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D. 재넉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리처드 D. 재넉은 1934년 배우 버지니아 폭스와 20세기 폭스의 제작 책임자 대럴 F. 재넉의 아들로 태어난 미국의 영화 제작자이다. 1959년 영화 제작을 시작하여 1960년대 20세기 폭스의 사장을 역임했다. 이후 데이비드 브라운과 함께 자넉/브라운 컴퍼니를 설립하여 《스팅》으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고, 《죠스》,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 등 흥행작을 제작했다. 팀 버튼과 협력하여 《혹성탈출》, 《찰리와 초콜릿 공장》,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등의 영화를 제작했으며, 1990년 어빙 G. 탈버그 기념상을 수상했다. 2012년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베벌리힐스 출신 - 찰턴 헤스턴
찰턴 헤스턴은 《벤허》로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수상한 배우이며, 《십계》, 《혹성탈출》 등 다양한 영화에 출연했고, 미국 배우 조합 회장과 전미총기협회 회장으로도 활동하다 2008년에 사망했다. - 베벌리힐스 출신 - 마르쿠스 페르손
스웨덴의 비디오 게임 디자이너이자 프로그래머인 마르쿠스 알렉세이 페르손은 《마인크래프트》의 제작자로 유명하며, 7세에 프로그래밍을 시작하여 독립 게임을 제작, 2009년 마인크래프트 알파 버전을 출시하여 성공을 거두고 2010년 모장을 설립했으나 2014년 마이크로소프트에 매각 후 회사를 떠났다. -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제작자 - 크리스토퍼 놀란
크리스토퍼 놀란은 복잡한 플롯, 철학적 주제, 혁신적인 촬영 기법으로 유명하며 《메멘토》, 《다크 나이트》 3부작, 《인셉션》, 《인터스텔라》, 《덩케르크》, 《테넷》, 《오펜하이머》 등의 작품으로 작품성과 흥행성을 인정받은 영국과 미국의 영화 감독, 각본가, 제작자이다. -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 제작자 - 봉준호
봉준호는 대한민국의 영화 감독이자 각본가로, 《플란다스의 개》로 데뷔하여 《살인의 추억》, 《괴물》, 《기생충》 등 사회 비판적인 메시지를 담은 작품을 연출하며 세계적인 거장으로 인정받았다. - 심근 경색으로 죽은 사람 - 에드먼드 힐러리
에드먼드 힐러리는 1953년 텐징 노르가이와 함께 인류 최초로 에베레스트 산 정상에 등정하고, 남극과 북극을 모두 정복했으며, 히말라야 지역 셰르파족을 위한 자선 활동에도 헌신한 뉴질랜드의 등반가, 탐험가, 자선가이다. - 심근 경색으로 죽은 사람 - 김정일
김정일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제2대 최고지도자로, 김일성 사망 후 권력을 승계하여 조선로동당 총비서 및 국방위원회 위원장으로 통치하며 3대 세습, 핵무기 개발, 남북 정상회담 등의 사건과 경제난, 인권 탄압 등의 문제를 겪은 인물이다.
리처드 D. 재넉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 | |
본명 | 리처드 대릴 자눅 |
출생일 | 1934년 12월 13일 |
출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사망일 | 2012년 7월 13일 |
사망지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국적 | 미국 |
직업 | 영화 프로듀서 |
활동 기간 | 1956년 – 2012년 |
부모 | 대릴 F. 자눅 |
배우자 | 릴리 젠틀 (1958년–1969년, 이혼) 린다 해리슨 (1969년–1978년, 이혼) 릴리 피니 (1978년–사망) |
자녀 | 딘 자눅 포함 4명 |
수상 | |
아카데미상 | 작품상: 드라이빙 MISS 데이지 (1989년) 어빙 G. 탤버그 기념상: 1990년, 영화계 공헌 |
골든 라즈베리상 | 최악의 리메이크/속편상: 혹성 탈출 (2001년) |
기타 수상 경력 | 제5회 도쿄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 (1992년) |
대표 작품 | |
발음 | |
IPA | /ˈzænək/ |
링크 |
2. 생애
리처드 D. 재넉은 1934년 12월 13일 태어났다. 그는 20세기 폭스(20th Century Fox)의 최고경영자였던 다릴 F. 재넉(Darryl F. Zanuck)의 아들이다. 스탠퍼드 대학교(Stanford University) 재학 중부터 영화 제작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그는 여러 성공적인 영화를 제작했으며, 1990년에는 아카데미상의 어빙 G. 솔버그 기념상(Irving G. Thalberg Memorial Award)을 수상했다. 2012년 7월 13일, 캘리포니아주(California) 로스앤젤레스(Los Angeles) 자택에서 심장마비로 사망했다.[22]
2. 1. 초기 생애 및 경력
리처드 대럴 재넉(Richard Darryl Zanuckeng)은 로스앤젤레스에서 배우 버지니아 폭스와 당시 20세기 폭스의 제작 책임자였던 대럴 F. 재넉 사이에서 태어났다. 그는 세 자녀 중 막내였으며, 다릴린(Darrylineng, 1931~2015)[2][3]과 수잔(Susaneng, 1933~1980)[4][5]이라는 두 명의 누나가 있었다.스탠퍼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그는 20세기 폭스의 스토리 부서에서 일하며 영화 업계 경력을 시작했다. 1959년, 재넉은 영화 《강박(Compulsioneng)》(1959)을 통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1960년대에 재넉은 20세기 폭스의 사장이 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1년은 존 그레고리 던(John Gregory Dunneeng)이 쓴 《스튜디오(The Studioeng)》에 기록되어 있다.[6] 그러나 1967년 《닥터 돌리틀(Doctor Dolittleeng)》과 같은 작품들의 흥행 실패 후, 그는 아버지 대럴 F. 재넉에게 해고당하고 워너 브라더스로 옮겨 부사장직을 맡게 되었다.
