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노부미쓰
1. 개요
마쓰다이라 노부미쓰는 미카와의 토호이자 이와즈 마쓰다이라 가문의 시조로, 센고쿠 시대를 거치며 세력을 확장하여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기반을 닦은 인물이다. 그는 무로마치 막부의 만도코로 집사 이세 사다치카를 섬겼으며, 1458년 세키구치 씨를 공격하여 간랴쿠지 성을 점령하고, 1465년에는 아카다 군 일치를 진압하는 등 무장으로서 활약했다. 오닌의 난 이후 안쇼 성을 공략하고 오카자키 성을 세력 하에 두는 등 서미카와 지역을 지배했으며, 많은 자녀들을 분가시켜 마쓰다이라 씨의 세력을 넓혔다. 노부미쓰의 출생과 사망 연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존재하며, 이와즈 성에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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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시대 | 무로마치 시대 중기 - 센고쿠 시대 |
|---|---|
| 생년 | 오에이 11년 (1404년)? |
| 몰년 | 초쿄 2년 7월 22일 (1488년8월 29일)? |
| 개명 | 노부미쓰(信光) → 신코(信光, 법명) |
| 별칭 | 좌경량, 화천입도 |
| 계명 | 숭악원전월당신광 |
| 묘소 | 아이치현오카자키시이와즈정의 신코미쓰지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가모다정의 다이주지 |
| 관위 | 종5위하, 이즈미노카미 |
| 막부 | 무로마치 막부 |
| 주군 | 이세 사다치카 |
| 씨족 | 마쓰다이라 씨 |
| 부모 | 아버지: 마쓰다이라 야스치카 어머니: 마쓰다이라 노부시게 딸 |
| 형제자매 | 노부히로 노부미쓰 마스치카 이에히사 이에히로 히사치카 |
| 배우자 | 정실: 잇시키 무네요시 딸, 진조인덴 마키하라 마타베에 딸 |
| 자녀 | 모리이에 치카타다 마사타쓰 요즈쿠 미쓰시게 미쓰히데 다다카게 미쓰치카 이에카쓰 치카마사 치카노리 도다 무네미쓰 부인 |
| 특기 사항 | 『마쓰다이라 씨 유래서』는 아버지를 마쓰다이라 치카우지로 기록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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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80년대 사망 -
타데오 만프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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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카와국인영주 -
마쓰다이라 지카우지
마쓰다이라 지카우지는 무로마치 시대에 활동하며 센고쿠 다이묘 마쓰다이라 씨의 기초를 다진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출신에 대한 여러 설이 있고 역사적 실존 여부에 대한 논쟁이 있다. -
미카와국인영주 -
마쓰다이라 노부시게 (마쓰다이라 향)
마쓰다이라 노부시게(마쓰다이라 향)는 1360년경 가독을 이었고, 아스케 씨 출신 칸리츠를 개산으로 자쿄지를 개기했으며, 마쓰다이라 지카우지를 데릴사위로 삼아 마쓰다이라 고향을 계승하게 했다. -
15세기 출생 -
티치아노 베첼리오
티치아노 베첼리오는 15세기 말 베네치아 화파를 이끈 거장으로, 뛰어난 색채감과 묘사력으로 종교화, 신화화, 초상화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으며, 르네상스 신이교 문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
15세기 출생 -
요하네스 오케겜
요하네스 오케겜은 15세기 후기 부르고뉴 및 초기 네덜란드 악파의 벨기에 출신 작곡가로서 프랑스 궁정을 섬겼으며 독창적이고 혁신적인 스타일로 미사곡, 모테트, 샹송 등 다양한 작품을 남겼고, 특히 《Missa prolationum》과 《Missa cuiusvis toni》는 15세기 대위법의 정점으로 평가받으며 후대 작곡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마쓰다이라 노부미쓰는 마쓰다이라 씨 당주로서 사료에서 실존이 확인되는 첫 인물이다. 출생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지만 확실하지 않고, 노부미쓰 이전의 계보는 불분명한 점이 많다.
