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키노 나리사다 (1635년)
1. 개요
마키노 나리사다(1635년)는 에도 시대 초기의 하타모토이자 다이묘로,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측근으로 권력을 누렸다. 1635년생으로, 1681년 에도 막부에서 처음 생긴 측용인 직책을 맡아 쓰나요시 정권을 지탱했다. 시모사 세키야도 번주를 거쳐 7만 3천 석 영지를 받았다. 1693년 은거 후 1712년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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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마키노 나리사다 (牧野 成貞) |
|---|---|
| 가명 | 구란도, 효부 (蔵人、兵部) |
| 법명 | 다이무 (大夢) |
| 계명 | 조이코세쓰도코인 (長威虎雪東光院) |
| 출생 | 간에이 11년 11월 29일 (1635년 1월 17일) |
| 사망 | 쇼토쿠 2년 6월 5일 (1712년 7월 8일) |
| 출생지 | 에도 |
| 묘소 | 도쿄도스미다구 지토세의 요진지 |
| 관위 | 종4위하・빈고노카미, 시종 |
| 막부 | 에도 막부소바요닌 |
| 섬긴 주인 | 도쿠가와 쓰나요시 |
| 가문 | 미카와 마키노 씨 |
| 아버지 | 마키노 요시나리 |
|---|---|
| 어머니 | 아사쿠라 노부마사의 딸 (혹은 아사쿠라 자이시게의 딸) |
| 배우자 | 정실: 오토 아구리 (오토 겐바 요시카쓰의 딸) 측실: 후지타 씨 |
| 자녀 | 마쓰코 (나가이 사다키요의 부인), 야스 (마키노 나리토키의 부인), 가메, 사다미치 |
| 양자 | 나리토키, 나리하루', 하쓰히메 (도다 우지나리의 부인), 여자 (로쿠고 마사하루의 부인), 여자 (야시로 다다토모의 부인) |
| 초기 직위 | 고즈케다테바야시 번사 |
|---|---|
| 이후 직위 | 시모사세키야도 번 번주 |
| 영지 | 히타치국의 다이묘 |
| 세키야도 번주 | 초대 |
| 번 | 세키야도 번 |
|---|---|
| 번주 | 초대 번주 |
| 이전 번주 | 구제 시게유키 |
| 다음 번주 | 마키노 나리하루 |
| 재임 기간 | 1683년 ~ 1695년 |
| 임명 기간 | 1681년 ~ 1695년 |
|---|---|
| 이전 소바요닌 | 마쓰다이라 다다치카 |
-
히타치국의 번주 -
아사노 나가마사
아사노 나가마사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이자 다이묘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측근으로 활동하며 도요토미 정권의 오봉행 중 한 명으로서 정권 안정과 임진왜란 수행에 기여했으나, 그의 후손 아사노 나가노리는 아코 사건으로 아사노 가문의 몰락에 영향을 미쳤다. -
히타치국의 번주 -
마쓰다이라 요리유키 (1858년)
에도 시대 말기에서 메이지 시대 초기에 걸쳐 활약한 마쓰다이라 요리유키는 도쿠가와 나리아키의 아들로 태어나 마쓰다이라 요리마사의 양자가 되었고, 폐번치현 후 마쓰카와 현의 현 지사를 역임했으나 16세에 요절했다. -
마키노씨 -
마키노 사다미치
마키노 사다미치는 18세기 일본의 다이묘로, 교토 쇼시다이를 역임하고 가사마 번으로 전봉되었으며, 43세에 사망했다. -
마키노씨 -
나가미네번
나가미네번은 마키노 다다나리가 영주로 임명되어 성립되었으나, 그가 다른 번으로 이봉되면서 2년 만에 폐지된 에치고국의 번이다. -
1635년 출생 -
윤지완
윤지완은 조선시대 외교관으로 1682년 숙종의 명령을 받아 일본에 파견되어 조선과 일본 간 무역을 위한 정치적 기반을 구축하고 양국 관계 정상화에 기여했으며, 이조판서 윤강의 아들이다. -
1635년 출생 -
헨리 모건
헨리 모건은 17세기 카리브해에서 스페인 제국을 공격하며 명성을 얻은 웨일스 출신의 사략선 선장이자 해적이며, 후에 자메이카의 부총독을 역임했고, 그의 이름은 럼주 브랜드 '캡틴 모건'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2. 생애
1667년 장녀 마쓰코, 1669년 차녀 안, 1671년 삼녀 가메가 태어났다.
