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고레마사
1. 개요
마쓰다이라 고레마사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까지 활동한 무사이다. 마쓰다이라 가게타다의 아들로, 1575년 나가시노성 전투에 참전했으며, 1584년 나가쿠테 전투, 1591년 구노헤 마사자네의 난, 1592년 임진왜란에 참전했다. 1590년 시모사국에 영지를 받았으며, 1592년 이노마 진야로 옮겨 영지를 다스렸다. 1597년에는 조쥬인을 재건했다. 1601년 후시미성으로 재번하라는 명령을 받았으나, 같은 해 9월 8일 후시미성에서 사망했다. 그의 법명은 쇼센인덴 쇼시츠 겐큐다이코지이며, 가독은 아들 마쓰다이라 타다자네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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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이 마쓰다이라씨 -
고이 마쓰다이라가
고이 마쓰다이라가는 미카와국 고이 지역을 발상지로 하는 마쓰다이라 씨의 지류로, 마쓰다이라 타다카게를 시조로 하여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기며 에도 시대에 요리아이 가문으로 성장했고, 이후 분가에서는 막신과 봉행 등을 배출했다. -
고이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모토무네
마쓰다이라 모토무네는 고이 마쓰다이라 가문의 초대 마쓰다이라 타다카게의 아들로, 후카미조 성의 성주를 멸망시키고 동생에게 성을 양보했으며 82세에 사망했다. -
1601년 사망 -
이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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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1년 사망 -
모리 히데카네
모리 히데카네는 모리 모토나리의 아홉 번째 아들로 태어나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 임진왜란에 참전하여 공을 세웠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패배한 인물이다. -
센고쿠 무장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센고쿠 무장 -
사나다 노부시게
2. 생애
마쓰다이라 고레마사는 5대 마쓰다이라 가게타다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가게타다의 정실(사카이 쇼겐의 양녀)이었다. 나가시노 전투, 나가쿠테 전투, 구노헤 마사자네의 난, 임진왜란 등 여러 전투에 참전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간토에 들어갔을 때 영지를 받았으며, 이노마 진야로 거처를 옮기고 지역 발전에 기여했다. 후시미성에서 사망했으며, 아들 타다자네가 가독을 이었다.
2.1. 초기 생애 및 가계
마쓰다이라 고레마사는 5대 마쓰다이라 가게타다의 아들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가게타다의 정실(사카이 쇼겐의 양녀)이었다.
덴쇼 3년(1575년) 5월, 다케다 가쓰요리가 나가시노성을 공격했을 때 16세였던 고레마사는 아버지 가게타다와 함께 나가시노성에 갇혔다. 덴쇼 12년(1584년) 나가쿠테 전투에도 아버지와 함께 종군했다.
덴쇼 18년(1590년) 8월, 이에야스가 간토에 들어갔을 때 시모사국 인바군 내에 2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덴쇼 19년(1591년) 구노헤 마사자네의 난에 참여했다.
덴쇼 20년/분로쿠 원년(1592년) 가이조군 쵸시의 이노마 진야로 옮겼다. 분로쿠·게이초의 역에서 이에야스가 나고야성으로 출진하자 이를 따랐다.
게이초 2년(1597년) 가이조군 오카노다이 마을의 조쥬인을 재건·부흥했다.
게이초 6년(1601년) 후시미성 재번을 명받았지만, 같은 해 9월 8일 후시미성에서 사망했다. 향년 42세. 오사카 텐마의 쇼센지에 매장되었다. 가독은 아들 타다자네가 이었다.
2.2.1. 나가시노 전투
1575년 5월, 다케다 가쓰요리가 나가시노성을 공격했을 때, 아버지 마쓰다이라 가게타다는 성주 오쿠다이라 노부마사를 지원하기 위해 입성했다. 고레마사는 16세의 나이로 아버지와 함께 나가시노성에 갇혔다.
