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비아 사비나
1. 개요
비비아 사비나는 1세기 후반에 태어나 2세기 초에 사망한 로마 황후이다. 그녀는 외할머니 마르키아나와 함께 트라야누스와 플로티나 부부의 저택에서 성장했으며, 플로티나의 요청으로 하드리아누스와 결혼했다. 하드리아누스가 황제가 된 후, 사비나는 로마와 속주에서 대중적인 존경을 받았으며, 주화에 등장한 첫 번째 여성이었다. 128년에는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고, 136년 또는 137년 초에 사망했다. 사후 하드리아누스는 그녀를 신격화했으며, 아프가니스탄의 불교 스투파에서 사비나의 주화가 발견되기도 했다. 그리스 엘레프시나의 한 사원이 그녀에게 헌정되었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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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0년대 사망 -
마르키우스 투르보
마르키우스 투르보는 트라야누스 황제 시기 로마 해군 지휘관으로 시작하여 하드리아누스 황제 치세에 친위대 사령관을 역임하며 로마 제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
비비우스 씨족 -
비비아 아우렐리아 사비나
비비아 아우렐리아 사비나는 2세기 후반 로마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딸이자 콤모두스의 누이로서, 높은 신분을 바탕으로 북아프리카에서 영향력을 행사하며 티빌리스와 칼라마의 후원자로서 지역 사회 발전에 기여했고, 남편의 암살 모의 연루 후 티빌리스에서 여생을 보냈다. -
비비우스 씨족 -
볼루시아누스
볼루시아누스는 3세기 중반 로마 제국의 황제로 트레보니아누스 갈루스와 공동 황제를 지냈으나 군대의 반란으로 아버지와 함께 살해당하며 그의 통치는 혼란과 불안정으로 특징지어진다. -
하드리아누스 -
하드리아누스의 도서관
하드리아누스의 도서관은 아테네 모나스티라키 역 근처에 위치해 있다. -
하드리아누스 -
폼페이아 플로티나
폼페이아 플로티나는 로마 황제 트라야누스의 아내이자 하드리아누스 즉위에 영향을 미쳤으며, 에피쿠로스 학파를 후원하고 황제 숭배 대상이 된 로마 황후이다.
2. 어린 시절
84년 아버지가 사망한 후, 사비나는 이복자매 마티디아 미노르와 함께 외할머니 울피아 마르키아나와 살았다. 이들은 당시 황제였던 외종조부 트라야누스와 그의 아내 폼페이아 플로티나의 저택에서 그들의 보살핌을 받으며 자랐다.
100년, 사비나는 플로티나 황후의 요청으로 하드리아누스와 혼인하였다. 사비나의 어머니이자 트라야누스의 조카딸인 마티디아는 하드리아누스의 육촌이었는데, 그녀 역시 하드리아누스를 좋게 생각하여 딸과의 결혼을 허락하였다.
3. 황후 시절
사비나는 초대 황후인 아우구스투스의 아내 리비아 이래 로마와 속주들에서 가장 많은 대중적 존경을 받은 황후였다. 실제로, 사비나는 로마에서 정기적으로 주조된 주화에 등장한 첫 여성이었다. 그녀는 당대 가장 많이 여행하고 눈에 띄는 황후였다. 128년에, 그녀는 아우구스타 칭호를 수여받았다.
사비나는 130년 11월 하드리아누스의 이집트 방문 당시 동행했던 율리아 발빌라가 쓴 시에서 묘사되었다. 이 시에서 발빌라는 사비나를 '아름답고' '사랑스럽다'고 표현했다.
히스토리아 아우구스타는 하드리아누스의 비서였던 역사가 수에토니우스가 119년에 "궁정 예법이 요구하는 것보다 더 격식 없이 사비나 황후를 대했기" 때문에 하드리아누스에 의해 해임되었다고 기록하였다. 한편, 하드리아누스는 총애하는 안티누스와 다른 동성 애인들에게 성적인 관심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지며, 그와 사비나 사이에 자녀는 없었다.
4. 죽음
비비아 사비나는 남편 하드리아누스보다 먼저, 서기 136년 또는 137년 초에 사망했다. 하드리아누스가 아내를 노예보다 조금 나은 수준으로 대우했으며, 이 때문에 사비나가 자살했을지도 모른다는 강한 고대의 전승이 있다. 그러나 다른 자료에서는 하드리아누스가 그녀를 매우 존경했다고 전한다.
하드리아누스는 사비나 사후 그녀를 신격화하도록 명했다. 아내를 위해 그가 남긴 엘레지는 "하드리아누스의 명으로 그녀 사후 신격화에 따른 사비나의 신격화된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하드리아누스가 의뢰한 부조 역시 "사후 신격화 명령에 따라 사비나의 신격화, 즉 신성한 승천을 묘사한다." 이 부조는 약 150년 후 포르투갈 개선문에 spolia로 재사용되었으며, 현대에는 카피톨린 박물관으로 옮겨져 보존자 궁전의 계단에 전시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