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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테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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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록스테디는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약 2년 동안 자메이카에서 유행한 음악 스타일이다. 스카가 인기를 잃고 자메이카 독립 후 낙관주의가 시들해지면서 킹스턴 빈민가 출신 젊은이들이 록스테디를 즐겼다. 알톤 엘리스의 "Rocksteady"가 이 장르를 대표하며, 호프턴 루이스, 데릭 모건, 로이 셜리 등도 초기 록스테디 음악을 선보였다. 스튜디오 원, 트레저 아일 등 레코드 레이블에서 록스테디 음악을 발매했으며, 듀크 리드, 재키 미투 등 프로듀서와 음악가들이 이 장르 발전에 기여했다. 록스테디는 레게, 덥 음악, 댄스홀 등 이후 자메이카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으며, 많은 레게 아티스트들이 록스테디를 거쳐 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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록스테디
장르
스타일 기원스카, 소울
문화적 기원1960년대 중반, 자메이카
파생 장르레게
퓨전 장르레게 퓨전
기타 주제자메이카의 음악

2. 역사적 배경

록스테디는 1966년 여름부터 1968년 봄까지 약 2년 동안 짧게 유행했지만, 자메이카 음악 발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록스테디의 영향은 오늘날 사용되는 리듬에서도 여전히 들을 수 있다.

록스테디가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면서 당시 스튜디오 원, 트레저 아일, 바니 리, 프린스 버스터 등 모든 레코드 레이블이 이 장르의 음악을 발매했다.

많은 레게 아티스트가 록스테디에서 시작했다. 주니어 바일스는 버사타일스, 존 홀트는 패러곤스, 팻 켈리와 슬림 스미스는 더 테크니크스, 로니 데이비스는 더 테너스, 윈스턴 자렛은 라이처스 플레임스에서 활동했다. 웨일링 웨일러스는 스카에서 시작하여 록스테디를 거쳐 레게 밴드가 되었다.

2. 1. 黎明期 (여명기)

1960년대 중반, 스카의 인기가 시들해지고 자메이카 독립 이후의 낙관적인 분위기가 사라지면서, 많은 젊은이들이 킹스턴의 빈민가로 몰려들었다. 이들 중 일부는 '루드 보이'라 불리는 하위문화를 형성했다.

알톤 엘리스는 그의 히트곡 "Rocksteady"로 인해 록스테디의 아버지라고 불리기도 한다.[2] 하지만, 록스테디 최초의 싱글 후보로는 호프턴 루이스의 "Take It Easy", 데릭 모건의 "Tougher Than Tough", 로이 셜리의 "Hold Them" 등이 있다.

록스테디의 시작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과 같다. 1966년 스튜디오 원에서 록스테디 음악이 시작되었는데, 당시 15세였던 조 아이삭스가 스카탈라이츠 드러머 로이드 니브스를 대신하게 되었을 때 아이삭스는 스카의 속도를 따라갈 만큼 빠르게 드럼을 연주할 수 없었고, 음악 감독 재키 미투(자메이카의 모차르트)가 템포를 늦추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이야기는 자메이카 라디오 인터뷰에서 피아니스트 글래드스톤 앤더슨이 밴드 리더 린 타이트가 "Take It Easy"를 녹음하는 동안 음악의 속도를 늦추자고 제안했다는 것이다.[11] 타이트는 2002년 인터뷰에서 "나는 '글래디'에게 템포를 늦추라고 말했고, 그렇게 'Take It Easy'와 록스테디가 생겨났다. 록스테디는 정말 느린 스카다."라고 말했다.[12]

2. 2. 全盛期 (전성기)

레코드 프로듀서 듀크 리드는 알톤 엘리스의 "Girl I've Got a Date"를 그의 트레저 아일 레이블에서 발매했으며, 더 테크니크스, 더 실버톤스, 더 자메이칸스, 더 패러곤스의 음반도 발매했다. 리드는 이 그룹들과의 작업을 통해 록스테디의 보컬 사운드를 구축하는 데 기여했다.[13] 록스테디 시기를 트레저 아일의 최고 전성기로 여기는 사람들도 있다.

주목할 만한 솔로 아티스트로는 델로이 윌슨, 켄 부스, 필리스 딜론(록스테디의 여왕으로 알려짐) 등이 있다. 록스테디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 다른 음악가로는 키보드 연주자 재키 미투, 드러머 조 아이삭스와 윈스턴 그레넌, 베이시스트 재키 잭슨, 색소폰 연주자 토미 맥쿡 등이 있다. 더 스카탈라이츠가 해체되었을 때(64/65년 - 기록에 따라 다름) 맥쿡은 트레저 아일 레이블에서 일하게 되었고 재키 미투는 스튜디오 원 레이블로 가게 되었다. 이 두 아티스트/편곡자는 이 두 레이블이 지배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록스테디 사운드를 형성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데릭 해리엇은 "자메이카의 음악가에게 물어보면 록스테디 시대가 자메이카 음악의 최고 전성기였다고 말할 것입니다."라고 언급했다.[14]

