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도모스케
1. 개요
마쓰다이라 도모스케는 마쓰다이라 노부미쓰의 아들로, 미카와국 누카타군에서 토지를 영유하다가 호이군 가타하라 향으로 이주했다. 에이쇼 연간에 가타하라에서 사망했으며, 묘소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의 코추지에 있다. 아들 사다스케가 아버지의 명복을 빌기 위해 코추지를 건립했다. 최근 연구에서는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의 초대 당주가 미쓰타다이며, 도모스케는 사다스케의 별명 또는 오기라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 씨명 | 마쓰다이라 씨 (미카와) |
|---|---|
| 가문 |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문 |
| 이름 | 마쓰다이라 요토모 |
| 이명 | 쇼타로 (어릴 적 이름) 요쓰구 (요쓰구) 오키쓰구 통칭: 또시치로, 히코타로, 타로베에, 우효에노조 |
| 계급 | 종5위 하, 사도노카미 |
| 묘소 | 호린산 고슈지 (아이치현가마고리시니시우라 정 기타마장) |
| 시대 | 무로마치 시대 중기 - 전국 시대 |
|---|---|
| 출생 | 불명 |
| 사망 | 에이쇼 연간의 12월 21일 |
| 가명 | 요쓰구 (與副) |
| 시호 | 교쿠호인덴젠사슈신요소겐코추다이고지 |
| 종교 | 불교 |
| 씨족 |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문 |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노부미쓰 어머니: 마키하라 또헤이 딸 |
| 형제자매 | 모리이에 마사타쓰 지카타다 요토모 미쓰시게 미쓰히데 다다카게 미쓰치카 이에카쓰 지카마사 지카노리 도다 무네미쓰 부인 |
| 배우자 | 불명 |
| 자녀 | 사다스케 (사다쓰구) |
| 소속 | 무로마치 막부 |
|---|---|
| 주군 | 불명 |
| 가문 | 마쓰다이라 가문 |
| 전임자 | 마쓰다이라 노부미쓰 |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사다스케 |
| 직책 | 가타노하라 마쓰다이라 가문 당주 |
| 대수 | 1대 |
-
16세기 사망 -
경숙옹주 (성종)
성종의 딸인 경숙옹주는 숙용 윤씨(후일 폐비 윤씨) 소생으로, 여천위 민자방에게 하가하여 군수를 지낸 민희열을 낳았고, 그의 후손 중 정빈 민씨는 선조의 후궁이 되었다. -
16세기 사망 -
귀인 남씨
의령 남씨 출신인 귀인 남씨는 성종의 후궁으로, 성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사후 연산군과의 간통, 사헌부의 탄핵 등의 물의를 빚었으며, 월산대군의 며느리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
센고쿠 무장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센고쿠 무장 -
사나다 노부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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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세기 출생 -
티치아노 베첼리오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15세기 말 베네치아 화파를 이끈 거장으로, 뛰어난 색채감과 묘사력으로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르네상스 신이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세기 출생 -
요하네스 오케겜
요하네스 오케겜은 15세기 후기 부르고뉴 및 초기 네덜란드 악파의 벨기에 출신 작곡가로서 프랑스 궁정을 섬겼으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미사곡, 모테트, 샹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특히 《Missa prolationum》과 《Missa cuiusvis toni》는 15세기 대위법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마쓰다이라 노부미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나, 미카와국누카타군 나카야마령에서 700관문의 토지를 영유했다. 분메이 12년(1480년)에는 50관문을 추가로 받아 호이군 가타하라 향으로 이주했다. 에이쇼 연간 12월 21일에 가타하라에서 사망했으며, 묘소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니시우라정 기타바바에 있는 호린산 코추지이다. 법명은 "교쿠호인덴젠사슈신요소겐코추다이코지"이다. 아들 사다스케는 아버지 요스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가타하라 성 남서쪽에 코추지를 건립했는데, 절 이름은 요스케의 법명에서 유래했다. 일설에는 동생 미쓰시게가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과 관계가 깊어 요스케 사후에 보리사로 코추지를 세웠다고도 한다.
최근, 무라오카 미키오는 『산슈 혼마씨 각서』를 근거로, 미쓰시게의 형이자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의 초대 당주는 "미쓰타다"가 맞으며(『간세이보』 등에서는 미쓰타다를 요스케의 법명으로 표기), 요스케는 아들로 여겨지는 마쓰다이라 사다스케의 별명 또는 오기라고 주장한다.
2.1. 초기 생애
마쓰다이라 노부미쓰의 다섯째 아들로 태어났다. 처음에는 미카와국누카타군 나카야마령 내에 700관문의 토지를 영유했고, 분메이 12년(1480년)에 50관문을 더해 호이군 가타하라 향으로 이주했다.
2.2. 사망
에이쇼 연중 12월 21일에 가타하라에서 사망했다. 향년은 불명이다. 묘소는 아이치현 가마고리시 니시우라정 기타바바의 호린산 코추지이다. 법명은 "교쿠호인덴젠사슈신요소겐코추다이코지"(玉峯院殿前州信誉宗源光忠大居士)이다.
아들 사다스케가 아버지 요스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가타하라 성의 남서쪽에 코추지를 건립했다. 절의 이름은 요스케의 법명에서 유래했다. 일설에는 동생 미쓰시게가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과의 관계가 깊어, 요스케 사후에 보리사로서 코추지를 세웠다고도 한다.
3. 사후
아들 사다스케가 아버지 요스케의 명복을 빌기 위해 가타하라 성 남서쪽에 코추지(興忠寺)를 건립했다. 절의 이름은 요스케의 법명에서 유래했다. 일설에는 동생 마쓰다이라 미쓰시게(오쿠사 마쓰다이라 가)가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과의 관계가 깊어, 요스케 사후에 보리사(菩提寺)로서 코추지를 세웠다고도 한다.
4. 최근 연구
최근 무라오카 미키오는 『산슈 혼마씨 각서』의 기술을 바탕으로, 미쓰시게의 형인 가타하라 마쓰다이라 가문의 초대 당주는 "미쓰타다"가 맞고 (『간세이보』 등에서는 미쓰타다가 요스케의 법명으로 되어 있음), 요스케는 아들로 여겨지는 사다스케의 별명 또는 오기(誤記)라고 주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