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스 브라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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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메이스 브라운은 메이저 리그 야구 선수이자 코치, 스카우트였다. 그는 아이오와 대학교에서 육상 장학금을 받고 창던지기 선수로 활동했으며, 프로 야구 선수로 1934년 텍사스 리그에서 19승을 거둔 후 피츠버그 파이리츠에 입단했다. 브라운은 메이저 리그 최초의 전담 구원 투수 중 한 명으로, 1938년 내셔널 리그에서 15승을 기록하고 올스타전에 출전했다. 그는 1938년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홈런을 허용하여 파이리츠가 리그 우승을 놓치는 원인이 되기도 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에는 미 해군에서 복무하며 선수 활동을 중단했고, 이후 코치와 스카우트로 활동하다가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

메이스 브라운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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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스 브라운
이름메이스 브라운
원어 이름Mace Stanley Brown
출생일1909년 5월 21일
출생지미국 아이오와주 노스잉글리시
사망일2002년 3월 24일
사망지미국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
포지션투수
타석우
투구우
선수 경력
데뷔 리그MLB
데뷔팀피츠버그 파이리츠
데뷔일1935년 5월 21일
마지막 리그MLB
마지막 팀보스턴 레드삭스
마지막 경기일1946년 9월 10일
소속팀피츠버그 파이리츠 (1935–1941)
브루클린 다저스 (1941)
보스턴 레드삭스 (1942–1943, 1946)
통계
승패 기록76–57
평균자책점3.46
삼진435
세이브48
수상
올스타올스타 (19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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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선수 경력

브라운은 메이저 리그에서 최초의 전담 구원 투수 중 한 명으로 알려졌다. 1938년, 파이리츠에서 15 승리(모두 구원)로 팀을 이끌었고, 내셔널 리그에서 51 경기 투구로 1위를 차지했으며, 최초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구원 투수가 되었다. 1943년, 레드삭스 소속으로 49경기에 투구하며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1938년 내셔널 리그 우승 경쟁에서 파이리츠의 선두를 잃게 한 홈런인 Homer in the Gloamin'을 허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2.1. 초기 경력

브라운은 창던지기 선수이기도 했으며 육상 장학금을 받고 아이오와 대학교에 다녔다. 대학 졸업 후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34년 텍사스 리그의 털사 오일러스에서 19승을 거두었고, 그해 11월 파이리츠에 영입되었다.

2.2. 메이저 리그 경력

브라운은 창던지기 선수이기도 했으며 육상 장학금을 받고 아이오와 대학교에 다녔다. 그는 대학 졸업 후 프로 야구 선수 생활을 시작했다. 1934년, 텍사스 리그의 털사 오일러스에서 19승을 거두었고, 그해 11월 파이리츠에 영입되었다.

브라운은 메이저 리그에서 최초의 전담 구원 투수 중 한 명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1938년, 파이리츠에서 15 승리(모두 구원)로 팀을 이끌었고, 내셔널 리그에서 51 경기 투구로 1위를 차지했으며, 최초로 올스타전에 출전한 구원 투수가 되었다. 1943년, 레드삭스 소속으로 49경기에 투구하며 아메리칸 리그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브라운은 1938년 내셔널 리그 우승 경쟁에서 파이리츠의 선두를 잃게 한 홈런인 Homer in the Gloamin'을 허용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1938년 9월 28일, 파이리츠는 리그 순위에서 파이리츠에 단 0.5경기 뒤져 있던 시카고 컵스와 경기를 치렀다. 브라운은 9회말에 팀이 5-5로 동점을 이루고 있는 상황에서 등판했다. 어둠이 빠르게 찾아오고 있었고, 컵스의 리글리 필드에는 조명이 없어 경기가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었다. 그러나 개비 하트넷은 곧 브라운의 공을 받아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날렸고, 컵스는 승리를 거두며 1위로 올라섰다. 파이리츠는 이후 마지막 5경기에서 4경기를 져 컵스의 우승을 확정지었다.

브라운은 제2차 세계 대전 중 미국 해군에서 부위로 복무하면서 1944년과 1945년 시즌을 결장했다.

2.3. 황혼의 홈런

1938년 9월 28일, 시카고 컵스와의 경기에서 브라운은 개비 하트넷에게 황혼의 홈런(Homer in the Gloamin')을 허용했다. 이 홈런으로 파이리츠는 내셔널 리그 우승에 실패했다. 당시 파이리츠는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었지만, 컵스에게 단 0.5경기 뒤져 있었다. 9회말 5-5 동점 상황에서 브라운은 마운드에 올랐으나, 하트넷에게 좌중간 담장을 넘기는 홈런을 맞았다. 리글리 필드에는 조명이 없었기 때문에 어둠이 빠르게 찾아오고 있었고, 경기는 무승부로 끝날 수도 있었지만, 하트넷의 홈런으로 컵스가 승리하며 1위로 올라섰다. 결국 파이리츠는 이후 마지막 5경기에서 4패를 당하며 컵스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2.4. 제2차 세계 대전 참전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브라운은 미국 해군에서 부위로 복무하여 1944년과 1945년 시즌에 결장했다.

3. 스카우트 및 코치 경력

선수 경력 이후 브라운은 1947년부터 1989년까지 코치와 스카우트로 활동했다.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에서 스카우트로 일하며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했다. 1965년에는 보스턴 레드삭스의 메이저 리그 투수 코치를 맡았으며, 빌리 허먼 감독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빌리 허먼은 컵스의 선발 2루수로 "황혼의 홈런" 경기에 출전했던 인물이다.

3.1. 칼튼 피스크 지도

레드삭스에서 스프링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하면서 브라운은 투수와 포수 모두를 지도했다. 후자 중에는 칼튼 피스크가 있었는데, 그는 브라운에게서 선수 경력 내내 도움이 된 기술과 리더십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4. 사망

선수 경력 이후 브라운은 1947년부터 1989년까지 코치로 활동했으며, 노스캐롤라이나에 거주하며 스카우트로 보스턴 레드삭스 구단에서 일했다. 그는 1965년 레드삭스의 메이저 리그 투수 코치를 역임했으며, 컵스의 선발 2루수로 "황혼의 홈런" 경기에 출전했던 감독 빌리 허먼의 코칭 스태프에 합류했다.

레드삭스에서 스프링 트레이닝 코치로 활동하면서 브라운은 투수와 포수 모두를 지도했다. 그 중에는 칼튼 피스크가 있었는데, 그는 브라운에게서 선수 경력 내내 도움이 된 기술과 리더십 기술을 배웠다고 말했다.

브라운은 노스캐롤라이나주 그린즈버러에서 92세의 나이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