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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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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본문

마포형무소마포형무소(麻浦刑務所) 또는 경성형무소(京城刑務所)는 일제강점기 일본 제국이 서울에 세워 대한민국 정부 수립 초까지 사용했던 형무소이다.
개요한일 병합 조약 이전인 1908년, 서대문형무소의 전신인 경성감옥이 서울 서대문구에 지어졌다. 경성감옥의 수용 공간이 부족해지자 서울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이 신설되어 경성감옥으로 불리게 되었고, 서대문의 경성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개칭되었다.

1923년에는 경성형무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일제강점기 동안 대전형무소와 함께 무기징역형을 받은 죄수나 장기 수형자를 수용하는 곳이었다. 8.15 광복 이후 1946년에 마포형무소로, 1961년에는 마포교도소로 각각 개칭되었다. 1963년 경기도 안양시에 신설된 안양교도소로 이전하면서 폐지되었다.
역사


  • 1908년: 서대문형무소의 전신인 경성감옥이 서대문구에 건립됨.
  • 1912년: 경성감옥의 수용 공간 부족으로 마포구 공덕동에 새로운 감옥이 신설되어 경성감옥으로 명명, 기존 서대문 감옥은 서대문감옥으로 개칭됨.
  • 1923년: 경성감옥이 경성형무소로 개칭됨.
  • 1946년: 광복 이후 마포형무소로 개칭됨.
  • 1961년: 마포교도소로 개칭됨.
  • 1963년: 안양교도소 신설로 인해 폐쇄됨.


마포형무소 건물은 이전 후 사라졌고, 그 자리에는 경서중학교가 들어섰다가 현재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위치하고 있다.
특징마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동안 항일 독립운동가들이 수감되어 옥고를 치른 곳으로, 일제에 의해 체포된 많은 애국지사들이 수감 생활을 하였다. 특히 3.1 독립선언 사건 때는 최남선, 한용운, 오세창 등 다수의 독립투사들이 서대문감옥에서 이곳으로 이감되어 옥고를 겪었다. 또한, 수감자들은 모진 고문과 탄압, 그리고 강제 노역에 시달렸으며, 마포연와공장(벽돌공장)에서 강제 노역을 하기도 했다.
현재1995년 마포구 공덕동 105번지 마포형무소 자리에 "1912년 日帝가 경성형무소를 설치하여 항일 독립 운동가들이 옥고를 치렀던 유적지"라는 표지석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서울서부지방법원과 서울서부지방검찰청이 들어서 있으며, 표지석만이 그 자리에 형무소가 있었음을 알려준다.
참고사항

  • 마포형무소는 일제강점기 독립운동의 아픔을 간직한 장소이다.
  • 마포형무소 자리에 세워진 표지석은 독립운동의 역사를 기억하는 중요한 자료이다.
  • 마포형무소는 경성감옥, 경성형무소, 마포교도소로 이름이 변경되었으며, 안양교도소의 전신이다.
  • 1945년 8월 16일, 마포형무소에서 석방된 독립운동가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있다.


마포형무소
지도
기본 정보
다른 이름경성감옥
경성형무소
마포감옥
역사
개소1908년
폐쇄1987년
재건축1987년 ~ 1989년
현재마포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위치
주소대한민국 서울특별시 마포구 공덕동
좌표북위 37° 32′ 17″ 동경 126° 57′ 33″
운영
운영 주체대한제국
조선총독부
대한민국 정부
시설 정보
종류교도소
기타
관련 정보서대문형무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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