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쓰다이라 요시자네
1. 개요
마쓰다이라 요시자네는 일본 에도 시대의 다이묘이다. 마쓰다이라 요시카타의 장남으로 태어나 1721년 아버지의 사망으로 야나가와 번의 번주가 되었으나, 12세의 어린 나이에 요절하였다. 정실과 상속자가 없어 야나가와 번은 개역되었고, 이후 오와리 번에서 마쓰다이라 미치하루가 가문을 재흥했다.
| 이름 | 마쓰다이라 요시자네 |
|---|---|
| 출생 | 1718년 6월 28일 |
| 사망 | 1729년 6월 1일 |
| 묘소 | 도쿄도분쿄구고이시카와의 덴쓰인 |
| 어린 시절 이름 | 구마 |
| 계명 | 젠교인덴 혼요소쿠쇼겐넨다이고지 |
| 관위 | 종5위 하, 종4위 하 시키부다이후, 시종 |
| 봉록 | 무쓰야나가와 번 번주 |
| 씨족 | 오쿠보 마쓰다이라 가문 |
| 아버지 | 마쓰다이라 요시카타 |
| 어머니 | 아사노 쓰나가사의 딸, 오산 |
| 형제 | 요시자네, 지카히메 |
| 배우자 | 없음 |
| 자녀 | 없음 |
| 주군 | 도쿠가와 요시무네 |
|---|---|
| 재임 기간 | 1721년 ~ 1729년 |
| 전임자 | 마쓰다이라 요시카타 |
| 후임자 | 마쓰다이라 미치하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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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나가와번주 (무쓰국) -
마쓰마에 아키히로
마쓰마에 아키히로는 에도 시대 마쓰마에 번의 9대 번주로, 러시아 및 영국과의 북방 국경 문제에 직면했으며 에조 지역의 영토 축소와 야나가와 번 이봉을 겪고 사망했다. -
야나가와번주 (무쓰국) -
도쿠가와 무네하루
도쿠가와 무네하루는 에도 시대 오와리번의 7대 번주로, 쇼군의 규제 완화 정책에 반대하며 독자적인 정책을 펼쳤으나 막부와의 갈등으로 은퇴 후 칩거했고, 사후 명예가 회복되었으며 그의 생애는 대중문화 작품에서 다양하게 그려진다. -
1729년 사망 -
리처드 스틸
아일랜드 출신의 리처드 스틸은 작가, 극작가, 언론인, 정치인으로, 『태틀러』, 『스펙테이터』, 『가디언』 등의 잡지 창간과 희극 작품 활동을 통해 명성을 얻었으며 휘그당 소속 국회의원으로도 활동했다. -
1729년 사망 -
윌리엄 버넷
윌리엄 버넷은 길버트 버넷의 아들로 옥스퍼드 대학교 퇴학 후 변호사 자격을 얻었으며, 뉴욕 및 뉴저지, 매사추세츠 및 뉴햄프셔 식민지 총독을 역임하다가 마차 사고로 사망했다. -
신판 다이묘 -
마쓰다이라 요리즈미
마쓰다이라 요리즈미는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자이자 도쿠가와 요시무네의 삼촌으로, 이요 사이조 3만 석을 받아 상근 교대를 하지 않는 정부 다이묘가 되었으며, 그의 사후 가독은 아들 도쿠가와 요리치가 계승하였다. -
신판 다이묘 -
도쿠가와 요시나오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아홉 번째 아들인 도쿠가와 요시나오는 오와리 도쿠가와 가문의 초대 당주로서, 오와리 번주 재임 동안 경제 발전, 문화 사업, 무예 연마 등 다양한 분야에서 업적을 남겼다.
2. 생애
마쓰다이라 요시카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아사노 쓰나나가의 딸 오사미(현성원)이다. 어릴 적 이름은 구마였다. 교호 5년(1720년) 11월 25일 관례를 치렀다. 묘소는 도쿄도 분쿄구 고이시카와의 덴츠인이다.
2.1. 유년기
2대 번주 마쓰다이라 요시카타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아사노 쓰나나가의 딸 오사미(현성원)이다. 어릴 적 이름은 구마였다.
2.2. 번주 계승과 사망
교호 6년(1721년) 5월 2일, 아버지 마쓰다이라 요시카타가 사망하자 그 뒤를 이어 야나가와 번의 번주가 되었다. 교호 8년(1723년) 1월 4일, 오와리 번주 도쿠가와 쓰구토모를 처음 알현하였다. 그러나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번의 정치는 가로(家老)들이 담당하였다. 교호 11년(1726년) 5월 8일, 8대 쇼군 도쿠가와 요시무네를 처음으로 알현하였다. 교호 13년(1728년) 12월에 서임되었으나, 이듬해 5월 5일, 원래부터 병약했던 탓에 1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실도, 상속자도 없었기에 료가와 번은 개역되었다. 같은 해 8월 11일, 본가인 오와리 번에서 마쓰다이라 미치하루(후의 도쿠가와 무네하루)가 재흥하게 되었다.
2.3. 가문 단절과 재흥
마쓰다이라 요시카타(松平義方)의 장남으로 태어났으며, 어머니는 아사노 쓰나나가(浅野綱長)의 딸 오사미(현성원)이다. 교호(享保) 6년(1721년) 5월 2일, 아버지 요시카타가 사망하여 가독을 상속받았다. 교호(享保) 13년(1728년) 12월에 서임되었으나, 이듬해 5월 5일, 원래부터 병약했던 탓에 12세의 나이로 요절하였다.
정실과 상속자가 없었기에 료가와 번(梁川藩)은 개역(改易)되었다. 같은 해 8월 11일, 본가인 오와리 번(尾張藩)에서 마쓰다이라 미치하루(松平通春)(후의 도쿠가와 무네하루(徳川宗春))가 가문을 재흥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