193
길이164.4 km
발원지 고도2640 m
하구 고도229 m
유량 측정 위치멜링엔
최소 유량9.3 m³/s (MNQ 1935-2013), 28.6 m³/s (NNQ, 2006)
평균 유량140.4 m³/s (MQ 1935-2013)
최대 유량179 m³/s (MHQ 1935-2013), 854 m³/s (HHQ, 2005)
합류아레강
좌안 지류괴셰너 로이스, 마이엔로이스, 엔겔베르거 아(루체른호), 자르너 아(루체른호), 클라이네 에메
우안 지류고트하르트로이스, 운테랄프로이스, 캐르스텔렌바흐, 셰헨, 무오타(루체른호), 로르체, 요넨바흐
거치는 호수루체른호, 플라흐제
유역 면적3426 km²

2. 지리

로이스강은 여러 지류가 합쳐져 흐르는 강이다. 고트하르트 산괴에서 발원하는 고트하르트 로이스강과 푸르카 고개 동쪽에서 발원하는 푸르카 로이스강은 호스펜탈에서 합류한다. 안데르마트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괴셰넨에서 괴셰네로이스와 합류하며, 우르너 로이스탈 계곡을 따라 에르스트펠트를 거쳐 루체른 호수 최남단(우르너제)과 합류한다.

루체른에서 호수를 빠져나온 로이스강은 엠멘에서 클라이네 엠메강과 합류하고, 아르가우주, 추크주, 취리히주 경계를 따라 흐르다가 마슈반덴 하류에서 로르체강과 합류한다. 이후 아르가우주 내에서 플라흐제를 형성하고 브렘가르텐을 지나 빈디쉬와 게벤스토르프 사이를 흐르다가 브루크 바로 아래에서 아레강과 합류한다.

2. 1. 상류

로이스강의 상류는 여러 지류들이 합쳐져 형성된다. 고트하르트 로이스강은 고트하르트 산괴에서 발원하여 티치노주의 루첸드로 호수를 거쳐 우리주로 들어오고, 푸르카 로이스강은 푸르카 고개 동쪽에서 발원하여 우르세렌 계곡을 지나 안데르마트까지 이어진다. 이 두 강은 호스펜탈에서 합류한다.

안데르마트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괴셰넨에서 '''괴셰네로이스'''와 합류한다. 괴셰네로이스는 '''담마글레셔'''와 '''플라헨슈타인피른'''을 비롯한 여러 빙하에서 발원한다. 이후 로이스강은 우리주의 주요 계곡인 '''우르너 로이스탈'''을 형성하며, 바센, 구르트넬렌, 암스테크, 질레넨을 거쳐 에르스트펠트를 지나 알트도르프 인근 루체른 호수 최남단 부분('''우르너제''')과 합류한다.

구르트넬렌 근처의 로이스강


루체른 호수로 유입되는 로이스강

2. 1. 1. 고트하르트 로이스강

고트하르트 산괴에서 발원하여 티치노주의 루첸드로 호수(1947년에 건설된 저수지, 해발 2,131m)에서 나와 '''브리그후벨'''(1,898m) 아래 우리주로 들어간다.

푸르카 고개(2,429m) 동쪽에서 발원하는 푸르카로이스강은 초기에 '''블라우베르그바흐'''(2,649m 고도의 두 산호수에서 유래)와 여러 다른 개울(북쪽의 '''지델렌글레셔'''(3,170m), '''티펜글레셔'''(3,285m)와 남쪽의 '''무텐글레셔'''(2,908m) 및 '''비텐바서글레셔'''(2,805m) 등 여전히 존재하는 빙하에서 유래)과 합류하여 동서 방향의 계곡인 우르세렌을 형성하며, 계곡 중간 지점인 레알프(1,540m)를 지나 동쪽으로 안데르마트까지 이어진다. 이 수원지는 론강의 수원지에서 약 5km 떨어져 있으며 같은 산괴에 위치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륙의 반대편으로 이어진다.

고트하르트 로이스강과 푸르카로이스강은 호스펜탈(1,446m)에서 합류한다. 안데르마트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1,429m 지점에서 마을 개울인 '''운터알프레우스'''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틀고, 3km 길이의 좁고 깊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전설적인 악마의 다리(1,120m) 아래를 통과한다.

