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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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개요
- 2. 어원
- 3. 음악적 특징
- 4. 역사
- 4.1. 1930년대 이전
- 4.2. 사운드 시스템의 탄생 (1940년대)
- 4.3. 레코딩 스튜디오와 레이블의 설립 (1950년대)
- 4.4. 라디오 방송국의 개국 (1939년~)
- 4.5. 스카의 탄생 (1960년대 초)
- 4.6. 록스테디의 탄생 (1966년)
- 4.7. 버전의 발명 (1967년)
- 4.8. 레게의 탄생 (1968년)
- 4.9. 디제이 스타일의 확립 (1970년)
- 4.10. 더브의 발명 (1968년경)
- 4.11. 루츠 록 레게의 융성 (1972년경)
- 4.12. 댄스홀 레게의 탄생과 발전 (1970년대 후반)
- 4.13. 컴퓨터라이즈드 혁명 (1985년)
- 4.14. 1990년대 이후
- 5. 한국에서의 레게
- 6. 국제적 확산
- 7. 주요 레게 페스티벌
- 8. 문화적 평가
- 참조
1. 개요
레게는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에서 록스테디와 스카를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 장르이다. 자메이카 영어로 "현재 유행하는"을 뜻하는 단어에서 유래되었으며, 4/4박자에 불규칙한 악센트와 원드롭 리듬, 전기 기타, 드럼, 베이스, 키보드 등의 악기 구성을 특징으로 한다. 레게는 사회, 정치, 종교적 메시지를 담은 가사와 라스타파리 운동, 대마초 사용, 동성애 혐오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며, 루츠 레게, 댄스홀 레게 등 여러 하위 장르로 발전했다. 자메이카를 넘어 영국, 미국, 유럽,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으며, 2018년 유네스코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다.
"레게"라는 명칭의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낡은 옷"이나 "말다툼"을 뜻하는 자메이카 영어 속어인 파토와어 "레게레게(rege-rege)"에서 유래했다는 설[21]이 유력하다.
레게 음악은 4/4박자에 불규칙하면서 강한 악센트가 특징이다. 짧은 리듬을 전기 기타와 드럼 세트로 여러 번 반복하거나 오르간이나 피아노로 반복하기도 한다. 리듬은 복잡할 수 있지만 화성은 단순하며, 록 음악처럼 소리가 크다.[12]
2. 어원
2. 1. 여러 어원 가설
"레게"라는 용어는 "최신 유행"을 뜻하는 자메이카 영어에서 유래했다. 예를 들어 자메이카 영어로 "regged clothing"은 유행하는 옷을 의미한다.[197]
레게라는 용어가 음반에 처음 사용된 것은 1968년 자메이카 음악 그룹 투츠 앤 더 마이탈스의 록스테디 음반 "Do the Reggay"이다. 당시 킹스턴에서는 더 느리게 연주한 록스테디 음악을 레게라고 불렀다.[198] 레게 음악가 데릭 모건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클렌시 에클스의 음반을 제작한 스티브 버로우는 레게라는 말이 파트와어 스트레게(Streggae)에서 나왔다고 주장한다.[198] 투츠 앤 더 마이탈스의 멤버였던 투츠 히베르트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밥 말리는 레게라는 말이 라틴어 레기스(regis, 왕에게 바치는)에서 유래했으며 "왕의 음악"을 뜻한다고 주장했다.[200]
3. 음악적 특징
레게의 박자는 네 박자 중 세 번째 박자에 주로 스네어 드럼의 스트로크와 베이스 드럼이 모두 연주되는 반면, 첫 번째 박자는 비워두는 것이 특징이다. 이를 통해 원드롭 효과가 만들어진다.[12]
레게 리듬은 종종 레귤러 비트와 셔플 비트를 함께 사용하여 폴리리듬을 형성한다.[30][31] BPM은 72~92 사이인 경우가 많고,[31] 음표는 적지만 빈틈에서 그루브를 느끼게 하는 연주를 한다.[32] 레게 리듬은 자메이카 영어로 "리듬"이라고 하며, 곡명뿐만 아니라 리듬 자체에도 이름이 붙는 경우가 많다.
1970년대 밥 말리의 세계적인 히트를 통해 레게 연주 방식은 아프리카, 라틴 아메리카, 아시아 등 세계 여러 나라의 다양한 대중음악에 도입되었다. 또한 재즈, 록, 힙합 등 다른 장르와의 융합이나 레게풍 어레인지도 많이 볼 수 있다.
3. 0. 1. 리듬의 종류
레게의 박자는 네 박자 중 세 번째 박자에 주로 스네어 드럼의 스트로크(보통 크로스 스티킹으로 만들어지는 소리)와 베이스 드럼이 모두 연주되는 반면, 첫 번째 박자는 비워두는 것이 특징이다. 따라서 첫 번째 박자에서 예상되는 소리가 생략되어 원드롭 효과가 만들어진다.[12]
이는 일반적인 록 드럼 패턴의 드럼 악보에서 볼 수 있다.
HH|x-x-x-x-x-x-x-x-||
S|----'''o'''-------'''o'''---||
B|'''o'''-------'''o'''-------||
1 + 2 + 3 + 4 +
그리고 원드롭:
HH|x-x-x-x-x-x-x-x-||
S|--------'''x'''-------||
B|--------'''o'''-------||
1 + 2 + 3 + 4 +
레게에서의 드럼 비트는 “원드롭(One Drop)”, “로커스(Rockers)”, “스테퍼스(Steppers)”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원드롭
: 1박자에 악센트가 없고, 3박자만 스네어 드럼의 림샷과 베이스 드럼으로 강조된다.[37] 칼튼 배럿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이 리듬은[36][37] 레게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이다.[37] 대표적인 곡으로는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원드롭(One Drop)” 등이 있다.
; 플라잉 심벌
: 원드롭 드럼에, 보통 기타나 키보드가 강조하는 2박자, 4박자를 하이햇의 오픈샷으로 강조하는 연주법이다.[38] 1974년에 개발되어 1975년까지 유행했다.[38] 대표적인 곡으로는 “무브 아웃 오브 바빌론(Move Out of Babylon)” 등이 있다.[38]
; 로커스
: 루디먼츠를 바탕으로 한 행진곡풍의 프레이즈를 스네어 드럼으로 연주한다. 그 전투적인 사운드 때문에 “밀리턴트 비트”라고도 불린다.[39] 슬라이 던바가 개발했다.[39] 대표적인 곡으로는 마이티 다이아몬즈의 “아이 니드 어 루프(I Need A Roof)”(1976년) 등이 있다.
; 스테퍼스
: 슬라이 던바가 개발한 4/4박자의 모든 박자에 강한 4분의 4박자의 베이스 드럼을 치는 리듬이다.[40][41] 대표적인 곡으로는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엑소더스” 등이 있다. 이 곡에서 칼튼 배럿은 4/4박자를 연주하는 4분의 4박자 베이스 드럼에 8분의 6박자를 연주하는 하이햇의 3연타를 섞어 연주하고 있다.
