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리 요시카쓰
1. 개요
모리 요시카쓰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긴 무장으로,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를 베는 공을 세워 이름을 알렸다. 그는 오다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활약하며, 고슈 정벌과 혼노지의 변에도 참여했다. 혼노지의 변 당시에는 오다 노부나가의 적자 오다 노부타다를 지키다 함께 사망했다. 모리 요시카쓰는 소설과 드라마에도 등장하며, 다양한 작품에서 그의 활약상이 묘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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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와리 모리씨 -
모리 가쓰노부
아즈치모모야마 시대 무장 모리 가쓰노부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가신으로서 규슈 평정과 히고 반란 진압에 공을 세웠으나,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서군에 가담한 후 몰락했고 야마우치 가즈토요의 도움으로 생을 마감했으며, 그의 후손으로는 매니 모리 미크로네시아 연방 대통령이 있다. -
오와리 모리씨 -
모리 가쓰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를 섬긴 모리 가쓰나가는 세키가하라 전투 이후 도요토미 가문에 가담하여 오사카 전투에서 활약한 무장이다. -
전사한 사람 -
정지용
정지용은 충청북도 옥천 출생으로 모더니즘 문학을 선도했으며, 시문학 동인과 구인회 활동을 거쳐 이화여자대학교 교수 등을 역임했으나 한국 전쟁 중 행방불명되었다. -
전사한 사람 -
정기원 (1559년)
정기원은 조선 중기 문신으로, 1585년 문과 급제 후 임진왜란 때 사은사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으며, 정유재란 남원성 전투에서 순절하여 예조판서에 추증되고 충렬사에 배향, 시호는 충의이며 저서로 《현산집》, 《현산실기》가 있다. -
오와리국 사람 -
오다 나가마스
오다 나가마스는 센고쿠 시대부터 에도 시대 초기의 무장, 다이묘이자 오다 노부나가의 동생으로, 도요토미 히데요시와 도쿠가와 이에야스를 섬겼으며 세키가하라 전투에서 공을 세웠고, 센노 리큐에게 다도를 배워 유라쿠류를 창시한 다인으로도 유명하며, 그의 호 유라쿠는 도쿄도 유라쿠초 지명의 유래 설이 있다. -
오와리국 사람 -
오다 노부나가
오다 노부나가는 일본 전국 시대의 무장으로, 오와리 출신에서 시작하여 일본 통일을 목표로 센고쿠 시대를 지배하며 막강한 세력을 구축했으나 혼노지의 변으로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했다.
2. 생애
오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인 1569년 오코치성 공격에 참가했다. 노부나가의 측근으로서 샤쿠키와마와리반슈(尺限廻番衆)에 속했으며, 주로 관리로 활약하여 판물과 서장, 부장에 서명을 많이 남겼다.
1582년 고슈 공격에서는 노부나가를 따라 4월 스와에 주둔하며 고후쿠지 다이조인으로부터 증여품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혼노지의 변 때도 노부나가를 따라 교토에 머물렀다. 노부나가의 적자이자 오다 가문의 당주인 노부타다를 지키며 니조 고신조에서 농성하다가 노부타다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아들 이와마루도 함께 전사했다고 한다.
2.1. 출신과 초기 이력
오와리국 출신이라고 전해지지만, 출신에 대해서는 불명확하다. 오다 노부나가를 우마마와리로 섬겼다. 고쇼였다는 설도 있다.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처음으로 덤벼들어 부상을 입은 핫토리 잇츄 (고헤이타)를 돕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이름을 떨쳤다.노부나가 공기에서는 모리 신스케의 이 공적이 "어린 군주 (모리 히데요리)"를 (일족의) 모리 주로모리 주로는 덴분 16년에 이나바야마성 공격에서 전사한 [[모리 아쓰모토]]의 아들이다.일본어가 보호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소문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또한, 이때 손가락을 물어뜯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오와리 지』나 『다이코키』 등에 있는 일화이다. 오케하자마 이후 휘를 요시카쓰로 칭하고, 통칭은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호로슈가 선발되었을 때 구로호로슈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2.2. 오케하자마 전투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모리 요시카쓰는 처음으로 덤벼들어 부상을 입은 핫토리 잇츄 (고헤이타)를 돕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이름을 떨쳤다. 노부나가 공기에는 모리 신스케(요시카쓰의 이전 이름)의 이 공적이 "어린 군주 (모리 히데요리)"를 (일족의) 모리 슈제이毛利 主税일본어가 보호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소문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모리 슈제이는 덴분 16년에 이나바야마성 공격에서 전사한 모리 아쓰모토의 아들이다. 오케하자마 전투의 전초전에서 마에다 도시이에 등과 함께 적의 수급을 올려 오다 노부나가에게 보여주고, 버리는 방침을 설명받았다. 요시카쓰는 이때 손가락을 물어뜯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오와리 지』나 『다이코키』 등에 있는 일화이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요시카쓰는 휘를 요시카쓰로 칭하고, 통칭은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2.3. 오다 가문에서의 활약
오다 노부나가를 우마마와리로 섬겼다. 고쇼였다는 설도 있다.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핫토리 잇츄(고헤이타)가 부상을 입자 그를 돕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이름을 떨쳤다. '노부나가 공기'에는 모리 신스케의 이 공적이 "어린 군주 (모리 히데요리)"를 (일족의) 모리 주로毛利 主税일본어가 보호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소문냈다는 이야기가 적혀 있다. 또한, 이때 손가락을 물어뜯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오와리 지』나 『다이코키』 등에 있는 일화이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휘를 요시카쓰로 칭하고, 통칭은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호로슈가 선발되었을 때 구로호로슈 중 한 명으로 선발되었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 에이로쿠 12년 (1569년) 오코치성 공격에 참가했다. 노부나가의 측근으로서 샤쿠키와마와리반슈(尺限廻番衆)에 속했다. 주로 관리로서 활약하여, 판물과 서장, 부장에 서명을 많이 남겼다.
