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용무
1. 개요
리용무는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태어나, 김일성의 사촌의 남편으로 정치 경력을 시작한 북한의 군인 및 정치인이다.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 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등을 역임했으며,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 교통위원회 위원장 등을 지냈다. 1998년 차수 칭호를 받았으며, 김정일 시대에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국가의 핵심 의사결정에 참여했다. 2022년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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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 | 1925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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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 2022년 1월 28일 |
| 한글 | 리용무 |
|---|---|
| 한자 | 李勇武 |
| 로마자 표기 | Ri Yong-mu |
| 직책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역임) |
|---|---|
| 소속 | 조선인민군 |
| 주요 경력 | 조선인민군 군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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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정보 | 북한 핵 문제 관련 인물 혁명 2세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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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
박헌영
박헌영은 일제강점기 사회주의 운동가이자 독립운동가, 정치인으로, 조선공산당 창당에 참여하고 해방 후 조선공산당 재건에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했으나, 한국 전쟁 이후 김일성 정권에 의해 처형되어 그의 생애와 활동은 논란과 재평가의 대상이 되고 있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군인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
2022년 사망 -
정태인
정태인은 서울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위를 취득하고 참여정부에서 경제 정책에 영향을 미쳤으나 행담도 개발 사업 논란으로 물러난 후, 한미 FTA를 비판하고 진보신당 창당에 참여한 경제학자이자 대학교수, 정치인이다. -
2022년 사망 -
한승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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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에 관한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정치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2. 생애
리용무는 1925년 1월 25일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평성에서 태어났다. 그는 중앙정치학교 제2분교를 다녔다.
평안남도 평성시 출신이다. 김일성의 사촌의 남편이었다. 이러한 혈통으로 특정 사단의 정치위원에서 1964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되었다. 1973년 김정일의 군부 장악책의 일환으로 총정치국장에 취임했다. 1977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지방 군 간부 인사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국장직에서 해임되어 실각했다.
그러나 1988년 11월 조선로동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4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 후보로 보선되어 복귀했다. 이듬해인 1989년 6월 9일 제16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각료)에 취임했다. 1991년 12월 18일 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동했다.
1998년 9월 차수(次帥) 칭호를 받았고, 같은 해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 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 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에 유임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유임되었다.
2016년 5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당 정치국원에는 선출되지 않았다. 또한 같은 해 6월 29일 개최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4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를 대신해 신설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다.
2021년 1월에 개최된 조선로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고, 1월 14일에 실시된 당대회를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은퇴한 간부로 초청되었다.
2022년 1월 2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다음 날,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의 부고가 발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군 경력
리용무는 1925년 1월 25일 일제강점기 조선 평안남도 평성에서 태어났다. 평안남도 평성시 출신으로, 중앙정치학교 제2분교를 졸업했다. 김일성의 사촌의 남편으로, 이러한 혈통으로 1964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되었다. 1973년 김정일의 군부 장악책의 일환으로 총정치국장에 취임했다. 그러나 1977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지방 군 간부 인사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국장직에서 해임되어 실각했다.
1988년 11월 조선로동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4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 후보로 보선되어 복귀했으며, 1989년 6월 9일 제16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승격되었다. 1990년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각료)에 취임했고, 1991년 12월 18일 교통위원회 위원장으로 이동했다.
2.2. 김일성 시대 (1948–1994)
리용무는 평안남도 평성시 출신으로, 김일성의 사촌의 남편이었다. 북한 건국 이후, 주중 북한 대사관의 무관으로 임명되었다. 1964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제1부국장이 되었고 중장으로 진급했다. 1970년 제5차 조선노동당 대회에서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3년 대장으로 진급하여 조선인민군 정치국 위원장이 되었으며, 1974년에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7년 오진우 인민무력부장과 지방 군 간부 인사를 둘러싼 갈등 속에서 국장직에서 해임되어 실각했으나, 10년 후 복권되어 1988년 11월 조선노동당 제6기 중앙위원회 제14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 후보로 보선되었다. 1989년 6월 9일 제16차 총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승격되었고, 1990년 국가검열위원회 위원장, 1991년 12월 18일 교통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2.3. 김정일 시대 (1994–2011)
리는 1998년에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고, 차수(vice-marshal)라는 군 내 두 번째로 높은 계급으로 승진했다. 2003년과 2009년에 재선되었다. 1994년부터 2010년까지 김정일의 "선군" 아래 조선로동당 정치국, 중앙군사위원회, 중앙위원회가 사실상 정지되었기 때문에, 국방위원회는 실제로 국가의 최고 의사결정 기구가 되었고, 따라서 리는 권력의 최핵심부에 속하게 되었다.
1998년 9월 차수(次帥) 칭호를 받았고, 같은 해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2010년 김정일이 16년 만에 노동당 운영을 재개했을 때, 리는 정치국에도 선출되었다. 2010년 9월 28일 제3차 당 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으로 선출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 대표자회의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원에 유임된 것으로 보인다.
2014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유임되었다.
2.4. 김정은 시대 (2011–2022)
김정일 사망 당시 리용무는 장례위원회에서 13위를 차지했으며, 이는 최고 지도부에서 그의 의전 서열에 해당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2012년 제4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위원직을 유지했으며, 제13기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4년 4월 9일 최고인민회의 제13기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에 유임되었다.
2016년 5월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으나, 당 정치국원에는 선출되지 않았다. 같은 해 6월 29일 개최된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4차 회의에서는 국방위원회를 대신해 신설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다.
2021년 1월에 개최된 조선노동당 제8차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지 않았고, 1월 14일에 실시된 당대회를 기념하는 군사 퍼레이드에 은퇴한 간부로 초청되었다.
2022년 1월 27일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다음 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의 부고가 발표되었다.
2.5. 사망
리용무는 2022년 1월 27일, 97세의 나이로 급성 심근경색으로 사망했다. 생일 이틀 후였다. 다음 날,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의 부고가 발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