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 테레사 이사벨라 다스부르고테셴
1. 개요
마리아 테레사 이사벨라 다스부르고테셴은 오스트리아의 대공녀이자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였다. 테셴 공작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의 장녀로 태어났으며, 1837년 양시칠리아의 왕 페르디난도 2세와 결혼했다. 정치에 관심이 많아 남편과 의붓아들 프란체스코 2세에게 조언을 했으며, 가리발디의 천인대 원정으로 왕국이 붕괴하자 외국으로 도피하여 1867년 티푸스로 사망했다. 슬하에 12명의 자녀를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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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칭호 | 양시칠리아 왕국의 여왕 배우자 |
|---|---|
| 재위 기간 | 1837년 1월 27일 – 1859년 5월 22일 |
| 전체 이름 | 마리아 테레지아 이자벨라 폰 외스터라이히/Maria Theresia Isabella von Österreich독일어 마리아 테레사 이사벨라 다우스트리아/Maria Teresa Isabella d'Austria이탈리아어 |
| 출생 | 1816년 7월 31일 |
| 출생지 | 오스트리아 제국, 빈 |
| 사망 | 1867년 8월 8일 |
| 사망지 | 교황령, 알바노라치알레 |
| 매장지 | 나폴리, 바실리카 디 산타 키아라 |
| 배우자 | 페르디난도 2세 (1837년 결혼, 1859년 사별) |
| 자녀 | 루이지, 트라니 백작 알폰소, 카세르타 백작 마리아 안눈치아타 마리아 임마콜라타 가에타노, 지르젠티 백작 마리아 피아 파스콸레, 바리 백작 마리아 루이사 야누아리오, 칼타지로네 백작 |
| 가문 | 합스부르크-로트링겐 가문 |
| 아버지 | 테셴 공작 카를 |
| 어머니 |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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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시칠리아의 왕비 -
양시칠리아의 군주 배우자
양시칠리아의 군주 배우자는 양시칠리아 왕국을 통치한 군주의 배우자로서, 보나파르트 왕조의 카롤린 보나파르트부터 부르봉 왕조의 마리아 소피아 폰 바이에른, 그리고 왕국 합병 후 왕가 수장 배우자들까지 포함한다. -
양시칠리아의 왕비 -
마리 인 바이에른 여공작
마리 인 바이에른 여공작은 바이에른 왕가의 일원이자 양시칠리아 왕국의 왕비로서, 남편 프란체스코 2세와 함께 이탈리아 통일에 저항하며 망명 생활과 왕정 복고를 위한 활동을 펼친 용감하고 강인한 여성이다. -
빈 출신 -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
루트비히 비트겐슈타인은 20세기 중요한 철학자 중 한 명으로, 『논리철학논고』를 통해 초기 논리실증주의를 대표하고 『철학적 탐구』로 후기 일상언어철학의 기초를 세웠으며, 언어 게임 개념을 제시하여 현대 철학에 큰 영향을 미쳤다. -
빈 출신 -
피터 L. 버거
피터 L. 버거는 오스트리아 출신의 사회학자로서, 사회학을 인문학적 관점에서 접근하고 사회적 현실 구성 과정을 설명했으며, 종교 사회학 분야에서 현대 사회의 종교적 역할을 탐구했다. -
오스트리아 여대공 -
마리 앙투아네트
마리 앙투아네트는 오스트리아 출신으로 프랑스 왕 루이 16세와 결혼하여 프랑스 왕비가 되었으며, 사치스러운 생활과 정치적 관여로 프랑스 혁명 시기 비난을 받아 단두대에서 처형되었으나, 최근에는 재평가되고 있다. -
오스트리아 여대공 -
마리아 아나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 (1610년)
마리아 아나 폰 외스터라이히 여대공은 페르디난트 2세의 딸로 태어나 막시밀리안 1세와 결혼하여 바이에른 선제후비가 되었으며, 남편 사후 아들의 섭정을 맡아 바이에른 정치에 참여하다가 뮌헨에서 사망했다.
2. 생애
테셴 공작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로, 1837년 1월 27일 양시칠리아의 왕 페르디난도 2세와 결혼했다. 페르디난도 2세에게는 전처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 왕녀가 낳은 아들 프란체스코가 있었는데, 프란체스코와의 사이는 양호해서 그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사는 왕비로서의 풍격이나 위엄이 부족한 여성이었다. 궁정 생활이나 왕비로서의 책무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방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있었다. 종종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고 때로는 문 너머로 회의 내용을 엿듣기도 했다.
남편이 죽고 의붓아들 프란체스코가 국왕으로 즉위하자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게 되었는데, 프란체스코의 왕비 마리아 소피아는 이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고부간의 갈등을 빚었다. 이후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인대의 원정으로 왕국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마리아 테레사는 아이들과 함께 나폴리를 떠나 외국으로 도피했다. 가에타와 로마를 거쳐 교황 비오 9세의 보호로 퀴리날레 궁전에 정착하였고 이후 프란체스코 부부와도 재회하였다. 1867년 프란체스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티푸스로 사망했다.