노부미쓰는 미카와 국의 토호이자 벼슬아치로, 이와즈 성(현재의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이와즈 정)을 거점으로 하는 이와즈 마쓰다이라 가의 시조였다. 오닌의 난 무렵에는 무로마치 막부의 정소 집사인 이세 사다치카를 섬겼다고 전해진다.
1458년, 이마가와 씨의 분가인 세키구치 씨의 간랴쿠지 성(현재의 아이치현 도요카와시 나가사와 정)을 공격하여 함락시키고, 아들 마쓰다이라 지카노리를 성주로 임명했다. 이후 간랴쿠지 성 근처의 나가사와 성을 거점으로 삼아, 그 일족은 나가사와 마쓰다이라 가라고도 불렸다. 1461년에는 호쿠 성(현재의 아이치현 오카자키시 호쿠 정)의 야마시타 쇼자에몬을 멸망시켰다.
1465년, 미카와 슈고인 호소카와 나리유키의 지시에 따라 이세 사다치카의 벼슬아치로서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명으로 아카다 군의 잇키를 진압하였다. 그 공으로 후카미즈(현재의 아이치현 아카다 군 사쿠타 정 후카미즈) 등의 영지를 막부로부터 하사받았다.
도다 무네미쓰에게 딸을 시집보냈고, 오닌의 난에서는 동군에 속하여 잇시키 씨를 축출하였다. 서군파인 하타케야마 씨 일문의 하타케야마 가가노카미가 근거지를 둔 안쇼 성(현재의 아이치현 안조시)을 기습하여 함락시키고, 아들 마쓰다이라 미쓰시게를 사이고 요리쓰구의 사위로 삼아 오카자키 성도 세력하에 두었다.
전국 시대에 들어서면서 안쇼(안조)에 진출하는 등 서미카와를 중심으로 세력 기반을 확대하여, 센고쿠 다이묘로서의 마쓰다이라 씨의 기반을 구축하였다. 『도쿠가와 실기』, 『조야규문포고』에 따르면 48명의 자식이 있었다고 하며, 자식들을 분가시켜 각지에 배치했는데, 이들이 다케야, 안쇼(후의 마쓰다이라 종가), 가타하라, 오카자키(오쿠사), 고이(후카미즈), 노미, 마루네, 마키우치, 나가사와 마쓰다이라 가 등이다.
다키무라 만쇼지와 이와즈 신코묘지, 이와즈 묘신지를 건립하였다. 묘신지는 메이지 시대에 교토 시 나카교 구 엔푸쿠지 정의 엔푸쿠지와 사찰 이름을 교환하였다. 노부미쓰는 이와즈 성에서 사망하였고, 가독은 셋째 아들인 마쓰다이라 지카타다가 계승하였다.
2.1. 출생에 대하여
노부미쓰의 출생에 대해서는 2대 당주 마쓰다이라 야스치카의 아들이라는 설과 초대 당주 마쓰다이라 지카우지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또 그들의 적자, 둘째, 혹은 막내라고 하는 등 출생에 대해서 이설이 분분하다.
조부는 도쿠가와 아리치카(得川有親)라 여겨지며 생모는 가모 씨(賀茂氏) 계통의 마쓰다이라 노부시게(다로자에몬노죠太郎左衛門尉)의 딸이라고 한다. 형으로 마쓰다이라 노부히로(마쓰다이라 향 마쓰다이라 가의 실질상 시조)가 있다고 하지만 확실하지 않다.
당시의 자료에서는 닛타 씨(新田氏), 더러는 가모노 아소미(賀茂朝臣)를 칭하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실 노부미쓰는 마쓰다이라 가의 초대로서, 계보 등의 사료로 실재를 확인할 수 있는 것은 노부미쓰부터다. 노부미쓰 이전의 계보는 확실한 증거가 불충분하기 때문에 마쓰다이라 씨 발흥에 대한 사항은 검증되지 못한 부분이 많은 것이 실정이다.