'''라커스''' 리듬은 8분 음표마다 꾸준한 베이스 드럼이 있는 원 드롭이지만, 원 드롭보다 느리고, 라커스는 종종 원 드롭보다 느리다.[4]
'''스테퍼스''' 리듬은 기본적으로 4분 음표마다 꾸준한 베이스 드럼이 있는 원 드롭이다.
3. 1. 악기 구성
레게 앙상블과 레게 밴드에서 사용되는 악기는 드럼 세트, 베이스, 기타, 키보드, 퍼커션, 그리고 트롬본, 색소폰, 트럼펫으로 구성된 호른 섹션이다.[28]
표준적인 드럼 세트가 자주 사용된다. 스네어 드럼은 종종 팀발레스처럼 매우 높은 음으로 조율되며, 연주에서는 림샷이 자주 사용된다. 록이나 팝과 달리 심벌즈를 사용한 필인은 거의 사용되지 않고, 하이햇을 칠 때는 악센트를 주지 않고 평평한 비트를 연주하는 경우가 많다.[33][34][35]
레게에서의 드럼 비트는 “원드롭(One Drop)”, “로커스(Rockers)”, “스테퍼스(Steppers)” 등으로 분류할 수 있다.
; 원드롭
: 1박자에 악센트가 없고, 3박자만 스네어 드럼의 림샷과 베이스 드럼으로 강조된다.[37] 칼튼 배럿이 개발했다고 알려진 이 리듬은[36][37] 레게를 특징짓는 요소 중 하나이다.[37] 대표적인 곡으로는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원드롭(One Drop)” 등이 있다.
; 플라잉 심벌
: 원드롭 드럼에, 보통 기타나 키보드가 강조하는 2박자, 4박자를 하이햇의 오픈샷으로 강조하는 연주법이다.[38] 1974년에 칼튼 "산타" 데이비스가 개발하여 1975년까지 유행했다.[38] 대표적인 곡으로는 조니 클라크의 “무브 아웃 오브 바빌론(Move Out of Babylon)” 등이 있다.[38]
; 로커스
: 루디먼츠를 바탕으로 한 행진곡풍의 프레이즈를 스네어 드럼으로 연주한다. 그 전투적인 사운드 때문에 “밀리턴트 비트”라고도 불린다.[39] 슬라이 던바가 개발했다.[39] 대표적인 곡으로는 마이티 다이아몬즈의 “아이 니드 어 루프(I Need A Roof)”(1976년) 등이 있다.
; 스테퍼스
: 슬라이 던바가 개발한 4/4박자의 모든 박자에 강한 4분의 4박자의 베이스 드럼을 치는 리듬이다.[40][41] 대표적인 곡으로는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엑소더스” 등이 있다. 이 곡에서 칼튼 배럿은 4/4박자를 연주하는 4분의 4박자 베이스 드럼에 8분의 6박자를 연주하는 하이햇의 3연타를 섞어 연주하고 있다.
퍼커션으로는 봉고, 카우벨, 셰이커, 냐빈기 드럼, 기로, 클라베스 등이 사용된다. 1990년대 이후로는 AKAI MPC 등의 샘플러가 사용되기도 한다.
3. 2. 가사
레게 음악의 가사는 대부분 가난한 자메이카 사람들이 갖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 있다. 4/4박자에 불규칙하면서 강한 악센트가 특징이며, 짧은 리듬을 전기 기타와 드럼 세트로 여러 번 반복하거나 오르간이나 피아노로 반복하기도 한다. 리듬이 복잡한 경우도 있으나 화성은 단순하며, 록 음악처럼 소리도 크다.
레게 특유의 가창법으로는 디제이에 의한 토스팅, 디제이와 가수의 중간적인 가창법인 싱제이(Singjay)가 있다. 레게는 “'''레벨 뮤직(rebel music, 반항의 음악)'''”이라고 불린다.
3. 2. 1. 주요 가사 주제
레게 음악의 가사는 대부분 가난한 자메이카 사람들이 갖는 사회에 대한 관심과 종교에 대한 믿음을 다루고 있다. 레게는 “'''레벨 뮤직(rebel music, 반항의 음악)'''”이라고 불리는데, 가사가 흔히 사회, 정치, 물질주의, 식민지주의 등에 대한 비판과 반항을 주제로 하기 때문이다.[49] 이는 자메이카 국민의 90% 이상이 흑인 노예 또는 마룬의 후손이라는 점에서 비롯된 소외감과 저항의 역사, 라스타파리 운동과 기독교 침례파의 종교적 영향이 크다.[49]
그러나 모든 레게 아티스트가 라스타파리안은 아니며,[50] 모든 레게 가사가 반항적인 것도 아니다. 자메이카의 전통 음악인 멘토와 마찬가지로 코믹한 가사나, 민속과 속담을 바탕으로 한 설화적 가사, 빈민가의 가난한 삶에 대한 한탄, 남녀의 사랑, 삶의 미묘함, 음악에 대한 도취, 새로운 춤의 방법 등 레게 가사의 주제는 다양하다.[49][51][52]
다른 대중음악에 비해 독창성이 높은 레게 가사의 주제는 다음과 같다.
1990년대 이후, 부주 반톤, 엘리펀트 맨, 비니 맨, 시즈라 등이 영국에 본부를 둔 동성애 단체·인권 단체로부터 차별적 발언에 대한 항의를 받았지만[60], 2007년에는 위의 아티스트들 외에 여러 아티스트들이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가사를 부르는 것을 그만두고 동성애자에 대한 폭력에 반대한다는 합의서에 서명[66]했고, 그 서명 문서가 동성애 인권 운동가 피터 태처의 공식 웹사이트에 공개되는 등[67], 한때 양측이 화해의 첫걸음을 내딛은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부주 반톤과 비니 맨은 곧바로 이 서명을 부인했고[68], 동성애 단체·인권 단체와의 대립이 재점화되었다. 양 단체의 항의로, 두 사람의 유럽·미국 라이브 투어는 여러 차례 항의 시위를 당하거나 중단되는 등[69][70][71], 표현의 자유와 인권 문제의 갈림길에서 흔들리며, 여전히 뿌리 깊은 문제로 남아 있다.
한편, 2012년 7월 레즈비언임을 커밍아웃한 다이애나 킹은 자신의 공식 페이스북에 발표한 성명서에서, "솔직히 말해서, 공개적으로 인정하는 것은 오랫동안 두려워서 할 수 없었다. 내 경력이나 가족,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지 몰랐기 때문이다.", "내가 오랫동안 품고 있던 큰 두려움은 자메이카 사람들이 오랜 호모포비아로 인해 나를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나 같은 사람들을 매일같이 박해하고, 짓밟고, 감옥에 가두고, 강간하고, 죽여 왔다는 불쾌한 현실을, 나는 지금까지 너무 많이 보아왔다. 단지 자신일 뿐인 사람들을, 또는 단지 그렇다고 의심받기만 한 사람들을"이라고 말하며, 이처럼 동성애자에게 차별적인 자메이카의 정치적/문화적 토양을 비판하고 있다[72][73][64].