듀크 리드에 의한 뮤지션 빼내기로 콕슨 도드는 일시적으로 쇠퇴했다. 그러나 키보디스트 재키 미투를 중심으로 한 하우스 밴드의 연주로 알톤 엘리스(듀크 리드 측에서 다시 빼내옴), 켄 부스, 델로이 윌슨 등의 곡을 레코딩했다. 그 후 단번에 인기 그룹이 된 헵톤스도 콕슨 밑에서 데뷔했다. 헵톤스의 등장으로 다시 두 거대 사운드 시스템/레코드 레이블은 균형을 유지했다.

음악 사업이 성장함에 따라, 동시기 미국 음악(소울과 R&B 등)에 많은 영향을 받은 같은 세대의 뮤지션들이 배출되었다. 이 시기 중요한 뮤지션으로는 기타리스트 린 테이트, 키보드 연주자 재키 미투, 드러머 윈스턴 그레넌, 베이시스트 재키 잭슨, 색소폰 연주자 토미 맥쿡 등이 있다.

트리니다드 섬 출신의 린 테이트는 어레인지 재능이 넘쳐, 1962년에 자메이카로 이주, 1968년에 캐나다로 이주하기까지 기간 동안 멘토와 칼립소의 영향을 받은 기타 연주가 록스테디의 느슨한 리듬에 잘 어울렸다.

재키 미투는 스카탈라이츠에 참여, 1965년 오리지널 스카탈라이츠 해산 후 콕슨 도드 밑에서 소울 브라더스(후에 소울 벤더스)를 결성. 스튜디오 원 산 록스테디 곡을 만들었다.

2. 3. 레게로의 전환

1960년대 후반, 록스테디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레게로 진화했다. 주요 음악 편곡가인 재키 미투와 린 테이트가 캐나다로 이민을 가면서, 자메이카 스튜디오 기술이 발전함에 따라 녹음되는 음악의 사운드와 스타일에 뚜렷한 영향을 미쳤다. 베이스 패턴은 더욱 복잡해져서 음악의 배열을 지배하게 되었고, 피아노는 전자 오르간으로 대체되었다. 호른은 배경으로 희미해졌으며, 더 거칠고 타악기적인 리듬 기타가 도입되었다. 또한, 아프리카 스타일의 핸드 드럼이 추가되었고, 더 정교하고 복잡하며 공격적인 드럼 스타일이 등장했다.[15]

1960년대 후반, 라스타파리 운동이 자메이카에서 인기를 얻으면서 록스테디의 인기는 감소했다. 많은 레게 곡들은 로맨스보다는 흑인 의식, 정치, 항의에 초점을 맞추었다.

3. 음악적 특징

록스테디는 스카보다 느린 템포와 묵직하고 선율적인 베이스 라인이 특징이다. 기타와 피아노는 기본적인 오프비트 패턴을 중심으로 연주되었으며, 베이스 라인은 종종 기타로 더블링되었다.[7]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멘토, 칼립소 음악, 아프리카 드럼 등 다양한 음악의 영향을 받았다. 특히 록스테디가 등장할 무렵 미국의 소울 음악도 강세를 보여 영향을 주었다.

이 시기에는 웨일러스, 게이랄즈, 투츠 & 더 메이탈스[19], 패러곤즈, 멜로디언즈 등 미국의 소울 음악을 커버하는 코러스 그룹들이 활약했다. 이들은 삼위일체 사상의 영향으로 3인조 코러스 그룹 형태를 띠었으며, 임프레션스와 같은 동시대 미국 소울 그룹의 영향을 받아 아름다운 하모니를 들려주는 스타일을 추구했다.

1960년대 후반, 록스테디는 여러 요인으로 인해 레게로 발전했다. 주요 변화 요인 중 하나는 재키 미투와 린 테이트와 같은 핵심 음악가들이 자메이카를 떠난 것이었다. 또한, 자메이카 스튜디오 기술의 현대화로 음질과 녹음 스타일에 큰 변화가 있었다. 베이스 패턴은 더욱 복잡해졌고, 피아노는 전자 오르간으로 대체되었다. 혼을 넣지 않는 경향이 강해졌으며, 리듬 기타는 더욱 타악기적으로, 드럼은 더욱 정확하고 복잡한 스타일로 변화했다.

