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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이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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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모리스 이마는 오스트레일리아의 정치인으로, 2005년부터 2008년까지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를 역임했다. 이탈리아 공산당 망명자의 후손으로 시드니에서 성장했으며, 시드니 대학교에서 경제학, 시드니 공과대학교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77년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에 입당하여 정치 활동을 시작했으며, 연방 은행 직원 노조 간부, 그레이엄 리차드슨 상원의원 보좌관 등을 거쳤다. 1991년 뉴사우스웨일스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된 후, 공공사업 및 서비스 장관, 스포츠 장관, 보건부 장관 등을 역임했다. 2005년 밥 카의 사임으로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가 되었으며, 2007년 재선에 성공했으나 2008년 사임했다. 이후 사우스 이스턴 시드니 지역 보건 지구 위원회 의장, 뉴사우스웨일스 암 연구소 위원회 등에서 활동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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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리스 이마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2007년의 이엠마
2007년의 이엠마
이름모리스 이엠마
원래 이름Morris Iemma
직위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재임 시작: 2005년 8월 3일
재임 종료: 2008년 9월 5일
뉴사우스웨일스 주 락엠바 선거구 의원재임 시작: 1999년 3월 27일
재임 종료: 2008년 9월 19일
뉴사우스웨일스 주 허스트빌 선거구 의원재임 시작: 1991년 5월 25일
재임 종료: 1999년 3월 5일
개인 정보
출생일1961년 7월 21일
출생지시드니, 뉴사우스웨일스 주, 오스트레일리아
정당노동당
배우자1997년 산티나 라이티와 결혼
자녀4명 (클라라 이엠마 포함)
직업노동조합 간부 및 고문
학력
학교나위 남자 고등학교
시드니 대학교
시드니 공과대학교
수상 경력
경력존 와킨스
장관직 (1999–2008)
시민권 장관재임 시작: 2005년 8월 3일
재임 종료: 2008년 9월 5일
전임: 밥 카
후임: 버지니아 저지
주 개발 장관재임 시작: 2006년 2월 17일
재임 종료: 2007년 4월 2일
전임: 존 와킨스
후임: 이안 맥도널드
뉴사우스웨일스 주 재무 장관재임 시작: 2005년 8월 3일
재임 종료: 2006년 2월 17일
전임: 앤드루 레프슈지
후임: 마이클 코스타
보건 장관재임 시작: 2003년 4월 2일
재임 종료: 2005년 8월 3일
전임: 크레이그 놀스
후임: 존 하치스테르고스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장관재임 시작: 2001년 11월 21일
재임 종료: 2003년 4월 2일
전임: 존 와킨스
후임: 산드라 노리 (관광 및 스포츠 레크리에이션 장관)
총리 시민권 보좌 장관재임 시작: 1999년 4월 8일
재임 종료: 2003년 4월 2일
전임: 신설 직책
후임: 존 하치스테르고스
공공사업 및 서비스 장관재임 시작: 1999년 4월 8일
재임 종료: 2003년 4월 2일
전임: 론 다이어
후임: 크레이그 놀스 (인프라 및 계획 장관)

2. 성장 과정 및 배경

모리스 이마는 노동당 내 주류 우파 계파인 '노동권익'(Labor-Right)파의 주요 인물로 활동했다. 이 계파는 경제적 자유 확대와 사회 복지를 동시에 추구하는 노선을 지향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1984년부터 1986년까지 연방 은행 직원 노조의 간부로 활동했으며, 이후 밥 호크폴 키팅 연방 정부 시절 환경 및 사회 보장 업무를 담당했던 그레이엄 리차드슨 상원의원의 보좌관으로 일하며 정치적 경력을 쌓기 시작했다.