예를 들어 지미 클리프의 곡 "더 하더 데이 컴"에서는 곡 전반부에서는 살아있는 동안의 구원을 갈구하면서 후반부에서는 오히려 죽음에 의한 구원을 바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74] 또한, 밥 말리는 모든 인종 간의 평화를 바라는 "원 러브/피플 겟 레디"와 같은 곡과 흑인이라도 라스타파리아니즘 신자가 아닌 사람들을 비난하는 "크레이지 볼드헤드 (Crazy Baldhead)"라는 상반되는 내용의 곡을 발표했다.
그러나 아프리칸 디아스포라와 식민지 시대의 노예 경험에 의해 길러진 이러한 불일치, 이중성은 (특히 자메이카의) 레게 아티스트들 사이에서 모순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레게 가사의 특징 중 하나가 되고 있다.[49][75]
가장 오래된 사운드 튜닝은 프린스 버스터의 「Three Against One」과 「The King, The Duke And The Sir」(둘 다 1963년 발표 스카 음악)이다.[76] 그러나 그 이전부터 각 사운드 시스템은 미국산 레코드를 사운드 튜닝으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콕슨 도드의 서 콕슨스 다운비트는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 그룹인 윌리스 잭슨 밴드가 1951년에 발표한 「레이터 포 더 게이터」를 "콕슨 홉"으로 임의로 개명하여 섬 안에서 독점적으로 플레이하며 1950년대 동안 인기를 끌었다.[77]
4. 역사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의 록스테디와 스카에서 발전한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 케러비안 음악,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9년에서 1961년 사이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스카는 자메이카 전통 음악인 멘토를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 장르였다.[198] 1960년대 중반 자메이카 음악가들은 스카를 좀 더 느리게 연주하면서 오프 비트를 가미했고, 알톤 엘리스는 이 음악을 자신의 음반에서 록스테디라 불렀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음악가들은 리듬을 더욱 느리게 하고 여러 가지 효과를 추가하여 레게를 만들었다.
레게는 자메이카뿐만 아니라 영국, 미국에도 퍼져 유행했다. 특히 자메이카에서는 레게 가사가 자메이카 공용어인 영어가 아닌 자메이카 크리올어(파토아)로 불리는 경우가 많다.[78][79] 더빙 퍼포머인 Oku Onuora|옥 오누오라영어는 "파토아와 레게는 같은 리듬을 가지고 있다. 사람들의 리듬이다. 영어를 레게 비트에 실어도 잘 되지 않는다. 그럴 경우 리듬이 바뀌어 버릴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78] 일본의 NAHKI나 독일의 젠틀맨, 이탈리아의 Alborosie|알보로지영어 등 자메이카 출신이나 자메이카계가 아닌 아티스트가 파토아로 노래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한편, 파토아는 영어를 모어로 하는 사람에게도 듣기 어렵기 때문에 섀기 등은 자메이카인이라도 국제 시장을 의식하여 주로 영어로 노래하고 있다.[80] 또한, 종종 "아이야릭(Iyaric)" 등으로 불리는 라스타파리안 특유의 어휘가 사용된다.[81]
이 절에서는 넓은 의미의 레게, 즉 자메이카 대중음악의 역사에 대해 서술한다.
4. 1. 1930년대 이전
1930년대까지 자메이카에서는 자메이카의 민속 음악인 멘토와 칼립소, 그리고 미국의 초기 리듬 앤 블루스, 재즈, 비밥, 점프 블루스가 친숙하게 여겨졌다.[82]4. 2. 사운드 시스템의 탄생 (1940년대)
자메이카에서는 DJ[83]가 거대한 스피커를 쌓아 올린 이동식 음향 시설인 사운드 시스템을 이용하여 음악을 연주했고, 1940년대 이후 거리나 실내에서 이를 즐기는 것이 대중화되었다. 사운드 시스템은 당시 킹스턴 사람들에게 오락의 중심이자 만남의 장소, 정보 교환의 장소, 그리고 사업의 장이기도 했다.[84]

4. 3. 레코딩 스튜디오와 레이블의 설립 (1950년대)
1951년 스탠리 모타(Stanley Motta)가 자메이카 최초의 레코딩 스튜디오인 MRS(Motta's Recording Studio)를 설립했고,[87] 1957년에는 켄 쿠리(Ken Khouri)가 이후 터프 갱 스튜디오가 되는 페더럴 레코딩 스튜디오(Federal Recording Studio)를 설립했다.[88] 1958년에는 이후 자메이카의 총리가 되는 에드워드 시아가의 WIRL이, 1959년에는 듀크 리드의 트레저 아일과 크리스 블랙웰의 아일랜드 레코드가, 그리고 1963년에는 콕슨 도드의 스튜디오 원이 설립되면서,[89] 이후 자메이카에는 녹음 스튜디오와 레코드 레이블이 잇따라 생겨났다.[82][93]4. 4. 라디오 방송국의 개국 (1939년~)
1939년, 아마추어 무선(햄) 기술자인 존 그라이난(John Grinan)은 정부의 허가를 받아 자메이카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 VP5PZ를 개국했다.[93] VP5PZ는 제2차 세계 대전 발발과 함께 전시 방송국 ZQI로 이어졌다.[93] 종전 후, 정부는 민영 방송을 허가했고, 1950년에는 자메이카 방송 협회(Jamaica Broadcasting Corporation, JBC)[90][91]가, 1951년에는 RJR (Radio Jamaica and the Re-diffusion Network)[92]이 개국했다.[93] 이러한 라디오 방송국들은 사운드 시스템과 마찬가지로 자메이카 대중음악의 발전을 측면에서 지원했지만, 레게를 전문적으로 방송하는 라디오 방송국은 1990년 IRIE FM의 개국을 기다려야 했다.[94]4. 5. 스카의 탄생 (1960년대 초)
1959년 자치권을 획득하고 1962년 영국 연방으로서 독립을 이룬 자메이카에서는, 자메이카 음악가들이 자신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음악을 모색하기 시작했다. 사운드 시스템과 프로듀서 간의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탄생한 음악이 바로 스카였다. 스카는 칼립소, 멘토 등 기존의 자메이카 음악에 재즈와 리듬 앤 블루스 등 미국의 음악이 융합되어 탄생했다.[22] 워킹 베이스가 리듬을 이끄는 점, 호른 섹션이 주 선율을 담당하는 경우가 많은 점 등은 재즈와 유사하지만, 비트가 재즈처럼 셔플하지 않고, 1마디의 2박자와 4박자에 고르게 악센트를 두는 업템포의 엇박자 리듬은 스카만의 독특한 것이다.[95]스카의 탄생으로 자메이카 음악은 새로운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고, 히그스 앤드 윌슨이 1959년에 발표한 "매니 오(Manny Oh)"[96]는 2만 5천 장이 넘는 판매고를 기록하며 자메이카 음악 산업 최초의 히트곡이 되었다.[97] 같은 해 프린스 버스터가 프로듀싱한 폴크스 브라더스의 "오 캐롤라이나"(Oh Carolina)[98]는 카운트 오시의 나이야빈기 드럼을 도입하여 라스타파리 운동의 정신을 자메이카 음악에 반영한 최초의 곡이었다.