1688년 4월 21일부터 마키노 저택에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방문하는 횟수가 늘어났다(총 32회, 이 중 게이쇼인 동반 13회, 게이쇼인 단독 방문 별도 3회).
2.1. 출생과 초기 이력
간에이 11년 11월 29일(1635년 1월 17일), 하타모토이자 서원번두였던 마키노 나리사다(나리시게라고도 함)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머니는 아사쿠라 노부마사의 딸 (아사쿠라 아리시게의 딸이라고도 함)이다. 아버지 나리시게는 에치고나가오카번의 영주 마키노 타다나리의 동생이자, 고즈케오고번의 영주 마키노 야스나리의 셋째 아들이었다.
게이안 2년 (1649년), 제3대 장군 도쿠가와 이에미쓰에게 처음으로 어목견을 받았다. 게이안 3년 12월 19일(1651년 2월 9일)에는 원복을 치렀다.
만지 3년 (1660년),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근신(근시)이 되어 간다 저택에 출사했다. 이듬해 쓰나요시가 가나야마 번의 영주로 분가하자, 쓰나요시의 주자반으로 섬겼다.
간분 8년 (1668년), 제4대 쇼군 도쿠가와 이에쓰나에게 처음으로 어목견을 받았다. 간분 10년 (1670년) 12월, 가로로 발탁되었으며, 영지 3,000석을 받았다.
2.2. 도쿠가와 쓰나요시 시대
엔포 8년(1680년) 5월, 도쿠가와 쓰나요시가 쇼군 세자가 되자, 나리사다도 이에 따라 쓰나요시의 측근이 되었다. 도쿠가와 이에쓰나 사망 후, 히타치 국 내 1만 3000석의 다이묘(성주)가 되었다 (후에 2만 석 가증).
덴와 원년(1681년) 12월, "어측어용인"으로 임명되었다. 이는 에도 막부에서 처음으로 생긴 측용인이라는 직책이며, 이후 쓰나요시의 최측근으로서 초기 쓰나요시 정권을 지탱했다.
덴와 3년(1683년), 시모사세키야도번으로 이봉되어, 시모사 국(가쓰시카, 소마, 사루시마, 오카다 군), 무사시 국, 히타치 국을 합쳐 2만 석이 가증된 5만 3000석을 영유했다. 관위도 종4위하·빈고수·지주로 승진했다.
조쿄 원년(1684년), 다이로·호리타 마사토시가 암살된 것을 계기로, 로주의 어용방이 쇼군의 거소에서 멀어지면서, 쇼군과 로주의 중개역으로서 측용인인 나리사다가 큰 힘을 가지게 되었다.
겐로쿠 원년(1688년), 이즈미, 시모사, 히타치, 시모노를 합쳐 7만 3000석에 봉해졌다.
2.3. 은거와 죽음
겐로쿠 6년(1693년) 10월 27일, 은거를 청원했다. 겐로쿠 8년(1695년) 11월 29일에는 은거하여 양자인 나리하루에게 가독을 양도했다. 쓰나요시는 가독을 상속받은 지 얼마 안 된 나리하루에게 특별한 공로가 없음에도 7000석을 가증하고, 미카와 요시다번으로 전봉을 명했는데, 이는 은거 후의 나리사다에 대한 가증으로 볼 수 있다.
쇼토쿠 2년(1712년) 6월 5일 사망, 향년 79세. 법명은 조이코세츠토코인(常瑩光雪等光院일본어)이며, 묘소는 도쿄도 스미다구 지토세의 요쓰지에 있다.
