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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아우이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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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마쿠아우이틀은 메소아메리카에서 사용된 흑요석 칼날이 달린 무기이다. 아즈텍보다 먼저 등장했으며, 길이와 칼날 수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었다. 이 무기는 전투에서 말의 목을 벨 정도로 강력했으며, 포로를 생포하는 데에도 사용되었다. 흑요석은 강철보다 깨지기 쉬운 단점이 있었지만, 실험 고고학을 통해 그 위력이 입증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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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쿠아우이틀
무기 정보
코덱스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마쿠아후이틀 재현품 두 개.
코덱스를 기반으로 한 현대적인 마쿠아후이틀 재현품 두 개.
종류
사용 시기형성기부터 후기 고전기 (기원전 1000년–서기 1570년)
사용 국가메소아메리카 문명, 아즈텍 포함
스페인의 인도인 보조병
사용된 전쟁아즈텍 확장주의, 메소아메리카 전쟁
스페인의 아즈텍 제국 정복
무게2.0–3.0 kg
길이90–120 cm
날 형태곧고, 두껍고, 양날, 뾰족함
손잡이 형태양손으로 휘두르는 형태
칼집 형태알 수 없음
머리 형태사다리꼴
자루 형태곧은 나무, 가죽으로 덮임
명칭
나와틀어macuahuitl [maːˈkʷawit͡ɬ]

2. 구조 및 형태

마쿠아우이틀(māccuahuitlnah)[3]아즈텍을 비롯한 메소아메리카 문명에서 사용된 독특한 형태의 무기이다.[4] 기본적인 구조는 나무로 만든 몸체 양 측면에 날카롭게 가공된 흑요석 조각들을 박아 넣은 형태이다.[10] 이 흑요석 날은 화산 유리로 만들어져 매우 예리했으며[5], 적에게 심각한 열상을 입힐 수 있었다.[6]

일반적인 검이나 곤봉과는 다른 독특한 구조를 가지며[1], 일부에서는 "톱날 검"과 유사하다고 보기도 한다.[7] 마쿠아우이틀은 크기와 형태가 다양했으며, 한 손 또는 양손으로 사용되었고 몸체의 모양도 사각형, 타원형, 뾰족한 형태 등 여러 가지가 있었다. 특히 양손용은 사람 키만큼 큰 경우도 있었다고 전해진다.[12] 흑요석 칼날은 나무 몸체에 파인 홈에 역청과 같은 천연 접착제를 사용하여 단단히 고정되었으며[10],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쉽게 빠지거나 부러지지 않았다고 한다.[11][12] 칼날의 배열 방식 역시 일렬로 촘촘히 박힌 형태와 약간의 간격을 두고 박힌 형태 등 차이가 있었다.[11]

2. 1. 종류

국립 인류학 및 역사 학교(ENAH)의 고고학자 마르코 세르베라 오브레곤에 따르면, 이 무기에는 크게 두 가지 종류가 있었다. 하나는 일반적인 마쿠아우이틀로, 길이가 약 70cm에서 80cm 사이이며 각 면에 6~8개의 흑요석 칼날이 달렸다. 다른 하나는 마쿠아우이츠옥틀리로, 길이가 약 50cm 정도로 더 작고 4개의 흑요석 칼날을 가진 곤봉 형태였다.[13]

2. 1. 1. 마쿠아우이틀

19세기에 중세 학자 아킬레 주비날이 그린 ''마드리드 왕립 무기고 카탈로그''의 그림. 원본은 1884년 화재로 소실되었다.


마쿠아우이틀(māccuahuitlnci, 다른 철자 변형으로는 mākkwawitlnhe과 mācquahuitlnci이 있으며, 복수는 māccuahuimehnci)[3]은 일종의 마카나로, 아즈텍 군대와 중앙 멕시코의 다른 문화권에서 널리 사용된 무기였다. 특히 16세기 스페인의 아즈텍 정복 과정에서 그 존재가 알려졌다. 당시 기록된 다른 군사 장비로는 둥근 방패 (chīmallinci), 활 (tlahuītōllinci), 창 던지는 도구 (ahtlatlnci) 등이 있다.[4] 마쿠아우이틀의 측면에는 흑요석(화산 유리)으로 만든 각기둥 칼날이 박혀 있는데, 이 흑요석 날은 고품질 강철 면도날보다 더 날카로울 수 있다.[5]