중국계 자메이카인 바이런 리가 영화 『007 닥터 노』(1962년 개봉)에 출연하는 등의 계기로 스카는 자메이카 상류층과 해외에도 점차 알려지게 되었다.[99] 1964년에는 돈 드래몬드, 재키 미투 등에 의해 스카탈라이트가 결성되었고,[100] 같은 해 밀리 스몰이 부른 "마이 보이 롤리팝"은 전 세계적으로 600만 장의 판매고를 올리며 국제적인 히트곡이 되었다.[101] 그러나 1966년 후반에는 스카의 인기는 쇠퇴하게 된다.[102]
4. 6. 록스테디의 탄생 (1966년)
1966년에 발표된 호프턴 루이스(Hopeton Lewis)의 「테이크 잇 이지(Take It Easy)」나 알턴 엘리스의 「록스테디(Rock Steady)」 등의 음악을 시초로 자메이카에서는 스카를 대신하여 록스테디가 유행했다.[103][104] 록스테디는 스카보다 훨씬 느린 새로운 리듬인 원드롭을 강조하는 드럼, 싱코페이션 감각이 있는 멜로디우스한 베이스 라인과, 달콤하고 부드러운 사운드를 특징으로 한다.[103]
록스테디의 템포가 스카보다 훨씬 느려진 이유는 단순한 음악적 유행의 변화라는 설과, 1966년 여름 자메이카를 덮친 혹심한 열파 때문에 사람들이 업템포의 스카로는 춤을 출 수 없게 되었다는 설,[103] 그리고 스카탈라이트 멤버였던 돈 드라몬드가 저지른 살인 사건을 계기로 스카에 대한 비난이 일어났기 때문이라는 설이 있다.[105]
이 록스테디 시대에는 임프레션스 등의 소울 음악의 영향을 받아 웨일러스, 헵톤스, 테크닉스, 파라곤스 등의 트리오 형태의 코러스 그룹이 유행했다.[103] 또한 자메이카 국내의 사회 상황 악화 등의 영향으로 데릭 모건의 「터퍼 댄 터프(Tougher Than Tough)」나 프린스 버스터의 「저지 드레드(Judge Dread)」 와 같이 루드보이를 주제로 한 가사가 유행했다.[106]
4. 7. 버전의 발명 (1967년)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의 록스테디와 스카에서 발전한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 케러비안 음악,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9년에서 1961년 사이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스카는 자메이카 전통 음악인 멘토를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 장르였다.[198] 1960년 중반 자메이카 음악가들은 스카를 좀 더 느리게 연주하면서 오프 비트를 가미했고, 알톤 엘리스는 이 음악을 자신의 음반에서 록스테디라 불렀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음악가들은 리듬을 더욱 느리게 하고 여러 가지 효과를 추가하여 레게를 만들었다.
이 록스테디 시대에는 자메이카 음악 특유의 “같은 리듬을 여러 곡에 재활용하는” 기법인 “파트 2 스타일(part 2 style)”이 발명되었다. 리듬 재활용은 1967년 말, 스패니시타운(Spanish Town)의 루디스(Ruddy's the Supreme Ruler of Sound)라는 사운드 시스템이 우연히 보컬을 넣지 않은 파라곤스(Paragons)의 “온 더 비치(On the Beach)” 더브플레이트를 재생했는데, 관중들이 열광적으로 받아들인 것을 기원으로 한다.[107]
이후, 리듬 재활용의 경제성으로 인해 자메이카산 싱글 레코드[108]의 B면에는 A면 곡의 카라오케를 넣은 “버전”이 유행하여 일반화되었다.[109]
4. 8. 레게의 탄생 (1968년)
1960년대 후반 자메이카의 록스테디와 스카에서 발전한 레게는 아프리카 음악, 케러비안 음악, 미국의 리듬 앤 블루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9년에서 1961년 사이 자메이카에서 시작된 스카는 자메이카 전통 음악인 멘토를 기반으로 발전한 음악 장르였다.[198] 1960년 중반 자메이카 음악가들은 스카를 좀 더 느리게 연주하면서 오프 비트를 가미했고 알톤 엘리스는 이 음악을 자신의 음반에서 록스테디라 불렀다. 1960년대 말이 되자 음악가들은 리듬을 보다 느리게 하고 다른 여러 가지 효과를 가미하여 레게를 만들게 되었다.
록스테디의 유행이 끝나고, 1968년에는 레게가 그 자리를 대신했다. “레게”라는 말이 처음 사용된 곡은 메탈스의 “두 더 레게(Do the Reggae)”이지만, 레게의 음악적 특징이 처음으로 도입된 곡은 확실하지 않다.[110] 멘토풍의 리드미컬한 기타에 블루스와 쿠미나풍의 타악기를 도입한 리 페리의 “피플 퍼니 보이(People Funny Boy)”나, 전자 오르간과 딜레이 효과가 걸린 기타가 특징인 Larry Marshall (singer)|래리 마셜영어의 “나니 고트(Nanny Goat)”, Lester Sterling|레스터 스털링영어의 “방가랑(Bangarang)”, The Pioneers (band)|파이오니어스영어의 “롱 샷(Long Shot)”, Eric "Monty" Morris|에릭 몬티 모리스영어의 “세이 왓 유어 세잉(Say What You're Saying)” 등 1967년부터 1968년에 발표된 작품들은 록스테디에서 레게로의 변화가 현저하게 나타나고 있다.[110][111][112]
느린 원드롭 리듬은 록스테디 시대와 동일했지만,[111] 싱코페이션이 있는 뒷박을 치는 기타와 오르간, 그리고 베이스라인의 대비로 이전의 자메이카 음악과는 다른 레게 특유의 앙상블이 완성되었다.[111] 이 변화에 대해 1962년부터 1968년까지 자메이카에서 활동한 트리니다드 토바고 출신의 기타리스트 린 테이트는 “록스테디는 4/4박자, 레게는 더블타임이다. 프레이징이 완전히 다르다.”라고 증언하고 있다.[113]
이러한 변화의 요인으로는 린 테이트, 리코 로드리게스, Laurel Aitken|로럴 에이트킨영어, 재키 미투 등 스카, 록스테디 시대에 활동했던 뮤지션들이 해외로 이주한 것과,[119] 각종 이펙터와 녹음 장비의 발전, 그리고 그것에 따른 리 페리, 킹 태비, 버니 리 등 신흥 프로듀서들의 등장이 있었다.[119] 자체 스튜디오를 가질 수 없었던 버니 리를 비롯해 그들 대부분은 음악 제작에서 경제성을 더욱 중시했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드는 호른 세션의 출연은 스카 시대보다 줄어들었다.