3. 가족 관계
| 항목 | 내용 |
|---|---|
| 아버지 | 마키노 기나리(나리요시) |
| 어머니 | 아사쿠라 노부마사의 딸 (혹은 아사쿠라 아리시게의 딸) |
| 정실 | 오오토 아쿠리 - 오오토 요시카츠의 딸,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어머니 게이쇼인의 전 시녀. 게이쇼인의 명으로 나리사다와 결혼. |
| 측실 | 후지타 씨 |
| 장남 | 마키노 사다미치 (생모는 후지타 씨) |
| 장녀 | 마츠코 - 나가이 사다키요의 부인 |
| 차녀 | 야스 - 마키노 나리토키 (나리사다의 양자)의 부인 |
| 3녀 | 카메 |
| 양자 | 마키노 나리토키 - 쿠로다 모치츠나의 넷째 아들, 나리사다의 차녀 야스와 결혼. |
| 양자 | 마키노 나리하루 - 오오토 요시후사 (아쿠리의 아버지 쪽 백부)의 아들, 겐로쿠 6년 (1693년)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명으로 양자가 됨. |
| 양녀 | 하츠히메 - 토다 우지나리의 부인 |
| 양녀 | 로쿠고 마사하루의 부인 - 오오토 요시카츠의 딸, 아쿠리의 여동생 |
| 양녀 | 야시로 타다토모의 부인 - 오오토 한야 모의 딸 |
4. 평가 및 관련 작품
=== 평가 ===
마키노 나리사다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총애를 받아 이례적인 출세를 이루었으나, 쓰나요시의 사치와 실정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나리사다의 아내 아구리와 딸 야스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쓰나요시의 방약무도함에 "마키노 가문은 자기 대에서 끝내고 싶다"고 말하며 참지 못했다. 쓰나요시의 총애가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에게 옮겨가면서 고뇌가 깊어졌다는 설도 있다.
=== 관련 작품 ===
* 소설
갓을 쓴 십병위(이케나미 쇼타로, 1969년 - 1970년 연재)
낭인 젊은이 신미 사콘(사사키 유이치) - 자신의 뜻에 거스르는 자는 설령 장군이라도 죽이려 드는, 작중 최대급의 악당으로 묘사된다.
야나기사와 소동(가이온지 조고로, 오분샤)
* 영화
인피관음(1937년, 배우: 후지노 히데오)
비단 모란 도적(1950년, 배우: 라몬 코조로)
도쿠가와 여계도(1968년, 배우: 고이케 아사오)
에도성 대란(1991년, 배우: 오이데 슌)
* 텔레비전 드라마
오오쿠(1968년, 배우: 오리모토 준키치)
겐로쿠 타이헤이키(1975년, 배우: 마쓰시타 다쓰오)
고개의 군상(1982년, 배우: 칸다 마사오)
오오쿠(1983년, 배우: 타무라 타카히로)
고존지! 하타모토 타이쿠츠오토코 III(1989년, 배우: 나리타 미키오)
8대 쇼군 요시무네(1995년, 배우: 카치 야스유키)
겐로쿠 료란(1999년, 배우: 곤도 마사오미)
** 오오쿠 ~화려한 난~(2005년, 배우: 히라즈미 세이)
4.1. 평가
마키노 나리사다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총애를 받아 이례적인 출세를 이루었으나, 쓰나요시의 사치와 실정으로 백성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다. 나리사다의 아내 아구리와 딸 야스는 도쿠가와 쓰나요시의 손에 들어갔다. 그는 쓰나요시의 방약무도함에 "마키노 가문은 자기 대에서 끝내고 싶다"고 말하며 참지 못했다. 쓰나요시의 총애가 야나기사와 요시야스에게 옮겨가면서 고뇌가 깊어졌다는 설도 있다.
4.2. 관련 작품
* 소설
갓을 쓴 십병위(이케나미 쇼타로, 1969년 - 1970년 연재)
낭인 젊은이 신미 사콘(사사키 유이치) - 자신의 뜻에 거스르는 자는 설령 장군이라도 죽이려 드는, 작중 최대급의 악당으로 묘사된다.
야나기사와 소동(가이온지 조고로, 오분샤)
* 영화
인피관음(1937년, 배우: 후지노 히데오)
비단 모란 도적(1950년, 배우: 라몬 코조로)
도쿠가와 여계도(1968년, 배우: 고이케 아사오)
에도성 대란(1991년, 배우: 오이데 슌)
* 텔레비전 드라마
오오쿠(1968년, 배우: 오리모토 준키치)
겐로쿠 타이헤이키(1975년, 배우: 마쓰시타 다쓰오)
고개의 군상(1982년, 배우: 칸다 마사오)
오오쿠(1983년, 배우: 타무라 타카히로)
고존지! 하타모토 타이쿠츠오토코 III(1989년, 배우: 나리타 미키오)
8대 쇼군 요시무네(1995년, 배우: 카치 야스유키)
겐로쿠 료란(1999년, 배우: 곤도 마사오미)
** 오오쿠 ~화려한 난~(2005년, 배우: 히라즈미 세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