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노부자네
1. 개요
마쓰다이라 노부자네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야마가타번의 5대 번주이다. 1779년에 태어나 1796년 형인 마쓰다이라 노부토키의 양자가 되어 번주 자리를 계승했다. 번정 개혁을 둘러싼 가신단의 다툼이 있었으며, 오사카 가반으로 재임 중 1805년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그의 양자인 마쓰다이라 노부유키가 뒤를 이었다.
| 씨족 | 후지이 마쓰다이라 가문 |
|---|---|
| 묘소 | 도쿄도미나토구다카나와의 쇼코지 |
| 시대 | 에도 시대 후기 |
|---|---|
| 출생 | 안에이 8년 3월 4일 ( 1779년4월 20일) |
| 사망 | 분카 2년 3월 27일 ( 1805년4월 26일) |
| 어린 시절 이름 | 반마루, 사부로 |
| 개명 | 노부치카 |
| 계명 | 다이가쿠인덴 운요쇼게쓰기잔다이코지 |
| 관위 | 종5위하·야마시로노카미 |
|---|---|
| 막부 | 에도 막부 |
| 주군 | 도쿠가와 이에나리 |
| 번 | 데와가미노야마번 번주 |
| 부모 | 마쓰다이라 노부쓰네, 마쓰다이라 노부후루 |
|---|---|
| 형제 | 노부후루, 노부야스, 노부치카, 에이마루, 사에구사 모리노리의 부인, 마쓰다이라 노부치카의 양녀 |
| 배우자 | 마쓰다이라 지카사다의 딸 |
| 자녀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의 정실, 노부유키 |
| 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후루 |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
| 직책 | 가미노야마번 번주 |
| 대수 | 6 |
| 임기 | 1796년 ~ 1805년 |
-
1779년 출생 -
우타가와 히로시게
우타가와 히로시게는 에도 시대 후기 우키요에 화가로, 풍경화 스타일을 확립하여 『도카이도 오십삼차』, 『에도 명소 백경』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서양 인상파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1779년 출생 -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
옌스 야코브 베르셀리우스는 스웨덴의 화학자로, 세륨과 셀레늄을 발견하고 규소 등을 분리했으며, 화학 용어 도입 및 근대적 원소 표기법 확립, 원자량 개념 발전에 기여하여 '근대 화학의 아버지' 중 한 명으로 불린다. -
후지이 마쓰다이라씨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1790년)
마쓰다이라 노부유키(1790년)는 가미야마번의 7대 번주이며, 번교 덴포칸을 설립하고 번 통치에 힘썼으며, 1831년 장남에게 번주직을 물려주고 은거했다. -
후지이 마쓰다이라씨 -
다카사키번
에도 시대 고즈케국 다카사키 지역을 다스린 다카사키번은 도쿠가와 이에야스가 이이 나오마사에게 성을 건설하게 하면서 시작되어 여러 가문이 통치했으며, 막부 말기 덴구토 당의 난 진압, 보신 전쟁 때 신정부군에 합류 후 폐번치현으로 폐지되었다. -
1805년 사망 -
윌리엄 페일리
윌리엄 페일리는 18세기 후반과 19세기 초 영국의 저명한 자연신학자이자 도덕철학자, 신학자로, '시계공 유추'를 통해 신의 존재를 증명하려 했으며, 그의 저술들은 다양한 분야에 걸쳐 논의되고 지적 설계 이론의 기초가 되었으나, 과학적 진화론에 대한 반박으로 악용되는 등 논쟁적인 유산으로 평가받는다. -
1805년 사망 -
클로드 샤프
클로드 샤프는 움직이는 팔을 이용한 광학 전신 시스템인 샤프 전신을 개발하여 프랑스 혁명 이후 정국 안정과 나폴레옹 전쟁에서의 프랑스 우위에 기여한 프랑스 발명가이다.
2. 생애
1779년 3월 4일, 4대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타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6년에 형이자 선대 번주였던 마쓰다이라 노부토키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양자로서 가문을 이었다. 같은 해 12월 28일에 서임되었다. 형 때부터의 번정 개혁을 둘러싸고 가신단 사이에 다툼이 계속되었다.
1805년 3월 27일, 오사카 가반 재임 중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뒤는 양자인 노부유키가 이었다.
2.1. 가문 상속과 번정 개혁
1779년 3월 4일, 4대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타카의 넷째 아들로 태어났다. 1796년에 형이자 선대 번주였던 마쓰다이라 노부토키가 사망했기 때문에 그의 양자로서 가문을 이었다. 같은 해 12월 28일에 서임되었다. 형 때부터의 번정 개혁을 둘러싸고 가신단 사이에 다툼이 계속되었다.
1805년 3월 27일, 오사카 가반 재임 중에 사망했다. 향년 27세. 뒤는 양자인 노부유키가 이었다.
2.2. 오사카 가반 재임과 죽음
1805년 3월 27일, 오사카 가반 재임 중에 2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뒤는 양자인 노부유키가 이었다.
3. 가계
마쓰다이라 노부자네는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마쓰다이라 노부토키의 양자가 되었다. 정실은 마쓰다이라 지카사다의 딸이다. 마쓰다이라 야스치카의 다섯째 아들 마쓰다이라 노부유키를 양자로 들였고, 친여동생을 노부유키의 정실로 삼았다.
3.1. 부모
* 마쓰다이라 노부아키라 (친부)
* 마쓰다이라 노부토키 (양부)
3.2. 정실
마쓰다이라 지카사다의 딸
3.3. 양자
| 이름 | 설명 |
|---|---|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 마쓰다이라 야스치카의 다섯째 아들 |
| 마쓰다이라 노부유키 정실 | 친여동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