2. 1. 2. 푸르카 로이스강

푸르카 고개 (2,429m) 동쪽에서 발원하며, 초기에 '''블라우베르그바흐'''(2,649m 고도의 두 산호수에서 유래)와 여러 다른 개울(북쪽의 '''지델렌글레셔''' (3,170m), '''티펜글레셔''' (3,285m)와 남쪽의 '''무텐글레셔''' (2,908m) 및 '''비텐바서글레셔''' (2,805m) 등 여전히 존재하는 빙하에서 유래)과 합류하여 동서 방향의 계곡인 우르세렌을 형성하며, 계곡 중간 지점인 레알프 (1,540m)를 지나 동쪽으로 안데르마트까지 이어진다.[1] 이 수원지는 론강의 수원지에서 약 5km 떨어져 있으며 같은 산괴에 위치해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대륙의 반대편으로 이어진다.[1]

우르세렌 계곡의 푸르카로이스

2. 1. 3. 셸레넨 협곡

호스펜탈(1,446m)에서 고트하르트 로이스강과 푸르카로이스강이 합류한 후, 로이스강은 안데르마트 하류 1,429m 지점에서 '''운터알프레우스'''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 후 3km 길이의 좁고 깊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전설적인 악마의 다리(1,120m) 아래를 통과한다.[1]

2. 2. 중류



셸레넨 협곡의 테우펠스브뤼케 (악마의 다리)


고트하르트 로이스강과 푸르카 로이스강은 호스펜탈(해발 1,446m)에서 합류한다. 안데르마트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1,429m 지점에서 마을 개울인 운터알프레우스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틀고, 3km 길이의 좁고 깊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전설적인 악마의 다리(1,120m) 아래를 통과한다.[1]

괴셰넨(1,057m)에서 괴셰네로이스가 합류하는데, 이 강은 담마글레셔(3,430m)와 플라헨슈타인피른(3,150m)을 비롯한 여러 빙하에서 발원한다. 여기서부터 우리주의 주요 계곡인 우르너 로이스탈을 형성하며, 바센(840m), 구르트넬렌(720m), 암스테크 및 질레넨(500m) 아래를 지나 에르스트펠트(460m)를 거쳐 아팅하우젠과 알트도르프(440m)를 지난다.[1]

2. 2. 1. 루체른 호수



로이스강은 플뤼엘렌과 제도르프 사이의 루체른 호수 최남단 부분('''우르너제''')과 합류한다. 로이스강은 루체른 호수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루체른 시에서 호수를 빠져나온다.[1]

루체른의 주목할 만한 다리로는 1333년에 처음 건설되어 1993년에 재건된 카펠교와 1408년에 건설된 슈프로이어교가 있다. 슈프로이어교 바로 상류에 있는 니들 댐이 수위를 유지한다.[1]

루체른의 니들 댐의 뒷면

2. 3. 하류

로이스강은 엠멘(432m)에서 클라이네 엠메강과 합류한다. 이후 북동쪽으로 흘러 부흐라인, 루트, 기스콘, 호나우를 지나 호나우(402m) 하류에서 아르가우주추크주의 경계를 이루며 루체른주를 벗어난다. 이 구간에서 디에트빌(아르가우), 리슈-로트크로이츠(추크), 오버뤼티(아르가우), 신스(아르가우), 휘넨베르크(추크), 뮐라우(아르가우)를 통과하며, 마슈반덴 하류에서 추크 호수에서 흘러나오는 로르체강과 합류한다.

이후 로이스강은 아르가우주와 취리히주 경계를 따라 메렌슈반트(아르가우, 389m), 오텐바흐(취리히, 384m)를 지나 오텐바흐 하류에서 아르가우주로 들어선다.

아르가우주 내에서는 아리스타우, 요넨, 로텐슈빌, 운터룬크호펜, 헤르메치빌-슈타펠른을 거쳐 플라흐제(380m)를 형성하고, 추피콘, 브렘가르텐(370m)으로 이어진다. 브렘가르텐의 로이스브뤼케(다리)는 1270년경 처음 건설되었고 1281년에 처음 언급되었으며, 1953년부터 1957년 사이에 나무 다리가 재건축되었다.

브렘가르텐 이후 로이스강은 에겐빌, 피슈바흐-괴슬리콘, 큔텐, 니더빌 사이를 굽이쳐 흐르며 슈테텐(352m)으로 향한다. 계속해서 테게리크, 멜린겐(350m), 비르하르트(340m), 뮐리겐, 비르멘스토르프를 지나 빈디쉬와 게벤스토르프 사이를 흐르다가 327m 지점에서 브루크 바로 아래에서 아레강과 합류한다.

