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르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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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바르탄은 카묵 몽골의 최초 칸인 카불 칸의 아들로, 카불 칸 사후 칸을 계승했으나, 기록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 그는 수니길 푸진과의 사이에서 몽게투 키얀, 네쿤 타이시, 예수게이 바투르, 다아리타이 옷치긴의 네 아들을 얻었으며, 이 중 예수게이는 징기스칸의 아버지이다. 바르탄의 후손들은 징기스칸 시기에 키야트 씨족의 유력 가문이었으나, 징기스칸과의 갈등으로 인해 일부는 처형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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칭기즈 칸의 손자이자 툴루이의 아들인 몽케 칸은 1251년 몽골 제국의 대칸으로 선출되어 금나라 정벌, 유럽 원정 참여, 중앙 정부 강화, 무역로 확보, 고려 항복, 훌라구를 통한 이란-이라크 원정 성공, 룸 술탄국 정벌, 티베트-대리국 평정 등 광범위한 영토 확장을 이끌었으나 남송 정벌 중 병사하며 몽골 제국 분열의 원인이 되었다.
바르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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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카묵 몽골의 초대 칸인 카불 칸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형제로는 삼 카추라가 있었다. 카불 칸이 사망한 후 칸위를 계승한 것은 카불 칸의 재종사촌인 족부 암바카이 칸과 바르탄의 동생 쿠툴라 칸이었기 때문에, 바르탄 바아토르의 사적에 관해서는 거의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1]
카불 칸(Khabul Khan)의 아들이자 툼비나이 세첸(Tumbinai Setsen)의 손자이다. 아내 수니길 푸진(Sünigil Füǰin)과의 사이에서 몽게투 키얀(Mönggetü Kiyan), 네쿤 타이시(Nekün Taiši), 예수게이(Yesugei), 다아리타이 옷치긴(Da'aridai Otchigin) 네 아들을 두었다.[5]
바르탄의 자손들은 징기스칸 시기에 키야트 씨족 하위 집단의 장으로서 유력했으나, 씨족 질서 해체 및 권력 집중을 꾀한 징기스칸과 대립하였다. 제8익의 창시우다이만이 징기스칸에게 충실하였으나, 알탄, 쿠차르, 다리타이 오치긴은 징기스칸을 배신하여 처형되었다.[6][2]
[1]
서적
村上1970
『집사(集史)』 「바르탄 바가투르(Bartān Bahādur) 기(紀)」에 따르면, 아내 수니길 후진(Sūnīgil fūjīn|수니길 푸진tr)과의 사이에서 몽게투 키얀, 네쿤 타이시, 예수게이, 다리타이 오치긴 이렇게 네 아들을 얻었다고 한다.
몽게투 키얀의 아들 창시우다이는 "키야트 창시우트 씨족"을 창설하였으며, 징기스칸 시대에는 큰아버지인 쿠툭투 몽골과 함께 "칭기스 칸의 13익"의 제8익을 이끌었다.
네쿤 타이시 및 그의 아들 쿠차르는 "키야트 사야르 씨족"을 창설하였으며, 징기스칸 시대에는 숙부인 다리타이 오치긴과 함께 "칭기스 칸의 13익"의 제7익을 이끌었다.
다리타이 오치긴은 바르탄 바아토르의 자식들 중에서 유일하게 징기스칸 시대에 생존해 있었으며, 조카 쿠차르와 함께 "칭기스 칸의 13익"의 제7익을 이끌었다.
이처럼, 바르탄 바아토르의 자손은 징기스칸 시대에 키야트 씨족 하위 집단의 장으로서 유력했으나, 이윽고 씨족적 질서의 해체·권력의 집중을 목표로 하는 징기스칸과 대립하게 되었다. 제8익을 이끄는 창시우다이만이 징기스칸에게 충실했지만, 알탄, 쿠차르, 다리타이 오치긴은 징기스칸을 배신하고, 후에 처형되었다.[2]
3. 가계 및 후손
바르탄의 가계 및 후손은 다음과 같다.관계 이름 비고 조부 툼비나이 세첸(Tumbinai Setsen) 부친 카불 칸(Khabul Khan) 카묵 몽골(Khamag Mongol) 초대 칸 형 오킨 바르카크(Ökin Barqaq) 부인 수니길 푸진(Sünigil Füǰin) 장남 몽게투 키얀(Mönggetü Kiyan) 창시우드 키야트(Čangši'ud)의 시조, 징기스칸(Genghis Khan) 13익 중 제8익 차남 네쿤 타이시(Nekün Taiši) 키야트 사야르 씨족 창설, 징기스칸 13익 중 제7익 삼남 예수게이(Yesugei) 징기스칸의 아버지 손자 테무친(Temuchin) (징기스칸) 사남 다아리타이 옷치긴(Da'aridai Otchigin) 징기스칸 13익 중 제7익
바르탄의 자손들은 징기스칸(Genghis Khan) 시기에 키야트(Kiyat) 씨 하위집단의 장으로서 유력하였으나, 징기스칸과 대립하였다. 창시우다이(Čangši'ud)만이 징기스칸에게 충실하였고, 알탄(Altan), 쿠차르(Qučar), 다아리타이 옷치긴(Da'aridai Otchigin)은 징기스칸을 배신하여 처형되었다.[6]
4. 징기스 칸과의 관계 및 갈등
5. 키야트 씨족 계보
이름 한자 비고 툼비나이 세첸 둔비내 삼 카추라 갈적혼 아달긴 씨의 시조, 자손은 제3익 카랄다이 자손은 제4익 카불 칸 갈불률한 카묵 몽골 초대 칸 오킨 발카크 과근팔랍합 자손은 제5익・제6익 바르탄 팔리단 몽게투 키얀 몽가흑안 창시우다이 섐쉐치리 제8익 네쿤 타이시 섭곤대사 쿠차르 화찰아 제7익 예수게이 바아토르 열조야속개 유령이 제1익이 됨 칭기스 칸 제2익 다아리타이 오치긴 답리진 제7익 쿠토크투 몽굴 홀도로면예 제8익 쿠툴라 칸 홀도랄한 "온 몽골" 제3대 칸 조치 칸 졸적 제9익 알탄 아륵단 제10익 쿨란 바아토르 홀란팔두아 제11익 토도엔 오치긴 철단알적근 제11익
참조
[2]
서적
本田1991
[3]
서적
몽골비사
[4]
서적
원사 卷1
[5]
서적
村上1970
[6]
서적
本田19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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