동시에 가사 내용도 아비시니안즈의 "Satta Massagana|사타 마사가나영어"이나 에티오피언즈의 “에브리싱 크래시(Everything Crash)”를 비롯해 흑인으로서의 자긍심과 사회 문제를 노래하는 것이 많아졌지만,[114] 그 배경에는 1966년 하일레 셀라시에 1세의 자메이카 방문과 서인도제도대학교에 재직한 가이아나 출신 강사 Walter Rodney|월터 로드니영어 등의 활동에 의해 더욱 세력을 키워가고 있던 라스타파리 운동과,[115] 같은 해 독립을 기념하여 자메이카 정부에 의해 창설된 "Jamaica Independence Festival|페스티벌 송 콘테스트영어" [116]에 의한 문화적 민족주의의 고양,[117][118] 그리고 자메이카 노동당의 경제 정책 실패로 인한 경기 악화와 치안 불안,[114] 미국에서 고조되고 있던 흑인 민권 운동과 국가 이슬람 운동의 유행 등 여러 가지 요인이 있었다.[119]
4. 9. 디제이 스타일의 확립 (1970년)
사운드 시스템의 DJ는 1960년대 중반까지는 소속 사운드 시스템에서 선곡을 하면서 인트로나 간주 부분에서 곡 소개를 하는 역할에 불과했지만, 버전이 발명된 1960년대 후반 이후로는 버전에 맞춰 토스팅을 가수처럼 레코딩하여 작품으로 발표하게 되었다.[120] 이 기법을 사용하여, 1970년, U 로이는 듀크 리드의 프로듀스로 Wake the Town영어(걸 아이브 갓 어 데이트의 버전을 사용), "룰 더 네이션"(테크닉스 "Love is Not a Gamble"의 버전을 사용), "웨어 유 투 더 볼"(파라고스의 동명 곡의 버전을 사용) 세 곡을 잇달아 발표했다. 기존의 곡 소개나 흥을 돋우는 역할의 토스팅이 아닌, DJ로서의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이 세 곡은 사운드 시스템 관객들을 열광시켰을 뿐만 아니라, JBC와 RJR 두 라디오 방송국의 히트 차트 상위 3곡을 독점했다.[120][121]U 로이에 이어 데니스 알카폰, I-Roy영어, Big Youth영어, 딜린저 등의 DJ가 등장하면서, DJ의 토스팅은 레게 특유의 보컬 스타일로 자리 잡게 되었다.[120][121]
4. 10. 더브의 발명 (1968년경)
1968년경, 레코딩 엔지니어 킹 타비는 곡에서 "버전"을 만드는 것뿐만 아니라, 원곡에 극단적인 딜레이나 리버브와 같은 이펙트를 걸고 믹싱을 함으로써, 추상적인 사운드를 만들어내는 '''더빙'''이라는 기법을 발명했다.[122][123] 더빙은 리믹스나 매시업 등 후에 발명된 음악 기법에도 영향을 주었고, 특히 힙합, 하우스 등의 클럽 뮤직에 널리 사용되었다.[122] 노먼 쿡은 킹 타비와 그가 발명한 더빙에 대해 "1980년대 이후의 댄스 뮤직과 클럽 뮤직의 거의 대부분은 킹 타비의 영향 하에 있다고 해도 좋다"고 증언했다.[122]4. 11. 루츠 록 레게의 융성 (1972년경)
1972년경부터 버닝 스피어, 컬처, 피터 토시, 버니 웨일러, 어거스터스 파블로 등은 로커스와 스테퍼스의 중후한 리듬에 라스타파리의 메시지를 담은 곡들을 많이 발표했다. 이러한 레게를 특히 '''루츠록 레게''' 또는 '''루츠 레게'''라고 부른다.[129] 한편, 지미 클리프, 데니스 브라운, 그레고리 아이작스 등은 루츠록 레게뿐만 아니라 서구의 팝 음악 커버와 많은 러브송을 발표했다.[130]4. 12. 댄스홀 레게의 탄생과 발전 (1970년대 후반)
1970년대 후반에도 루츠 록 레게 작품들이 잇달아 발표되었다. 하지만, 밥 말리 & 더 웨일러스, 지미 클리프, 블랙 우훌, 슬라이 앤 로비 등의 세계적인 히트는 그들의 해외 공연을 늘리는 동시에 자메이카 국내 활동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졌다.[131] 그 음악적 공백을 메우듯 등장한 것이 1978년 결성된 루츠 라딕스 밴드였고, 같은 해 유스 프로모션을 설립한 가수 슈거 미노트였으며, 1980년 볼케이노 레이블을 설립한 Henry "Junjo" Lawes|헨리 "준조" 로스영어 등 댄스홀 레게 시대를 대표하는 신흥 프로듀서들이었다.[132]
또한, 인민국가당의 실정으로 정치, 경제가 더욱 혼란해지면서 자메이카에서는 루츠 록 레게의 강경한 메시지에 대한 실망감이 확산되었다.[133] 더욱이 1981년 5월에는 밥 말리가 사망했다. 그러한 상황은 레게에서 라스타파리즘 색채를 희미하게 하고, 옐로맨 등의 DJ에 의한 Slackness|슬랙니스영어라고 불리는 저속한 내용을 중심으로 한 가사나 "건 토크(gun talk)"라고 불리는 자신의 총과 힘을 과시하는 가사를 유행시켰다. '''댄스홀 레게'''(단순히 '''댄스홀'''이라고도 불림)의 탄생이다.[134]
4. 13. 컴퓨터라이즈드 혁명 (1985년)
1984년에 발표된 호레스 퍼거슨의 「센시 애딕트 (Sensi Addict)」나 슈거 마이노트의 「허브맨 허슬링 (Herbman Hustling)」과 같은 곡들은 완전히 디지털 악기로 반주되었다.[134]이듬해 1985년에 킹 재미가 프로듀싱한 웨인 스미스의 「언더 미 슬렝 텐」은 카시오톤 MT-40에 출고 시부터 내장된 드럼 패턴으로 간단하게 제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큰 히트를 기록했다.[137] 그 때문에 킹 태비도 곧바로 미디 편곡 기법을 도입하여 「템포 (Tempo)」 리듬을 제작하여 제이미스에 대항했다. 이후 댄스홀 레게는 드럼머신과 신시사이저를 빠르게 도입하며 일렉트릭 뮤직화되었다. 이 음악적 혁신은 "컴퓨터라이즈드" 또는 "컴퓨터 리듬" 등으로 불렸다.[132] 댄스홀 레게는 드럼머신의 도입과 청중의 요구에 맞춰 곡의 템포도 점차 상승했고,[138] 이전의 레게와는 완전히 다른 음악으로 진화했다.[139]

그 후에도 킹 재미를 비롯해, 원 루츠 라딕스의 스틸리&클리비, 보비 디지털 딕슨 등의 프로듀서들이 컴퓨터라이즈드 리듬 트랙을 대량 생산하여 닌자맨, 샤바 랭크스, 슈퍼캣, 바운티 킬러, 비니 맨 등 많은 DJ의 히트곡을 만들어냈다.[132][136] 이들 8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까지 유행한, 미디 편곡에 의한 고속 댄스홀 레게는 특히 '''라가'''라고 불린다.[139]
4. 14. 1990년대 이후
