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암바카이 칸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암바가이 칸은 12세기 몽골의 타이치우드 부족의 통치자이자 카마그 몽골의 칸이었다. 그는 카불 칸의 뒤를 이어 몽골 부족들을 통치했으나, 타타르족에게 납치되어 금나라에 의해 처형당했다. 암바가이 칸은 아들 카아단 타이시를 타타르 족장의 딸과 결혼시키려다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금나라에 끌려가 십자가형을 받았다. 그의 죽음은 칭기즈 칸이 금나라를 공격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그의 후손들은 칭기즈 칸의 경쟁자들과 갈등을 겪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1091년 출생 - 바르치스와프 1세
    바르치스와프 1세는 12세기 초 포메라니아 공작으로, 작센인에게 포로로 잡혀 기독교 세례를 받고 폴란드 공작의 지원을 받아 포메라니아 기독교화에 힘썼으며, 1134년에서 1148년 사이에 이교도에게 살해당했다.
  • 유괴 - 납치
    납치는 불법적으로 사람을 잡아 가두는 행위로, 몸값, 정치적 목적, 종교 강요, 성적 학대 등 다양한 동기에서 발생하며, 국제법상 강제실종은 반인도 범죄로 간주되고, 미국, 파키스탄, 영국 등에서 발생 건수가 높게 나타나며 전 세계적으로 위험이 증가하는 추세이다.
  • 유괴 - 볼모
    볼모는 고대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정치, 외교, 전쟁, 범죄 등 다양한 맥락에서 조약 이행, 동맹 관계 보증 등을 위해 활용되었으며, 현대에는 테러, 범죄 등 부정적인 목적으로 변질되어 국제법으로 금지된다.
암바카이 칸 - [인물]에 관한 문서

2. 생애

암바카이 칸은 보르지긴 씨족 출신으로, 카묵 몽골의 칸 카이두의 증손이자 초대 칸 카불 칸의 사촌동생이다. 원조비사와 페르시아계 사서 집사 등에서는 그를 칸으로 기록하고 있다.[11] 라시드 웃딘에 따르면 보르지긴 가문 내 최고 연장자였기에 카불 칸의 뒤를 이어 칸으로 추대되었다.[11][2] 그의 즉위 시기는 1146년에서 1150년 사이로 추정된다.

그는 타타르족과의 관계 개선을 위해 아들의 혼담이나 딸의 혼인을 목적으로 타타르족을 방문했다가 배신을 당해 카불 칸의 아들 토도엔 옷치긴과 함께 사로잡혔다. 이는 카마그 몽골의 성장을 견제하려는 금나라의 사주가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3] 결국 암바카이 칸은 금나라의 수도 중도로 압송되어 1156년경 나무 형틀에 못 박히는 등의 잔혹한 방식으로 처형되었다.[12][1]

몽골비사에 따르면, 그는 죽기 직전 베수드족 발카치를 통해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쿠툴라 등에게 타타르족과 금나라에 대한 복수를 간절히 당부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의 비극적인 최후는 몽골인들에게 깊은 원한을 남겼으며, 훗날 칭기즈 칸이 타타르족을 정벌하고 1211년 몽골-금 전쟁을 일으키는 중요한 명분이 되었다. 암바카이 칸의 사후, 카묵 몽골의 칸위는 카불 칸의 아들인 호툴라 칸이 계승하였다.

2. 1. 젊은 시절

암바카이 칸을 포함한 보르지긴 가계도.


암바카이는 보르지긴 오복 출신으로, 현재의 중국령인 소르각투쿠에서 태어났다. 그는 카묵 몽골의 칸 카이두의 증손으로, 카이두의 아들인 치르카 린후아(Charaqai Lingqum)[2]의 손자이다. 그의 아버지는 소르카두크친(Sorqaduqtu China)이며, ''몽골비사''에서는 센궁 빌게(Senggüm Bilge)로 언급된다.[2] 그는 보르지긴 씨족의 방계 혈통으로 타이치우드 부족의 통치자였다. 원조비사와 페르시아계 사서 집사 등에서는 암바카이를 칸으로 칭하고 있으며, 특히 원조비사에 따르면 칸(汗 хан)이 아닌 대칸, 즉 카간(合罕, 可汗 хаан)이라는 칭호를 사용했다고 한다.[11] 암바카이의 어린 시절과 초기 활동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카불 칸은 자신의 아들들 대신 사촌동생인 암바카이를 후계자로 지명했고, 이에 따라 암바카이가 카묵 몽골 울루스의 칸 자리를 계승했다. 라시드 웃딘에 따르면, 암바카이가 당시 보르지긴 가문에서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에 카불 칸의 뒤를 이었다고 한다.[11][2] 암바카이 칸의 카묵 몽골 대칸 즉위 시점은 1146년 설, 1148년 설, 1150년 설 등이 존재한다.

1146년 카불 칸이 병으로 임종을 맞을 때, 몽골인들은 타타르 주술사를 초빙했으나 그는 카불 칸을 살리지 못했다. 이에 카불 칸의 친척들은 카불 칸이 사망하자 타타르 주술사를 살해했다. 이 사건으로 타타르인들은 카불 칸 가문에 깊은 원한을 품게 되었으며, 금나라 통치자들은 이를 몽골 부족 간의 갈등을 조장할 기회로 여겼다.