2.2. 오닌의 난 이전
오닌의 난 (1467년) 이전에는 무로마치 막부 만도코로(政所)의 집사(執事)였던 이세 씨(伊勢氏)의 히칸(被官)이었다고 한다. 동생 마스치카(益親)도 1443년(가키쓰 3년)에 무로마치 막부 8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정실 도미코의 오빠인 히노 가쓰미쓰의 오미국 스가우라(菅浦)·오우라(大浦) 령의 다이칸(代官)으로서 교토로 이주했다고 한다.
노부미쓰는 무용에 뛰어나고 지략이 풍부하여 1421년(오에이 28년), 아버지(혹은 형)인 2대 당주 야스치카를 따라 미카와 이와즈 성(아이치현 오카자키시)을 공격하고, 그 후에는 이와즈 성에 머무르면서 우선 가모 군 도모에가와(巴川) 동안의 오규 성(大給城, 아이치 현 도요타시)을 공략했다. 다음으로 야하기가와(矢作川) 서안의 우에노성 성주 도다 씨에게 딸을 시집보내어 후일의 헤키카이 군 히라노(平野) 진출의 발판으로 삼았다.
1465년(간쇼 6년) 5월, 노부미쓰는 이세 사다치카의 히칸으로서 쇼군 아시카가 요시마사의 명에 의해 누카타군의 고쿠진(国人) 잇키(一揆)를 진정시켜서 그 영지는 노부미쓰의 지배하에 들어왔다(《지카모토 일기(親元日記)》).
2.3. 오닌의 난 이후
1471년(분메이 3년), 오닌의 난에 참전하여 이와즈에서 안쇼(安祥)로 진출했다. 야하기가와 서쪽 평야 지역의 요충지였던 야나다 하리마노카미(梁田播磨守)가 농성하는 안쇼 성을 거의 전투를 치르지 않고 계책을 써서 쉽게 공략했다. 또 오카자키성 성주 사이고 요리쓰구(西郷頼嗣)를 항복시키고, 그의 딸을 노부미쓰의 다섯째 아들인 미쓰시게(光重)와 결혼시켰다. 요리쓰구는 오카자키 성을 미쓰시게에게 양도하고 오쿠사(大草)에서 은거했다.
노부미쓰는 안쇼 성에서 사망했지만, 아들 딸을 합쳐 48명의 자식을 두었다고 전해진다. 자신의 딸과 미카와 국내 여러 가문과의 정략결혼을 통해 서 미카와 일대를 지배했다. 그의 서자들은 다케노야, 가타하라, 오쿠사, 나가사와, 노미, 고이, 후코즈 등으로 분가하여, 훗날 미카와 국내 누카타·호이·헤키카이 3군의 요지에 「18 마쓰다이라(혹은 14 마쓰다이라)」라고 불리는 일족 가문으로 발전했다. 이세 씨와 막부의 지지도 있었지만, 마쓰다이라 씨가 훗날 미카와 국을 지배하고 센고쿠 다이묘(戦国大名)로 성장하는 기반은 노부미쓰 시대에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2.4. 종교 활동
마쓰다이라 신코는 다키무라 만쇼지와 이와즈 신코묘지, 이와즈 묘신지를 건립하였다. 묘신지는 메이지 시대에 교토 나카교구 엔푸쿠지초의 엔푸쿠지와 사찰 이름을 교환하였다.
3. 생몰년에 대하여
노부미쓰의 생몰년에 대해서는 여러 설이 있어 확증이 없어 특정할 수 없는 실정이다.
* 1413년(오에이 20년) ~ 1488년 8월 29일(죠쿄 2년 7월 22일), 향년 76세 설
* 1404년(오에이 11년) ~ 1488년 8월 29일, 향년 85세 설
* 1401년(오에이 8년) ~ 1489년 8월 30일(죠쿄 3년 7월 23일), 향년 89세 설
다만, 1501년(분키 원년) 12월 26일의 다이주지 긴교식 정에 월당(신광)의 월기가 22일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므로, 제삿날(월명일)이 22일인 것은 확실하다. 참고로 『조야구문포고』가 인용하는 자료에서는, 『혼다씨 소장어계도』가 "장향 2년 7월 3일", 룡해원 과거장이 "장향 2년 2월 22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장향 2년 7월 22일"이라고 기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