1997년 산티나 라이티와 결혼하여 네 명의 자녀를 두었다. 이들 부부의 장녀인 클라라는 크리켓 선수로 활동하고 있다.[3][4] 개인적으로는 NRL의 세인트 조지 일라와라 드래곤스와 AFL의 시드니 스완스를 열렬히 응원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5]

2. 1. 가족 및 학창 시절

이탈리아계 호주인으로, 시드니에서 태어나 자랐다. 그의 부모인 주세페 이에마와 마리아 이에마는 이탈리아 칼라브리아주 마르토네에서 온 이민자였으며, 모리스는 외동이었다. 부친 주세페는 이탈리아에서 공산주의자[1][2] 지지자였고, 호주에서는 기계 노동자로 일했다. 모친 마리아는 의류업에 종사했다.

모리스는 시드니의 공립학교에서 교육을 받았는데, 여기에는 현재 폐교된 나르위 남자 고등학교가 포함된다. 이후 시드니 대학교에서 경제학 학사 학위를, 시드니 공과대학교에서 법학 학사 학위를 취득했다.

어린 시절부터 사회 문제에 관심을 가졌던 그는 16세였던 1977년에 노동당에 입당하여 청년 당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2. 2. 초기 정치 활동

1991년 '귀기울이는 지역주민'이라는 선거 캠페인을 통해 주의회 지역구 의원으로 당선되어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성실한 의정 활동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으며, 이후 주 공공서비스 장관, 문화체육부 장관, 보건복지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정치 경력을 쌓아나갔다.

3. 정치 경력

모리스 이마는 1991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선에서 뉴사우스웨일스 주의회 의원으로 당선되면서 정치 경력을 시작했다. 처음에는 허스트빌 선거구에서 활동했으며, 이후 선거구 개편에 따라 라켐바 선거구에서 활동하며 2008년까지 의원직을 유지했다.[6]

1999년부터는 밥 카 총리가 이끄는 주 정부 내각에 합류하여 여러 장관직을 역임했다. 공공사업 및 서비스 장관, 시민권 관련 수석 장관,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장관을 거쳐 2003년에는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되어 2005년까지 활동했다.[7]

3. 1. 주의회 의원 (1991-2008)

1991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선에서 자유당이 차지하고 있던 허스트빌 지역구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인 정치 활동을 시작했다. 그는 "경청하는 지역 사람"이라는 슬로건을 내걸고 뉴사우스웨일스 주의회[6] 의원으로 당선되었으며, 당시 얼우드의 현직 의원이었던 필 화이트를 꺾었다. 첫 임기 동안 그는 규제 검토 위원회에서 활동했으며, 11개월 동안 헌법(임기 고정 의회) 법안에 관한 합동 특별 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그는 성실한 의정 활동으로 주목받았다.

1995년에 재선되었고, 카 총리가 이끄는 카 정부에서 의회 비서로 임명되었다. 처음에는 법무 장관 겸 산업 관계부 장관인 제프 쇼를 보좌했으며, 1997년부터는 밥 카 총리를 직접 보좌하는 의회 비서로 활동했다.

1999년 선거구 개편으로 허스트빌 선거구가 폐지되자, 그는 과거 허스트빌 선거구의 일부를 포함하는 안전 선거구인 라켐바 지역구를 두고 치열한 당내 경선에서 승리하여 후보가 되었다. 이후 선거에서 당선되어 2008년 사임할 때까지 라켐바 지역구 의원직을 유지했다.[6]

3. 2. 주 정부 장관 (1999-2005)

1999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선거 이후, 이엠마는 Carr 내각에 합류하여 공공사업 및 서비스 장관과 시민권 관련 수석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2001년에는 스포츠 및 레크리에이션 장관 직책을 추가로 맡아 2003년 뉴사우스웨일스 주 선거까지 세 개의 장관직을 겸임했다.

2003년 선거 이후에는 보건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7] 그는 보건부 장관직을 "정부에서 가장 크고 어려운 직무 중 하나"라고 언급하기도 했지만[7], 재임 기간 동안 큰 논란 없이 비교적 안정적으로 직무를 수행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4.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 (2005-2008)

10년간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를 역임했던 밥 카의 갑작스러운 사임 이후, 2005년 8월 3일 총리직을 승계했다.[8] 총리 재임 기간 동안 만성적인 시드니 근교 교통 문제, 인구 증가에 따른 (수자원) 공급 문제, 건강보험 운영 등 여러 복지 문제 해결에 노력했으며, 2006년 인종 갈등 사태에서는 중재 역할을 하기도 했다.

