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노부마사 (1717년)
1. 개요
마쓰다이라 노부마사(1717년)는 에도 시대 중기의 다이묘이다. 시나노국 우에다 번주 마쓰다이라 타다아키의 넷째 아들로 태어나, 우에야마 번주 마쓰다이라 나가히사의 양자가 되어 가문을 상속했다. 여러 역할을 역임하며 번 재정의 어려움을 겪었고, 흉작과 홍수로 백성들의 소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다. 1761년 오사카 가반으로 임명되었으나, 오사카에서 병사했다. 그의 뒤는 장남 마쓰다이라 노부타카가 이었다.
| 씨족 |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 |
|---|---|
| 묘소 | 도쿄도미나토구다카나와의 쇼코지 |
|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
| 출생 | 교호 2년 (1717년) |
| 사망 | 호레키 11년 11월 14일 (1761년12월 9일) |
| 어릴적 이름 | 후유마쓰 |
| 처음 이름 | 나오타카 |
| 관직 | 종5위하・아와노카미, 야마시로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섬긴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이에시게→이에하루 |
| 번 | 데와가미노야마번 번주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다다타카, 어머니: 스즈키 씨 |
|---|---|
| 양아버지 | 마쓰다이라 나가쓰네 |
| 형제 | 마쓰다이라 노부마사, 후지이 다다토시 |
| 배우자 | 정실: 도다 우지나가의 딸, 계실: 마쓰다이라 노부토미의 딸, 측실: 모리 씨 |
| 자녀 | 노부미치, 다다토모, 구메, 마사 양녀: 요쓰쓰지 기미토요의 아내 |
| 가명 (통칭) | 사몬 |
|---|---|
| 시호 | 세이안인덴 준요 와코호즈이 대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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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에다번 사람 -
코마츠히메
코마츠히메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여성으로, 혼다 타다카츠의 딸이자 사나다 노부유키의 정실이며, 용맹하고 강인한 이미지와 누마타성 방어 일화, 현모양처로서의 면모, 그리고 현대 대중문화 속 재해석으로 알려져 있다. -
가미노야마번주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
가미노야마번주 -
마쓰다이라 노부쓰라
마쓰다이라 노부쓰라는 에도시대 가미야마 번의 4대 번주로, 가독 상속 후 오사카 가반 등의 직책을 맡았으나 문화 예술에 몰두하여 번정을 소홀히 하고, 가혹한 검지로 농민 반발을 사 막부의 명령으로 강제 은거하게 되었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다다토모 (1634년)
마쓰다이라 다다토모는 에도 시대 이이야마 번을 다스린 다이묘로, 치수 사업, 관개 시설 정비, 신전 개발 등을 통해 번의 기반을 다지고 노다 기자에몬을 등용하여 번의 발전에 기여했으며, 오사카 가반 등 요직을 역임한 명군으로 평가받는다. -
후다이 다이묘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2. 생애
마쓰다이라 노부마사는 에도 시대 중기의 다이묘이다.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 분가에서 태어났으나, 종가의 양자가 되어 가미노야마 번 번주 자리를 이었다. 번주 재임 기간 동안 오사카 가반과 같은 여러 중책을 맡았으나, 이로 인해 번의 재정이 어려워지고 흉작과 백성들의 소요, 홍수 등 여러 어려움을 겪었다. 호레키 11년(1761년) 오사카 가반으로 부임 중 병을 얻어 오사카에서 사망했으며, 장남 노부타카가 뒤를 이었다.
2.1. 출생과 가문 상속
교호 2년(1717년) 시나노 국 우에다 번주이자,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의 분가인 마쓰다이라 타다아키의 넷째 아들인 타다타카의 아들로 우에다에서 태어났다.
교호 17년(1732년) 8월 9일,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의 종가에 해당하는, 가미노야마 번 2대 번주 마쓰다이라 나가히사의 양자가 되면서, 처음 이름인 直孝일본어에서 信将일본어로 개명했다. 같은 해 12월 12일(서기 1733년) 나가히사가 은거했기 때문에, 가문을 상속했다. 12월 28일 종5위하, 安房守일본어에 서위·임관되었다.
2.2. 번주 재임
교호 17년(1732년) 8월 9일, 우에야마 번 2대 번주 마쓰다이라 나가히사의 양자가 되어, 원래 이름인 나오타카(尚隆)에서 노부마사(信将)로 개명했다. 같은 해 12월 12일(1733년) 양아버지 나가히사가 은퇴하면서 가문을 이어받았다. 12월 28일에는 종5위하 아와노카미(安房守)에 서임되었다.
번주로서 외 벚꽃 문지기(外桜田門番), 오사카 가반(大坂加番) 등 여러 직책을 맡았다. 하지만 이러한 역할 수행 때문에 번의 재정은 어려워졌다. 엔쿄 원년(1744년)과 엔쿄 2년(1745년)에는 흉작으로 쌀값이 크게 올랐고, 엔쿄 4년(1747년) 5월에는 백성들이 소요를 일으켜 집 등을 파괴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노부마사는 백성들의 연공 감면 요구 등을 수용했다. 호레키 7년(1757년)에는 홍수로 큰 피해를 입어 막부로부터 3000JPY을 빌리기도 했다.
호레키 11년(1761년), 다섯 번째로 오사카 가반에 임명되어 오사카로 갔으나, 곧 병을 얻어 오사카에서 세상을 떠났다. 향년 45세였다. 그의 뒤는 장남인 노부타카가 이었다.
3. 가계
(내용 없음)
3.1. 부모
* 마쓰다이라 타다타카 松平忠隆일본어 (실부)
* 스즈키 씨 (실모) - 측실
* 마쓰다이라 나가히사 松平長恒일본어 (양부)
3.2. 처
* 정실: 토다 우지나가(戸田氏長일본어)의 딸
* 계실: 마쓰다이라 노부토미(松平宣富일본어)의 딸
* 측실: 모리 씨(森氏일본어)
3.3. 자녀
*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松平信亨일본어 (장남) - 생모는 모리 씨
* 마쓰다이라 타다토모松平忠融일본어
* 쿠메
* 마사
* 양녀
** 요츠지 킨타카四辻公亨일본어의 부인
3.4. 양녀
* 요츠지 킨타카四辻公亨일본어의 부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