1990년대 중반, 라스타파리안 가수 가넷 쉴크의 사망 사고를 계기로 라스타파리 운동과 루츠 레게가 다시 주목받으면서, 루치아노, 케이프톤, 시즈라 등의 아티스트가 등장했다.[141] 또한, 메이저 레이저 등 테크노 및 일렉트로니카 계열 아티스트들에 의한 새로운 레게 해석, 자메이카 댄스홀과 영국의 뉴 루츠 간의 교류, 다미안 머리 등에 의한 힙합과의 크로스오버 등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났다.[141] 2000년대 전반에는 댄스홀 계열 디제이 션 폴이 국제적으로 성공했다.[141]
5. 한국에서의 레게
한국에서는 아직 레게가 대중적인 장르는 아니지만, 스토니 스컹크나 김반장과 윈디시티 등 실력 있는 뮤지션들을 통해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5. 1. 주요 한국 레게 음악 및 아티스트
일본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플라워 트래블린 밴드와 페커, 토요다 유조, 우에다 마사키 등이 레게를 도입한 음악을 제작했다.[181][180] 1979년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일본 공연을 계기로 레게 인기가 높아졌고,[181] 1980년에는 페커가 앨범 『페커 파워』, 『인스턴트 라스타』를, 토요다가 앨범 『피를 넘어 사랑할 수 있다면』을 각각 자메이카에서 제작하여 발표했다.[181][182] 1982년에는 전 플라워 트래블린 밴드의 조 야마나카가 웨일러스 밴드와 공동 제작한 앨범 『레게 바이브레이션 1』을 발표했고,[181][180] 더브 밴드 뮤트 비트가 활동을 시작했다.[183] 1984년에는 디제이 란킨 택시가 활동을 시작했고,[184] PJ&쿨러닝스는 일본 레게 아티스트로서 처음으로 메이저 데뷔했다.[185] 1985년에는 스카 밴드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도 활동을 시작했다.[186] 2001년에는 미키 도조의 싱글 「Lifetime Respect」가[187], 2006년에는 MEGARYU의 『我流旋風』과 쇼난노카제의 『湘南乃風〜Riders High〜』 두 장의 앨범이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188] 일본 레게는 「재패니즈 레게」[189] 또는 「J-레게」[190], 「재패레게」[191][192][193]라고 불린다.6. 국제적 확산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One Drop은 이 리듬을 잘 보여주는 예시이다. 칼턴 배럿이 드럼을 연주한 원 드롭 리듬을 사용한 노래로는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노우 우먼, 노 크라이", "쓰리 리틀 버즈", "겟 업, 스탠드 업", "웨이팅 인 베인", "스터 이트 업", "원 러브/피플 겟 레디", "아이 샷 더 셰리프" 등이 있다.[3] 피터 토시의 "리걸라이즈 잇", 스틸 펄스의 Higher Than High, 밥 말리의 Exodus도 원 드롭 리듬을 사용했다.[8]
스테퍼스 리듬을 사용한 노래로는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Is This Love, Exodus, Buffalo Soldier, Satisfy My Soul, Jamming 등이 있다.[3]
레게는 자메이카를 넘어 영국, 유럽, 중동,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아시아 등 전 세계로 확산되었고, 각 지역에서 고유한 스타일로 발전했다.
아프리카에서는 아프리칸 레게[158]가 나이지리아, 남아프리카공화국, 코트디부아르 등에서 발전했다.
자메이카 여성 가수들은 1960년대부터 활동했지만, 1970년대 루츠 레게 시대에는 소수만이 활동했고, 1980년대 이후 댄스홀 시대에도 여성 아티스트는 비교적 적었다. 하지만 1970년대 후반 영국에서 탄생한 러버스 록은 여성 가수들이 중심이 되어 발전했다.[157] 1990년대 이후 자메이카에서는 레디 소우 등 여성 아티스트들이 활약했다.
6. 1. 영국
1948년, 영국 정부는 제2차 세계 대전 후 재건을 위해 국적법을 개정하고, 자메이카 등 식민지 국민에게 영국의 시민권을 부여하는 한편, 적극적으로 이민을 받아들였다.[143][142][144]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의 이민은 1961년에 연간 3만 9천 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했고,[143] 1971년 이민법, 1981년 국적법 개정으로 이민이 제한될 때까지 계속 증가했다.[143][144][145] 이 이민자들 중에는 음악가와 사운드맨도 있었고, 1960년대 전후에는 소규모이지만 사운드 시스템이 등장했다.[146] 1964년에는 노팅힐에서 제1회 노팅힐 카니발이 개최되었고,[147] 레게, 칼립소를 비롯한 카리브해 음악은 사운드 시스템 문화와 함께 인지도와 인기를 높여갔다.
미국 유대계인 에밀 E. 샤릿은 1960년에 블루 비트 레코즈를 설립하여 자메이카산 리듬 앤 블루스와 스카 음악을 발매했다. 이를 계기로 영국에는 카리브해 음악을 취급하는 인디펜던트 레이블들이 잇따라 설립되었다. 그 중에서도 크리스 블랙웰이 1962년 8월 자메이카 독립을 계기로 자메이카에서 영국으로 이전시킨 아일랜드 레코드는 1964년, 밀리 스몰의 "My Boy Lollipop"을 전 세계적으로 장 판매하는 성공을 거두었다.[16]
1967년, 블랙웰은 듀크 리드의 트레저 아일랜드와 계약하여 트로잔 레코드를 설립했다. 이 레이블은 자메이카 음악을 영국에 계속 배급했다.[16] 특히 모드족, 스킨헤드 청년들에게 지지를 받았고, 데이브 앤 앤설 콜린스의 "더블 배럴"은 1971년 5월 1일부터 2주간 UK싱글차트 1위를 기록했다.[148] 또한, 해리 J의 "리퀴데이터"는 울버햄프턴 원더러스 FC를 시작으로 웨스트 브롬위치 알비온 FC, 첼시 FC의 응원가로 채택되었다. 이러한 음악들은 '''스킨헤드 레게'''라고 불리며, 이후 투톤 운동에 큰 영향을 미쳤다.

아일랜드 레코드는 1972년 지미 클리프 주연 영화 '더 하더 데이 컴'의 사운드트랙을, 1973년 4월 13일에는 밥 말리 앤 더 웨일러스의 메이저 데뷔 앨범 '캐치 어 파이어'를 발매했다. 1977년에는 '엑소더스'를 발매하여 이 회사 최초의 골드 레코드가 되었다.
영국의 대표적인 레이블로는 파마 레코드(1967년 설립, 1978년 젯스타로 사명 변경, 2006년 도산), 그린슬리브 레코드(1975년 설립, 2008년 VP 레코드에 합병)가 있다.