덴쇼 10년 (1582년), 고슈 공격에서도 노부나가를 따라 4월 스와 주둔에서 고후쿠지 다이조인으로부터 증여품을 받았다.
2.4. 고슈 정벌과 혼노지의 변
덴쇼 10년 (1582년) 고슈 공격에서 오다 노부나가를 따라 스와에 주둔했으며, 고후쿠지 다이조인으로부터 증여품을 받았다.
같은 해 6월 혼노지의 변 때도 노부나가를 따라 교토에 머물렀다. 노부나가의 적자이자 오다 가문의 당주인 노부타다를 지키며 니조 고신조에 갇혀 노부타다와 함께 최후를 맞이했다. 이때 아들 이와마루도 함께 전사했다고 한다.
3. 오다 정권
모리 요시카쓰는 오다 노부나가를 섬겨 우마마와리로 활동했으며, 고쇼였다는 설도 있다.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는 큰 공을 세웠다. 이 공으로 이름을 떨친 후, 휘를 요시카쓰로, 통칭을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구로호로슈 중 한 명으로 선발되기도 했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에는 오코치성 공격(1569년)에 참가하고, 고슈 공격(1582년)에도 참전하는 등, 노부나가의 측근으로 활약했다. 주로 관리로서 판물, 서장, 부장에 서명을 남기는 역할을 수행했다.
3.1. 오다 정권의 주요 인물
오다 노부나가를 우마마와리로 섬겼다. 고쇼였다는 설도 있다.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는 처음으로 덤벼들어 부상을 입은 핫토리 잇츄 (고헤이타)를 돕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이름을 떨쳤다. 노부나가 공기에서는 모리 신스케의 이 공적이 "어린 군주 (모리 히데요리)"를 (일족의) 모리 주도가 보호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소문냈다는 이야기가 적혀있다. 또한, 이때 손가락을 물어뜯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것은 『오와리 지』나 『다이코키』 등에 있는 일화이다. 오케하자마 이후 휘를 요시카쓰로 칭하고, 통칭은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호로슈가 선발되었을 때 구로호로슈 중 한 명으로 이름을 올렸다.
노부나가 상락 후, 에이로쿠 12년 (1569년) 오코치성 공격에 참가했다. 노부나가의 측근으로서 샤쿠키와마와리반슈(尺限廻番衆)에 속했다. 주로 관리로서 활약하여, 판물과 서장, 부장에 서명을 많이 남겼다.
덴쇼 10년 (1582년), 고슈 공격에서도 노부나가를 따라 4월의 스와 주둔에서 고후쿠지 다이조인으로부터 증여품을 받았다.
3.2. 오다 정권의 주요 전투
에이로쿠 3년 (1560년) 오케하자마 전투에서 모리 요시카쓰는 처음으로 덤벼들어 부상을 입은 핫토리 잇츄를 돕고 이마가와 요시모토의 목을 베어 이름을 떨쳤다. 노부나가 공기에는 모리 신스케(요시카쓰의 개명 전 이름)의 이 공적이 "어린 군주 (모리 히데요리)"를 (일족의) 모리 주가 보호한 덕분이라고 사람들이 소문냈다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또한, 이때 요시카쓰가 손가락을 물어뜯겼다는 이야기가 있는데, 이는 『오와리 지』나 『다이코키』 등에 있는 일화이다. 오케하자마 전투 이후 요시카쓰는 휘를 요시카쓰로 칭하고, 통칭은 신스케에서 신자에몬으로 바꾸었다.
오다 노부나가가 상락한 후, 에이로쿠 12년 (1569년) 오코치성 공격에 참가했다.
덴쇼 10년 (1582년) 고슈 공격에도 노부나가를 따라 참전했으며, 4월에는 스와에 주둔하면서 고후쿠지 다이조인으로부터 증여품을 받았다.
4. 문학 작품
* 나카무라 아키히코가 《분게이슌주》지에 발표한 소설 《오케하자마의 용사》의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5. 관련 인물
* 신구 마사하루
* 나카무라 아키히코
* 이토 준
* 무라마츠 카츠미
* 이마이 츠바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