양쪽에 박힌 흑요석 칼날은 심각한 열상을 입힐 수 있었다. 이 칼날들은 날이나 가시 형태로 만들거나, 비늘처럼 보이는 둥근 디자인으로 쪼개어 만들기도 했다.[6] 마쿠아우이틀은 엄밀히 말해 검이나 곤봉은 아니지만, 유럽식 광선검과 유사한 형태를 띤다.[1] 역사학자 존 폴은 이 무기를 "일종의 톱날 검"으로 정의했다.[7]

16세기 ''피렌체 코덱스'' (Vol. IX)에 묘사된 아즈텍 전사들. 각 전사는 마쿠아우이틀을 휘두르고 있다.


정복자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에 따르면, 마쿠아우이틀의 길이는 0.91m에서 1.22m 사이였고, 폭은 75mm 정도였다. 각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여 있어 날카로운 부싯돌 조각이나 흑요석을 삽입하고 접착제로 단단히 고정했다.[8] 역사학자 존 폴은 자신의 연구를 바탕으로 길이가 1m가 조금 넘는다고 밝혔으나, 양손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더 큰 모델도 존재했다고 언급했다.[9]

역사학자 마르코 세르베라 오브레곤의 연구에 따르면, 각각 약 3cm 길이의 날카로운 흑요석 조각들을 천연 접착제인 역청을 사용하여 평평한 나무 몸체에 부착했다.[10]

흑요석 칼날의 줄은 때때로 연속적이지 않고 측면에 틈이 있는 경우도 있었지만, 다른 경우에는 서로 가깝게 배치되어 단일한 칼날처럼 보이기도 했다.[11] 스페인 사람들은 마쿠아우이틀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칼날을 뽑거나 부러뜨리기 어려웠다고 기록했다. 마쿠아우이틀은 한 손 또는 양손으로 잡을 수 있었으며, 사각형, 타원형, 또는 뾰족한 형태로 만들어졌다. 양손으로 잡는 마쿠아우이틀은 "사람만큼 키가 크다"고 묘사되기도 했다.[12]

2. 1. 2. 마쿠아우이츠옥틀리

국립 인류학 및 역사 학교의 고고학자 마르코 세르베라 오브레곤에 따르면, 마쿠아우이틀 계열 무기에는 두 가지 주요 형태가 있었다. 하나는 길이가 약 70cm에서 80cm 사이이고 각 면에 6~8개의 칼날이 달린 일반적인 마쿠아우이틀이며, 다른 하나가 바로 마쿠아우이츠옥틀리이다. 마쿠아우이츠옥틀리는 길이가 약 50cm 정도로 더 짧고, 4개의 흑요석 칼날을 가진 작은 곤봉 형태의 무기였다.[13]

3. 역사

마쿠아우이틀은 아즈텍 문명 이전부터 존재했으며, 흑요석 조각으로 만든 도구는 초기 메소아메리카인들이 사용했다.[18] 흑요석 날을 박아 만든 이 무기는 서기 1000년경부터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며,[11][20] 마야 문명의 유적에서도 그 증거가 발견된다.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화 시기에는 아즈텍, 믹스텍, 타라스칸, 톨텍 등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22] 스페인 정복자를 도왔던 인디언 지원군 역시 마쿠아우이틀을 사용했지만, 점차 위신이 높은 스페인 검을 선호하게 되었다.

3. 1. 기원

''틀락스칼라 연대기''는 과테말라 정복 당시의 전투를 묘사한다. 정복자가 이끄는 인디언 지원군(왼쪽)과 마야인(오른쪽) 모두 마쿠아우이틀을 휘두르고 있다.


마쿠아우이틀은 아즈텍 문명보다 더 이전에 등장했다. 흑요석 조각으로 만든 도구는 초기 메소아메리카인들이 사용했으며, 아즈텍 유적지에서도 흑요석으로 만든 도자기, 칼, 낫, 긁개, 드릴, 면도칼, 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18] 흑요석 광산은 멕시코 계곡 근처와 계곡 북쪽 산맥에 여러 곳 있었는데,[19] 이 중에는 풍부한 흑요석 매장량 때문에 '면도칼 산맥'이라는 뜻의 시에라 데 라스 나바하스도 있었다.