1970년대 중반부터, 자메이카 이민 2세대를 중심으로 한 영국 사람들은 영국 특유의 레게를 모색하기 시작했다. 루츠 색채가 짙은 애스와드와 스틸 펄스, 백인인 앨리 캠벨이 리드 보컬을 맡은 UB40 등이 대표적이다. 같은 시기에 결성된 밴드 마툼비의 데니스 보벨은 영국에서 레게와 더브뿐만 아니라, 재닛 케이 등을 프로듀스하며 '''라버스 록'''이라는 장르를 개척했다. 또한 보벨은 슬릿츠와 톰슨 트윈스를 프로듀스하며, 펑크 록과 뉴 웨이브 신에서도 중요한 인물이 되었다.[16] 슬릿츠의 매니저였던 돈 레츠의 영향을 받은 더 클래쉬와 폴리스, 심플리 레드 등의 록 밴드도 레게를 도입한 음악을 많이 발표했다.[149]

1978년, 시인 리턴 쿠웨시 존슨은 보벨의 프로듀스로 앨범 『Dread Beat an' Blood』을 발표한다. 이후 존슨은 레게 반주에 맞춰 시를 낭송하는 '''더브 포에트리'''라는 장르의 제1인자가 되었다.[16][150]
1970년대 초부터 영국에서 사운드 시스템을 경영했던 저 샤카는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본국 자메이카가 댄스홀 전성시대가 되는 가운데, 컴퓨터를 이용한 루츠 레게를 표현했다. 이러한 스타일은 '''뉴루츠'''라고 불린다.[151] 1981년에는 매드 프로페서가 아리와 레이블을 설립하고, 디지털적인 음악 제작으로 라버스 록과 뉴루츠계에 독자적인 지위를 구축했다. 그러한 디지털화된 레게는 뉴 웨이브와 테크노, 하우스 등의 클럽 음악에도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에는 매시브 어택 등이 레게와 힙합, 하우스, 테크노를 융합하여 트립 홉이라는 퓨전 장르를 만들어냈고, 레벨 MC 등은 레게 베이스라인에 고속의 브레이크비츠를 결합한 정글을 탄생시켰다. 2000년대에는 투 스텝에 더브 요소를 가미한 덥스텝이 탄생했다.
6. 2. 유럽 (영국 외)
앞서 언급했듯이 영국에서는 1960년대부터 레게가 대중적인 존재가 되었지만, 1980년대 이후에는 다른 유럽 각국에서도 대중화되었다. 폴란드에서는 공산주의 정권 하의 1980년대 초부터 Daab (band)|다브|Daab영어, Izrael (band)|이스라엘|Izrael영어 등이 활동을 시작하여 Polish reggae|폴란드 레게|Polish reggae영어 신이 확립되었다.[160] 이탈리아에서는 Sud Sound System|수드 사운드 시스템|Sud Sound System영어, Pitura Freska|피투라 프레스카|Pitura Freska영어, Almamegretta|알마메그레타|Almamegretta영어, B.R. Stylers|B・R・스타일러스|B.R. Stylers영어 등이 활동하고 있다. 독일에서는 젠틀맨이나 Patrice Bart-Williams|파트리스 바트-윌리엄스|파트리스영어, Seeed|시드 (레게)|시드영어 등이 활동하고 있다.[165] 시드의 멤버이기도 한 페터 폭스가 2008년에 발표한 앨범 『:w:Stadtaffe』는 독일 국내에서 100만 장, EU 전체에서 110만 장을 판매하는 히트작이 되었고, 폭스는 2009년 독일 에어플레이 차트에서 레이디 가가, 핑크와 함께 가장 성공한 아티스트로 꼽혔다.[161] 젠틀맨이 2004년에 발표한 앨범 『:w:Confidence (Gentleman album)』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히트 차트에서 1위를 차지했으며, 터키 가수 무스타파 산달과 함께한 곡 「:w:İsyankar」이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히트 차트에서 톱 10에 드는 히트가 되었다.유럽 각국의 다른 레게 아티스트로는 스웨덴의 Rootvälta|루트발타|Rootvälta영어, Svenska Akademien (band)|스벤스카 아카데미엔|Svenska Akademien영어, 네덜란드의 Twilight Circus Dub Sound System|트와일라잇 서커스 더브 사운드 시스템|트와일라잇 서커스영어 등이 유명하다. 스페인계 프랑스인 뮤지션 마누 차오도 레게를 도입한 곡을 많이 제작하고 있다.[165]
6. 3. 중동
이스라엘에서는 1985년 텔아비브에 "소웨토(Soweto)"라는 클럽이 문을 열면서 자메이카계 영국인 사운드맨 래스 마이클[162]이 초청되어 인기를 얻었다.[163] 마이클의 영향으로 아미르(Amir), 츄루(Chulu), 실버 돈(Silver Don) 등의 레게 뮤지션과 여러 사운드 시스템이 활동을 시작했다.[163] 소웨토는 1997년에 문을 닫았지만,[163] 2000년대에도 Hatikva 6|하티크바 6영어 등의 밴드가 활동하고 있다. 미국계 유대인 레게 가수 매티스야후도 종종 히브리어로 노래한다.레바논에서는 베이루트와 주니예를 중심으로 1990년대에 아프리카 출신의 외국인 노동자들에 의해 레게가 소개되었고, 1996년에는 루디(Rudy)가 레바논 최초의 레게 뮤지션으로 활동을 시작했다.[164] 2000년대 이후로는 자밋 더 밴드(Jammit The Band)와 라스타 베이루트(Rasta Beirut)가 인기 있다.[164]
6. 4. 카리브해 및 중미
1970년대 파나마에서 스페인어 레게(Reggae en Español)가 탄생하여 라틴아메리카 여러 국가와 스페인어 사용 국가로 퍼져나갔다. 1990년대 초반 푸에르토리코에서는 스페인어 레게와 살사, 힙합 등의 음악이 혼합되어 레게톤이라는 장르가 탄생했다. 레게톤은 2004년경 대디 양키의 'Gasolina', Nina Sky의 'Move Ya Body', N.O.R.E.의 'Oye Mi Canto' 등의 히트곡으로 인지도를 높였다.그 외 카리브해 지역 출신 레게 아티스트로는 마르티니크의 Jean-Marc Monnerville, 과들루프의 Admiral T, 미국령 버진아일랜드의 Midnite (band)와 프레셔 등이 있다.[165]
6. 5. 남미
브라질에서는 1970년대부터 삼바와 루츠 레게가 결합된 Samba reggae|삼바레게영어라는 퓨전 장르가 탄생했다.[166] 1979년에는 질베르투 질이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No Woman No Cry"를 포르투갈어로 번안한 "Não Chore Mais"를 히트시켰다.[165]
바이아주의 오로둠은 1980년대 이후 각지의 카니발에서 연주하는 한편, 10장 이상의 삼바레게 앨범을 발표했다.[166][167]
6. 6. 북미 (미국 등)

미국에서 레게는 1970년대 후반 한동안 침체기를 겪었다. 하지만 1960년대 후반부터 많은 자메이카 이민자들이 거주하며 인구가 가장 많았던 뉴욕시를 중심으로 레게는 다시 성행하기 시작했다. 자메이카 이민자들은 DJ 쿨 허크를 필두로 뉴욕에 사운드 시스템 문화를 전파하여 힙합 음악 탄생에 영향을 미쳤다. 1990년대 초반에는 부기다운 프로덕션즈에 Mad Lion영어 등이 참여하는 등 레게 아티스트와 힙합 아티스트가 적극적으로 교류하면서 라가 힙합이라는 퓨전 장르가 탄생했다.[168][169]
그 외에도 배드 브레인즈, 후지스, 노 다웃, 매티스야후, Groundation영어, Michael Franti영어 등의 뮤지션들이 레게와 힙합, 록, 재즈와의 크로스오버를 시도하고 있다.[139][169] 한편 전통적인 루츠 레게 분야에서는 빅 마운틴 등이 활동하고 있다.
