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룡해
1. 개요
최룡해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했다. 1950년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출생하여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으며,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에서 주요 직책을 맡으며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김정일 시대에는 장성택의 측근이었으며, 김정은 시대에도 핵심 인물로 부상했으나, 2015년 한때 좌천되기도 했다. 2018년 미국 재무부로부터 인권 침해 혐의로 제재를 받았으며, 2021년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선출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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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최룡해 |
|---|---|
| 로마자 표기 | Choe Ryong-hae |
| 한자 표기 | 崔龍海 |
| 출생일 | 1950년 1월 15일 |
| 출생지 | 황해남도 신천군, 북한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학력 | 김일성종합대학 |
| 가족 | 3명의 자녀 |
| 아버지 | 최현 |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 임기 시작: 2019년 4월 11일 전임: 김영남 |
|---|---|
|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 임기 시작: 2019년 4월 11일 |
| 국무위원회 부위원장 | 임기 시작: 2016년 6월 29일 임기 종료: 2019년 4월 11일 전임: (신설) |
| 조직지도부 부장 | 임기 시작: 2017년 10월 임기 종료: 2019년 4월 10일 전임: 김정은 후임: 리만건 |
|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 임기 시작: 2012년 4월 11일 임기 종료: 2014년 4월 전임: 리영호, 김정은 후임: 황병서 |
|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 임기 시작: 2014년 4월 9일 임기 종료: 2014년 9월 25일 전임: 장성택 후임: 리영무, 오극렬 |
|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국장 | 임기 시작: 2012년 4월 12일 임기 종료: 2014년 4월 26일 전임: 조명록 후임: 황병서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 2016년 - 현재 |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 1986년 - 현재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 | 2010년 - 2012년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 2010년 - 2016년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 2012년 - 현재 |
|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무국 위원 | 2016년 - 현재 |
| 훈장 | 김일성훈장, 김정일훈장, 공화국 영웅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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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현 가 -
최현 (1907년)
최현은 일제강점기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하고 해방 후 북한 군인 및 정치인으로 활동하며 조선인민군 창설에 기여, 6.25 전쟁에 참전, 민족보위상과 인민무력부장 등 주요 요직을 역임한 인물이다. -
신천군 출신 -
백두진
백두진은 일제강점기, 대한민국 정치인, 금융인으로, 조선은행 이사장, 한국은행 이사장, 재무부 장관, 국무총리를 역임하고 국회의장, 유신정우회 의장 등을 지냈다. -
신천군 출신 -
김형욱
김형욱은 5·16 군사정변에 참여하여 박정희 정권 시절 중앙정보부장을 지내며 권력 핵심으로 활동했으나, 미국 망명 후 정권 비판 활동을 하다 프랑스 파리에서 실종되었고, 국가정보원 과거사 진실규명위원회는 그의 죽음을 중앙정보부의 살해로 결론지었다.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
김영남 (1928년)
김영남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을 역임하며 헌법상 국가 수반 역할을 수행했고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핵심 요직을 두루 거치며 외교 분야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 -
황장엽
2. 생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 겸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등을 지냈으며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이다. 조선인민군 대장을 거쳐 차수로 진급했다. 빨치산 출신 최현 인민무력부장의 차남이다.
최룡해는 김일성, 김정일, 김정은 3대에 걸쳐 요직을 두루 거쳤다. 특히 김정은 시대에 들어서 정치적 영향력이 더욱 커졌다. 그는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을 전공하고, 1980년대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1비서, 당중앙위원회 부부장, 황해북도당 책임비서를 지냈다. 2010년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했고,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핵 실험 이후 김정은 특사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2014년에는 황병서, 김양건과 함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 참석차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2016년 조선로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재진입했고, 2019년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경력
1950년 1월 15일 황해남도 신천군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최현은 김일성과 함께 항일빨치산(동북항일연군) 활동을 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후 인민무력부장을 지냈다. 1967년 조선인민군에 입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정치경제학을 전공했다. 졸업 후 군인보다는 당 관료로서의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최룡해는 1970년대 김일성종합대학에서 조선로동당을 대표하는 정치 지도원으로 일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1980년대에는 조선사회주의청년동맹의 주요 인물로 활동, 1981년 부위원장, 1986년 위원장을 역임했다. 1996년에는 조직이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으로 개편되면서 1비서로 임명되었다. 같은 해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및 상임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식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90년대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축구협회와 조선청년태권도협회를 이끌기도 했다. 1993년에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영웅 칭호를 받았다.