2. 2. 타타르족의 배신과 최후



암바카이 칸은 타타르족과의 오랜 갈등을 끝내기 위해 타타르족을 방문했다. 방문 목적에 대해서는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하나는 코를렌 호수와 부이르호수 사이 우르순 계곡 주변에 살던 타타르 부족장(아이리우드 또는 부이루드)의 딸과 자신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의 약혼을 위해서였다는 설이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딸을 타타르족 족장에게 시집보내기 위해서였다는 설이다. 두 경우 모두 카불 칸의 아들 토토엔 옷치킨이 동행했다.

그러나 돌아오는 길에 타타르족의 배신으로 코를렌 호수와 부이르호수 사이에서 사로잡혔다. 딸을 시집보내던 중 습격당했다는 설에서는 일행 대부분이 살해당하고 암바카이 칸과 토토엔 옷치킨만 포박되었다고 한다. 이 배신은 커져가는 카마그 몽골의 세력을 견제하려는 여진족의 금나라가 타타르족을 사주하여 벌어진 일이라는 분석도 있다.[3] 암바카이 칸과 토토엔 옷치킨은 금나라의 수도 중도로 압송되었다.

1156년[1], 암바카이 칸은 중도에서 처형되었다. 처형 방식에 대해서는 수레 혹은 나무로 만든 당나귀목마에 팔다리가 묶인 채 이 박히는 잔혹한 형벌을 받았다는 기록과[12], 금나라에서 보낸 자객에게 참수당한 뒤 머리가 금나라로 보내졌다는 설이 있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암바카이 칸은 죽기 전 몽골 베수드족 사람 발카치를 통해 아들 카다안 타이시와 쿠툴라 등에게 복수를 다짐하는 유언을 남겼다. 그는 "내가 일국의 군주가 되었으나 딸아이를 사랑하여 차마 참지 못하고 이런 일을 겪으니 후인은 마땅히 나를 거울로 삼거라. 너희들은 다섯 손가락의 손톱이 다 빠져 달아나도록, 너희들의 열 손가락이 다 닳아 없어지도록 나의 원수를 갚아다오"라고 전했다. 또한 금나라 해릉양왕에게 "네가 남의 손을 빌려 술수로 나를 붙잡아 부당한 형벌을 가했다. 내가 죽으면 나의 백부, 숙부, 형제들이 보복할 것이다"라고 항의했으나, 해릉양왕은 "그 말은 너희 부족 무리한테나 고하는 것이 옳다. 짐은 두렵지 않다"고 응수했다고 한다. 몽골비사원사 등에는 정확한 사망 날짜가 기록되어 있지 않다.

훗날 1211년, 칭기즈 칸은 몽골-금 전쟁을 일으켜 금나라를 멸망시켰는데, 이는 암바카이 칸의 비극적인 죽음에 대한 복수를 명분 중 하나로 삼았다.

2. 3. 사후



암바카이 칸의 시신 행방과 묘지에 대한 기록은 전해지지 않는다. 그의 부인 중 오르바이(Orbei)와 소카타이(Sokhatai)는 테무친(훗날의 칭기즈 칸)이 태어나고 예수게이가 살해된 이후까지 생존했다. 이들이 타르구타이 쿠릴투크의 친할머니인지는 불확실하다. 몽골비사에 따르면, 훗날 예수게이의 부인 호엘룬은 남편의 세력을 등에 업고 암바카이 칸의 두 부인을 무시했다고 한다. 이로 인해 예수게이 사후 그의 가족이 부족에서 배척당할 때, 오르바이와 소카타이는 호엘룬과 그 가족에게 매우 냉담하게 대했다.

암바카이 칸의 사후 카마크 몽골의 쿠릴타이에서는 카불 칸의 넷째 아들인 쿠툴라 칸을 새로운 칸으로 선출했다. 쿠툴라 칸은 암바카이 칸의 복수를 위해 13차례에 걸쳐 타타르 족과 전쟁을 벌였으나, 결국 복수에 실패했다.[13]

암바카이 칸의 아들 중 한 명인 카다안 타이시(Qadaan Taishi)는 타이치우드 부족의 실질적인 지도자가 되어 호툴라 칸과 함께 타타르 원정에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1160년대경, 왕위 계승을 둘러싼 형제나 사촌들에 의해 독살된 것으로 추정된다.[1] 카다안 타이시의 뒤를 이어 타르구타이 쿠릴투크가 타이치우드의 족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타르구타이는 쿠툴라 칸 사후 친척인 예수게이와 갈등했으며, 예수게이가 타타르 족에게 독살되자 이를 빌미로 테무진 일가를 박해했다. 이후 세력을 키운 테무진과의 경쟁에서 밀렸고, 자무카와 연합하여 테무진에게 대항했으나 1201년 최종적으로 패배하면서 타이치우드 씨족은 사실상 와해되었다.

