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161년 집정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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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는 로마 가문 출신으로, 161년에 집정관을 지낸 후 시리아 속주 총독을 역임했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황제는 파르티아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그를 임명했지만, 젊은 나이와 부족한 군사 경험으로 인해 이례적인 선택으로 여겨졌다. 총독 재임 기간 동안 루키우스 베루스와 갈등을 겪었고,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인해 루키우스의 독살설이 돌기도 했다. 사망 후 루키우스는 리보의 미망인을 자신의 해방 노예와 결혼시켰다.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161년 집정관)
기본 정보
이름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로마자 표기Marcus Annius Libo
출생서기 100년경
사망서기 163년
경력
집정관서기 161년
추가 정보로마의 원로원 의원
가문안니우스 씨족
아버지마르쿠스 안니우스 베루스
어머니루필리아 파우스티나
배우자폼포니아 우밀리아
레굴라
자녀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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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가문 배경 및 초기 생애

리보는 여러 세대 전에 히스파니아에 정착했던 로마 가문 출신으로, 비교적 최근에 로마로 돌아왔다. 그의 아버지는 128년에 집정관을 역임한 마르쿠스 안니우스 리보였고, 어머니는 귀족 여성이었으며 116년에 집정관을 역임한 루키우스 푼다니우스 라미아 엘리아누스의 딸인 푼다니아로 추정된다. 리보에게는 안니아 푼다니아 파우스티나라는 누이가 있었는데, 그녀는 176년에 두 번째 집정관을 역임한 티투스 폼포니우스 프로쿨루스 비트라시우스 폴리오의 아내였다.

3. 시리아 총독 시절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으로 시리아 속주 총독으로 부임한 리보는 공동 황제인 루키우스 베루스파르티아 원정을 지원했다. 그는 루키우스와 충돌했고, 마르쿠스의 지시만을 따랐다. 리보가 갑작스럽게 사망하자, 루키우스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리보 사후, 루키우스 베루스는 마르쿠스를 무시하고 리보의 미망인을 자신의 그리스인 해방 노예 아가클리토스와 결혼시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결혼식이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3.1. 임명 배경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공동 황제인 루키우스 베루스파르티아 원정을 지원하기 위해 리보를 시리아 속주 총독으로 임명했다. 앤서니 벌리는 이 인사가 놀라운 선택이라 언급했다. 그는 "리보가 직전 년도에 집정관이었기에, 그는 30대 초임이 분명했고, 파트리키로서 군 경험이 부족했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시리아가 중요한 속주였기에, 이곳을 관리하기 위해 임명된 자들은 보통 군사와 행정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들이었다. 벌리는 그의 의문점에 대해서 "마르쿠스의 의도는 그가 의지할 수 있을 만한 자를 그 자리에 둔 것으로 보인다"라며 답을 내렸다.

3.2. 루키우스 베루스와의 갈등

총독으로서 리보는 루키우스 베루스 황제와 갈등을 빚었고,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가 내린 지시만을 따르는 태도를 보였다. 이는 루키우스 베루스를 분노하게 했고, 리보가 갑작스럽게 죽자, 루키우스 베루스가 그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4. 사망 이후

리보가 사망했을 때, 루키우스 베루스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무시하고 리보의 미망인을 그의 그리스인 해방 노예인 아가클리토스와 결혼시켰다. 전해진 바에 따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결혼식이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한다. 크리스티앙 세티파니는 리보의 아들 마르쿠스 안니우스 사비누스 리보의 이름으로 미루어 보아 그의 미망인이 황후 비비아 사비나의 친족일 가능성이 있다고 제안했지만, 그의 손자 마르쿠스 안니우스 플라비우스 리보의 이름은 그의 미망인이 플라비 사비니 가문의 일원일 가능성이 더 높다는 것을 보여준다.

5. 평가

리보는 젊은 나이에 중요한 직책을 맡았지만, 군사적 경험이 부족했다. 앤서니 벌리는 리보가 파트리키 출신이라 군 경험이 부족했을 것이라 추측했다. 시리아 속주는 중요한 곳이었기에, 이곳의 총독은 보통 군사 및 행정 경험이 풍부한 연장자들이 맡았다. 벌리는 마르쿠스 황제가 리보를 시리아 총독으로 임명한 이유에 대해, 그가 의지할 수 있는 사람을 그 자리에 두고자 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답했다.

리보는 총독으로서 루키우스 황제와 충돌했고, 마르쿠스 황제의 지시만을 따랐다. 이는 루키우스 황제를 분노하게 했다. 리보가 갑작스럽게 죽자, 루키우스가 리보를 독살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리보가 사망했을 당시, 루키우스 베루스는 마르쿠스를 무시하고 리보의 미망인을 아가클리토스라는 자신의 그리스인 해방 노예와 결혼시켰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이 결혼식이나 연회에 참석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