마쿠아우이틀이 무기로 사용되기 시작한 것은 서기 1000년경으로 추정된다. 마야 문명의 유적인 치첸이트사의 조각에는 양쪽에 날이 튀어나온 곤봉 형태의 마쿠아우이틀을 든 전사가 묘사되어 있다. 또 다른 벽화에서는 한쪽에는 여러 개의 날이 있고 다른 쪽에는 날카로운 끝이 있는 곤봉을 든 전사가 보이는데, 이 역시 마쿠아우이틀의 변형된 형태일 수 있다.[11][20] 올메크 시대에도 마쿠아우이틀과 유사한 형태의 무기가 존재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1]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화 시기에 마쿠아우이틀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서 널리 사용되었다. 아즈텍, 믹스텍, 타라스칸, 톨텍 등 여러 문명에서 사용 기록이 남아있다.[22] 스페인 정복자들을 도왔던 인디언 지원군 역시 마쿠아우이틀을 흔히 사용했지만, 점차 스페인 검을 더 선호하게 되었다. 당시 메소아메리카 원주민이 유럽 무기를 소지하려면 특별 허가가 필요했기 때문에, 금속으로 만들어진 스페인 검은 원주민들에게 마쿠아우이틀보다 더 높은 위신을 상징하는 것으로 여겨졌다.

3. 2. 사용



마쿠아우이틀은 아즈텍 문명보다 먼저 등장했다. 흑요석 조각으로 만든 도구는 초기 메소아메리카인들이 사용했으며, 아즈텍 유적지에서도 흑요석으로 만든 도자기, 칼, 낫, 긁개, 드릴, 면도칼, 화살촉 등이 발견되었다.[18] 멕시코 계곡과 그 북쪽 산맥 근처에는 여러 흑요석 광산이 있었다.[19] 이 중에는 흑요석 매장량 때문에 이름 붙여진 시에라 데 라스 나바하스(면도칼 산맥)도 있었다.

마쿠아우이틀이 무기로 사용된 것은 서기 1천년경으로 추정된다. 치첸이트사의 마야 조각에는 양쪽에 날이 튀어나온 곤봉 형태의 마쿠아우이틀을 든 전사가 묘사되어 있다. 한 벽화에서는 한쪽에는 여러 날이 있고 다른 쪽에는 날카로운 끝이 있는 곤봉을 든 전사가 보이는데, 이것 또한 마쿠아우이틀의 한 변형일 수 있다.[11][20] 올메크 시대의 마쿠아우이틀 유형에 대한 증언도 존재한다.[21]

아메리카 대륙의 스페인 식민지화 시기에 마쿠아우이틀은 메소아메리카 전역에 널리 퍼져 있었으며, 아즈텍, 믹스텍, 타라스칸, 톨텍 등 여러 문명에서 사용된 기록이 있다.[22] 스페인 군대에 소속된 인디언 지원군도 마쿠아우이틀을 흔히 사용했지만, 스페인 검을 더 선호하는 경향이 있었다. 스페인에 복무하는 메소아메리카인들은 유럽 무기를 소지하려면 특별 허가를 받아야 했기 때문에, 금속 검은 유럽인뿐만 아니라 원주민 사이에서도 마쿠아우이틀보다 더 높은 위신을 상징했다.

4. 전투에서의 활용



마쿠아우이틀은 아즈텍 전사들이 사용한 대표적인 근접 무기였다. 양쪽에 박힌 날카로운 흑요석 칼날은 사람이나 동물의 신체를 절단할 수 있을 정도의 위력을 지녔으며, 이는 당시 아즈텍을 침략했던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23][24][25]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와 같은 기록자들은 마쿠아우이틀로 말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리는 등 그 파괴력을 생생하게 증언했다.

16세기 플로렌스 코덱스에 그려진 마쿠아우이틀을 휘두르는 아즈텍 전사들.


