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원수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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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이원수는 일제강점기부터 활동한 대한민국의 아동문학가이다.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잡지 《어린이》에 당선되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이 작품은 홍난파의 작곡으로 널리 불리는 노래가 되었다. 그는 동요, 동화, 소년소설 등 다양한 분야에서 작품 활동을 펼쳤으며, 한국아동문학회 창립에 참여하고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며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했다.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 친일 작품 발표로 인해 비판을 받기도 했다. 1981년 구강암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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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수 (작가) - [인물]에 관한 문서 | |
---|---|
작가 정보 | |
이름 | 이원수 |
출생일 | 1912년 1월 5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 |
사망일 | 1981년 1월 24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관악구 |
직업 | 아동 문학가 겸 시인 |
언어 |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
필명 | 호(號)는 동원(冬原) |
본관 | 월성 |
국적 | 대한민국 |
학력 | 경남마산고등상업학교 졸업(1931년) |
활동 기간 | 1925년~1980년 |
장르 | 아동 문학, 시문학 |
주요 작품 | 동시 《고향의 봄》 |
배우자 | 최순애 |
자녀 | 3남 3녀(6남매) |
형제 | 1남 6녀 중 다섯째(외동 아들) |
친척 | 최영주(손윗처남) |
웹사이트 | 이원수 |
경력 | |
경력 | 한국아동문학회 부회장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동아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객원교수 한국아동문학가협회 회장 |
수상 | |
수상 |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 |
2. 생애
李元壽|이원수중국어는 1912년 1월 5일(음력 1911년 음력 11월 17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에서 외동아들(1남 6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 1925년 시문학 집필을 시작했고,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홍난파가 곡을 붙여 한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3] 1927년 〈기쁨사〉 동인으로 활발하게 동요 작사 활동을 했다.[3]
1935년 〈경남 함안 금융조합〉 조합원들과 결성한 〈문학 모임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6년 6월, 《오빠 생각》의 작가 최순애와 결혼했다. 1947년부터 1951년까지 박문출판사 편집국장 등으로 4년간 일했다. 1949년 동화 〈숲속의 나라〉를 《어린이나라》에, 소년소설 〈5월의 노래〉를 《진달래》에 연재하여, 동요와 함께 동화·소년소설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3]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때, 경기공업학교[4] 서무로 일한 경력 때문에 서울 수복 직후 공산주의자로 몰렸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1950년 10월 5일 법무부 장관 이우익의 조치로 사면복권되었다.
1952년 경북 대구로 피난하여 《소년세계》를 창간, 편집 주간 겸 편집위원 등으로 3년간 근무했다.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56년 아동 월간지 《어린이 세계》 주간 겸 편집위원을 맡았다. 1971년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했다.
1974년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1978년 대한민국 예술원상 문학부문, 1980년 대한민국 문학상 아동문학 부문을 수상했다. 1980년 아동 문학 작가 분야에서 은퇴했으며, 1981년 구강암으로 별세했다(향년 70세).
2. 1. 유년 시절과 문학 입문
李元壽|이원수중국어는 1912년 1월 5일(음력 1911년 음력 11월 17일) 일제 강점기 조선 경상남도 양산군 양산읍 북정리에서 외동아들(1남 6녀 중 다섯째)로 태어났다.[3] 1912년 9월 10일, 친가 식구들과 함께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마산부로 이사했다.1925년 시를 쓰기 시작했다.[3]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방정환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홍난파가 곡을 붙여 한국에서 가장 많이 불리는 노래 중 하나가 되었다.[3] 1927년 〈기쁨사〉 동인으로 활발하게 동요 작사 활동을 했다.[3]
2. 2. 문단 활동과 시련
1925년 시문학 집필에 처음으로 손을 대기 시작했다.[3]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인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홍난파 음악가의 작곡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3] 1927년 〈기쁨사〉의 동인이 되어 활발한 동요 가사 창작을 했다.[3]1935년 당시 근무하던 〈경남 함안 금융조합〉의 조합원들과 결성한 〈문학 모임 '독서회' 사건〉으로 1년간 옥고를 치렀다. 1936년 6월, 《오빠 생각》의 작가인 최순애와 결혼했다. 1947년 〔박문출판사〕의 편집국장 등으로 4년간 일했다. 1949년 동화 〈숲속의 나라〉를 《어린이나라》에, 소년소설 〈5월의 노래〉를 《진달래》에 연재하여, 동요와 함께 동화·소년소설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3]
1950년 6월 25일 한국 전쟁 때, 경기공업학교[4] 서무로 일한 경력 때문에 서울 수복 직후 공산주의자로 몰렸다가, 친구들의 도움으로 1950년 10월 5일 당시 법무부 장관 이우익의 조치로 사면복권되었다.