2. 3. 1. 합류 후

호스펜탈 (1446m)에서 고트하르트 로이스강과 푸르카로이스강이 합류한다. 안데르마트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1429m 지점에서 마을 개울인 '''운터알프레우스'''와 합류하여 북쪽으로 방향을 틀고, 3km 길이의 좁고 깊은 셸레넨 협곡을 지나 전설적인 악마의 다리 (1120m) 아래를 통과한다.[1]

괴셰넨 (1057m)에서 '''괴셰네로이스'''가 합류하는데, 이 강은 '''담마글레셔''' (3430m)와 '''플라헨슈타인피른''' (3150m)을 비롯한 여러 빙하에서 발원한다. 여기서부터 우리주의 주요 계곡인 '''우르너 로이스탈'''을 형성하며, 바센 (840m), 구르트넬렌 (720m), 암스테크 및 질레넨 (500m) 아래를 지나 에르스트펠트 (460m)를 거쳐 아팅하우젠과 알트도르프 (440m)를 지나 플뤼엘렌과 제도르프 (434m) 사이의 루체른 호수 최남단 부분('''우르너제''')과 합류한다.[1] 로이스강은 루체른 호수에서 북서쪽으로 약 30km 떨어진 루체른 시에서 호수를 빠져나온다.[1]

루체른의 주목할 만한 다리로는 1333년에 처음 건설되어 1993년에 재건된 카펠교와 1408년에 건설된 슈프로이어교가 있다.[1] 슈프로이어교 바로 상류에 있는 니들 댐이 수위를 유지한다.[1]

이 강은 엠멘 (432m)에서 엔틀부흐에서 내려오는 클라이네 엠메를 받는다.[1] 여기서 북동쪽으로 부흐라인, 루트, 기스콘 및 호나우를 거쳐 호나우(402m) 하류에서 아르가우주와 추크주의 경계를 형성하며 루체른주를 빠져나가 디에트빌 (아르가우), 리슈-로트크로이츠 (추크), 오버뤼티 (아르가우), 신스 (아르가우), 휘넨베르크 (추크) 및 뮐라우 (아르가우)를 통과한다.[1] 이 강은 마슈반덴 하류의 추크 호수에서 내려오는 로르체를 받는다.[1]

이 합류점 하류에서 로이스강은 아르가우주와 취리히주의 경계를 형성하며 메렌슈반트 (아르가우, 389m)와 오텐바흐 (취리히, 384m)를 지나 오텐바흐 하류에서 아르가우주로 들어간다.[1]

아르가우주 내에서 로이스강은 아리스타우, 요넨, 로텐슈빌, 운터룬크호펜, 헤르메치빌-슈타펠른을 지나 플라흐제 (380m)를 형성하며, 추피콘, 브렘가르텐 (370m)으로 이어진다.[1] 브렘가르텐의 로이스브뤼케는 c. 1270년에 처음 건설되었고, 1281년에 처음 언급되었다(나무 다리는 1953–1957년에 재건축).[1]

브렘가르텐에서 로이스강은 에겐빌, 피슈바흐-괴슬리콘, 큔텐, 니더빌 마을 사이를 구불구불 흐르며 슈테텐 (352m)으로 흘러가 테게리크, 멜린겐 (350m), 비르하르트 (340m), 뮐리겐, 비르멘스토르프를 지나 빈디쉬와 게벤스토르프 사이를 흐르다가 327m 지점에서 브루크 바로 하류에서 마침내 아레 강과 합류한다.[1]

합류 후 강은 아레강으로 이어지며, 아레강은 코블렌츠에서 라인강으로 흘러 들어간다.[1]

3. 수계

로이스강의 유역 면적은 3426km2로, 대략 중앙 스위스를 포함한다.[1]

상부 로이스강 유역은 거의 우리 주 전체(우르너 보덴 제외)와 고트하르트 로이스강 최상류 일부인 티치노 주 아이롤로를 포함한다. 유역의 최고점은 해발 3,630m의 담마슈톡 봉우리이다.