단순한 살상 무기를 넘어, 마쿠아우이틀은 아즈텍의 독특한 전쟁 문화와 밀접한 관련이 있었다. 나우아 문화권, 특히 아즈텍에서는 인신 제사를 위한 포로 확보가 전쟁의 중요한 목적 중 하나였다. 엘리트 전사 계급인 ''쿠아우호셀로틀''에 속하려면 전장에서 20명의 포로를 사로잡아야 할 정도였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쿠아우이틀은 적을 죽이지 않고 제압하여 생포하는 데에도 유용하게 활용되었다. 일부 마쿠아우이틀은 칼날 사이에 간격을 두어 타격 시 상처 깊이를 조절하거나, 무기의 넓고 평평한 면을 몽둥이처럼 사용해 상대를 기절시키는 방식으로 쓰였다. 이러한 포로 생포 기술은 아즈텍의 텔포치칼리(전사 학교)에서 중요한 교육 과정이었다.[26]

하지만 마쿠아우이틀은 유럽의 강철 무기와 비교했을 때 몇 가지 단점도 지녔다. 흑요석 칼날은 강철보다 훨씬 깨지기 쉬웠고, 특히 강철 갑옷이나 다른 단단한 물체와 부딪혔을 때 쉽게 손상되었다. 또한 유럽 군대가 주로 착용하던 사슬 갑옷을 효과적으로 관통하기 어려웠다. 무기를 휘두르는 데 비교적 넓은 공간이 필요했기 때문에, 아즈텍 전사들은 밀집 대형보다는 개별 전투에 유리한 느슨한 대형으로 싸우는 경향이 있었다.[27]

4. 1. 위력



마쿠아우이틀은 양쪽에 박힌 흑요석 칼날로 심각한 열상을 입힐 수 있었다. 이 흑요석 조각들은 날카로운 각기둥 형태로 가공되었으며, 매우 예리하여 고품질 강철 면도날보다 더 날카로운 날을 만들 수 있었다.[5][6] 무기의 형태는 검이나 곤봉과는 다르지만, 유럽의 광선검과 유사한 측면이 있으며[1], 역사학자 존 폴은 이를 "일종의 톱날 검"으로 정의했다.[7]

정복자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에 따르면, 마쿠아우이틀의 길이는 0.91m에서 1.22m 사이였고, 폭은 75mm 정도였다. 각 가장자리에는 홈이 파여 있어 날카로운 흑요석 조각을 역청과 같은 천연 접착제로 단단히 고정했다.[8][10] 역사학자 존 폴은 길이가 1m가 조금 넘는다고 보았으나, 양손으로 사용하도록 설계된 더 큰 모델도 있었다고 언급했다.[9] 흑요석 칼날 조각의 길이는 각각 약 3cm였다.[10]

칼날의 배열 방식은 다양했다. 때로는 칼날 사이에 간격을 두어 틈이 있었지만, 다른 경우에는 칼날을 서로 가깝게 배치하여 하나의 연속된 날처럼 보이게 만들었다.[11] 스페인 사람들은 마쿠아우이틀이 매우 정교하게 제작되어 칼날을 뽑거나 부러뜨리기 어렵다고 기록했다. 마쿠아우이틀은 한 손 또는 양손으로 사용할 수 있었으며, 형태는 사각형, 타원형, 뾰족한 모양 등 다양했다. 양손용 마쿠아우이틀은 "사람 키만큼 크다"고 묘사될 정도로 거대했다.[12]

마쿠아우이틀의 위력은 스페인 정복자들의 기록에도 잘 나타나 있다. 베르날 디아스 델 카스티요는 마쿠아우이틀로 말의 목을 단번에 베어버릴 수 있었다고 증언했다.[18] 그는 페드로 데 모론이라는 기병이 아즈텍 전사들에게 공격당했을 때의 상황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페드로 데 모론es은 매우 훌륭한 기수였는데, 다른 세 명의 기병과 함께 적진으로 돌격했을 때 인디언들이 그의 창을 잡고 놓아주지 않았고, 다른 인디언들은 넓은 칼로 그를 베어 심한 부상을 입혔으며, 그 다음 암말을 베어 목을 썰어 피부만 남게 하고, 그 말은 죽어 쓰러졌다.[23]

에르난 코르테스의 동료가 쓴 '익명의 정복자'라는 기록에도 비슷한 내용이 있다.