2007년 3월 주 총리 선거에서 '우린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선거 운동을 벌여, 과반수 의석(노동당 52석, 보수 연립 35석, 무소속 6석)을 확보하며 재선에 성공했다.[12] 그러나 10년 이상 지속된 노동당 주 정부에 대한 피로감으로 일부 지역구(3석)를 잃기도 했다.

총리 재임 중 이마 정부는 운송, 의료 서비스, 수자원 공급 등 서비스 제공 문제에 직면했으며, 일부 언론으로부터 정책 개발보다 홍보에 치중한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10] 2008년 9월 5일, 내각 개편 문제와 관련하여 당내 파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총리직에서 사임했다.[16]

4. 1. 첫 번째 임기 (2005-2007)

밥 카가 10년간의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리직에서 물러나겠다는 의사를 밝힌 후, 모리스 이마는 2005년 8월 3일 총리직을 승계했다.[8] 당초 경찰부 장관이었던 칼 스컬리도 노동당 대표직에 도전했으나, 7월 29일 후보직을 사퇴하면서 이마가 유일한 후보가 되었다. 8월 2일 뉴사우스웨일스 노동당 간부 회의에서 대표로 선출된 후, 8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주 총독 마리 바시르 교수에 의해 공식적으로 총리에 임명되었다.[8]

총리 취임 직후, 이마는 주요 각료들의 연이은 사임에 직면했다. 부총리 겸 재무 장관이었던 앤드루 레프쇼지와 유력한 차기 지도자로 거론되던 크레이그 놀스가 정계 은퇴를 선언한 것이다.[8] 이에 이마는 총리직과 함께 재무 장관직을 직접 겸임하기로 결정했다. 총리로서 내린 첫 주요 정책 결정 중 하나는 2003년 밥 카 정부가 도입했던 벤더세(vendor duty, 투자용 부동산 매각 시 부과되는 세금)를 즉시 폐지하겠다고 발표한 것이었다.

2005년 8월 여론 조사에 따르면, 이마의 상대적으로 낮은 인지도에도 불구하고 노동당은 그의 지도 아래 자유당 야당에 대한 기존의 우위를 유지하고 있었다.[8] 이러한 상황은 당시 자유당 대표였던 존 브로든의 갑작스러운 사임으로 더욱 유리하게 전개되었다. 이는 밥 카, 앤드루 레프쇼지, 크레이그 놀스의 사임으로 인해 9월 17일에 치러진 세 지역구(마루브라, 매쿼리 필즈, 마릭빌)의 보궐선거 결과에서도 확인되었다.[8] 노동당은 세 의석 모두를 지켜냈다. 카의 지역구였던 마루브라(Maroubra)는 무난하게 승리했고, 놀스의 지역구였던 매쿼리 필즈(Macquarie Fields)에서는 자유당 지지율이 상승했음에도 불구하고 의석을 유지했다. 레프쇼지의 지역구였던 마릭빌(Marrickville)에서는 녹색당의 거센 도전이 있었지만, 뉴사우스웨일스 입법회에서 자리를 옮겨 출마한 노동당의 교육부 장관 카멜 테벗이 당선되었다. 마릭빌 선거구에서는 자유당이 후보를 내지 않아 노동당의 1차 투표 득표율이 오히려 증가하기도 했다.[9]