프랭크 자파의 "루실 해즈 메스트 마이 마인드 업(Lucille Has Messed My Mind Up)", 러시의 "더 스피릿 오브 라디오(The Spirit of Radio)", 피시의 "유 인조이 마이셀프(You Enjoy Myself)" 등 수많은 레게가 아닌 노래에서도 원 드롭 스타일이 사용되었으며, 각자 원 드롭 리듬에 자신만의 해석을 더하고 있다.[14]
캐나다에서는 토론토에 자메이카인 이민자 거주 지역이 있으며, 스노우, Lillian Allen영어 등이 활동하고 있다.
6. 7. 오세아니아
오스트레일리아에서는 자메이카에서 이민 온 사람들이 1960년대 후반부터 레게와 사운드 시스템을 전파했다.[170] 1970년대 후반부터는 No Fixed Address (band)|노 픽스드 어드레스영어와 Coloured Stone|컬러드 스톤영어 등이 활동했다.[170] 뉴질랜드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Herbs (band)|허브스영어 등이 활동했고, 2000년대에는 Fat Freddy's Drop|팻 프레디스 드롭영어 등이 인기를 얻으며 레게는 인기 장르 중 하나가 되었다.[171] 또한, 하와이에서는 1980년대부터 하와이안 뮤직과 레게가 크로스오버된 자와이안이라는 퓨전 장르가 탄생했다.[172]6. 8. 아시아
아시아에서 레게가 유행하는 지역은 일본과 필리핀이다. 필리핀에서는 특히 비사야 제도(Visayas)의 세부(Cebu)와 두마게테(Dumaguete)에서 레게의 인기가 높으며,[173] 1970년대 후반부터 코코잼(Cocojam)과 주니어 킬라트(Junior Kilat)와 같은 밴드들이 세부아노어(Cebuano)(비사야어)와 와라이어(Waray)로 노래하며 활동하고 있다.[173] 필리핀인들이 연주하는 레게는 "피노이 레게(Pinoy reggae)"라고 불린다.[174]1990년대 초반 인도계 영국인 DJ 아파치 인디언(Apache Indian)은 댄스홀 레게와 방글라 비트(Bangla beat)를 융합하여 방글라가(Bhangragga)라는 장르를 개척했다.[175] 대한민국에서는 레게가 퇴폐적인 음악으로 간주되어 청취가 금지되었으나,[177] 1992년 청취가 허용되면서 동시에 UB40의 "I Can't Help Falling in Love"[177], 1993년 김건모가 레게의 분위기를 가미하여 한국식으로 편곡한 '핑계'가 히트했다.[176] 이후 레게 밴드 닥터 레게, 스토니 스컹크와 레게를 도입한 한국 팝 그룹 룰라가 등장했다.[177]
인도네시아의 라스 무하마드(Ras Muhamad)는 2008년 "Musik Reggae Ini"를 히트시켜 인도네시아 음악상(Anugerah Musik Indonesia, AMI Awards)을 수상했다.[178]
스리랑카에서는 2000년부터 활동을 시작한 로한타 레게(Rohantha Reggae)가 레게의 선구자이다.[179] 로한타 레게는 2007년 스리랑카 출신 가수로서는 처음으로 미국 레이블에서 작품을 발매했다.[179]
일본에서는 1970년대 후반부터 플라워 트래블린 밴드와 페커, 토요다 유조, 우에다 마사키 등이 레게를 도입한 음악을 제작했다.[181][180] 1979년 밥 말리 & 더 웨일러스의 일본 공연을 계기로 레게 인기가 높아졌고,[181] 1980년에는 페커가 앨범 『페커 파워』, 『인스턴트 라스타』를, 토요다가 앨범 『피를 넘어 사랑할 수 있다면』을 각각 자메이카에서 제작하여 발표했다.[181][182] 1982년에는 전 플라워 트래블린 밴드의 조 야마나카가 웨일러스 밴드와 공동 제작한 앨범 『레게 바이브레이션 1』을 발표했고,[181][180] 더브 밴드 뮤트 비트가 활동을 시작했다.[183] 1984년에는 디제이 란킨 택시가 활동을 시작했고,[184] PJ&쿨러닝스는 일본 레게 아티스트로서 처음으로 메이저 데뷔했다.[185] 1985년에는 스카 밴드 도쿄 스카 파라다이스 오케스트라도 활동을 시작했다.[186] 2001년에는 미키 도조의 싱글 「Lifetime Respect」가[187], 2006년에는 MEGARYU의 『我流旋風』과 쇼난노카제의 『湘南乃風〜Riders High〜』 두 장의 앨범이 오리콘 차트 1위를 기록했다.[188] 일본 레게는 「재패니즈 레게」[189] 또는 「J-레게」[190], 「재패레게」[191][192][193]라고 불린다.
7. 주요 레게 페스티벌
세계 각지에서 다양한 레게 음악 축제와 대규모 콘서트가 개최되고 있다.
국가 | 축제 이름 |
---|---|
자메이카 | Reggae Sunsplash|레게 선스플래시영어 |
자메이카 | Reggae Sumfest|레게 섬페스트영어 |
자메이카 | 스팅 |
자메이카 | 레벨 샐루트 |
영국 | 노팅힐 카니벌 |
사마ージャム | |
이탈리아 | 로토톰 선스플래시 |
Soča Reggae Riversplash|소차 레게 리버스플래시영어 | |
스웨덴 | 웁살라 레게 페스티벌 |
미국 | Jazz Reggae Festival|재즈 레게 페스티벌영어 |
미국 | Reggae on the River|레게 온 더 리버영어 |
캐나다 | Montreal International Reggae Festival|몬트리올 국제 레게 페스티벌영어 |
일본 | 요코하마 레게 축제 |
일본 | SOUL REBEL |
일본 | SPRINGROOVE |
일본 | 아이치 REGGAE BREEZE |
Cebu Reggae Festival|세부 레게 페스티벌영어 | |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 Raggamuffin Music Festival|라가머핀 음악제영어 |
8. 문화적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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