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세덕
1. 개요
만세덕은 명나라의 무관으로, 정유재란 당시 조선에 파견되어 왜군을 물리치는 데 기여했다. 산시성 출신으로 1568년 진사가 되었으며, 남양지현, 서녕병비첨사를 거쳐, 정유재란 중에는 천진등래여순등처순무를 역임했다. 양호의 뒤를 이어 조선에 파견되어 왜군을 몰아내는 데 기여했고, 1601년 계료총독에 임명되었다. 1602년 사망 후, 조선에서는 그의 공을 기려 생사당을 건립했다. 저서로는 《해방주의》가 있다.
만세덕
기본 정보
| 한글 | 만세덕 |
|---|---|
| 한자 | 万世徳 |
| 로마자 표기 | Man Se-deok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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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명나라에서의 초기 활동
1568년(융경 2년) 진사가 되고, 남양지현(南陽知縣), 서녕병비첨사(西寧兵備僉事)를 지냈다.
1597년(만력 25년) 9월 정유재란 때 만세덕은 산동우포정사(山東右布政使)에서 도찰원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 천진등래여순등처순무(天津登萊旅順等處巡撫) 전관해방군무(專管海防軍務)로 승진하였고, 파직된 경리(經理) 양호의 후임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조선에 끝까지 머무르면서 왜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2.2. 정유재란 참전
1597년(만력 25년) 정유재란 당시 만세덕은 산동우포정사(山東右布政使)에서 도찰원우첨도어사(都察院右僉都御史) 천진등래여순등처순무(天津登萊旅順等處巡撫) 전관해방군무(專管海防軍務)로 승진하였고, 이후 파직된 경리(經理) 양호의 후임으로 조선에 파견되어 조선에 끝까지 머무르면서 왜군을 몰아내는 데 앞장섰다.
3. 사후
1602년 겨울 병사하였으며, 이후 조선에서는 그를 기리기 위해 생사당을 지어 훈공을 기렸다.
4. 저서
해방주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