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들렌 폴리악
1. 개요
마들렌 폴리악은 프랑스의 의사이자 레지스탕스 활동가로,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군 군의관으로 활동했다. 1912년 빌뇌브쉬르로에서 태어났으며, 레지스탕스에 참여하여 프랑스 지하 조직에 물품을 공급했다. 전쟁 후에는 프랑스 적십자사 수장으로서 폴란드와 소련 전역에서 프랑스인 송환 임무를 수행하며 폴란드 여성들을 도왔다. 1946년 폴란드에서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으며, 사후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1939-1945년 전쟁 십자 훈장을 수여받았다. 폴리악의 활동을 바탕으로 제작된 영화 '레 이노센트'가 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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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출생명 | 마들렌 잔 마리 폴리아크 |
|---|---|
| 출생일 | 1912년 9월 17일 |
| 출생지 | 프랑스 빌뇌브쉬르로트 |
| 사망일 | 1946년 2월 13일 |
| 사망지 | 폴란드 소하체프 |
| 국적 | 프랑스 |
| 직업 | 의사 |
| 분야 | 의료 라파엘 협회 바르샤바 미션 수장 |
|---|---|
| 소속 | 제2차 세계 대전 중 프랑스 육군 의료대위 바르샤바 프랑스 병원 원장 |
| 훈장 | 레지옹 도뇌르 훈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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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군의관 -
앙브루아즈 파레
앙브루아즈 파레는 16세기 프랑스의 외과의로, 군의관으로 활동하며 외과 치료법을 혁신하고 『대외과학전집』을 저술하여 근대 외과학 발전에 기여한 인물이다. -
프랑스의 군의관 -
도미니크장 라레
프랑스 혁명 전쟁과 나폴레옹 전쟁 시기에 혁신적인 야전 의료 시스템을 구축한 프랑스 군의관이자 외과 의사 도미니크장 라레는 현대 군사 외과의 아버지로 불리며, 그의 업적을 기려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는 최고 의료 훈장인 도미니크장 라레 상을 제정했다. -
1912년 출생 -
이원수 (작가)
이원수는 일제 강점기와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로서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으로 등단하여 동요, 동시,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작품을 발표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으나, 친일 작품으로 논란이 있다. -
1912년 출생 -
이병주 (1912년)
이병주(1912년)는 대구사범학교 졸업 후 독일 프랑크푸르트 대학교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취득한 대한민국의 의학박사이자 정치인으로, 대한결핵협회 이사, 민주공화당 창당준비위원, 재단법인 성균관 이사장을 역임하고 제7·8·9대 국회의원 및 국가보위입법회의 입법위원, 그리고 민주공화당 주요 직책과 국회 예산결산위원장을 지냈다. -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페트르 파벨
페트르 파벨은 체코의 정치인이자 퇴역 육군 대장으로 2023년부터 체코의 대통령을 맡고 있으며, NATO 군사위원회 의장을 역임했고, 1993년 카린 기지 구출 작전 공로로 훈장을 받았으며, 친서방, 친EU 성향으로 우크라이나 지원과 두 국가 해법을 지지한다. -
레지옹 도뇌르 오피시에 훈장 수훈자 -
로자 보뇌르
로자 보뇌르는 프랑스의 사실주의 화가이자 조각가로, 동물화가로서 명성을 얻었으며, 《니베르네의 쟁기질》과 《말 시장》 등의 작품으로 국제적인 인정을 받았고,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으며, 인습에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았다.
2. 생애
마들렌 폴리악은 1912년 프랑스 빌뇌브쉬르로에서 태어났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파리에서 의사로 활동하며 프랑스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여 연합군을 지원하는 등 활약했다. 전쟁이 끝난 후에는 폴란드로 파견되어 프랑스 적십자사 소속 의사로서 프랑스인 송환 임무와 전쟁 피해자 구호 활동에 헌신했다. 1946년 폴란드에서 임무 수행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으며, 사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1939-1945년 전쟁 십자 훈장 (프랑스) 등이 추서되었다.
2.1. 초기 생애 및 레지스탕스 활동
폴리악은 1912년 9월 17일 프랑스 빌뇌브쉬르로에서 태어났다. 그녀의 아버지 로제 폴리악은 1916년 베르됭 전투에서 전사했다. 폴리악은 뇌척수막염 치료에 설파미드 유도체의 작용에 관한 논문을 썼다. 1939년, 27세의 나이로 파리의 한 병원에서 기관 절개 전문의로 일하던 중 레지스탕스 운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지하 조직에 의료 물품을 공급하고, 연합군 공수부대의 활동을 지원하며 레지스탕스 활동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이후 파리 해방 전투와 보주 산맥 및 알자스 지역의 군사 작전에도 참여했다.
2.2. 전후 폴란드에서의 활동
1945년 초, 프랑스 군의 군의관이었던 폴리악은 모스크바 주재 프랑스 대사 조르주 카트루의 명령으로 모스크바로 파견되었다. 당시 계급은 중위 의무관이었다. 같은 해 4월 19일, 폐허가 된 폴란드 바르샤바 병원의 주치의로 임명되었다.
그녀는 프랑스 적십자사의 수장으로서 제2차 세계 대전 후 폴란드에 남아있는 프랑스인들을 찾고, 돌보고, 송환하는 임무를 맡았다. 이 임무는 프랑스 적십자사의 여성 구급차 자원봉사 부대인 "블루 스쿼드론"(Escadron bleu프랑스어)과 함께 수행되었으며, 폴란드 전역과 소련 일부 지역에서 200번 이상의 임무를 완수했다. 이 과정에서 폴리악은 소련군이 폴란드 여성들에게 가한 만행을 알게 되었고, 피해 여성들을 정신적, 신체적으로 도왔으며 수녀원을 지원하는 데에도 기여했다.
1945년 6월 19일, 폴리악은 단치히(현 그단스크)로의 여행 보고서를 작성하여 당시 샤를 드골 장군의 참모장이었던 에티엔 부린 데 로지에에게 보냈고, 로지에는 1945년 8월 25일에 답신했다.
1946년 2월 13일, 바르샤바 근교 소하체프에서 임무 수행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향년 33세). 폴란드에서 프랑스 외교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었다. 폴리악은 고향 빌뇌브쉬르로의 생테티엔 묘지에 묻혔으며, 사후 프랑스 정부로부터 레지옹 도뇌르 훈장과 1939-1945년 전쟁 십자 훈장 (프랑스) 기사 작위를 추서받았다.
2.3. 죽음
폴리악은 1946년 2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의 소하체프에서 임무 수행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3세였다. 폴란드에서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프랑스 외교단 전원이 참석했다. 폴리악은 고향인 프랑스 빌뇌브쉬르로의 생테티엔 묘지에 묻혔다. 사후, 그녀의 헌신적인 활동을 기려 레지옹 도뇌르 훈장 국가 훈장과 1939-1945년 전쟁 십자 훈장 (프랑스) 기사 작위가 수여되었다.
3. 사후
1946년 2월 13일, 폴란드 바르샤바 근교의 소하체프에서 임무를 수행하던 중 자동차 사고로 사망했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33세였다. 폴란드에서 프랑스 외교단 전원이 참석한 가운데 장례식이 거행되었으며, 이후 고향인 빌뇌브쉬르로의 생테티엔 묘지에 안장되었다. 사후 프랑스 정부는 그녀의 공적을 기려 1939-1945 전쟁 십자 훈장(Croix de guerre 1939-1945프랑스어, 기사 훈장과 동등)과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추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