3. 1. 가사

미국 소울 음악의 영향을 받아, 많은 록스테디 곡들은 사랑 노래이다. 예를 들어, 프린스 버스터의 "Sharing You"는 Mitty Collier의 원곡을 커버한 곡이고, the Techniques의 "Queen Majesty"는 the Impressions의 "Minstrel and Queen"을 커버한 곡이다.[8]

루드 보이 문화를 반영하는 노래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the Clarendonians의 "Rude Boy Gone A Jail"과 프린스 버스터의 "Judge Dread"가 있다.[9] 알톤 엘리스는 루드 보이에 반대하는 노래를 불렀다. 예를 들어 "Cry Tough"는 록스테디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에 발매되었으며,[13] 자메이카 빈민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를 견뎌내라고 촉구했다.[10]

3. 2. 루드 보이 (Rude Boy)

1960년대 중후반, 스카가 인기를 잃고 1962년 독립과 함께 찾아온 낙관주의가 시들해지면서, 자메이카 시골 출신의 젊은이들이 킹스턴의 빈민가 (리버턴 시티, 그리니치 타운, 트렌치타운)으로 몰려들었다. 그들 중 많은 사람들은 특정한 냉정함과 스타일을 풍기는 불량배가 되었고, 이 거친 젊은이들은 루드 보이로 알려지게 되었다.[9]

록스테디는 루드 보이의 부상과 일치했고, 일부 록스테디 곡들은 이를 반영했다(대개 부정적으로). 예를 들어 the Clarendonians의 "Rude Boy Gone A Jail"과 프린스 바스터의 "Judge Dread"가 있다.[9] 알톤 엘리스는 루디에 반대했다. 알톤 엘리스 앤 더 플레임스의 "Cry Tough"는 록스테디라는 용어가 유행하기 전에 발매되었으며,[13] 자메이카 빈민가 사람들에게 힘든 시기를 견뎌내라고 촉구했다.[10]

4. 영향 및 유산

록스테디는 짧은 기간 동안 인기를 얻었지만, 레게, 덥 음악, 댄스홀 등 이후 자메이카 음악에 큰 영향을 미쳤다. 많은 레게 아티스트들이 록스테디 그룹에서 활동하거나 록스테디 음악을 통해 성장했다. 예를 들어, 주니어 바일스는 버사타일스, 존 홀트는 패러곤스, 팻 켈리와 슬림 스미스는 더 테크니크스, 로니 데이비스는 더 테너스, 윈스턴 자렛은 라이처스 플레임스에서 활동했다.[14] 웨일링 웨일러스는 스카에서 시작하여 록스테디를 거쳐 레게 밴드가 되었다.

록스테디 시대에 만들어진 많은 베이스 라인이 현대 자메이카 음악에서 여전히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 슬림 스미스의 "Never Let Go" (때로는 '응답 리듬'으로 알려짐)
  • Studio One 레이블의 "Real Rock" 리듬
  • 바니 리가 프로듀싱한 슬림 스미스의 "My Conversation"
  • The Techniques가 부른 "Queen Majesty"
  • Treasure Isle 레이블의 The Conquerors의 "Lonely Street"

참조

[1] 웹사이트 Rocksteady: The Roots of Reggae https://www.bbc.co.u[...] BBC 2011-10-28
[2] 웹사이트 ZonaReGGae reviews "Many Moods of…Alton Ellis" http://zonareggae.wo[...] 2019-12-14
[3] 웹사이트 From The Aces To The Zodiacs, A Primer in Jamaican Rock Steady http://tallawah.com/[...] 2019-12-14
[4] 서적 How to Play Rhythm Guitar
[5] 웹사이트 Learn the Difference Between Ska and Reggae Music https://www.liveabou[...] 2021-10-07
[6] 웹사이트 Reggae Bass and Reggae Music: Everything You Need to Know https://smartbassgui[...] 2021-10-07
[7] 서적 People Funny Boy – The Genius Of Lee 'Scratch' Perry https://books.google[...] Omnibus Press 2021-04-12
[8] 웹사이트 The Techniques – Queen Majesty (AKA Minstrel And Queen) https://genius.com/T[...] 2021-10-07
[9] 웹사이트 Judge Dread Featuring Prince Buster – Jamaica's Pride [LIBRARY RECORDS] https://web.archive.[...] 2021-04-12
[10] 서적 The Rough Guide to Reggae Rough Guides
[11] 웹사이트 Lynn Taitt http://www.lynntaitt[...]
[12] 뉴스 Gladstone Anderson: Key player in rocksteady’s genesis http://www.jamaicaob[...] Jamaica Observer 2012-06-01
[13] 서적 The Guinness Encyclopedia of Popular Music Guinness Publishing 1992
[14] 서적 The Illustrated Encyclopedia of Music Flame Tree Publishing
[15] 서적 Dubwise: Reasoning from the Reggae Underground https://archive.org/[...] Insomniac Press
[16] 웹사이트 http://jamaicansmusi[...]
[17] 웹사이트 Rocksteady: The Roots of Reggae https://www.bbc.co.u[...] BBC 2011-10-28
[18] 문서 「ロックステディ」のヒットで有名な「ミスター・ソウル・オブ・ジャマイカ」。ホーテンス・エリスも歌手である。
[19] 문서 「ドゥ・ザ・レゲエ」や「モンキーマン」などの曲で知られてい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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