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누스 4세 (노르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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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망누스 4세는 1130년 노르웨이 국왕 시구르 1세의 아들로 태어났다. 시구르 1세 사망 후 삼촌 하랄 4세와 공동 왕위에 올랐으나, 1134년 하랄 4세와 전쟁을 벌였다. 1135년 하랄 4세에게 패배하여 폐위되었고, 다리를 절단당하고 두 눈을 멀게 하는 형벌을 받았다. 이후 1136년 하랄 4세가 살해되자 복위했으나, 1139년 잉에 1세, 시구르 2세 연합군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망누스 4세 (노르웨이)
기본 정보
이름맹인왕 망누스
원어 이름Magnus IV Sigurdsson
유형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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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멩그라 전투 묘사
왕위 계승노르웨이 국왕
통치 기간1130년–1135년
이전 통치자시구르 1세
다음 통치자하랄 4세
섭정하랄 4세
섭정 유형공동 황제
통치 기간 21137년–1139년
이전 통치자 2하랄 4세
다음 통치자 2시구르 2세잉에 1세
전체 이름망누스 시구르손
배우자덴마크의 크리스티네
가문하르다라 가문
왕조홀파그레 왕조
아버지시구르 1세
어머니보르힐 오라프스다테르 (첩)
출생일기원후 1115년경
사망일1139년 11월 12일
사망 장소홀멩그라, 발레르
매장 장소오슬로, 성 할바르 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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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노르웨이의 시구르 1세와 보르힐 올라브스도터의 아들로 태어난 마그누스는 1130년 아버지 시구르 1세가 사망하자 삼촌인 하랄 4세와 함께 노르웨이의 왕이 되었다. 4년간 불안한 평화가 이어진 후, 마그누스는 하랄에게 공개적으로 전쟁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1134년 8월 9일, 보후슬렌의 페를레브 전투에서 하랄을 물리치고 덴마크로 몰아냈다.

측근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해산하고 베르겐으로 간 마그누스는, 덴마크 왕 에리크 2세의 지원을 받아 돌아온 하랄에게 1135년 1월 7일 베르겐에서 패배했다. 마그누스는 체포되어 왕위에서 폐위되었고, 눈이 멀고, 거세당했으며, 다리 하나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다. 이후 그는 맹인 마그누스(Magnus Sigurdsson den blinde)로 알려졌다.

트론헤임 피오르의 뭉크홀멘 섬에 있는 니달홀름 수도원에 갇혀 수도사로 지내던 마그누스는, 1136년 하랄 4세를 살해한 시구르 슬렘베에 의해 복위되어 공동 왕이 되었다. 마그누스는 동부 노르웨이에서 잉에 1세의 군대에 패배하고, 덴마크로 도망쳐 지원을 요청했으나 실패했다.

이후 시구르 슬렘베와 다시 합류했지만, 노르웨이에서 큰 지지를 얻지 못했다. 1139년 11월 12일, 홀멩그로 전투에서 잉에 1세시구르 2세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마그누스는 오슬로의 성 할바르드 교회에 묻혔으며, 외스트폴 주의 스케베르그에 있는 스토르달 농장에 그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2.1. 초기 생애와 공동 왕위

시구르 1세와 보르힐 올라브스도터 사이에서 태어났다. 1130년 시구르 1세가 사망하자, 마그누스는 삼촌인 하랄 4세와 함께 노르웨이의 공동 왕위에 올랐다. 4년간 불안한 평화가 지속되었지만, 1134년 마그누스 4세는 하랄 4세를 상대로 전쟁을 선포했고, 보후슬렌의 페를레브 전투에서 하랄 4세를 격파하여 하랄 4세는 덴마크로 망명했다.

2.2. 하랄 4세와의 갈등과 폐위

1130년 시구르 1세가 사망하면서, 마그누스 4세는 삼촌인 하랄 4세와 함께 노르웨이의 공동 왕이 되었다. 초기 4년간은 불안정한 평화가 지속되었으나, 1134년 마그누스 4세는 하랄 4세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켰다. 1134년 8월 9일, 보후슬렌의 페를레브 전투에서 마그누스 4세는 하랄 4세를 패배시켰고, 하랄 4세는 덴마크로 망명했다.

그러나 마그누스 4세는 측근들의 조언에도 불구하고 군대를 해산하고 베르겐으로 이동했고, 이는 하랄 4세에게 반격의 기회를 제공했다. 1135년 1월 7일, 덴마크의 에리크 2세의 지원을 받은 하랄 4세는 베르겐을 함락시키고 마그누스 4세를 폐위시켰다. 마그누스 4세는 두 눈이 뽑히고, 거세당했으며, 한쪽 다리가 잘리는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 이후 그는 '맹인왕 마그누스'로 불리게 되었다.

2.3. 수도원 유폐와 복위 시도

마그누스는 트론헤임 피오르의 뭉크홀멘 섬에 있는 니달홀름 수도원에 유폐되어 수도사로 지냈다. 1136년 하랄 4세가 왕위 요구자였던 시구르 슬렘베에게 살해당하자, 시구르 슬렘베는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마그누스를 수도원에서 데려와 공동 왕으로 삼았다. 이들은 군대를 나누기로 결정했고, 마그누스는 가장 많은 지지를 받는 동부 노르웨이로 향했다. 그곳에서 그는 잉에 1세의 군대에 의해 민네 전투에서 패배했다. 이후 예탈란드를 거쳐 덴마크로 도망쳐 에리크 2세에게 지원을 요청했으나, 덴마크의 노르웨이 침공은 실패로 끝났다.

2.4. 최후

마그누스는 시구르 슬렘베의 부대에 다시 합류했지만, 노르웨이에서 큰 지지를 얻지 못하고 산적과 같은 생활을 했다. 1139년 11월 12일, 홀멩그로 전투에서 잉에 1세시구르 2세의 군대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충성스러운 경호원 레이다르 그료트가르드손이 마지막 전투에서 그의 왕을 들어 올렸지만, 창에 둘 다 꿰뚫렸다. 마그누스는 오슬로의 성 할바르드 교회에 묻혔다. 외스트폴 주의 스케베르그에 있는 스토르달 농장에 맹인 왕 마그누스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

3. 노르웨이 내전

1130년부터 1240년까지 노르웨이 역사에서는 다양한 규모와 강도의 분쟁이 여러 차례 발생했다. 이러한 분쟁은 불분명한 노르웨이의 왕위 계승법, 사회적 조건, 교회와 왕 사이의 갈등을 배경으로 한다. 당시 주요 세력으로는 바글레르와 비르케베이너가 있었는데, 이들은 왕위 계승을 둘러싸고 대립했다.

4. 평가

망누스 4세의 생애는 노르웨이 내전 초기, 왕위 계승 분쟁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잘 보여준다. 특히, 권력을 쟁취하고 유지하기 위한 잔혹한 행위는 당시 노르웨이 사회의 불안정성을 반영한다. 1134년 하랄 4세와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1135년 1월 7일 덴마크의 지원을 받은 하랄 4세에게 패배하여 한쪽 다리가 절단되고 두 눈이 멀게 되었으며 거세까지 당하는 형벌을 받았다. 이후 1139년 11월 12일 노르웨이 내전에서 잉에 1세, 시구르 2세 연합군에게 패배하여 전사했다.

5. 기념

외스트폴 스케베르그의 스토르달 농장에는 맹인 왕 마그누스를 기리는 기념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