1998년 1월, 김일성사회주의청년동맹 중앙위원회 제14차 전원회의에서 리일환에게 1비서직을 넘겨주었다. 공식적인 이유는 "질병"이었으나, 실제로는 당의 정기 감사에서 고철을 외국 바이어들에게 무단 판매한 사실이 적발되었기 때문이었다. 김정일의 여동생인 김경희의 도움으로 처형 위기를 넘겼다.
이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총무부 부부장을 거쳐, 2006년부터 2010년까지 황해남도 당위원회 제1비서를 역임했다.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조선인민군 대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비서,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 정치국 후보위원으로 승진했다.
1994년, 외화 300만~500만 달러를 자택에 숨겨두고 조선청년예술단 단원들과 성 파티를 벌인 사실이 발각되어 김정일에 의해 강등, 협동농장에서 ‘혁명화 교육’을 받기도 했다.
2.2. 김정일 시대
2010년 9월 조선로동당 제3차당대표자회에서 조선인민군 대장으로 승진하고, 당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에 선임되었다. 2012년 4월 11일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정치국 상무위원 겸 당중앙군사위 부위원장에 선출되었으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었다.
2013년 핵 실험 이후 김정은의 특사 자격으로 2013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시진핑당 총서기와 회담했다.
2012년 4월 9일, 김정일 국방위원장 사망 19주년 기념 중앙보고대회에서 참석 간부 중 3위로 소개되었다. 김정일 총비서 사망 당시 18위였던 것에 비해 괄목할 만한 순위 상승은 김정은 체제에서 요직에 발탁될 것임을 시사했다. 다음 날인 4월 10일,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와 국방위원회가 주최한 연회에서 인민군 총정치국장 직책으로 연설하여 총정치국장 취임이 확인되었다. 또한 대장에서 [[차수 (계급)|차수]]로 진급했다. 4월 11일, 조선노동당 제4차 당대표자회에서 당 정치국 상무위원, 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임되었다. 4월 13일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위원으로 선임되었고, 같은 날 열린 김일성국가주석과 김정일 총비서 동상 제막식에서 김정은의 오른쪽에 서서 리영호, 김정각보다 상위인 군 서열 2위에 위치한 것으로 보인다.
2012년 10월부터 11월, 군에 대한 대규모 감찰이 실시되어 군 수뇌부 10여 명이 해임되었다. 이때 최룡해도 강등된 것으로 보이며, 2012년 12월 17일 김정일 중앙추도대회에서 조선인민군 대표 연설 당시 차수가 아닌 대장으로 소개되었다. 그러나 2013년 2월 5일 차수로 복귀했고, 같은 시기 대장에서 중장으로 강등되었던 김영철정찰총국장도 대장으로 복귀하여, 두 사람이 김정은의 신임을 회복한 것으로 보인다.
최룡해는 김정일 체제에서 장성택의 최측근이었고,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장성택의 도움으로 김정은의 최측근이 되어 가장 많이 승진한 인물로 평가받는다. 그러나 2013년 12월 장성택 숙청·처형 당시, 일부 언론은 최룡해와 장성택 사이에 권력 투쟁이 있었을 가능성과 조연준과 함께 장성택의 부정행위 증거를 수집하는 등 암약했을 가능성을 보도했다.
2014년 2월 16일 이후 동정이 알려지지 않아 숙청 또는 가택연금설이 제기되었으나, 4월 9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국가·당·군 모든 중추 기관에서 김정은 다음 직위를 확보했다. 그러나 동정이 알려지는 빈도는 적었고, 3월 방영된 기록영화에서 다리를 절뚝거리는 모습이 포착되었으며, 4월에는 당뇨병 악화로 인한 건강 이상설, 봉화진료소 입원설, 실각설 등이 제기되었다.