2.1. 초기 생애 (1816년 ~ 1837년)
마리아 테레사 이사벨라는 1816년 7월 31일 오스트리아 제국 빈에서 테셴 공작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 사이의 장녀로 태어났다. 프란츠 1세의 동생인 아버지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후작 프리드리히 빌헬름의 딸인 어머니 헨리에테 알렉산드리네 사이에서 태어났다. 1829년 어머니가 성홍열과 폐렴으로 사망하자, 5명의 남동생과 여동생들을 돌보는 어머니 역할을 했다. 1834년부터 1835년까지는 프라하에 있는 테레지아회 여자 수도원의 원장을 맡았다.
프랑스 국왕 루이 필리프가 장남 페르디낭 필리프와의 결혼을 제안했지만, 마리 앙투아네트와 마리아 루이자의 전례 때문에 합스부르크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2. 양시칠리아 왕비 시절 (1837년 ~ 1859년)
테셴 공작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의 장녀로, 1837년 1월 27일 양시칠리아의 왕 페르디난도 2세와 결혼했다. 1837년 1월 9일 빈의 아우구스티누스 교회에서 거행된 결혼식에서 신부는 21세, 신랑은 27세였다. 페르디난도 2세에게는 전처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 왕녀가 낳은 아들 프란체스코가 있었는데, 프란체스코와의 사이는 양호해서 그를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사는 왕비로서의 풍격이나 위엄이 부족한 여성이었다. 궁정 생활이나 왕비로서의 책무에는 별 관심이 없었고 자신의 방에서 바느질을 하거나 아이들을 돌보는 것을 더 좋아했지만, 정치에는 관심이 있었다. 종종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고 때로는 문 너머로 회의 내용을 엿듣기도 했다.
남편이 죽고 의붓아들 프란체스코가 국왕으로 즉위하자 그녀는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하게 되었는데, 프란체스코의 왕비 마리아 소피아는 이것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고부간의 갈등을 빚었다. 이후 가리발디가 이끄는 천인대의 원정으로 왕국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마리아 테레사는 아이들과 함께 나폴리를 떠나 외국으로 도피했다. 가에타와 로마를 거쳐 교황 비오 9세의 보호로 퀴리날레 궁전에 정착하였고 이후 프란체스코 부부와도 재회하였다. 1867년 프란체스코가 지켜보는 가운데 티푸스로 사망했다.
2.3. 왕대비 시절 (1859년 ~ 1867년)
테셴 공작 카를과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 사이에서 태어난 장녀인 마리아 테레사는, 1837년 1월 27일 양시칠리아의 왕 페르디난도 2세와 결혼했다. 마리아 크리스티나 디 사보이아 왕녀가 낳은 의붓아들 프란체스코와는 사이가 좋았고, 친어머니처럼 따랐다고 한다. 마리아 테레사는 정치에 관심이 많아 남편의 정치적 조언자 역할을 했으며, 남편이 죽고 프란체스코 2세가 즉위하자 더욱 적극적으로 정치에 개입했다.
1859년 남편 페르디난도 2세가 사망한 이후, 마리아 테레사는 새 군주가 된 의붓아들 프란치스코 2세의 조언자가 되어 정치 활동을 계속했다. 프란치스코 2세는 이를 받아들였으나, 그녀의 권위적인 정책은 양시칠리아 왕국의 폐지에 이르게 한 대중의 불만을 초래한 것으로 여겨진다. 프란체스코 2세의 왕비 마리아 소피아는 마리아 테레사의 정치 개입을 좋게 생각하지 않아 고부간의 갈등을 빚었다. 마리아 소피아는 프란치스코에게 마리아 테레사가 자신의 친아들을 왕위에 앉히려는 음모를 꾸몄다는 정보를 알렸지만, 프란치스코는 마리아 테레사가 결백을 맹세하자 그녀를 믿었다.
가리발디가 이끄는 붉은 셔츠 부대의 원정으로 왕국이 붕괴하기 시작하자, 마리아 테레사는 아이들과 함께 나폴리를 떠나 외국으로 도피했다. 처음에는 가에타로 갔고, 그 다음에는 로마로 가서 교황 비오 9세의 보호로 퀴리날레 궁전에 정착하였고 이후 프란체스코 2세 부부와도 재회하였다. 1867년 알바노 라치알레에서 티푸스로 사망했으며, 의붓아들 프란치스코 2세가 그녀의 임종을 지켰다.
