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근모
1. 개요
리근모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1986년 12월 29일부터 1988년 12월 12일까지 제10대 내각 국무총리를 지냈다. 김일성종합대학과 레닌그라드 기계 기술 연구소를 졸업하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근무했으며, 제2기계공업상, 부총리 등을 역임했다. 국가안전보위부 마약판매 담당이었던 아들이 총살당하면서 총리직에서 해임되었고, 이후 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과 함경북도 당위원회 책임서기를 역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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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강성산
강성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두 차례에 걸쳐 내각 총리를 역임하며 합영법 제정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김정일 시대에 실각한 후 사망하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
1926년 출생 -
김종필
5·16 군사정변 주역이자 초대 중앙정보부장, 두 차례 국무총리를 지낸 김종필은 한일 국교 정상화 기여와 '김-오히라 메모' 논란, 9선 국회의원, DJP 연합을 통한 총리 재임 등 한국 현대사에 큰 영향을 미쳤으나 권위주의 시대의 어두운 면과 지역주의 정치의 상징으로도 평가받는 정치인이다. -
1926년 출생 -
미셸 푸코
미셸 푸코는 프랑스의 철학자, 역사가, 사회학자로서 권력, 지식, 담론 등을 탐구하며 서양 사상과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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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우토카
라우토카는 피지 비치레부섬 서부에 위치한 피지에서 두 번째로 큰 도시이자 서부 지방의 행정 중심지로, 사탕수수 산업이 발달하여 "설탕 도시"로 알려져 있으며, 인도에서 온 계약 노동자들의 거주와 미 해군 기지 건설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피지 산업 생산의 상당 부분을 담당하는 주요 기관들이 위치해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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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코넛
코코넛은 코코넛 야자나무의 열매로 식용 및 유지로 사용되며, 조리되지 않은 과육은 100g당 354kcal의 열량을 내는 다양한 영양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고, 코코넛 파우더의 식이섬유는 대부분 불용성 식이섬유인 셀룰로오스이며, 태국 일부 지역에서는 코코넛 수확에 훈련된 원숭이를 이용하는 동물 학대 문제가 있다.
2. 이력
1986년 12월 29일부터 1988년 12월 12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0대 내각국무총리를 지냈다.
2.1. 초기 생애 및 교육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수학하였으며, 이후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계 기술 연구소로 유학하여 기계공학 학위를 취득하였다. 귀국 후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에서 직원으로 근무하였다.
2.2. 정치 경력
김일성종합대학에서 공부하고, 소련 레닌그라드(현재의 상트페테르부르크)의 기계 기술 연구소에서 유학하여 기계공학 학위를 받았다. 귀국 후에는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직원으로 일했다.
1967년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활동했으며, 같은 해 11월에는 당 중앙위원회 문화선전부장에 임명되었다. 1968년 7월에는 제2기계공업상(장관)이 되었다. 1970년 11월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이듬해인 1971년에는 당 중앙위원회 기계공업부장을 맡았다. 그러나 1971년 5월 24일 제2기계공업상에서 해임되었다. 1972년에는 평안남도 당위원회 책임서기로 자리를 옮겼다.
1973년 9월 20일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었으나, 1977년 12월 15일 퇴임했다. 1980년 10월 제6차 당 대회에서 정치국원 후보로 선출되었고, 1981년 3월 다시 정무원 부총리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같은 해 9월 남포시 당위원회 책임서기로 다시 이동했다.
1986년 2월 당 서기국 서기로 임명되었고, 같은 해 12월 29일에는 강성산의 뒤를 이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0대 정무원 총리에 취임했다. 총리 취임과 함께 당 정치국원으로 보선되었으며, 서기직에서는 물러났다(1986년 12월 27일 제6기 당 중앙위원회 제12차 총회 결정).
약 2년간 총리로 재직했으나, 1988년 11월 말 "건강상의 이유"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는 발표가 나왔다. 같은 해 12월 11일 열린 제6기 당 중앙위원회 제15차 총회에서 그의 총리 사임 문제가 논의되었고, 동시에 당 정치국원에서 파면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4차 회의에서 정무원 총리직 사임이 공식화되었다. 그의 총리직 해임 배경에는 국가안전보위부에서 마약 판매를 담당하던 아들이 총살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후임 총리로는 연형묵이 임명되었다.
총리직에서 물러난 후, 1993년 1월 7일 함경북도 인민위원회 위원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이 확인되었다. 같은 해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5차 회의에서 중앙인민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이후 함경북도 당위원회 책임서기를 역임했다.
2.3. 총리 해임 배경
1986년 12월 29일부터 1988년 12월 12일까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10대 내각국무총리를 지냈다.
1988년 11월 말, "건강상의 이유"로 직무 수행이 어렵다는 이유가 공식적으로 제기되었고, 같은 해 12월 11일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15차 총회에서 총리 사임 문제가 논의됨과 동시에 당 정치국 위원에서 파면되었다. 다음 날인 12월 12일, 최고인민회의 제8기 제4차 회의에서 정무원 총리직에서 공식적으로 사임했다.
그러나 실제 해임 배경에는 국가안전보위부 마약 판매 담당이었던 아들이 총살당한 사건이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후임 총리로는 연형묵이 임명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