2.3. 김정은 시대
2013년 핵 실험 이후 특사 자격으로 2013년 5월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했다. 2014년 10월 4일,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황병서, 조선로동당 대남 담당 비서 김양건과 함께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폐막식 참석을 위해 대한민국을 방문했다.
2015년 한때 좌천되었으나 복귀하여 조선로동당 근로단체담당 비서가 되었고, 2016년 5월 9일 조선로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조선로동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에 재진입하면서 권력의 정점에 섰다. 새롭게 생긴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도 임명되었다. 2019년 제14기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2년 4월, 차수로 승진하고, 조선로동당 정치국 상무위원회 위원,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 인민군 총정치국장, 국방위원회 위원이 되면서 조명록 사망으로 공석이 된 자리를 대부분 채우고 김정은의 실세로 활동했다. 장성택의 후견인으로 여겨지는 최룡해는 김정일과 그의 선군정치에 의해 약화된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력 회복 계획의 일환으로 간주되었는데, 특히 리영호 장군 해임 이후 더욱 그러했다. 최룡해는 군사적 배경이 없었으며, 민간 시설 건설에 병사들을 고용하는 것을 지지했다.
2012년 12월 16일 김정일 1주기 추모 행사와 금수산태양궁전 개관식에서 인민군 대장으로 명단에 올랐으나, 12월 14일 광명성 3호 2호기 발사 성공 기념 집회에서는 인민군 차수 계급장을 달고 있었다.
2014년 4월,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으로 임명되어 2인자 지위를 강화한 것으로 보였지만, 황병서에게 인민군 정치국장직을 넘겨주고, 5개월 만에 국방위원회에서 해임되어 군사 활동 관여가 종료되었다. 10월 말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회복했지만, 다음 해 2월 다시 해임되었지만 여전히 정치국 고위직에 남았다. 그러나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제7차 당대회에서 정치국 상무위원으로 재선되었다.
2014년 11월, 김정은의 친서를 러시아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에게 전달했다. 최룡해의 차남 최송은 2015년 1월 김정은의 여동생 김여정과 2014년 말 결혼했다는 보도가 있었다. 2017년, 조선로동당 중앙군사위원회에 임명되었고, 같은 해 10월, 조선로동당 조직지도부 국장으로 임명되었다. 그의 임명 전까지 조직지도부는 김씨 일가 구성원들이 장기간 이끌었다. 그의 직전 국장은 김정은이었다.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이 되었다.
2013년 5월, 김정은 특사로 중화인민공화국을 방문하여 시진핑 당 총서기와 회담했다. 장성택의 최측근이었던 최룡해는 김정은 체제 출범과 함께 장성택의 도움으로 김정은의 최측근이 되어 가장 많이 승진한 인물로 여겨졌지만, 2013년 12월 장성택이 숙청되었을 때 일부 언론에서 최룡해와 장성택 사이에 권력 투쟁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보도되었다.
2014년 4월 9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1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선출되어 국가·당·군 모든 중추 기관에서 김정은 다음 직위를 얻었다. 2014년 5월 2일, 조선중앙통신 웹사이트에서 황병서가 군 총정치국장·차수로 소개되면서 최룡해가 군 총정치국장직에서 물러났다. 2014년 9월 25일, 제13기 최고인민회의 제2차 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
2014년 10월 4일, 황병서, 김양건과 함께 방한하여 대한민국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유길재 통일부 장관과 회담하고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다. 인천 2014년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도 참석했다. 2014년 10월 29일, 조선중앙통신은 김정은이 릉라도 5월1일 경기장에서 축구 경기를 관람했다는 보도에서 김정은 수행원으로 최룡해, 황병서, 최태복, 현영철, 박도춘, 강석주 순으로 소개했다. 김정은이 군인용 식당을 시찰했다는 뉴스에서도 박봉주 총리보다 상위에 소개되었다.
2015년 1월 2일, 연합뉴스는 최룡해 차남 최성이 김정은 여동생 김여정과 결혼했다는 관측을 보도했지만, 2016년 4월 북한을 방문한 후지모토 겐지에 따르면, 김정은과 김여정을 만났을 때 김여정은 미혼이라고 했다.