하부 로이스강 유역은 루체른 호수의 다른 지류들과 클라이네 엠메강 유역을 더하며, 니트발덴 주와 오브발덴 주 대부분, 슈비츠 주, 루체른 주, 추크 주 일부를 포함한다. 루체른 하류에서는 추가 지류들이 추크의 다른 부분과 취리히 주, 아르가우 주 일부를 더한다.

3. 1.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길이 (km)유역 면적 (km²)
뮐리바흐멜린겐8
요넨46
로르체강휘넨베르크 로이스슈피츠390
진서바흐진스16
론강기스콘22.5
클라이네 엠메강엠멘브뤼케58477
뷔르첸바흐루체른7.739
사르너 아/드라이베서카날/아/라우이바흐알프나흐슈타트28267
멜바흐엔네트모스18
엔겔베르거 아부흐스50230
무오타강브루넨316
이시탈러바흐이슬레텐 부근60
알트도르퍼 도르프바흐알트도르프
셰헨강아팅하우젠109
알프바흐에르스트펠트32
캐르스텔렌바흐116
마이렌로이스71
괴셰넨알프레우스괴셰넨92
운터알프레우스안데르마트
푸르카로이스호스펜탈12


  • '''로르체강'''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유역 면적 (km²)
하젤바흐
리기-아아트 (추크호로 합류)18.6
휘리바흐에게리제로 합류12.8


  • '''클라이네 엠메강'''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랭그바흐
륌리히
비거
폰타넨
엔틀렌
비스 엠메발원지
발트엠메발원지


  • '''엔틀렌'''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그로세 엔틀렌
클라이네 엔틀렌


  • '''그로세 엔틀렌'''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아이바흐
로트바흐


  • '''사르너 아'''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그로세 슐리에레비헬제 상류
그로세 멜차


  • '''푸르카로이스'''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비텐바세렌로이스
티펜바흐
지델렌바흐


  • '''비텐바세렌로이스'''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무텐로이스


  • '''괴셰넨알프레우스'''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포랄프레우스


  • '''운터알프레우스'''의 지류

지류 이름합류 지점
오버알프레우스안데르마트 상류


4. 역사

13세기까지 쇨레넨 협곡은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르제렌은 우리(Uri)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우르제렌은 푸르카 고개오버알프 고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으며, 쿠어 주교구의 영향 아래 있었다.[7] 1230년대에 쇨레넨 협곡이 통과 가능해지면서 고트하르트 고개로의 접근이 열렸고, 이는 로이스 계곡의 전략적 가치를 크게 증가시켰다. 이는 우리(Uri)에 대한 제국 직할지 부여와 구 스위스 연방 건국이라는 더 넓은 정치적 배경에 반영되었다.[7]

로이스강 하류는 일련의 옛 빙하호들을 따라 흐른다. 강을 따라 정착지들은 측면 퇴적구에 건설되었지만, 강바닥 자체는 습지였고 홍수에 취약하여 정착에 적합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강 건너편 길은 옛 빙하호 사이의 종단 퇴적구에 위치해 있었다.

로이스 계곡은 14세기에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에 로이스강은 스위스 연방 영토 간의 경계가 되었는데, 1429년에는 루체른취리히 사이, 이후에는 추크, 취리히, 자유 앰터 콘도미니엄 사이, 자유 앰터와 바덴 사이, 그리고 바덴과 베른 사이에 경계가 되었다. 오텐바흐 하류의 로이스강은 1803년 이 칸톤이 만들어지면서 아르가우에 속하게 되었다.

로이스강은 중세 말기에 "제국 도로"(freie Reichsstrasse)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798년까지 강을 항해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은 칸톤 당국(루체른과 주크의 Reussherren)의 책임이었다. 이 강은 루체른과 추르차흐 사이, 그리고 아레강라인강을 통해 바젤까지의 교통을 위한 수로로서 중요했는데, 이는 18세기에 통과 도로가 건설되기 전까지였다. 중세 시대의 나룻배를 이용한 강 건너편 길은 룬코펜 (1160년 언급), 빈디쉬, 진스, 뮐라우, 오버뤼티, 디트빌에 있었다. 룬코펜의 건널목은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가는 주요 도로에 있었다.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루체른, 브렘가르텐 (1230년), 멜링겐 (1253년 언급) 및 기지콘 (1432년)에 있었다. 1528년, 가톨릭 칸톤은 개신교 칸톤에 대한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막았고 취리히와 베른 사이의 무역은 빈디쉬를 통해 우회되었다.[7]