훗날 칭기즈 칸은 타타르족과의 전투 중 일부 타타르족 포로들을 마차 바퀴로 처형하며 "타타르족이 이런 방식으로 우리 조상(암바카이 칸)을 죽였다"고 언급하며 복수심을 드러냈다. 또한 1211년 몽골-금 전쟁을 일으켜 금나라를 공격한 주요 명분 중 하나로 금나라에 의해 잔혹하게 처형된 암바카이 칸에 대한 복수를 내세웠다.

1266년 10월, 쿠빌라이 카안이 이전 시대의 몽골 대칸들과 카묵 몽골의 칸들에게 시호를 추존했을 때, 암바카이 칸은 알 수 없는 이유로 추존 대상에서 제외되었다.

암바카이 칸의 삼촌 베수테이(Besütei)는 베수드부의 시조가 되었다.

암바카이 칸은 두 부인 오르베이와 소카타이 사이에서 여러 아들을 두었다:[5]

이름설명
아달 칸 (Adal Khan)타르구타이 쿠릴투크의 아버지
타르구타이 쿠릴투크 (Targutai Kiriltuk)아달 칸의 아들. 타이치우드 족장, 칭기즈 칸의 경쟁자. 1201년 사망.
아우추 바가투르 (Auchu Baghatur)
카다안 타이시 (Qadaan Taishi)
쿠릴 바가투르 (Quril Baghatur)
토다아 (Toda'a)칭기즈 칸 시대 타이치우드 부 족장 중 한 명.[2]
코드운 오르창 (Qodun Orchang)
바카치 (Baqachi)
우도르 바얀 (Udor Bayan)


3. 가계



암바카이는 소르카두크친(mn)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소르카두크친은 카이두 칸의 아들인 차라카이 링쿰(mn)[2]의 아들이었다. 그의 아버지는 ''몽골비사''에서 센궁 빌게(mn)로 언급된다. 암바카이는 보르지긴 씨족의 방계 일원으로 타이치우드 부족의 통치자였으며, 나중에는 카마그 몽골의 칸이 되었다. 라시드 알 딘에 따르면, 암바카이는 보르지긴 가문에서 가장 연장자였기 때문에 카불 칸의 뒤를 이었다.[2]

암바카이 칸에게는 여러 명의 아내가 있었으나, 그의 재종증손자인 칭기즈 칸이 태어난 뒤까지 생존했던 두 부인 우르베이(mn)와 소카타이(mn)의 이름만 ''몽골비사''를 통해 정확히 전해진다.[5]

암바카이 칸에게는 10명의 아들이 있었다고 전해진다. 알려진 아들들은 다음과 같다.[5][2]


  • 아달 칸(mn)
  • 아우추 바가투르(mn)
  • 카다안 타이시(mn)
  • 쿠릴 바가투르(mn)
  • 토다'아(mn) 또는 토도엔 기르테(mn) — 칭기즈 칸 통치 시대의 타이치우드 부 족장 중 한 명.[2]
  • 코드운 오르창(mn)
  • 바카치(mn)
  • 우도르 바얀(mn)


아들 중 카다안 타이시는 사실상 타이치우드의 족장이 되어 호툴라 칸과 함께 타타르에 대항하는 원정에 참여했다. 그러나 그는 1160년대에 왕위 계승 문제로 형제나 사촌들에 의해 독살당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1] 카다안의 뒤를 이어 칭기즈 칸의 경쟁자인 타르구타이 키릴투크(mn)가 족장이 된 것으로 보인다. 타르구타이 키릴투크는 암바카이의 아들 카다안 타이시의 아들이라는 설과, 다른 아들인 아달 칸의 아들이라는 설이 있다.

보돈차르부터 카불 칸까지의 보르지긴 씨의 계보


카불 칸부터 시작되는 키야트 씨의 계보와, 암바가이 칸부터 시작되는 타이치우트 씨의 계보

참조

[1] 학위논문 Studies in the career of Chinggis Qan. https://eprints.soas[...] SOAS University of London 1996
[2] 서적 Rashiduddin Fazlullah's Jamiʻuʼt-tawarikh = Compendium of chronicles https://www.worldcat[...] Harvard University, Dept. of Near Easter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1998
[3] 간행물 DYNASTIC RELATIONS IN EAST ASIA DURING THE 10TH-14TH CENTURIES http://etd.lib.metu.[...]
[4] 서적 The History of Central Asia: The Age of Islam and the Mongols https://books.google[...] Bloomsbury Publishing 2016-05-30
[5] 서적 The Secret History of the Mongols: And Other Pieces https://books.google[...] Routledge 2013-05-13
[6] 문서 元朝秘史
[7] 문서 村上 1970
[8] 문서
[9] 문서
[10] 문서
[11] 서적 Rashiduddin Fazlullah's Jamiʻuʼt-tawarikh = Compendium of chronicles Harvard University, Dept. of Near Eastern Languages and Civilizations 1998
[12] 간행물 DYNASTIC RELATIONS IN EAST ASIA DURING THE 10TH-14TH CENTURIES http://etd.lib.metu.[...]
[13]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