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남
1. 개요
박경남은 일본 돗토리현 출신의 재일 한국·조선인 작가이자 사회 운동가이다. 1992년 청구문화장려상을 수상했으며, 2004년에는 여성 인권 단체인 온나구미 이노치를 결성하여 간사로 활동했다. 또한,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 실현을 위한 활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운동에도 참여했다. 주요 저서로는 《내가 좋아하는 마츠모토 씨》, 《어떻게든 될 거야, 괜찮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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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적자 -
아라이 히로후미
아라이 히로후미는 한국명 박경배로, 2001년 데뷔하여 다양한 영화와 드라마에서 활동하며 연기력을 인정받았으나, 2019년 성폭행 혐의로 징역형을 선고받은 재일 한국인 3세 일본 배우이다. -
조선적자 -
가네시로 가즈키
가네시로 가즈키는 조선학교 출신으로 대한민국 국적을 가진 일본의 소설가이자 각본가이며, 자전적 소설 《GO》로 나오키상을 수상하고 영화화된 작품을 통해 이름을 알렸다. -
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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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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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김웅 (정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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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대한민국 사람 -
정진석 (정치인)
2. 생애
박경남은 돗토리현요나고시에서 태어나 3세 때 돗토리시로 이주했다.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하고, 대학 진학 후 본명인 박경남을 사용했다. 1992년 청구문화장려상을 수상했다. 마에다 아키라, 김수진과의 대담에서 재일 코리안 사회에서 일본의 저명 인사를 재일 인증하는 행위가 빈번하게 일어난다는 것을 증언했다.
2.1. 어린 시절과 교육
돗토리현 요나고시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돗토리시로 이주했다. 돗토리 시립 센교 초등학교, 돗토리 시립 기타 중학교, 돗토리현립 돗토리니시 고등학교를 거쳐,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재일 한국·조선인으로서, 고등학교까지는 일본 이름인 아라이 게이코를 사용했지만, 대학 진학과 함께 조선 이름인 박경남을 사용했다. 대학 졸업 후, 구성 작가 등을 거쳐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2.2. 작가 활동
돗토리현요나고시에서 태어났다. 3세 때 아버지의 전근으로 돗토리시로 이주했다. 돗토리 시립 센교 초등학교, 돗토리 시립 기타 중학교, 돗토리현립 돗토리니시 고등학교를 거쳐 리츠메이칸 대학 문학부 사학과를 졸업했다. 재일 한국·조선인으로서 고등학교까지는 일본 이름인 아라이 게이코를 사용했지만, 대학 진학과 함께 조선 이름인 박경남을 사용했다. 대학 졸업 후 구성 작가 등을 거쳐 본격적인 작가 활동을 시작했다.
1992년 제10회 청구문화장려상을 수상했다.
마에다 아키라, 김수진과의 대담에서 김수진이 "재일임에 틀림없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강한 사람은 모두 코리안으로 해왔어요. 지금도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그래요"라고 발언했고, 이에 대해 마에다 아키라가 "아버지 세대의 말을 들어보면, 고질라도 울트라맨도 전부 코리안이 된다"고 발언했으며, 이에 대해 박경남은 "아하하하. 그래요, 그래요"라며 동의했다. 이는 재일 코리안이 일본의 저명 인사를 근거 없이 재일 코리안이나 코리안계 동포라고 주장하는 재일 인증 행위가 재일 사회에서 빈번하게 행해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3. 사회 운동
박경남은 재일 한국인으로서 인권 운동과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3.1. 재일 한국인 인권 운동
* 2004년 나카야마 치나츠, 신숙옥과 함께 온나구미 이노치를 결성하여 간사가 되었으며, 돗토리현 출신임을 빗대어 "재일 돗토리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04년 재일 한국인의 참정권 실현을 위해 다나카 히로시, 우쓰미 아이코, 김경득 등과 함께 정주 외국인의 지방 참정권 실현을 위한 한·일·재일 네트워크를 결성하고, 재일본대한민국민단 등과 협력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다.
* 2009년 3월, 신숙옥 등과 함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발기인이 되었다.
* 2009년 11월 18일, 나카야마 치나츠, 신숙옥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긴급 120만 명 서명에 찬동인이 되었다.
3.2.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운동
2004년 나카야마 치나츠, 신숙옥과 함께 온나구미 이노치를 결성하여 간사가 되었고, 돗토리현 출신임을 빗대어 "재일 돗토리인"으로 활동 중이다. 2009년 3월에는 신숙옥 등과 함께 전쟁과 여성 인권 박물관의 발기인이 되었다. 2009년 11월 18일, 나카야마 치나츠, 신숙옥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 문제의 입법 해결을 요구하는 긴급 120만 명 서명에 찬동인이 되었다.
3.3. 재일 인증 관련 발언
마에다 아키라, 김수진과의 대담에서 김수진은 "재일임에 틀림없다. 반신반의하면서도 그렇게 믿고 있었다. 우리 초등학교 시절부터 고등학교까지, 강한 사람은 모두 코리안으로 해왔어요. 지금도 조선학교에 다니는 아이는 그래요"라고 발언했고, 마에다 아키라는 "아버지 세대의 말을 들어보면, 고질라도 울트라맨도 전부 코리안이 된다"고 발언했다. 이에 대해 박경남은 "아하하하. 그래요, 그래요"라며 동의하며, 재일 코리안이 일본의 저명 인사를 근거 없이 재일 코리안이나 코리안계 동포라고 주장하는 재일 인증 행위가 빈번하게 재일 사회에서 행해지고 있음을 증언했다.
4. 주요 작품
| 출판 연도 | 제목 | 출판사 |
|---|---|---|
| 1990년 | 쿠미요(꿈이여)!- 경남 씨와 이야기하다 | 미라이샤 |
| 1992년 | 둥실 달이 떴으면 | 산고칸 |
| 1995년 | 언젠가 만날 수 있어 | 마이니치 신문사 |
| 1995년 | 내가 좋아하는 마츠모토 씨 | 산고칸 |
| 1997년 | 목숨만 잊지 않으면(시리즈 삶) | 이와나미 쇼텐 |
| 1998년 | 어떻게든 될 거야, 괜찮아 | 쇼가쿠칸 |
| 2000년 | 크레도 사라야지 그래도 살아가지 않으면 | 호쿠스이 |
| 2002년 | 사는 것을 격려하다. "고토구에 야간 중학교를! 20년의 소원" 강연회 전 기록 | 주카샤 |
| 2002년 | 속·사는 것 배우는 것 게스트 강화집 | 소후샤 |
| 2003년 | 요코하마 르네상스 | 다이아몬드사 |
| 2003년 | 나 이상도 아니고, 나 이하도 아닌 나 | 이와나미 쇼텐 |