:그들은 이런 종류의 칼을 가지고 있는데, 나무로 만들어졌고 양손 칼과 비슷하지만 자루가 그렇게 길지는 않다. 폭이 약 세 손가락 정도이다. 가장자리는 홈이 파여 있고, 홈 안에는 톨레도 강철 칼날처럼 베는 돌칼을 넣는다. 나는 어느 날 한 인디언이 기병과 싸우는 것을 보았는데, 그 인디언은 상대 말의 가슴을 쳐서 내장을 드러내 죽였고 그 자리에서 쓰러졌다. 그리고 같은 날 나는 또 다른 인디언이 다른 말의 목을 쳐서 발치에 죽어 쓰러지는 것을 보았다.[24]

프란시스코 데 아길라르 역시 마쿠아우이틀의 파괴력을 목격했다.

:그들은 ... 몽둥이와 칼과 많은 수의 활과 화살을 사용했다 ... 한 인디언이 한 번의 타격으로 크리스토발 데 올리드의 말 목을 모두 베어 죽였다. 다른 인디언은 두 번째 기병을 베어 말의 족근골을 잘랐고, 이 말도 죽어 쓰러졌다. 이 초병이 경보를 울리자마자 그들은 모두 무기를 들고 나와 우리를 막아섰고, 격노한 채로 우리를 쫓아와 화살, 창, 돌을 쏘고 칼로 우리를 다치게 했다. 여기에서 많은 스페인 사람들이 죽었고, 일부는 죽었고, 일부는 부상을 입었으며, 다른 사람들은 부상을 입지 않았지만 공포에 질려 기절했다.[25]

나우아 문화에서 인신 제사는 중요한 의식이었으며, 전쟁의 주요 목적 중 하나는 제물로 바칠 적 전사를 산 채로 사로잡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아즈텍의 엘리트 ''쿠아우호셀로틀'' 전사 사회로 진입하려면 전장에서 산 채로 20명의 포로를 잡아야 했다. 따라서 마쿠아우이틀은 포로를 잡는 데 유용한 도구가 되도록 설계된 몇 가지 특징을 보여준다. 많은 코덱스 삽화에서 볼 수 있듯이, 연속된 칼날 대신 간격을 둔 칼날을 장착하면 단일 타격으로 인한 상처 깊이를 의도적으로 제한하고, 무거운 나무 구조는 약해진 상대를 무기의 평평한 면으로 쉽게 몽둥이질하여 기절시킬 수 있다. 칼날이 없는 마쿠아우이틀을 스파링 클럽으로 사용하여 상대를 무력화시키는 기술은 아즈텍 텔포치칼리 학교에서 어릴 때부터 가르쳤다.[26]

마쿠아우이틀은 유럽 강철 칼에 비해 전투에서 많은 단점을 가지고 있었다. 더 날카로움에도 불구하고, 프리즘 모양의 흑요석은 강철보다 훨씬 더 깨지기 쉽다. 마쿠아우이틀에 사용된 유형의 흑요석 칼날은 다른 흑요석 칼날, 강철 칼 또는 판갑과의 충돌로 인해 깨지는 경향이 있었다. 흑요석 칼날은 또한 유럽의 사슬 갑옷을 관통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마쿠아우이틀에 사용된 얇고 교체 가능한 칼날은 뼈나 나무에 반복적으로 부딪히면 쉽게 무뎌지거나 깨졌기 때문에, 이 무기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것이 중요했다. 몽둥이를 들어 휘두르는 데는 칼로 찌르는 것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린다. 또한 더 많은 공간이 필요하므로 전사들은 느슨한 대형으로 진격하여 일대일로 싸웠다.[27]

4. 2. 한계



마쿠아우이틀은 유럽의 강철 검과 비교했을 때 전투에서 여러 약점을 가지고 있었다. 흑요석 칼날은 강철보다 훨씬 깨지기 쉬웠으며[27], 다른 흑요석 칼날이나 강철 검, 또는 판갑과 부딪힐 경우 부서지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유럽 군대가 주로 사용하던 사슬 갑옷을 효과적으로 관통하기 어려웠다.[27]

