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누스 6세
1. 개요
망누스 6세는 1263년 부왕 호콘 4세의 사망으로 노르웨이 국왕이 되었다. 그는 스코틀랜드와의 분쟁에서 헤브리디스 제도와 맨 섬을 스코틀랜드에 양도하고, 국왕의 권력을 강화하기 위해 입법권을 집중시키는 등 법률 개정을 추진하여 '개법왕'이라는 별칭을 얻었다. 1274년에는 국법, 1276년에는 도시법을 제정하여 왕권 강화와 노르웨이 통합에 기여했으며, 왕위 계승법을 제정하여 왕의 후계자가 없을 경우 선거를 통해 왕을 선출하도록 했다. 1280년에 사망했으며, 그의 아들 에이리크 2세가 왕위를 계승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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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8년 출생 -
나라티하파테
나라티하파테는 바간 왕조의 왕으로, 초기에는 재상의 영향력 아래 왕권 강화를 시도하고 불교 중흥에 힘썼으나, 대원제국의 침공을 초래하여 몽골에 항복 후 귀환 중 아들에게 살해당하며 "중국에서 도망친 왕"으로 불린다. -
1238년 출생 -
양휘
남송 시대의 수학자 양휘는 파스칼의 삼각형에 대한 가장 오래된 중국 삽화와 마방진 연구, 십진 소수 계산 능력으로 알려져 있으며, 그의 저술은 후대 수학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쳐 양휘상이 제정되기도 했다. -
1280년 사망 -
오르다 칸
조치 울루스의 좌익 백장 칸국을 건국한 오르다 칸은 조치의 장남이자 칭기즈 칸의 손자로, 바투 칸을 지지하며 몽골의 루스 침공과 같은 군사 원정에 참여했고 그의 사후에는 콩기란의 후손들이 칸국을 계승했다. -
1280년 사망 -
교황 니콜라오 3세
교황 니콜라오 3세는 1277년부터 1280년까지 재위했으며, 교황령 강화를 위해 노력하고 족벌주의를 통해 친척들을 고위 성직에 임명했으며, 프란치스코회를 지원하고 바티칸 궁전을 보수하다가 뇌졸중으로 사망했다. -
스베리르가 -
호콘 5세
호콘 5세는 1299년부터 1319년까지 노르웨이를 통치한 국왕으로, 왕권 약화, 수도 이전, 아케르스후스 요새 건설 등의 업적을 남기고 외손자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
스베리르가 -
에이리크 2세
에이리크 2세는 망누스 6세의 아들로 1280년부터 1299년까지 노르웨이를 통치하며 덴마크, 한자 동맹과의 갈등을 겪었고 스코틀랜드와의 관계 개선을 위해 노력했으나 후계자 없이 사망하여 왕위는 동생에게 넘어갔다.
2. 생애
호콘 4세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1263년 아버지 호콘 4세가 스코틀랜드 왕국 오크니 제도에 원정하던 도중에 사망하면서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망누스 6세는 아버지의 정책을 이어받아 스코틀랜드와의 전쟁을 지속했지만, 전황이 불리해져 1266년 퍼스 조약을 통해 헤브리디스 제도와 맨섬을 스코틀랜드의 알락산다르 3세 막 알락산다르에게 양도하고 화해했다.
2.1. 법률 개정
1274년에는 국법, 1276년에는 도시법을 제정하면서 국왕의 권력을 강화했고 지방 분권 체제를 도입하면서 노르웨이를 단일 국가로 개편했다. 입법권을 국왕에게 집중시키면서 의회와 자주 대립했으며 수많은 법률을 개정했다. 이러한 법률 개정은 훗날 노르웨이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반면 성급한 법률 개정으로 인해 노르웨이 의회와 국민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았고 "법률 개정왕"(Magnus Lagabøte노르웨이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2.2. 왕위 계승법 제정
1274년 전국법, 1276년 도시법을 제정하여 왕권 강화와 지방 분권적이었던 노르웨이 통합에 성공했지만, 성급한 법 개정은 의회와 국민들의 반발을 샀다. 망누스 6세는 "개법왕(Lagabøte)"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망누스 6세의 법 개정은 훗날 노르웨이에 큰 영향을 주었다.
망누스 6세는 왕위 계승법을 제정하여 왕에게 후계자가 없는 경우에는 귀족이나 성직자의 선거로 왕을 선출하도록 했다.
2.3. 사망
1280년 43세로 사망했으며, 그의 왕위는 아들인 에이리크 2세가 승계받았다. 망누스 6세는 왕위 계승법을 제정하여 왕에게 후계자가 없는 경우에는 귀족이나 성직자의 선거로 왕을 선출하도록 했다.
3.1. 자녀
망누스 6세는 1261년에 덴마크 국왕 에리크 4세의 딸 잉에보르와 결혼했다. 이 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은 다음과 같다.
* 에이리크 2세 (1268년 ~ 1299년): 1273년부터 1299년까지 노르웨이 국왕을 지냈다.
* 호콘 5세 (1270년 ~ 1319년): 1299년부터 1319년까지 노르웨이 국왕을 지냈다.
4. 평가
호콘 4세 국왕의 아들로 태어났다. 1263년 아버지 호콘 4세가 스코틀랜드 왕국 오크니 제도 원정 도중에 사망하면서 노르웨이의 국왕으로 즉위했다. 1266년 노르웨이가 지배하던 헤브리디스 제도, 맨섬을 Treaty of Perth영어에 의해 스코틀랜드의 알락산다르 3세 막 알락산다르에게 양도했다.
국왕 권력 강화 과정에서 입법권을 국왕에게 집중시키면서 의회와 자주 대립했으며, 수많은 법률을 개정했다. 1274년 국법, 1276년 도시법을 제정하여 국왕 권력을 강화하고 지방 분권 체제를 도입해 노르웨이를 단일 국가로 개편했다. 그러나 성급한 법률 개정으로 노르웨이 의회와 국민들로부터 평판이 좋지 않아 "법률 개정왕"(Magnus Lagabøte노르웨이어)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그럼에도 망누스 6세의 법률 개정은 훗날 노르웨이에 중대한 영향을 주었다.
망누스 6세는 왕위 계승법을 제정하고, 국왕 후계자가 없을 경우 귀족이나 성직자들의 선거를 통해 국왕을 선출하는 법률을 제정했다. 1280년 사망했으며, 아들인 에이리크 2세가 왕위를 승계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