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스 마린 사바테르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루이스 마린 사바테르는 스페인의 축구 선수로, 공격수 포지션에서 활약했다. 1929년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소속으로 라 리가에 데뷔하여 팀 내 득점왕을 차지했으며, 라 리가 첫 해트트릭을 기록했다. 이후 레알 마드리드와 그라나다 CF에서 뛰었으며, 그라나다 CF에서는 3시즌 연속 두 자릿수 득점을 올렸다. 1934년 FIFA 월드컵 스페인 국가대표팀에 포함되었으나 출전하지는 못했다. 선수 은퇴 후에는 SD 세우타와 아레나스 SD에서 감독을 역임했다. 그의 아들인 루이스 마린 가르시아도 축구 선수로 활동했다.

루이스 마린 사바테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전체 이름루이스 마린 사바테르
출생일1906년 9월 4일
출생지오르디시아, 스페인
사망일1974년 12월 21일
포지션스트라이커
선수 경력
유소년 클럽해당 사항 없음
클럽1928–1930: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출전 35, 득점 24
1934–1936: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출전 27, 득점 5
1939–1941: 레알 마드리드, 출전 25, 득점 5
1941–1945: 그라나다, 출전 84, 득점 33
국가대표 경력
국가대표팀해당 사항 없음
감독 경력
감독 년도1947-1948: 세우타
1948-1949: 아레나스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 남자 축구 공격수 - 마크 비두카
    마크 비두카는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전 축구 선수로, 멜버른 나이츠에서 데뷔하여 여러 유럽 클럽에서 활약하며 뛰어난 득점력을 보였고, 오스트레일리아 국가대표팀 주장으로서 월드컵 및 아시안컵에 참가했으며, 다수의 개인 수상 경력과 함께 여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사가르사수
  • 스페인의 남자 축구 선수 - 마누엘 프라스트
    마누엘 프라스트는 스페인 축구 선수로서 레알 마드리드 CF의 초창기 주요 선수였으며, 은퇴 후에는 중앙 지역 연맹의 심판 위원회 초대 회장을 맡아 스페인 축구 심판 제도의 기틀을 다지는 데 기여했다.
  • 1906년 출생 - 이효상
    이효상은 대한민국의 정치인, 시인, 교육자로 도쿄제국대학을 졸업하고 교육계와 언론계에서 활동하다 4·19 혁명 후 정계에 입문하여 국회의원을 지냈으며, 3선 개헌 강행 처리와 유신 체제 지지 등으로 평가가 엇갈린다.
  • 1906년 출생 - 호아킨 발라게르
    호아킨 발라게르는 도미니카 공화국의 정치인이자 작가로서, 라파엘 트루히요 정권에서 요직을 거쳐 대통령을 역임했으며, 장기간 집권하며 경제 발전에 기여했으나 권위주의적인 통치와 인권 침해 논란에 휩싸였고, 다수의 저서를 남겼다.

2. 클럽 경력

바스크 주 오르디시아 출신인 루이스 마린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라 리가가 처음 시작된 1929 시즌부터 아틀레티코 소속으로 뛰며 팀의 주요 선수로 활약했으나, 스페인 내전 발발로 리그가 중단되었다.

리그 재개 후인 1939년에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여 1941년까지 두 시즌 동안 활동했다. 이후 1941년 그라나다로 팀을 옮겨 1945-46 시즌을 끝으로 현역에서 은퇴할 때까지 활약했다.

2.1.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시절

라 리가가 처음 개최된 1929 시즌에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의 일원이었다. 이 시즌에 그는 리그에서 13골을 기록하며 리그 득점 2위와 동률을 이루었고, 팀 내 최다 득점자가 되었다. 또한, 리그 최종전이었던 RCD 에스파뇰과의 경기에서 아틀레티코 마드리드 구단 역사상 라 리가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는 중요한 업적을 세웠다.

다음 시즌인 1929-30 시즌에도 리그에서 12골을 넣으며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소속팀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는 세군다 디비시온으로 강등되는 아픔을 겪었다. 그는 팀과 함께 세군다 디비시온에서 4시즌 동안 활약했으며, 특히 1933-34 시즌에는 리그 9골을 기록하며 팀이 다시 라 리가로 승격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1935-36 시즌이 끝난 후 스페인 내전이 발발하면서 라 리가는 중단되었고, 리그가 재개된 1939년에 그는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하며 아틀레티코 마드리드에서의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2.2. 레알 마드리드 시절

스페인 내전으로 라 리가가 중단되었다가 재개된 후인 1939년, 레알 마드리드로 이적했다. 하지만 레알 마드리드 소속으로 뛴 2시즌 동안 리그 5골을 기록하는 데 그쳤다.

2.3. 그라나다 CF 시절

1941년 레알 마드리드를 떠나 그라나다 CF로 이적했다. 그라나다 소속으로 뛰는 동안, 입단 후 첫 3시즌 연속으로 리그에서 두 자릿수 득점을 기록하며 좋은 활약을 펼쳤다. 1945-46 시즌을 마지막으로 현역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그는 1934년 FIFA 월드컵에 참가하는 스페인 국가대표팀의 일원으로 선발되었으나, 대회에서 단 한 경기도 출전하지 못했다. 따라서 공식적인 국가대표팀 경기 출전 기록은 없다.

4. 사생활

그의 아들 루이스 마린 가르시아 또한 축구 선수로, 1950년대에 라요 바예카노와 셀타 비고에서 미드필더로 활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