나룻배와 다리는 수입원이기 때문에, 근대 초기에 새로운 건널목 건설은 반대에 부딪혔고, 주크가 의뢰한 신스 (1640년)에 단 하나의 새로운 다리만 건설되었다. 새로운 다리는 구 스위스 연방이 붕괴된 후에야 건설되었는데, 예를 들어 빈디쉬 (1799년), 오텐바흐 (1864년) 및 뮐라우 (1940년)에 건설되었다. 20세기 말까지, 하류 로이스강에는 여러 철도 및 고속도로 다리를 포함하여 12개 이상의 건널목이 있었다.

1648년 (한스 콘라트 기거)과 1809년 (요한 고트프리트 툴라)의 운하화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1840년, 아르가우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몇 운하화를 건설했다. 대규모 강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는 1971~1985년 (Reusstalsanierung)에 완료되었다. 브렘가르텐-추피콘의 수력 발전소는 1893년에 건설되었고 1975년에 확장되었다 (플라흐제 저수지).

로이스강은 1850~1863년에 아팅하우젠과 알트도르프 사이에서, 1900~1912년에는 하구까지 수로화되어 로이스 평야의 경작지를 크게 늘렸다.[7] 1985년에는 작은 강 삼각주가 재건되었다. 1987년 홍수 이후, 1995~1999년에 개선된 홍수 조절 조치가 건설되었다. 1875년 고트하르트 터널 건설을 위해 쇨레넨 협곡에 작은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더 큰 수력 발전소는 암스테크(1922년), 바센(1949년), 굄헨엔(1962년)에 건설되었다.

4. 1. 이름의 유래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강의 게르만족 이전의 이름을 ''Silana''(이로 인해 실레넨의 이름이 유래함)로 기록했다.[4] 게르만족 이름은 9세기부터 ''Rusa'', ''Rusia''로 증명된다(때로는 초기 근대 시대에 ''Ursa''로 기록됨, c.f. ''우르세렌'').[5] 초기 게르만어 ''*Rūsi'', 사격 ''*Rūsjō-''.

그로일레(1982)는 이 이름을 고대 유럽어 수문명으로 해석하며, ''리쓰''와 직접적인 동족 관계에 있다고 본다.[6] 프톨레마이오스가 기록한 게르만족 이전의 이름 ''Silana'' 때문에, 고대에는 강의 일부만 ''*Rūsi''로 알려졌을 가능성이 있다. 또는, ''*Rūsi''는 중세 초기에 게르만족 정착과 함께 도입된 순수한 게르만어 이름으로 해석되어, 고지 독일어 rūsa, riusa|루사, 리우사goh "물고기 포획기"에서 파생된 것이다.[5]

4. 2. 상류 지역의 역사

13세기까지 쇨레넨 협곡은 통과할 수 없었기 때문에, 우르제렌은 우리(Uri)로부터 분리되어 있었다. 우르제렌은 푸르카 고개오버알프 고개를 통해 접근할 수 있었으며, 쿠어 주교구의 영향 아래에 있었다.[7]

1230년대에 쇨레넨 협곡이 통과 가능해지면서 고트하르트 고개로의 접근이 열렸다. 이는 우리(Uri)에 대한 제국 직할지의 부여와 구 스위스 연방의 건국이라는 더 넓은 정치적 배경에 반영된 것처럼, 로이스 계곡의 전략적 가치를 크게 증가시켰다.[7]

1875년 고트하르트 터널 건설을 위해 쇨레넨 협곡에 작은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다.[7]

4. 3. 하류 지역의 역사

로이스강 하류는 일련의 옛 빙하호들을 따라 흐른다. 강을 따라 정착지들은 측면 퇴적구에 건설되었지만, 강바닥 자체는 습지였고 홍수에 취약하여 정착에 적합하지 않았다. 가장 오래된 강 건너편 길은 옛 빙하호 사이의 종단 퇴적구에 위치해 있다.

로이스 계곡은 14세기에 합스부르크 오스트리아의 지배를 받았다.

15세기에 로이스강은 스위스 연방 영토 간의 경계가 되었는데, 1429년에는 루체른취리히 사이, 이후에는 추크, 취리히, 자유 앰터 콘도미니엄 사이, 자유 앰터와 바덴 사이, 그리고 바덴과 베른 사이에 경계가 되었다. 오텐바흐 하류의 로이스강은 1803년 이 칸톤이 만들어지면서 아르가우에 속하게 되었다.

