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노부키요
1. 개요
마쓰다이라 노부키요는 에도 시대의 다이묘로, 1692년에 태어나 1724년에 사망했다. 마쓰다이라 노부마사의 장남으로, 1692년에 가독을 상속받아 7,000석 영주가 되었고, 이후 3,000석을 가증받아 총 1만 석을 영했다. 도쿠가와 쇼군 가문의 친척이자 다카쓰카사 가문, 기슈 도쿠가와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아 도쿠가와 가문 일문 및 구니누시 격의 대우를 받았다. 또한 에도성 내에서 고산케, 가가 마에다 가문과 동격인 오로카의 격식을 받았다. 그의 장남은 마쓰다이라 노부토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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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씨명 | 마쓰다이라 씨 |
|---|---|
| 가문 | 다카쓰카사 마쓰다이라 가문 |
| 이름 | 마쓰다이라 노부키요 |
| 시대 | 에도 시대 중기 |
| 출생 | 겐로쿠 2년 10월 18일 (1689년11월 29일) |
| 사망 | 교호 9년 5월 19일 (1724년7월 9일) |
| 어릴적 이름 | 니주로 |
| 계명 | 현덕원전성산도숭대거사 |
| 묘소 | 도쿄도신주쿠구 도미히사정 자증원 |
| 관위 | 종4위 하, 시종, 에치젠노카미 |
| 막부 | 에도 막부 |
| 번 | 고즈케요시이 번 번주 |
| 씨족 | 다카쓰카사 마쓰다이라 가문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노부마사, 어머니: 모리 나가쓰구 딸, 오히메 |
| 배우자 | 쓰가루 노부히사의 딸 |
| 자녀 | 노부토모, 기요히메 등 |
| 당주 | 3대 |
|---|---|
| 임기 | 1691년 ~ 1724년 |
| 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마사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토모 |
| 번주 (다카쓰카사 마쓰다이라 가문) | 1대 |
|---|---|
| 임기 | 1709년 ~ 1724년 |
| 전임자 | 홋타 마사야스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토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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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카쓰카사 마쓰다이라가 -
마쓰다이라 노부히라
마쓰다이라 노부히라는 공가 출신으로 누나의 도움으로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발탁되어 무가가 되었고, 기슈 번주 딸과 혼인 후 마쓰다이라 성을 칭하며 하타모토 신분으로 높은 관직에 오르는 등 파격적인 대우를 받은 인물이다. -
다카쓰카사 마쓰다이라가 -
우에스기 노부노리
우에스기 노부노리는 요네자와 번주 아들로 태어나 요시이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아쓰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아 요시이 번주가 되었고, 요나오시 잇키라는 농민 봉기를 겪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에 협력하다 은거 후 우에스기 가문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했다. -
요시이번주 -
우에스기 노부노리
우에스기 노부노리는 요네자와 번주 아들로 태어나 요시이 번주 마쓰다이라 노부아쓰의 양자가 되어 가독을 상속받아 요시이 번주가 되었고, 요나오시 잇키라는 농민 봉기를 겪었으며, 메이지 유신 이후 신정부에 협력하다 은거 후 우에스기 가문으로 돌아가 생을 마감했다. -
요시이번주 -
홋타 마사야스 (1655년)
홋타 마사야스 (1655년)는 홋타 마사토시의 아들이자 사카이 이에쓰구의 딸을 어머니로 둔 인물로, 이토 가즈히로의 딸과 결혼하여 3남 4녀를 두었으며 장남 홋타 마사나카가 가독을 상속받았다. -
1689년 출생 -
새뮤얼 리처드슨
새뮤얼 리처드슨은 18세기 영국의 소설가이자 인쇄업자로, 서간체 소설의 선구자이며, 『파멜라, 또는 미덕의 보상』, 『클라리사』, 『찰스 그랜디슨 경의 역사』 등의 작품으로 18세기 영국 소설 발전에 기여했고, 도덕적 가치와 여성의 지위에 대한 통찰, 섬세한 심리묘사로 문학적 성취를 이루었다. -
1689년 출생 -
몽테스키외
몽테스키외는 프랑스 계몽주의 시대의 사상가로, 법학 연구에 기여하고 《법의 정신》을 통해 삼권 분립 사상을 제시했으며, 사회학의 아버지로 여겨진다.
2. 생애
기인 마쓰다이라 노부마사의 장남이다. 겐로쿠 4년(1692년) 12월 5일, 아버지의 뒤를 이어 7,000석의 가독을 상속받았다. 겐로쿠 12년(1699년) 3월 28일에는 쇼군 도쿠가와 쓰나요시를 처음으로 만났다. 겐로쿠 16년(1704년) 12월 21일, 종4위하 시종 겸 에치젠노카미(越前守)에 임명되었다. 호에이 6년(1709년)에는 다고군 등에서 3,000석의 영지를 추가로 받아 총 1만 석의 다이묘가 되었다.
비록 1만 석의 작은 다이묘였지만, 도쿠가와 쇼군 가문의 오오쿠(大奥)와 인척 관계였고, 다카쓰카사 가문 및 기슈 도쿠가와 가문의 혈통을 이어받았기 때문에 도쿠가와 가문의 일족과 같은 구니누시(国主) 격의 특별 대우를 받았다. 또한 에도성 내에서는 고산케나 가가 번의 마에다 가문과 같은 오로카(大廊下, 시타노마)의 격식을 에도 막부 말기까지 유지했다.
교호 9년(1724년) 5월 19일, 36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장남인 노부토모가 그 뒤를 이었다.
3. 가계
마쓰다이라 노부키요는 에도 시대 다이묘인 모리 나가쓰구의 딸 오히메를 어머니로 두었으며, 쓰가루 노부히사의 딸과 혼인하였다. 그의 자녀로는 장남 마쓰다이라 노부토모와 다테 무라노부와 약혼했던 딸 이사요히메가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하위 문단을 참고한다.
3.1.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노부마사
* 어머니: 오히메(모리 나가쓰구의 딸)
3.2. 정실
쓰가루 노부히사의 딸
3.3. 자녀
* 마쓰다이라 노부토모 (장남)
* 이사요히메 - 다테 무라노부의 약혼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