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시어스 푸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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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루시어스 푸트는 미국의 외교관이자 군인으로, 1826년 뉴욕에서 태어나 1913년 사망했다. 캘리포니아 지방 판사, 미국 관세국장, 칠레 발파라이소 총영사를 역임했으며,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 참모총장을 지냈다. 1882년 조미 수호 통상 조약 체결 이후, 1883년 주한 미국 공사로 임명되어 한성에 주재했다. 갑신정변 당시 서울에 남아 사태 수습을 위해 노력했으나, 직위 강등에 반발하여 사임하고 귀국했다. 이후 샌프란시스코에서 거주하다 사망했다.

루시어스 푸트 - [인물]에 관한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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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루시어스 푸트는 1826년 4월 10일 뉴욕 윈필드에서 목사인 루시어스 푸트(Lucius Foote)와 일렉타 하우드(Electa Harwood)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2년에 로즈 프로스트 카터(Rose Frost Carter)와 결혼했다가 1885년에 사별했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지방판사를 지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관세국장, 1871년 12월 21일부터 1875년 12월 13일까지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의 참모총장, 1878년부터 1881년까지 칠레 발파라이소 총영사를 지냈다.

최초의 미국 공사관
최초의 미국 공사관


1882년 5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이후 1883년 2월에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됐고, 1883년 5월부터 한성에 주재했다. 그러나 낮은 무역량으로 인해, 1884년 7월, 푸트는 "주재 공사" 직위로 강등되었다. 푸트는 이에 불복하여 상소를 했다. 1884년 8월에는 한옥 2채를 구입해 이중 1채를 미국 공사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호러스 뉴턴 앨런과 건물을 함께 사용했다.

1884년 12월 독립파에 의한 쿠데타(갑신정변)가 발발하자, 푸트는 아내와 함께 한성에 남아 쿠데타 종결을 위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일본과 중국과의 교섭을 계속했으며, 톈진 조약의 중재를 했다. 1885년 1월, 휴회 임명에 관해 상원은 승인 결정을 내렸지만, 푸트는 계급 강등을 거부하고, 공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후임에는 공사관 부속 해군 주재무관인 조지 클레이턴 포크가 취임했다.

루시어스 푸트의 배우자 로즈가 한국에서 가마를 타고 있는 모습
루시어스 푸트의 배우자 로즈가 한국에서 가마를 타고 있는 모습


조선 공사를 사임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으며, 1913년 6월 4일 그곳에서 사망했다. 아내 로즈는 조선에서 귀국한 1885년에 병사했지만, 갑신정변 당시의 심로(心勞)가 원인이라고 한다.

2.1. 초기 생애

루시어스 푸트는 1826년 4월 10일 뉴욕주 윈필드에서 목사인 루시어스 푸트(Lucius Foote)와 일렉타 하우드(Electa Harwood) 사이에서 태어났다. 1862년에 로즈 프로스트 카터(Rose Frost Carter)와 결혼했다가 1885년에 사별했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지방판사를 지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관세국장, 1878년부터 1881년까지 칠레 발파라이소 총영사를 지냈다.

최초의 미국 공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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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2년 5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이후 1883년 2월에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됐고, 1883년 5월부터 한성에 주재했다. 1884년 8월에는 한옥 2채를 구입해 이중 1채를 미국 공사관으로 만들었다. 조선 공사를 사임한 뒤에는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다.

2.2. 미국 내 경력

루시어스 푸트는 뉴욕 윈필드에서 태어났으며, 부친은 목사인 루시어스 푸트(Lucius Foote), 모친은 일렉타 하우드(Electa Harwood)이다. 1862년에 로즈 프로스트 카터(Rose Frost Carter)와 결혼했다가 1885년에 사별했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지방판사를 지냈으며,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관세국장을 역임했다. 1878년부터 1881년까지 칠레 발파라이소 총영사를 지냈다. 1871년 12월 21일부터 1875년 12월 13일까지는 캘리포니아 주 방위군의 참모총장이었다.

최초의 미국 공사관
최초의 미국 공사관

2.3. 주조선 미국 공사

뉴욕주 윈필드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목사인 루시어스 푸트(Lucius Foote), 모친은 일렉타 하우드(Electa Harwood)이다. 1862년에 로즈 프로스트 카터(Rose Frost Carter)와 결혼했다가 1885년에 사별했다. 1856년부터 1860년까지 캘리포니아주 지방판사를 지냈다. 1861년부터 1865년까지 미합중국 관세국장, 1878년부터 1881년까지 칠레 발파라이소 총영사를 지냈다.

최초의 미국 공사관
최초의 미국 공사관


1882년 5월 조미 수호 통상 조약이 체결된 이후 1883년 2월에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고, 1883년 5월부터 한성에 주재했다. 그러나 낮은 무역량으로 인해, 1884년 7월, 푸트는 "주재 공사" 직위로 강등되었다. 푸트는 이에 불복하여 상소를 했다。1884년 8월에는 한옥 2채를 구입해 이중 1채를 미국 공사관으로 만들었다. 그는 호러스 뉴턴 앨런과 건물을 함께 사용했다.

1884년 12월 독립파에 의한 쿠데타(갑신정변)가 발발하자, 푸트는 아내와 함께 한성에 남아 쿠데타 종결을 위해 서울과 인천을 오가며 일본과 중국과의 교섭을 계속했으며, 톈진 조약의 중재를 했다。 1885년 1월, 휴회 임명에 관해 상원은 승인 결정을 내렸지만, 푸트는 계급 강등을 거부하고, 공사직을 사임하고 귀국했다.

루시어스 푸트의 배우자 로즈가 한국에서 가마를 타고 있는 모습
루시어스 푸트의 배우자 로즈가 한국에서 가마를 타고 있는 모습

2.4. 은퇴 이후

루시어스 푸트는 조선 공사직을 사임한 뒤 샌프란시스코에 거주했다. 1913년 6월 4일 샌프란시스코에서 사망했다. 아내 로즈는 조선에서 귀국한 1885년에 병사했는데, 갑신정변 당시의 심로(心勞)가 원인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