로이스강은 중세 말기에 "제국 도로"(freie Reichsstrasse)의 지위를 가지고 있었다. 1798년까지, 강을 항해 가능하게 유지하는 것은 칸톤 당국(루체른과 주크의 Reussherren)의 책임이었다. 이 강은 루체른과 추르차흐 사이, 그리고 아레강라인강을 통해 바젤까지의 교통을 위한 수로로서 중요했는데, 이는 18세기에 통과 도로가 건설되기 전까지였다. 중세 시대의 나룻배를 이용한 강 건너편 길은 룬코펜 (1160년 언급), 빈디쉬, 진스, 뮐라우, 오버뤼티, 디트빌에 있었다. 룬코펜의 건널목은 취리히에서 베른으로 가는 주요 도로에 있었다.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루체른, 브렘가르텐 (1230년), 멜링겐 (1253년 언급) 및 기지콘 (1432년)에 있었다. 1528년, 가톨릭 칸톤은 개신교 칸톤에 대한 로이스강을 가로지르는 무역로를 막았고 취리히와 베른 사이의 무역은 빈디쉬를 통해 우회되었다.[7]

나룻배와 다리는 수입원이기 때문에, 근대 초기에 새로운 건널목 건설은 반대에 부딪혔고, 주크가 의뢰한 신스 (1640년)에 단 하나의 새로운 다리만 건설되었다. 새로운 다리는 구 스위스 연방이 붕괴된 후에야 건설되었는데, 예를 들어 빈디쉬 (1799년), 오텐바흐 (1864년) 및 뮐라우 (1940년)에 건설되었다.

20세기 말까지, 하류 로이스강에는 여러 철도 및 고속도로 다리를 포함하여 12개 이상의 건널목이 있었다.

1648년 (한스 콘라트 기거)과 1809년 (요한 고트프리트 툴라)의 운하화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1840년, 아르가우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몇 운하화를 건설했다. 대규모 강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는 1971–1985년 (Reusstalsanierung)에 완료되었다. 브렘가르텐-추피콘의 수력 발전소는 1893년에 건설되었고 1975년에 확장되었다 (플라흐제 저수지).

4. 4. 하천 개발과 관리

로이스강은 1850~1863년에 아팅하우젠과 알트도르프 사이에서, 1900~1912년에는 하구까지 수로화되어 로이스 평야의 경작지를 크게 늘렸다.[7] 1985년에는 작은 강 삼각주가 재건되었다. 1987년 홍수 이후, 1995~1999년에 개선된 홍수 조절 조치가 건설되었다.

1875년 고트하르트 터널 건설을 위해 쇨레넨 협곡에 작은 수력 발전소가 건설되었다. 더 큰 수력 발전소는 암스테크(1922년), 바센(1949년), 굄헨엔(1962년)에 건설되었다.

로이스강 하류는 일련의 옛 빙하호들을 따라 흐르는데, 강을 따라 정착지들은 측면 퇴적구에 건설되었지만, 강바닥 자체는 습지였고 홍수에 취약하여 정착에 적합하지 않았다.

1648년 (한스 콘라트 기거)과 1809년 (요한 고트프리트 툴라)의 운하화 프로젝트는 실현되지 않았다. 1840년, 아르가우는 제한적인 영향을 미치는 몇몇 운하화를 건설했다. 대규모 강 엔지니어링 프로젝트는 1971~1985년 (Reusstalsanierung)에 완료되었다. 브렘가르텐-추피콘의 수력 발전소는 1893년에 건설되었고 1975년에 확장되었다 (플라흐제 저수지).

5. 현대적 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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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조

[1] 간행물 Topographical catchment areas of Swiss waterbodies 2km2 https://api3.geo.adm[...] Federal Office for the Environment FOEN
[2] 문서 Lake's surface area
[3] 문서 Catchment area at outflow including lake's surface area
[4] 서적 zur Zeit des P. hatte für die Reuß noch ihr vorgerm. Name, ''Silana'', gegolten (1, 240ff.; 2, 145ff.). 1968
[5] 논문 Riousiaoua https://books.google[...] 1968
[6] 서적 Riusiava, Riß und Reuß 1982
[7] 웹사이트 Reuss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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