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부노 다다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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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부노 다다미는 10세기 중반에 활동한 일본의 가인이다. 953년과 960년의 궁중 시합에 참여하여 와카를 읊었고, 칙찬 와카집에 36수의 작품이 실렸다. 가집으로 『다다미슈』가 전해진다. 대표적인 와카로는 "恋すてふ わが名はまだき 立ちにけり 人知れずこそ 思ひそめしか"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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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부노 다다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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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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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 | 헤이안 시대 중기 |
개명 | 壬生名多 → 壬生忠実 → 壬生忠見 |
관위 | 종6위, 셋쓰노다이메 (摂津大目) |
주군 | 무라카미 천황 |
씨족 | 미부씨 |
부모 | 아버지: 미부노 다다미네, 어머니: 불상 |
특기 사항 | 36가선 중 한 명 |
2. 생애 및 경력
덴랴쿠 8년(954년) 5월 미소도코로 정외선부[2], 덴토쿠 2년(958년) 1월 30일 셋쓰 대목[2]에 임명되었다고 알려져 있다. 한편, 정6위상(正六位上) ・ 이요노죠(伊予掾)로 서임되었다는 기록도 있으나, 자세한 경력은 불분명하다.
가인으로서는 덴랴쿠 7년(953년) 10월의 다이리 국화연(内裏菊合), 덴토쿠 4년(960년)의 다이리 노래시합(内裏歌合)에 참가하여 와카를 읊는 등 병풍가(屏風歌)로 활약하였다.
칙찬(勅撰) 가인으로서 『후센 와카슈』에 1수가 실린 것을 시작으로, 칙찬 와카슈에 총 36수의 작품이 수록되었다.[1] 개인 가집(家集)으로는 『다다미슈』(충견집)가 있다.
가인으로서는 덴랴쿠 7년(953년) 10월의 내리 국합(内裏菊合), 덴토쿠 4년(960년)의 내리 우타아와세(内裏歌合)에 참여하는 등 병풍가(屏風歌)로 활약했다. 칙찬 가인으로서 『후센 와카슈』(1수)를 포함하여 칙찬 와카슈에 총 36수가 실려 있다.[1] 개인 가집으로는 『다다미슈』가 전해진다.
3. 가인(歌人)으로서의 활동
3. 1. 대표적인 와카
나의 사랑을 모두가 알아버려 어쩌면 좋아 아무도 알 수 없게 품었던 사랑인데
恋すてふわが名はまだき立ちにけり人知れずこそ思ひそめしかjpn
이 와카는 백인일수의 41번째 수록 작품이다.
4. 일화
덴토쿠 내리 노래합에서 아래와 같은 와카(和歌)를 읊었다.
:恋すてふ 我が名はまだき 立ちにけり 人知れずこそ 思ひそめしか (『슈이와카슈』 연애 1-621・『백인일수』 41번)
이 노래합에서 아래의 와카를 읊은 다이라노 가네모리에게 패배한 후, 번민하다가 죽었다는 이야기가 『사석집』에 전해진다.
:忍ぶれど 色に出でにけり わが恋は ものや思ふと 人の問ふまで
그러나 『태초지』에는 그가 번민 끝에 죽지 않았다고 기록되어 있으며, 그의 가집(歌集)에는 늙어버린 자신의 처지를 읊은 노래도 남아 있어 이 일화의 신빙성에는 의문이 제기된다.
또한, 다다미는 집안이 가난했지만 일찍부터 와카 재능을 인정받아 어린 시절부터 내리(内裏, 천황이 거처하는 궁궐)로부터 부름을 받았다. 그가 탈 것이 없어 참내(参内, 궁궐에 나아감)할 수 없다고 아뢰자, 죽마라도 타고 오라는 명을 받았다. 이에 다다미는 다음과 같은 노래를 지어 바쳤다고 한다.
:竹馬は ふしかげにして いと弱し 今夕陰に 乗りて参らむ (죽마는 마디 그림자가 있어 약하니, 오늘 저녁 햇살에 타고 가겠습니다)
이 일화는 『태초지』에 수록되어 있으며, 에도 시대 무렵 그려진 다다미의 그림 중에는 어린아이 모습으로 죽마를 타고 있는 그림이 많았다고 전해진다.
참조
[1]
서적
『勅撰作者部類』
[2]
서적
『三十六人歌仙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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