3. 논란 및 비판
최룡해는 여러 차례 직책 변경과 강등, 복귀를 반복하며 논란의 중심에 섰다.
2014년 5월, 황병서가 군 총정치국장으로 임명되면서 최룡해는 해당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후 당 서기 직함으로 활동했으나, 당내 서열이 후퇴하고 주요 직책에서 사퇴한 것으로 추정되었다. 같은 해 9월에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하고, 최고인민회의에서 국방위원회 부위원장직에서 해임되었다.
2014년 10월, 황병서, 김양건과 함께 대한민국을 방문하여 김관진 국가안보실장, 류길재 통일부 장관과 회담하고 남북 고위급 회담 개최에 합의했으며, 2014년 아시안 게임 폐막식에도 참석했다.
2015년에는 황병서보다 낮은 직급으로 소개되었고,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직에서 강등되었다. 같은 해 9월 중국 인민항일전쟁·세계 반파시즘 전쟁 승리 70주년 기념식典에 북한 대표로 참석했다. 11월에는 이을설 장례위원회 명단에 이름이 빠지면서 실각설이 제기되었다. 대한민국 국가정보원은 백두산영웅청년발전소 문제와 김정은과의 의견 충돌이 실각 요인이라고 보고했다. 그러나 12월 김양건 장례위원회 명단에 높은 서열로 기재되면서 복귀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2016년 5월, 조선로동당 제7회 당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 및 신설된 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고, 6월에는 국무위원회 부위원장에 선출되었다.
2017년 2월, 김정남 암살 사건 해명을 위해 비밀리에 중국을 방문했다는 추측이 있었다. 10월에는 당 중앙군사위원 및 당 조직지도부장에 선출되어 여러 직책을 겸임하며 실질적인 2인자로 복귀했다. 11월에는 방북한 중국공산당 중앙대외연락부 부장 송타오를 접견했다. 12월, 국가체육지도위원회 위원장직에서 물러났다.
2018년 3월, 김정은의 첫 해외 방문에 동행했고, 6월 미북정상회담 기간 동안 김정은 부재 중 북한을 맡았다. 8월에는 쿠바를 방문했고, 9월에는 중국 리잔수 상무위원장을 맞이했다.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회 위원장 및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며 서열 2위 지위를 굳혔다.
2021년 조선로동당 제8차대회에서 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상무위원에 재선되었다.
3.1. 인권 침해 제재
2018년 12월, 미국의 미국 국무부(United States Department of State)와 해외자산통제국(Office of Foreign Assets Control)은 최룡해와 다른 북한 고위 관리 2명에 대해 인권 침해 및 국가 주도의 검열 활동 혐의로 제재를 가했다. 같은 해 12월 10일, 미국 재무부는 최룡해를 인권 침해에 관여했다는 이유로 제재 대상으로 지정했다.
3.2. 권력 투쟁 의혹
최룡해는 김정은 체제 하에서 여러 요직을 거치며 권력 부침을 겪었다. 2012년 김정은 집권 초기, 최룡해는 군부에 대한 당의 통제력을 회복하는 핵심 인물로 부상했다. 그는 인민군 총정치국장에 임명되어 군부 실세로 떠올랐으나, 군 내부 반발에 직면하기도 했다.
2014년, 최룡해는 황병서에게 총정치국장 자리를 내주고 국방위원회 제1부위원장에서 해임되며 군 관련 직책에서 물러났다. 이후 국가체육지도위원장 등 비군사적 직책을 맡았으나, 정치국 상무위원직을 회복하며 권력 핵심으로 복귀했다.
2017년에는 당 중앙군사위원 및 조직지도부장에 임명되며 8개의 직책을 겸임, 실질적인 2인자로 평가받았다. 특히 조직지도부장은 김일성 일가가 독점하던 자리였기에 그의 권력 상승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2019년, 최룡해는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과 국무위원회 제1부위원장에 선출되며 명실상부한 2인자 지위를 굳혔다.
4. 가족 관계
* 아버지: 최현
최룡해는 슬하에 두 아들과 딸 하나를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