마쿠아우이틀에 사용된 얇고 교체 가능한 흑요석 칼날은 뼈나 단단한 나무 등에 반복적으로 부딪히면 쉽게 무뎌지거나 깨질 수 있었기 때문에, 이를 능숙하게 다루는 기술이 중요했다.[27] 무기 자체의 무게와 형태로 인해, 찌르는 방식의 검보다 휘두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넓은 공간을 필요로 했다. 이러한 특성 때문에 아즈텍 전사들은 밀집 대형보다는 개별 전투에 유리한 느슨한 대형을 이루어 싸우는 경향이 있었다.[27]

5. 실험 고고학

히스토리 채널과 디스커버리 채널의 다큐멘터리 쇼에서는 마쿠아우이틀의 효능을 입증하기 위해 복제품을 제작하여 쇠고기 측면에 테스트를 진행했다. 히스토리 채널의 프로그램 ''워리어스''에서는 특수 부대 요원이자 무술가인 테리 섀퍼트가 마쿠아우이틀을 사용하다가 백스윙 동작으로 인해 자신의 왼쪽 다리 뒤쪽에 부상을 입기도 했다.[28]

SpikeTV의 리얼리티 프로그램 ''데들리스트 워리어''에서도 복제품이 제작되어 실험에 사용되었다. 이 실험에서는 말의 골격과 탄도 젤을 이용하여 만든 말 머리 모형을 대상으로 테스트가 진행되었다. 배우이자 무술가인 에데르 사울 로페스는 세 번의 휘두르기로 모형의 머리를 자르는 데 성공했다. 실험 결과, 복제품 마쿠아우이틀은 휘두른 후 충격 시 뒤로 끌어당겨 톱질하는 듯한 동작을 할 때 가장 효과적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 때문에 프로그램의 컴퓨터 프로그래머인 맥스 가이거는 이 무기를 "흑요석 전기톱"이라고 언급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는 쇼에서 사용된 복제품의 흑요석 날이, 마드리드 표본에서 볼 수 있는 것과 같이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프리즘 흑요석 칼날에 비해 조잡했기 때문에 나타난 결과일 수도 있다.[29]

참조

[1] 뉴스 The Fearsome Close-Quarter Combat Weapon of the Aztecs https://web.archive.[...] 2018-05-27
[2] 서적 Escultura Olmeca de San Lorenzo Tenochtitlan 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 Instituto de Investigaciones Antropologicas 2004
[3] 백과사전 Macuahuitl http://whp.uoregon.e[...] Wired Humanities Projects, University of Oregon 2018-05-29
[4] 서적 1961
[5] 간행물 Ancient Technology in Contemporary Surgery 1982-03
[6] 서적 1962
[7] 서적 Aztec Warrior: AD 1325–1521 https://books.google[...] Bloomsbury 2012-05-20
[8] 문서 Bernal Díaz del Castillo's Verdadera Historia de la Conquista de Nueva España
[9] 서적 Aztec Warrior: AD 1325–1521 https://books.google[...] Bloomsbury 2012-05-20
[10] 웹사이트 These Peculiar Aztec ‘Swords’ Struck Fear Into the Hearts of the Conquistadors https://www.thevinta[...]
[11] 서적 1988
[12] 서적 1988
[13] 기타 2006
[14] 서적 1992
[15] 기타 2006
[16] 웹사이트 El macuahuitl, arqueologia experimental http://arqueomilitar[...] 2009-02-19
[17] Facebook https://www.facebook[...]
[18] 서적 1996
[19] 서적 1996
[20] 간행물 The macuahuitl: an innovative weapon of the Late Post-Classic in Mesoamerica https://web.archive.[...] 2010-10-26
[21] 서적 Escultura Olmeca de San Lorenzo Tenochtitlan Universidad Nacional Autonoma de Mexico, Instituto de Investigaciones Antropologicas 2004
[22] 기타 2006
[23] 서적
[24] 웹사이트 Narrative of Some Things of New Spain and of the Great City of Temestitán The Cortés Society http://www.famsi.org[...] 1917
[25] 서적 untitled account
[26] 서적 The Essential Codex Mendoza UCal Press 1997
[27] 서적 2000
[28] 웹사이트 "Warriors" Mayan Armageddon (TV Episode 2009) https://www.imdb.com[...] 2018-05-29
[29] 웹사이트 Aztec Jaguar vs. Zande Warrior https://www.imdb.com[...] 2018-05-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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