18개월의 비교적 짧은 첫 임기 동안, 이마 행정부는 만성적인 시드니 근교 교통 문제, 인구 증가에 따른 (수자원) 공급 확보의 어려움, 건강 보험 시스템 운영 등 여러 중요한 서비스 제공 문제 해결에 노력했다. 그러나 시드니 지역 언론들은 이마 정부가 실질적인 정책 개발보다는 "홍보"에 더 치중한다고 일관되게 비판하기도 했다.[10] 2006년에 발생한 인종 갈등 사태에서는 중재 역할을 수행하기도 했다. 또한, 2006년 2월 호주 정부 협의회(COAG) 기자회견 시작 전, 카메라 마이크가 켜진 것을 인지하지 못한 상태에서 빅토리아 주 총리 스티브 브락스와 대화하며 크로스 시티 터널 관련 논란에 대해 "무슨 논란을 말하는 거야? 아무 논란도 없는데."라고 말하는 장면이 녹음되어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11]

이러한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이마는 노동당 대표로서 첫 선거를 앞두고 각종 여론조사에서 꾸준히 높은 지지율을 유지했다.[12] 2007년 3월 주 총선에서 이마는 '우리는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선거 운동을 펼쳤다. 'NSW주를 고칩시다'를 내세운 보수 연립 진영을 상대로, 이마 개인의 인품과 자질, 그리고 정책 수행 능력을 강조하며 과반수 의석(노동당 52석, 보수 연립 35석, 무소속 6석)을 확보하여 재선에 성공했다. 10년 이상 지속된 노동당 주 정부에 대한 피로감으로 일부 지역구(3석)를 잃기도 했지만, 전반적으로는 성공적으로 방어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4. 2. 두 번째 임기 (2007-2008)

2007년 3월 주지사 선거에서 모리스 이마는 '우린 해야할 일이 많습니다만, 바른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라는 슬로건으로 선거운동을 펼쳤다. 'NSW주를 고칩시다'를 내세운 보수연립 진영과의 경쟁에서, 이마는 후보자 개인의 자질과 정책 수행 능력을 바탕으로 과반수 이상의 의석(노동 52석, 보수연립 35석, 무소속 6석)을 확보하며 재선에 성공했다. 다만, 10년 이상 지속된 노동당 주정부에 대한 피로감으로 일부 지역(3석)에서는 의석을 잃기도 했다.

재선 이후, 2007년 7월 15일 뉴사우스웨일스 철도 시스템에서 여러 차례 장애가 발생하자 이마는 정부가 철도 노조와 전쟁 중이라고 선언하며 갈등 국면에 들어섰다.[13] 같은 해 11월, 이마 정부는 논란 속에서 유전자 변형 카놀라 생산 금지를 해제하고, 주 소유 전력 시스템의 민영화 절차를 시작했다. 그러나 2008년 5월 3일, 뉴사우스웨일스 노동당(ALP) 주(州) 의회는 이마 정부가 추진한 전력 시스템 민영화 계획을 702표 대 107표라는 압도적인 차이로 부결시켰다.[14][15] 이는 이마에게 상당한 정치적 타격이 되었다.

4. 3. 사임 (2008)

2011년의 이마


2008년 9월 5일, 이마는 부총리 존 왓킨스의 사임으로 인해 불거진 내각 개편 문제와 관련하여 자신의 의원 총회 파벌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하자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16] 이마는 재무장관 마이클 코스타와 보건부 장관 레바 미거를 포함한 다섯 명의 장관이 함께 사임할 것을 제안했다. 그러나 그의 파벌인 센터 유니티(Centre Unity)는 코스타 장관의 해임에는 동의했지만, 다른 네 장관의 해임에는 반대했다. 이러한 파벌 내 의견 불일치에 직면한 이마는 결국 총리직에서 물러났다.[16] 이후 의원 총회는 만장일치로 네이선 리스를 그의 후임 총리로 선출했다.[17]

이마는 총리직 사임 후 얼마 지나지 않은 2008년 9월 19일, 국회의원직에서도 사임하며 17년간의 정치 경력을 마무리 지었다.[18] 그의 사임으로 인해 람베카 선거구 보궐 선거가 실시되었으며,[19] 이 선거에서는 로버트 푸롤로가 승리했다.[20]