2.2.2. 나가쿠테 전투
덴쇼 12년(1584년), 나가쿠테 전투에 아버지 마쓰다이라 가게타다와 함께 참전하였다.
2.2.3. 구노헤 마사자네의 난
덴쇼 19년(1591년), 구노헤 마사자네의 난에 참전했다.
2.2.4. 임진왜란
분로쿠·게이초의 역에서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나고야성으로 출진하자 이를 따랐다.
2.3. 영지 경영 및 지역 발전
덴쇼 18년(1590년) 8월, 이에야스가 간토에 들어갔을 때, 시모사국 인바군 내(사쿠라 영내 9개 마을)에 2000석의 영지를 받았다. 이노마 진야로 옮기기 전의 거점에 대해서는 확실하지 않지만, 지바현 교육 진흥 재단 『보소에서의 근세 진야』는 사카이마치의 스미노자와 유적에 있는 성 또는 진야 유구에 대해 고레마사의 거소였을 가능성을 지적하고 있다. 또한, 가토리시 가이즈카(구 가토리군 오미가와정)의 라이고지 전승에 따르면, 고레마사는 이노마로 옮기기 전까지 라이고지를 임시 진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덴쇼 20년/분로쿠 원년(1592년)에 가이조군 조시의 이노마 진야(현재의 조시 시 진야초)로 옮겼다. 마쓰다이라 이에타다(후카미조 마쓰다이라 가)의 『이에타다 일기』에는 분로쿠 원년 6월 이후 "이노마 마쓰다이라 게키"로 자주 등장한다.
게이초 2년(1597년), 가이조군 오카노다이 마을의 조주인(후의 도카쿠지)을 재건·부흥했다. 도카쿠지의 본당과 고리는 이에야스로부터 하사받은 후시미 이노쿠치 진야 건물을 회송하여 이전한 것이라고 전해진다.
2.4. 사망
게이초 6년(1601년) 후시미성 재번을 명받았으나, 같은 해 9월 8일 후시미성에서 사망했다. 향년 42세였다. 오사카 텐마의 쇼센지에 매장되었으며, 법명은 쇼센인덴쇼시쓰겐큐다이코지였다.
가독은 아들 타다자네가 이었다.
3. 계보
마쓰다이라 고레마사의 계보는 다음과 같다.
* 정실: 사카이 다다쓰구의 딸 (이름은 "오후")
*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녀였다.
* 1638년에 사망하여 라이고지에 매장되었다.
* 자녀
* 장녀 (이름 미상)
* 장남: 마쓰다이라 다다자네 (가독 상속)
* 차남: 마쓰다이라 무네하루 (별가)
* 삼남: 마쓰다이라 마사나가 (도쿠가와 이에미쓰 시중, 자결)
* 사남: 마쓰다이라 시로베에 (사카이 다다카쓰 가신)
* 차녀: 니시오 다다테루 부인
* 삼녀: 다카기 사다모리 부인
3.1. 처
사카이 다다쓰구의 딸로, 이름은 "오후"라고 전해진다. 1558년에 태어났다. 어린 시절에는 마쓰다이라 야스토시(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이복 동생)와 함께 이마가와 가문에 인질로 보내졌으며, 1569년에 다케다 신겐이 스루가에 침공했을 때 야스토시와 함께 다케다 측에 억류되었다. 이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양녀가 되어 1582년경에 마쓰다이라 고레마사와 결혼했다.
1638년 11월 25일에 이이누마 진야에서 81세로 사망했고, 정토종에 귀의했기 때문에 과거 가진야를 지었던 라이고지에 매장되었다. (혹은 매장된 것은 유발이라고도 한다.). 법명은 세이신인덴 엔요 리게츠 다이신녀이다. 이러한 인연으로 라이고지에는 고이 마쓰다이라 가문과 사카이 가문에서 기증된 불화나, 오후가 소지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위패 등이 전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