룩셈부르크 공녀 마리가브리엘
1. 개요
룩셈부르크 공녀 마리가브리엘은 룩셈부르크의 공주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포르투갈로 피난했다가 미국, 캐나다, 영국에서 생활했다. 종전 후 룩셈부르크로 돌아와 조각을 공부했으며, 1951년 덴마크 귀족 크누즈 홀스타인-리즐라보 백작과 결혼하여 일곱 딸을 두었다. 2023년 97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샤를로트 여대공의 마지막 생존 자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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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홀스타인-레드레보르 백작부인 |
|---|---|
| 출생일 | 1925년 8월 2일 |
| 사망일 | 2023년 2월 9일 |
| 출생지 | 룩셈부르크, 콜마르-베르크, 베르크 성 |
| 사망지 | 덴마크, 레이레, 레드레보르 성 |
| 가문 | 부르봉-파르마 가문 나사우-바일부르크 가문 |
| 아버지 | 펠릭스 드 부르봉-파르마 |
|---|---|
| 어머니 | 룩셈부르크 여대공 샤를로트 |
| 배우자 | 크누드, 제7대 홀스타인-레드레보르 백작 (1951년 11월 5일 결혼, 2001년 6월 25일 사별) |
| 자녀 | 모니카 백작부인 리디아 백작부인, 파르마와 피아첸차 공주 베로니카 백작부인 실비아 백작부인 카밀라 백작부인, 베르토우크-렌 남작부인 타티아나 백작부인 안토니아 백작부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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룩셈부르크의 공녀 -
룩셈부르크 공녀 엘리자베트 (1901년)
룩셈부르크 공녀 엘리자베트(1901년)는 룩셈부르크 대공 기욤 4세와 마리아 안 드 포르투갈의 딸로 태어나 루트비히 필리프 폰 투른 운트 탁시스와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중 아들을 잃고 49세에 사망하였다. -
룩셈부르크의 공녀 -
룩셈부르크 공녀 소피
룩셈부르크 공녀 소피는 기욤 4세와 마리아 안의 막내딸로, 작센 공작과의 결혼을 통해 룩셈부르크와 작센 가문의 유대를 강화했으며, 39세에 폐렴으로 사망했다. -
2023년 사망 -
실비오 베를루스코니
실비오 베를루스코니는 이탈리아의 사업가이자 정치인으로, 세 차례에 걸쳐 총리를 역임했으며, 미디어셋 설립, 포르차 이탈리아 창당, 친미 외교 정책, 탈세 및 성 스캔들 등 여러 법적 문제와 논란에 휘말렸다. -
2023년 사망 -
콘스탄티노스 2세
콘스탄티노스 2세는 그리스 왕국의 마지막 국왕로, 재위 기간 중 정치적 혼란과 군사 쿠데타, 왕정 폐지를 겪었으며, 올림픽 요트 금메달리스트이기도 하다. -
나사우바일부르크가 -
샤를로트 (룩셈부르크)
샤를로트는 룩셈부르크 대공 빌헬름 4세의 딸로, 언니의 퇴위 후 대공이 되어 국민투표를 통해 군주제를 확립하고, 제2차 세계 대전 중 망명 생활을 거쳐 국제 무대에서 룩셈부르크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했으며 아들에게 양위했다. -
나사우바일부르크가 -
아돌프 (룩셈부르크)
아돌프 폰 나사우는 나사우 공국의 공작이었으며, 1890년부터 1905년까지 룩셈부르크의 대공으로, 나사우 가문 협약에 따라 룩셈부르크 대공위를 계승하였다.
2. 유년 시절 및 제2차 세계 대전
마리 가브리엘 공주는 룩셈부르크 공주, 나사우 공주, 부르봉-파르마 공주로 룩셈부르크 베르그 성, 콜마르-베르그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0년 5월 10일, 독일이 룩셈부르크를 침공하자 룩셈부르크 대공가는 망명길에 올랐다. 1940년 6월, 포르투갈 영사 아리스티데스 드 소자 멘데스로부터 통과 비자를 발급받아 포르투갈로 향했다. 가족은 1940년 6월 23일 빌라르 포르모소에 도착했으며, 코임브라와 리스본을 거쳐 카스카이스에 머물렀다. 처음에는 룩셈부르크 명예 영사였던 마누엘 에스피리투 산토 소유의 카사 데 산타 마리아에 머물렀고, 7월에는 몬테 에스토릴로 이사하여 샬레 포서 데 안드라데에서 지냈다.
