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 (명나라)
1. 개요
석성은 명나라의 관료로, 1559년 진사가 되어 예부시랑, 병부상서 등을 역임했다. 조선의 종계변무 해결에 기여하고 임진왜란 발발 후 조선 파병을 만력제에게 건의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자는 주장을 펼쳤으나 실패하여 삭탈관직되고 1599년 옥사했다. 사후에는 자손들이 해주 석씨, 성주 석씨, 조주 석씨의 시조가 되었으며, 드라마 《불멸의 이순신》과 《징비록》에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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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호부상서 -
해서 (명나라)
강직하고 청렴한 명나라의 관료인 해서는 가정제 비판 상소로 투옥되었지만 융경제 시기 석방되어 토지 문제 해결에 힘썼으며, 사후 청렴결백한 관리의 상징으로 추앙받고 기념관과 묘소가 조성되었다. -
명나라의 호부상서 -
심일관
심일관은 명나라의 관료이자 학자로, 임진왜란 당시 명군의 조선 파병을 건의했으며, 반동림당의 영수로서 동림당과 불화하기도 했고, 사장에 능하며 저서를 남겼다. -
명나라의 병부시랑 -
양호 (명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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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나라의 병부시랑 -
송응창
송응창은 명나라 관료로서 임진왜란 때 경략으로 조선에 파병되어 평양 수복에 기여했으나, 석성과의 갈등과 당쟁으로 은퇴 후 《경략복국요편》을 저술했으며, 산동순무 시절 행정 능력을 인정받은 위엄 있는 인물이다. -
중국의 진사 -
형개
형개는 명나라의 관료로, 진사 합격 후 감찰어사, 하남첨사 등을 거쳐 남경병부시랑 등을 역임하며 승진했고, 양응룡의 난을 진압하고 임진왜란 때 조선에 파견되어 활동했으나, 울산성 전투 허위 보고로 탄핵받았으며, 사후 태보로 추증되고 『동정주의』와 『숭검록』을 남겼다. -
중국의 진사 -
송응창
송응창은 명나라 관료로서 임진왜란 때 경략으로 조선에 파병되어 평양 수복에 기여했으나, 석성과의 갈등과 당쟁으로 은퇴 후 《경략복국요편》을 저술했으며, 산동순무 시절 행정 능력을 인정받은 위엄 있는 인물이다.
2. 생애
1559년 진사가 되고, 이과급사중(吏科給事中)에 발탁되었다. 만력 초에 재기하여 예부시랑,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지냈다. 임진왜란 발발 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일본 국왕으로 책봉하려 했으나 실패하고, 1599년 옥중에서 사망하였다.
2.1. 관직 생활
1559년 진사가 되고, 이과급사중(吏科給事中)에 발탁되었다. 만력 초에 재기하여 예부시랑, 병부상서(兵部尙書) 등을 지냈다.
예부시랑 시절, 자신의 부인 류씨를 구해준 역관 홍순언과의 인연으로 조선의 종계변무를 해결해주었다. 임진왜란 발발 후 홍순언이 구원병을 청하자, 석성은 만력제에게 조선 출병을 청하였다.
이후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달래기 위해 일본 국왕으로 봉하는 것이 좋겠다고 주장하였으나, 실패 후 삭탈관직 및 하옥되어 1599년 옥사하였다.
2.2. 조선과의 관계
예부 시랑 시절, 부인 류씨를 구해준 역관 홍순언과의 인연으로 조선의 종계변무 문제를 해결해 주었다.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홍순언이 구원병을 요청하였고, 석성은 만력제에게 조선 출병을 청하였다.
3. 사후
석성이 죽은 뒤 그의 자식인 석재금은 해주 석씨, 성주 석씨, 조주 석씨의 시조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