2. 2. 20세기 폭스 및 워너 브라더스 시절
스탠퍼드 대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 당시 20세기 폭스의 제작 책임자였던 아버지 대럴 F. 재넉의 회사 스토리 부서에서 일하며 영화계 경력을 시작했다. 1959년에는 영화 《강박》(Compulsion)을 통해 처음으로 제작에 참여했다. 1960년대에 재넉은 20세기 폭스의 사장이 되었다. 그의 재임 기간 중 1년은 존 그레고리 던이 쓴 《스튜디오(The Studio)》라는 책에 기록되어 있다.[6] 하지만 1967년 《닥터 돌리틀》(Doctor Dolittle)과 같은 작품들이 흥행에 실패하면서 아버지에게 해고당하고 워너 브라더스로 자리를 옮겨 부사장으로 활동했다.2. 3. 독립 제작자로서의 성공
1972년, 재넉은 데이비드 브라운(David Brown)과 함께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자넉/브라운 컴퍼니(Zanuck/Brown Company)라는 독립 제작사를 설립했다. 그들의 첫 번째 큰 성공작은 《스팅》(1973)이었으며, 이 작품은 1974년 4월 제46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아카데미 작품상을 수상했다. 두 사람은 스티븐 스필버그의 초기 영화인 《슈거랜드 익스프레스》(1974)와 《죠스》(1975)를 제작했다. 이후 그들은 《코쿤》(1985)과 《드라이빙 미스 데이지》(1989)와 같은 흥행작을 제작했으며, 1988년 파트너십을 해산했다. 두 사람은 1990년 미국 영화 예술 과학 아카데미로부터 어빙 G. 솔버그 기념상을 공동 수상했다.그는 팀 버튼과 여섯 번 함께 작업했으며, 버튼의 《혹성탈출》(2001), 《빅 피쉬》(2003), 《찰리와 초콜릿 공장》(2005), 《스위니 토드: 어느 잔혹한 이발사 이야기》(2007),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다크 섀도우》(2012) 각색을 제작했다. 재넉과 버튼은 즉시 교감했고, 재넉은 버튼이 가장 선호하는 제작자였다.[7] 2012년 5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재넉은 "제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면에서 기여해야 한다. 나는 매일, 매 장면마다 현장에 있다. 감독, 특히 팀[버튼]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을 위해서다."라고 말했다.[8]
2. 4. 팀 버튼과의 협업
리처드 D. 재넉은 팀 버튼 감독과 총 여섯 편의 영화를 함께 작업했다. 두 사람은 즉시 좋은 관계를 맺었으며, 재넉은 버튼이 가장 선호하는 제작자가 되었다.[7]그가 제작에 참여한 팀 버튼 감독의 영화는 다음과 같다.
연도 | 작품명 |
---|---|
2001 | 혹성탈출 |
2003 | 빅 피쉬 |
2005 | 찰리와 초콜릿 공장 |
2007 | 스위니 토드: 어둠 속의 희극 |
2010 |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 |
2012 | 다크 섀도우 |
2012년 5월 버라이어티와의 인터뷰에서 재넉은 제작자의 역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8]
: 제작자는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면에서 기여해야 한다. 나는 매일, 매 장면마다 현장에 있다. 감독, 특히 팀[버튼]이 나를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만약을 위해서다.
2. 5. 개인적인 삶
(1940년 3월 4일 출생)재닛 베벌리 재넉 (1960년생)
딘 프랜시스 재넉 (Dean Francis Zanuck|딘 프랜시스 재넉eng, 1972년생)
(1954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