1951년 〔박문출판사〕의 편집국장에서 물러났다. 1952년 경북 대구로 피난하여 《소년세계》를 창간, 편집 주간 겸 편집위원 등으로 3년간 근무했다.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부회장으로 추대되었다. 1956년 아동 월간지 《어린이 세계》 주간 겸 편집위원을 맡았다.
2. 3. 아동문학 발전에 기여
1925년 시문학 집필을 시작했다.[3] 1926년 동시 〈고향의 봄〉이 방정환 선생이 만든 잡지 《어린이》에 당선되었다. 이 동요는 홍난파 음악가의 작곡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이 애창되는 노래가 되었다.[3] 1927년 〈기쁨사〉의 동인이 되어 활발한 동요 가사 창작을 했다.[3]1949년에는 동화 〈숲속의 나라〉를 《어린이나라》에, 소년소설 〈5월의 노래〉를 《진달래》에 연재하며 동요와 함께 동화·소년소설 등을 발표하기 시작했다.[3] 1954년 한국아동문학회를 창립하여 부회장 직으로 추대되었다. 1971년에는 한국아동문학가협회 초대 회장을 역임하였다.
3. 사후
1984년 이원수 문학전집(전 30권, 웅진)이 출판되었다.
4. 평가
그는 외재율 중심의 재래적 동요에서 내재율 중심의 현실참여적 동시를 개척하고 산문문학으로서 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을 확립하는 등 문학사적으로 큰 업적을 남겼다고 평가된다.[3]
4. 1. 친일 행적 논란
이원수는 1940년부터 1945년까지 조선금용조합연합회 기관지 《반도의 빛 (半島の光)》에 동시 두 편, 자유시 한 편, 수필 두 편, 모두 다섯 편의 친일 작품을 발표했다. 1942년 8월에 실린 친일 동시 《지원병을 보내며》[5]에서는 일본이 벌인 태평양 전쟁에 참전할 지원병을 위해 후방에서 병역봉공을 다해야 한다고 표현했다. 자유시에서는 농민시 형식을 빌려 농업보국에 정성을 쏟아 총후봉공을 완수해야 한다고 했고, 수필에서는 편지글 형식을 써서 어린이들이 하루바삐 내선일체와 황국신민이 될 수 있도록 어른들이 노력해야 함을 강하게 주장했다.[6]이 때문에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가 친일인명사전에 수록하기 위해 정리한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문화예술 중 연극영화 부문에 이원수가 선정되었다.
5. 주요 작품
그의 작품은 초기 〈고향의 봄〉, 〈비누 풍선〉 등과 같이 율동적이며 감각적인 경향에서 1940년대 동시 〈어머니〉에 나타난 바와 같이 현실 의식이 강하게 반영된 경향으로 변천되었다.[3]
- 《고향의 봄》
- 《겨울나무》
- 《엄마 없는 날》
- 《꼬마 옥이》
- 《숲속 나라》
- 《민들레의 노래》
참조
[1]
날짜
1912-01-05
[2]
웹사이트
이원수 - 네이버
http://100.naver.com[...]
[3]
서적
글로벌 세계 대백과
[4]
텍스트
[5]
웹사이트
이원수문학관
http://www.leewonsu.[...]
[6]
저널
이원수의 부왜문학 연구
2009-03-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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