5. 퇴임 이후



2008년 9월 5일, 이마는 부총리 존 왓킨스의 사임 이후 추진하려던 내각 개편안이 소속 파벌의 지지를 얻지 못하자 총리직 사임을 발표했다. 이마는 재무장관 마이클 코스타를 포함한 여러 장관의 교체를 원했지만, 파벌 내 반대에 부딪혔다.[16] 결국 의원 총회는 만장일치로 네이선 리스를 후임 총리로 선출했다.[17]

같은 해 9월 19일, 이마는 주의회 의원직에서도 사임하며 17년간의 정치 경력을 마무리했다.[18] 그의 사임으로 람베카 선거구 보궐 선거가 치러졌고,[19] 이 선거에서는 로버트 푸롤로가 당선되었다.[20]

정계 은퇴 후, 2009년 5월에는 급성 뇌 염증인 바이러스성 수막염으로 입원하여 투병 생활을 했다. 이로 인해 다리 움직임에 어려움을 겪었으며, 기능 회복을 위해 물리 치료를 받았다.[21][22] 건강을 회복한 후에는 공익 활동에 참여했다. 2011년 1월 1일부터 사우스 이스턴 시드니 지역 보건 지구 위원회 의장을 맡았으며, NSW 암 연구소 및 시드니 크리켓 & 스포츠 그라운드 신탁 위원회에서도 활동했다.[22]

이마는 연방 정치 무대 복귀를 시도하기도 했다. 2013년 호주 연방 선거를 앞두고 호주 하원의 바톤 선거구에 노동당 후보로 출마하는 것을 고려했으나,[23] 최종적으로 공천 경쟁에 참여하지 않았다.[24][25] 2015년에도 2016년 호주 연방 선거에서 같은 선거구에 공천을 신청했지만,[32] 공천은 전 주의회 동료였던 린다 버니에게 돌아갔고, 버니는 선거에서 승리했다.[33]

한편, 2012년 11월과 2014년 3월에는 NSW 부패 방지 독립 위원회 (ICAC)에 소환되어 증언했다. 이는 전 노동당 동료였던 에디 오베이드와 이안 맥도날드가 연루된 부패 혐의 조사와 관련된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오베이드의 호주 워터 홀딩스와 시드니 워터 간의 분쟁, 그리고 맥도날드와 오베이드가 연루된 바일롱 인근의 수익성 있는 광산 면허 발급과 관련된 부패 행위 혐의 등이 조사 대상이었다.[27][28][29] ICAC는 조사 결과 오베이드와 맥도날드 모두 광산 면허 발급과 관련하여 부패한 행위를 한 것으로 밝혀졌고 형사 고발이 제기되었다.[30][31]

6. 기타

1997년 산티나 라이티와 결혼하여 4명의 자녀를 두었다. 부부의 장녀인 클라라는 크리켓 선수이다.[3][4]

그는 내셔널 럭비 리그(NRL)의 세인트 조지 일라와라 드래곤스와 오스트레일리안 풋볼 리그(AFL)의 시드니 스완스를 열렬히 지지한다.[5]

캔터베리-뱅스타운 시(City of Canterbury-Bankstown)가 YMCA 뉴사우스웨일스(YMCA NSW)와 협력하여 운영하는 모리스 이마 실내 스포츠 센터(Morris Iemma Indoor Sports Centre)는 그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다. 이 현대적인 스포츠 시설은 네트볼, 농구, 축구, 배구 등 다양한 실내 스포츠를 제공하며, 체육관, 탈의실, 카페테리아, 보육 서비스도 갖추고 있다. 2011년 3월에 개장했다.[34][35]