3. 자녀
마리아 테레사는 12명의 자식을 두었고 그 중 여덟 명이 성년기까지 살아남았다.
| 자녀 | 출생 | 사망 | 비고 |
|---|---|---|---|
| 루이지 | 1838년 8월 1일 | 1886년 6월 8일 | 바이에른의 마틸데 루도비카 공작부인(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의 여동생)과 결혼했다. 그들의 외동딸인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의 빌헬름 공자와 결혼했다. |
| 알베르토 | 1839년 9월 17일 | 1844년 7월 12일 | 유년기에 사망. |
| 알폰소 | 1841년 3월 28일 | 1934년 5월 26일 | 그의 사촌 부르봉-시칠리아의 안토니에타 공주와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현재 부르봉-시칠리아 왕가는 그에게서 계승되었다. |
| 마리아 안눈치아타 | 1843년 3월 24일 | 1871년 5월 4일 | 오스트리아의 카를 루드비히 대공과 결혼했다. |
| 마리아 임마쿨라타 | 1844년 4월 14일 | 1899년 2월 18일 | 오스트리아의 카를 살바토르 대공, 토스카나 공자와 결혼했다. |
| 가에타노 | 1846년 1월 12일 | 1871년 11월 26일 | 1868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장녀인 스페인의 이사벨 공녀와 결혼하여 스페인 인판테로 임명되었다. |
| 주세페 | 1848년 3월 4일 | 1851년 9월 28일 | 유년기에 사망. |
| 마리아 피아 | 1849년 8월 21일 | 1882년 9월 29일 |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와 결혼했다. |
| 빈첸초 | 1851년 4월 26일 | 1854년 10월 13일 | 유년기에 사망. |
| 파스콸레 | 1852년 9월 15일 | 1904년 12월 21일 | 블랑슈 마르코네이와 귀천상혼하였다. |
| 마리아 루이사 | 1855년 1월 21일 | 1874년 8월 23일 | 파르마의 앙리 공자, 바르디 백작와 결혼했다. 청소년기에 사망했으며, 후사는 없었다. |
| 제나로 | 1857년 2월 28일 | 1867년 8월 13일 | 유년기에 사망. |
3.1. 자녀 목록
마리아 테레사는 12명의 자식을 두었고 그 중 여덟 명이 성년기까지 살아남았다.
| 자녀 | 출생 | 사망 | 비고 |
|---|---|---|---|
| 트라니 백작 루도비코 | 1838년 8월 1일 | 1886년 6월 8일 | 바이에른의 마틸데 루도비카 공작부인(오스트리아의 엘리자베트 황후의 여동생)과 결혼했다. 그들의 외동딸인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테레사 공주는 호엔촐레른-지그마린겐의 빌헬름 공자와 결혼했다. |
| 카스트로지오반니 백작 알베르토 | 1839년 9월 17일 | 1844년 7월 12일 | 유년기에 사망. |
| 카세르타 백작 알폰소 | 1841년 3월 28일 | 1934년 5월 26일 | 그의 사촌 부르봉-시칠리아의 안토니에타 공주와 결혼하여 자녀를 두었다. 현재 부르봉-시칠리아 왕가는 그에게서 계승되었다. |
|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안눈치아타 | 1843년 3월 24일 | 1871년 5월 4일 | 오스트리아의 카를 루드비히 대공과 결혼했다. |
|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이마콜라타 | 1844년 4월 14일 | 1899년 2월 18일 | 오스트리아의 카를 살바토르 대공, 토스카나 공자와 결혼했다. |
| 지르젠티 백작 가에타노 | 1846년 1월 12일 | 1871년 11월 26일 | 1868년, 스페인의 이사벨 여왕의 장녀인 스페인의 이사벨 공녀와 결혼하여 스페인 인판테로 임명되었다. |
| 루체라 백작 주세페 | 1848년 3월 4일 | 1851년 9월 28일 | 유년기에 사망. |
|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피아 | 1849년 8월 21일 | 1882년 9월 29일 | 파르마 공작 로베르토 1세와 결혼했다. |
| 멜라초 백작 빈첸초 | 1851년 4월 26일 | 1854년 10월 13일 | 유년기에 사망. |
| 바리 백작 파스콸레 | 1852년 9월 15일 | 1904년 12월 21일 | 블랑슈 마르코네이와 귀천상혼하였다. |
| 부르봉-시칠리아의 마리아 루이사 | 1855년 1월 21일 | 1874년 8월 23일 | 파르마의 앙리 공자, 바르디 백작와 결혼했다. 청소년기에 사망했으며, 후사는 없었다. |
| 칼타지로네 백작 제나로 | 1857년 2월 28일 | 1867년 8월 13일 | 유년기에 사망. |
4. 유산
5. 가계도
wikitable
| 1 | 2 | 3 | 4 |
|---|---|---|---|
| 1. 마리아 테레사 오스트리아 여대공 | 2. 테셴 공작 카를 대공 | 3. 나사우-바일부르크 공녀 헨리에타 | 4. 신성 로마 황제 레오폴트 2세 |
| 5 | 6 | 7 | 8 |
| 5. 스페인 공주 마리아 루이사 | 6. 나사우-바일부르크 공자 프리드리히 빌헬름 | 7. 키르히베르크 부르크그라핀 루이제 이자벨라 | 8. 신성 로마 황제 프란츠 1세 |
| 9 | 10 | 11 | 12 |
| 9. 헝가리 여왕 마리아 테레지아 | 10. 스페인 국왕 카를 3세 | 11. 작센 공녀 마리아 아말리아 | 12. 나사우-바일부르크 공자 카를 크리스티안 |
| 13 | 14 | 15 | |
| 13. 오라녜-나사우 공녀 카롤리나 | 14. 키르히베르크 부르크그라프 빌헬름 게오르크 | 15. 로이스-그라이츠 공녀 이자벨 아우구스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