1940년 7월 10일, 마리 가브리엘 공주는 아버지 펠릭스 공자, 남매인 장 태자, 엘리자베트 공주, 마리 아델라이드 공주, 샤를 공자, 알릭스 공주, 유모 쥐스틴 라이나르, 운전기사 외젠 니클루와 그의 아내 조세핀과 함께 'S.S. 트렌턴'호를 타고 뉴욕으로 떠났다. 당시 미국의 중립 정책을 고려하여, 가족은 캐나다로 이주했다. 캐나다에 머무는 동안 마리 가브리엘과 그녀의 자매들은 퀘벡에 있는 "콜레주 제쥐-마리 드 실레리"(Collège Jesus-Marie de Sillery)에 다녔다. 또한, 당시 캐나다에 거주하던 아버지 쪽 고모이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마지막 황후였던 치타 드 부르봉-파르마 공주가 머물던 "빌라 생 조제프"(Villa Saint-Joseph)에 정착하여 함께 지냈다.
1943년, 마리 가브리엘 공주는 영국으로 건너가 자매들과 함께 영국 적십자사에서 자원봉사 활동을 했다.
전쟁이 끝난 후인 1945년 4월 17일, 마리 가브리엘은 자매들과 샤를 공자와 함께 룩셈부르크로 돌아왔다. 이후 조각가 오귀스트 트레몽 밑에서 조각을 공부했으며, 1950년에는 "마드모아젤 드 클레르보"(Mademoiselle de Clervaux)라는 필명으로 파리의 살롱 데 자니멜리에(Salon des Animaliers)에 작품을 전시하기도 했다.
마리 가브리엘 공주는 1955년에 태어난 조카, 미래의 앙리 대공의 대모가 되었다.
3. 결혼과 가족
마리가브리엘 공녀는 1946년, 삼촌인 부르봉-파르마 르네 공과 그의 아내 덴마크의 마르그레테 공주의 은혼식이 열린 덴마크 베른스토르프스회이의 덴마크의 악셀 왕자 자택에서 미래의 남편인 홀슈타인-레드레보르 백작 크누드 요한 루드비그(Knud Johan Ludvig, 1919년 10월 2일 ~ 2001년 6월 25일)를 만났다. 크누드 백작은 덴마크의 가톨릭 신자 귀족이었다.
두 사람은 1951년 11월 5일에 시민 결혼식을 올렸고, 다음 날인 11월 6일 베르크 성에서 종교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 후 부부는 덴마크의 레드레보르에 정착했다.
부부는 슬하에 일곱 딸을 두었다.
4. 사망
마리 가브리엘 공주는 2023년 2월 9일 덴마크 레드레보르 성에서 9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사망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다. 그녀의 사망 소식은 2023년 2월 10일 룩셈부르크 대공실 공식 웹사이트를 통해 발표되었다. 그녀는 룩셈부르크 대공 샤를로트와 펠릭스 왕자 사이에서 태어난 자녀 중 마지막 생존자였다.
마리 가브리엘 공주의 장례식은 2023년 2월 18일 오전 덴마크 코펜하겐에 있는 레드레보르 성에서 거행되었으며, 앙리 대공도 참석했다.
5. 가계
마리가브리엘 공녀의 아버지는 부르봉파르마의 펠릭스 공자이고, 어머니는 룩셈부르크 여대공 샤를로트이다. 친할아버지는 파르마 공작 로베르 1세이며, 친할머니는 포르투갈의 마리아 안토니아 인판타이다. 외할아버지는 룩셈부르크 대공 기욤 4세이고, 외할머니는 포르투갈의 마리 안 인판타이다.
증조부는 파르마 공작 카를로 3세, 아르투아의 루이즈 공주, 룩셈부르크 대공 아돌프, 안할트데사우의 아델하이트마리 공주이며, 포르투갈의 미겔 1세와 로벤슈타인의 아델라이드 공녀는 친가와 외가 양쪽의 증조부모이다.
마리가브리엘 공녀에게는 다음과 같은 형제자매가 있다.
* 모니카 (1952년 - )
* 류디아 (1953년 - ) - 부르봉-파르마 공자 에리크와 결혼, 이혼
* 빌로니카 (1956년 - )
* 실비아 (1958년 - )
* 카밀라 (1959년 - 2010년) - 에리크 루돌프 베아트슈-린 틸 호이뷔고-롱홀름 남작과 결혼, 이혼
* 타티아나 (1961년 - )
* 안토니아 (1962년 - ) - 수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