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식 (1920년)
1. 개요
민경식은 1920년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에서 태어나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하고 만주일보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기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현실을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으며, 대한청년단 단원을 거쳐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당선되어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 포플러 사장을 역임하고, 1960년대에는 전국에서 포플러 식수 운동을 추진했으며, 2000년에 사망했다.
2. 생애
민경식은 1920년 일제강점기 경기도용인군(현 용인시기흥구)에서 태어났다.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한 후 만주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기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현실을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대한청년단 단원을 거쳐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용인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헌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 포플러 사장을 역임했으며, 1960년대에는 전국에서 포플러 식수 운동을 추진했다. 2000년에 사망, 향년 80세.
조부 민구호(閔龜鎬, 1849 ~ 1934)와 진사(進士) 민영선(閔泳善, 1874 ~ 1959)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내는 나영란(羅英蘭, 1927년 ~)이다. 아들 민병규(丙奎, 1960년 ~)는 회계사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사위는 이철수(李喆壽, 1947년 ~, 前 하나은행 부행장), 조관호(조寬鎬, 재 캐나다 사업),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김승협(金承協, 1954년 ~), (주)라인무역 대표 이용호(李鎔浩, 1957년 ~)이다.
2.1. 초기 생애와 언론 활동
민경식은 1920년 일제강점기 경기도용인군(현 용인시기흥구)에서 태어났다.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한 후 만주일보에서 기자로 활동했다. 그는 기자로서 일제강점기 한국인의 현실을 알리고,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데 힘썼다.
2.2. 정치 활동
일제강점기 경기도 용인군 (현 용인시기흥구) 출신이다. 일본 대학 예술과를 졸업했다. 만주일보 기자, 대한청년단 단원을 거쳐 1948년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용인 선거구에서 출마하여 국회의원에 당선되었다. 제헌 국회의원으로서 대한민국 헌법 제정에 참여했다. 이후 한국 포플러 사장을 역임했으며, 1960년대에는 전국에서 포플러 식수 운동을 추진했다.
2.3. 가족 관계
조부 민구호(閔龜鎬, 1849 ~ 1934)와 진사(進士) 민영선(閔泳善, 1874 ~ 1959)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내는 나영란(羅英蘭, 1927년 ~)이다. 아들 민병규(丙奎, 1960년 ~)는 회계사로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사위는 이철수(李喆壽, 1947년 ~, 前 하나은행 부행장), 조관호(조寬鎬, 재 캐나다 사업), 서울대학교병원 진료부원장 김승협(金承協, 1954년 ~), (주)라인무역 대표 이용호(李鎔浩, 1957년 ~)이다.
3. 역대 선거 결과
민경식은 1948년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선거에서 대한독립촉성국민회 후보로 경기 용인군 선거구에 출마하여 22,468표(60.51%)를 득표하여 당선되었다. 1950년 대한민국 제2대 국회의원 선거에서는 무소속으로 같은 선거구에 출마했으나 4,451표(11.67%)를 얻어 낙선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