참조

[1] 뉴스 Suburban son rises http://www.smh.com.a[...] 2007-03-17
[2] 뉴스 Out of the shadows http://www.smh.com.a[...] 2003-04-21
[3] 웹사이트 Clara Iemma signs one-year Big Bash deal with Sydney Sixers https://www.smh.com.[...] 2017-11-29
[4] 웹사이트 Clara Iemma graces crease with a premier approach https://www.theleade[...] 2016-01-31
[5] 웹사이트 Labor revolt: Morris Iemma to quit politics https://www.brisbane[...] Brisbane Times 2008-09-06
[6] 뉴스 Lakemba - 2008 New South Wales By-elections http://www.abc.net.a[...] 2008-10-30
[7] 뉴스 Morris Iemma quits politics to be husband and father http://www.dailytele[...] 2008-09-05
[8] 뉴스 Introducing your new premier http://www.smh.com.a[...] 2005-07-30
[9] 뉴스 Marrickville 2007 By-election http://www.abc.net.a[...] 2007-04-11
[10] 뉴스 Failure to shoot straight derails Iemma http://news.ninemsn.[...]
[11] 뉴스 Anger good, swearing bad: Iemma http://www.theage.co[...] 2006-02-11
[12] 뉴스 Iemma 'hopeful' of victory http://www.smh.com.a[...] 2007-03-24
[13] 뉴스 Rail unions under pressure http://www.news.com.[...] 2007-07-18
[14] 뉴스 NSW electricity privatisation bid rejected http://www.abc.net.a[...] 2008-05-03
[15] 웹사이트 Iemma loses privatisation vote https://www.smh.com.[...] Sydney Morning Herald 2008-05-04
[16] 뉴스 NSW Premier Morris Iemma resigns http://www.smh.com.a[...] 2008-09-05
[17] 뉴스 Nathan Rees confirmed as new NSW Premier http://www.smh.com.a[...] 2008-09-05
[18] NSW Parliament
[19] 뉴스 Morris Iemma quits, forcing fourth by-election http://www.theaustra[...] 2008-09-19
[20] 뉴스 Morris Iemma blasts state Labor leader over Lakemba intervention http://www.smh.com.a[...] 2014-08-09
[21] 뉴스 Paralysed Iemma fights to walk again http://www.news.com.[...] 2009-05-28
[22] 뉴스 Morris Iemma's private battle http://www.theaustra[...] 2010-07-30
[23] 뉴스 Iemma in frame as McClelland decides to bring down curtain http://www.smh.com.a[...] 2013-01-30
[24] 웹사이트 Iemma turns down offer of federal seat http://www.abc.net.a[...]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13-03-11
[25] 뉴스 Morris Iemma will not run for the federal seat of Barton, citing family commitments https://www.news.com[...] News Limited 2013-03-10
[26] 웹사이트 Labor gives Barton seat to McMahon http://www.abc.net.a[...]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13-04-07
[27] 뉴스 ICAC inquiry: Former NSW premier Morris Iemma says Obeid asked him to stop Sydney Water 'obstructing' AWH http://www.abc.net.a[...] Australian Broadcasting Corporation 2014-03-31
[28] 간행물 Witness list for the Operation Jasper Segment http://www.icac.nsw.[...] Independent Commission Against Corruption 2012-11-09
[29] 뉴스 Iemma tells ICAC of relationship between Obeid, Macdonald http://www.abc.net.a[...] 2012-11-13
[30] 뉴스 Former Labor minister Ian Macdonald prosecuted over Doyles Creek mine deal http://www.smh.com.a[...] 2014-11-20
[31] 뉴스 ICAC: Former NSW ministers Eddie Obeid and Ian Macdonald to be prosecuted after corruption findings http://www.abc.net.a[...] 2014-11-20
[32] 뉴스 Morris Iemma sets sights on Federal Parliament with run for Barton seat https://www.smh.com.[...] Fairfax Media 2015-06-01
[33] 뉴스 Australian federal election 2016: Linda Burney makes history for Labor https://www.smh.com.[...] Fairfax Media 2016-07-02
[34] 웹사이트 Morris Iemma Indoor Sports Centre (MIISC) http://www.canterbur[...] City of Canterbury 2011
[35] 웹사이트 Morris Iemma Indoor Sports Centre http://www.ymcansw.o[...] YMCA NS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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